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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5화)
chapter 2 내가 바로 영주다!(4)


발칸은 돈이 들어오자 곧바로 일을 척척 진행시켰다.
“마탑을 짓기 위한 땅은 물색해 두었는가?”
“땅은 물론이거니와 장인들까지 있습니다. 헌데, 정말 마탑을 지으실 겁니까? 마탑은 높이가 있기 때문에 타인들의 눈에 띄기 쉽습니다. 허가 없는 마탑은 불법으로 처리되어 나라가 움직일 경우 마탑이 붕괴될 것입니다.”
롬펠이 염려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발칸은 염려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거라면 이미 자네가 손을 써 두지 않았나?”
“예?”
발칸이 롬펠이 쥐고 있던 프라시스 영지의 전역 지도를 펼쳤다.
“여길 잘 보게.”
발칸이 손가락으로 짚은 곳은 다름 아닌 프라시스 영지민들의 급수가 되는 곳이었다.
“그것은 강이 아닙니까?”
“이 강을 따라 올라가 보면 어떻겠는가?”
영지와는 제법 거리가 멀어지지만 쭈욱 따라 올라가니 주변에 출입금지구역이 나왔다.
롬펠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 영주님! 출입금지구역은 나라에서 정한 곳입니다. 아무리 영주님이라 할지라도 그 구역을 사유지로 쓸 수는 없습니다.”
“몬스터들의 출현이 잦은 곳이라 들었지.”
“예, 맞습니다. 매년 우리 영지에 출몰하는 몬스터들도 모두 그곳에서 내려오는 것이지요.”
“마탑이 세워지면 자연스레 그 몬스터들의 출입을 막을 수 있네.”
“그, 그 정도로 그 마법사들이 강합니까?”
매년 200여 명의 사상자를 내서야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프라시스 영지의 입장으로서는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마탑의 거대한 높이조차도 가릴 만한 절벽들과 지형들이 수두룩했다.
롬펠은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았지만, 몬스터 정도는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들에게 별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강심장인 장인들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작업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꼭 해야 하네. 아니, 반드시 설득해 주게. 돈은 얼마를 들어서라도 상관없으니 말일세.”
“으음!”
롬펠은 신음을 흘렸다. 영주가 사정을 하니, 모른 체할 수도 없었다.
“일단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영주님.”
“어차피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들이 있는 이상, 몬스터의 공격은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할 걸세.”
“알겠습니다.”
롬펠이 고개를 숙이며 바깥으로 나가자 발칸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일란 왕국의 작은 영지인 프라시스에서 거대한 발걸음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chapter 3 자유도시 에밀(1)


어느덧 프라시스 영지에도 가을이 들었다.
빨간 단풍잎을 보며 농경의 신 아우르에게 기도를 드리지만, 이번에도 메뚜기 떼들의 공격을 감당해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한숨만 나왔다.
바로 이웃 영지가 메뚜기 떼들의 공격을 받고, 이번 년도 작황도 흉년에 들어섰기 때문에 프라시스 영지민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영주님, 영지 식량고를 풀어헤친다 해도 3만 명의 영지민을 먹여 살리기에는 부족할 따름입니다.”
이미 3년 동안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식량 저장고에도 더 이상 영지민을 위해 사용할 식량이 없었다.
전쟁이 일어날 유사시를 위해 3만 명의 영지민이 3개월을 버틸 만한 식량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전쟁에 버금가는 유사시에나 사용할 비상식량이었다.
“지금 마법석 광산에 이 이상 투입시킬 여력이 얼마나 되오?”
가을이 되자 발칸은 마법석 광산에 누구보다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석 광산만이 이 영지의 원동력이 되어 주는 자금을 쥐어 주기 때문이다.
“아직 500여 명은 더 투입시켜도 문제없습니다.”
“마법석 산출량은 올해 얼마쯤 되는 거요?”
“다행히 2급석과 5급석 이하의 하위 마법석들이 다량 배출되었습니다.”
마법석이 2등급이면 적어도 수천 골드는 받아 낼 수 있다.
5급석만 해도 2서클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5급석만 당장 내다팔아도 50골드 이상은 받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틀 전에 얘기했던 광산에서 일할 만한 영지민은 찾아보았소?”
“마법석 광산은 토지가 약하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그만큼 쉽게 무너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요. 큰돈을 준다고 해도 영지민 중 고작 100여 명만 지원했습니다. 그것도 당장 힘도 쓰지 못할 노인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들 중 고르고 골라 튼튼한 사내만 채용하게.”
“알겠습니다.”
발칸은 문득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쪽 방향으로 쭈욱 나아가면 지금 한참 마탑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었다.
예전에 존재했던 흑암의 탑과 매우 비슷한 모양으로 말이다.
롬펠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발칸은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롬펠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인가?”
“아…… 영주님,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는 것이라면.”
“영주님께서 데려오신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들은 대체 어떤 것을 연구하는 자들입니까?”
발칸은 신음성을 토해 내며 입을 열었다.
“그들은 오로지 내 명령에만 연구를 진행시키지. 연구를 진행시킨 지는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메뚜기 떼들의 공격에 영지를 지켜 낼 만한 마법무구들을 만들 것이오.”
“마, 마법무구!”
마법무구의 가격이 얼마이던가?
아무리 값싼 것이라 해도 수백 골드는 되고, 필요성이 극대화된 마법무구라면 수만 골드까지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 대륙에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메뚜기 떼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는 마법무구라니?
그것은 마도국 자하드에서도 불가능이라 생각한 것들이었다.
“그, 그런 것이 정말 가능합니까?”
“마법무구라 해도 영구적인 것은 불가능하네만, 마법석을 이용한다면 적어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테지.”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습니까?”
“아직, 코흘리개 수준밖에 되지 않았을 거요. 하지만 마법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법석 광산을 최대한 운영시켜야 하지.”
흑암의 탑의 흑마법사와 네크로맨서들도 엄연히 마도국에서 인정한 마탑이다.
그들 또한 새로운 학파를 주장하며 수십 년을 떠돌아 온 족속들이었다.
그리고 정착한 것이 바로 이 프라시스 영지.
아일란 왕국의 작은 영지였다.
꿀꺽!
롬펠은 마법무구 생각에 침을 삼켜냈다. 마법무구만 생산해 낸다면 더 이상 프라시스 영지가 자금난에 빠질 일은 없었다.
발칸은 그런 롬펠의 생각을 알았는지 한마디 했다.
“마법무구에 대한 소문은 가급적이면 퍼트리지 않았으면 하오. 게다가 마법무구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곳은 그리 많지 않지. 마도국이나 몇몇 유능한 마탑들뿐이니만큼 한 영지에서 마법무구가 생산되면 대륙의 눈이 쏠릴 위험이 있소이다.”
“아, 알겠습니다.”
결국 마법무구는 판매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놀라움은 자칫 탐욕의 길로 빠져들 확률이 높지. 안타깝지만 지금 당장은 마법무구의 힘을 빌려 돈을 얻을 생각은 없네. 이 영지가 도탄에 빠지지 않는 이상은…….”
“명심하겠습니다, 영주님.”
발칸은 차를 홀짝 마시며 창가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럼, 광산에서 일할 만한 사람들을 어디서 구한다…….”
롬펠이 그때 탄성을 토해 내며 입을 열었다.
“아! 영주님,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이틀 후면 현재 영지에 거래 중인 상단 프리 머천트가 수도 헬라인으로 떠난다고 합니다. 그때, 몸을 실어 수도에 도착하면 노예 시장에 갈 수 있습니다.”
“노예 시장이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엄연히 노예매매가 불법인 아일란 왕국에서, 그것도 수도인 헬라인에서 노예매매라니?
“현재 저희 영지는 남는 땅이 상당히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작의 작위는 최대 4만 명의 영지민을 꾸릴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싼 값에 가족 단위의 노예들을 구매해 영지민으로 받아 주는 겁니다.”
가족이 딸린 노예의 가격은 상당히 값싼 편이다.
인간의 몸을 돈으로 계산한다는 것이 웃긴 얘기일지라도, 그것은 엄연히 이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노예들을 데려와 광부와 병사로 지원할 경우 영지민으로 받아 준다고 하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뜻에 따를 것입니다.”
이 대륙의 노예들은 대부분이 가축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신분 상승을 꾀한다면 광부고 병사고 지원자가 넘쳐 날 것이다.
“좋군! 그럼 지금 당장 프리 머천트 상단에 은밀하게 접촉하여 수도로 향할 채비를 하시오.”
“병력은 얼마나 데려가시겠습니까?”
“병사들은 필요 없소. 내가 데려왔던 마법사들과 동행할 것이오. 아무래도 그 편이 편하고, 더 은밀할 테니.”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 동안 영주의 놀라운 능력을 옆에서 지켜봐 온 탓인지 롬펠은 군말 없이 따랐다.

그 후 발칸은 마탑의 건설 과정을 눈여겨보고 싶었던지 직접 홀로 찾아갔다.
“오! 탑주님! 아니, 이제 영주님이라고 불러야겠지요?”
흰머리가 지긋이 나 있는 노인이 발칸을 반겼다.
발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선배께서 그러실 이유는 없으십니다.”
발칸은 분명히 20대 중반 정도의 허약한 사내로 보이고, 노인은 60은 가볍게 넘긴 얼굴이었다. 하나 선배와 후배를 번갈아 가며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꺼릴 것이 전혀 없었다.
발칸이 기초 공사 중인 마탑을 보며 감회가 새롭게 젖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며 방랑하던 마도사들.
발칸도 어느 이름 모를 자의 아들로 태어나, 흑암의 탑주에게 키워졌다. 철이 들기 전부터 흑마법과 네크로맨서가 되기 위해 잠을 잊어 가며 학문을 닦았다.
그리고 대륙 어디에도 정착할 곳이 없어 항상 떠돌아 다녔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났는가. 마침내 얻은 영지에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짓고 있는 것이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장인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게 안타까웠지만 역시 영지민 중에서 이곳까지 찾아올 자들은 없었다.
“그런데 탑주께서 이 노부를 찾아오시다니, 무슨 일이오?”
“이번에 영지를 나갈까 합니다.”
“호오! 어딜 가실 목적이오?”
“노예를 몇 명 구입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아일란 왕국의 수도인 헬라인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장인이 섞여 있는 노예가 있다면 반드시 구하겠습니다.”
노인이 반색했다.
“그럼 우리들이야 좋지!”
“그래서 이번에 탑에 부탁이 있습니다.”
“탑주가 부탁이라니? 명령이라 하면 거역할 마도사가 누가 있겠는가? 자네는 이 흑암의 탑의 탑주이면서, 제일 강한 마도사라는 걸 잊었는가?”
발칸이 웃음기 띤 미소를 지었다.
“제일 강한 마도사라니요? 아직 선배에 비해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후후!”
“이놈! 푸흐흐. 그 나이에 겸손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는군.”
“세상 사람들은 저를 보고 동안이라 하더군요.”
발칸의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마나 홀의 강한 마기는 발칸의 겉모습을 10년이나 줄이고 있었다.
노인이 웃음을 지우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 그 부탁이 뭔가, 탑주?”
“제가 나가 있는 동안 영주성을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감히 어떤 자가 영주성을 공격한단 말인가!”
“요즘 나라 꼴이 말이 아니지요. 당장 영지만 벗어나도 도적 떼가 들끓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적이지요.”
“가신들을 의심하는 겐가?”
“저로서도 그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재간이 없으니.”
아둔하게 움직이는 자들과는 달리 헤르만은 가신들의 대표가 될 만했다. 그는 계산적이고,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법을 본능적으로 꿰고 있었다.
“물론, 그 가신들 중에서 배신할 자는 따로 있습니다.”
“배신할 자?”
라헬을 말하는 것이다. 그자는 탐욕심이 강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
“전 가신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수도에 잠시 갔다 올 생각입니다. 롬펠에게 말해 둘 터이니, 선배께서 잠시 제 역할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탑주가 속을 모르는 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자들은 대체로 눈썰미가 좋아 언제 들킬지 모르네.”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올 때쯤에는 은밀하게 영주가 아프다는 소문을 흘리십시오. 지금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건 반란 분자의 색출입니다.”
헤르만은 그래도 배신을 할 정도로 배포가 큰 자는 아니다. 머리가 제법 돌아가니, 라헬과 손을 잡지는 않을 터.
“탑주가 명을 내리니 이 늙은이는 따라야지 않겠나? 허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