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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8화)
chapter 4 움직임(2)


아일란 왕국 프리 머천트 상단 지부장인 하렌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쿵!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쳤다.
“그, 그것이 정말 말이 된다는 거요? 에밀이라 하면 자유도시! 그 자유도시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의 용병이 왕래하는데 용병이 없다니?”
용병 길드 에밀 지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한 소리지만 바로 이틀 전 이웃 영지에서 오크 부락이 발견되었소. 그 영지에서는 토벌할 능력이 없다 하여, 에밀의 시장님께 도움을 청해 왔소. 하지만 자유도시에 치안대를 제외하고는 병력이 존재하지 않으니 용병 길드에 의뢰하여 어제부로 513명의 용병들을 모조리 보내셨소.”
“그, 그럼 지금 존재하는 용병은?”
“어젯밤과 오늘 아침 사이에 임무가 끝나고 도착한 용병의 숫자는 고작 여덟에 불과하오. 그것도 모두 C급 용병들이라 호위 병력으로 쓰기에는 역부족할 것이오.”
“이, 이런…….”
하렌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얼마나 분한 것인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상단의 공격. 그리고 에밀로 오게 되었고, 용병이 없다. 이런 일이 결코 우연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누군가 개입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의 존재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용병 길드를 제외하고 호위 병력을 구할 만한 곳은 없소?”
하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지만 용병 길드 지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호위 병력으로 쓸 만한 곳은 아무 곳도 없소이다. 그나마 용병 길드를 제외하고 전투력이 제일 우수한 곳은 레인저 길드 정도랄까. 그들은 애초에 근접보단 원거리 전투형이니, 근접 용병의 수가 적은 이때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오.”
“이, 이럴 수가……!”
무엇을 위해 자신들이 이 에밀에 들어왔는데.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면 이 일은 모두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 것.
‘이웃 영지나 근처 동맹 상단에게 연락 조취를 해두어도 병력을 모으는 것은 못해도 3일에서 5일은 걸린다. 아니, 그들에게 연락 조취를 하는 것조차도 최소 하루 이틀은 소모될 터이니, 넉넉잡아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하렌은 자리에서 당장 일어나 용병 길드를 나갔다.



chapter 5 도주와 추격(1)


“수도로 가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산맥을 타고 단숨에 가로지르는 것과 하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안전한 길입니다.”
하렌에게는 고심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가로지른다면 최대 6일까지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10일 거리를 6일로 단축시킬 수 있다.
4일이나 단축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미 에밀에서 그들은 8일이나 지체된 상황.
6일로 단축시킬 수 있다고 해도 시간을 초과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겠군.”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상단과 여러 지부 상단에서 될 수 있는 대로 호위 병력을 끌어모아도 기존의 무사들보다 강할 리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수도 고작 200정도에 불과했다.
수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질이 떨어졌다.
그것이 하렌에게 심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산맥을 타고 가는 길은 운이 나쁘면 몬스터와의 조우를 생각할 수도 있다. 괜히 그렇게 되면 예정시간보다 더욱 긴 시간을 가지게 될 터.
“몬스터라면 염려 마십시오. 산길이 험악하기는 해도 이 정도 숫자라면 그 누구도 저희를 쉽게 건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하! 설사 아둔한 오크들이라 해도 이 정도 숫자면 기겁할 정도겠지요.”
“그럼 좋겠지만…….”
하렌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생각이 없는 이 호위무사 대장이 부러워 보였다.
“어휴! 그 길을 지나가려면 안내자가 필요하지 않겠소?”
호위무사 대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 남자를 데려왔다.
“그 길을 자주 돌아다니는 에반이란 자이온데, 몬스터가 다니지 않는 길을 귀신같이 안답니다.”
에반이란 자는 30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다.
“전직 무엇을 하셨소?”
“레인저를 했습니다.”
“레인저?”
호위무사 대장이 설명했다.
“주로 산에서 활동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까지 가는 길은 제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습니다. 저만 따라오신다면 최단 거리를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흠, 그럼 부탁하겠소.”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니 시켜 보도록 했다.
“우리는 지금 한시라도 급한 상황이오. 돈은 두둑하게 줄 터이니 빨리 가주었으면 하오.”
그러면서 금화 10개를 주자 에반이 황급히 손을 뻗어 금화를 주머니에 넣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헤헤!”
에반이 실없이 웃더니 이번 행렬의 선두를 맡았다.
발칸은 어디 적당한 행렬의 중간에 껴서 그들이 움직이는 속도로 똑같이 움직였다.
본래 마법사들은 체력이 약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유언비어가 퍼진 것이었다.
서클이 높으면 높아 갈수록 마법사의 신체는 약해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 신체가 약해지기 전에 마법사들은 미리 신체를 단련시킨다.
이런 산악이 힘들긴 해도 발칸이 젊은 장정들을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수도로 가는 일정이 조급해져 가고 있었다.

부스럭.
이틀째 움직이던 날, 프리 머천트 상단은 산적들과 조우했다.
하렌은 산적들을 보며 에반을 나무랐다.
“아니, 자신만 아는 길이라고 호언장담하지 않았소, 어찌 저 산적들이 있단 말이오?”
에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엥?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하지만 산적들은 떼거리로 몰려 나와 호위무사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여기 책임자 나와 보시유!”
하렌은 마차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나요.”
산적 중 뺨에 길게 검상을 입은 자가 건방지게 물어 왔다.
“이름이 뭐유?”
“하렌이라 하오.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앞을 막은 이유가 무엇이오?”
하렌은 산적에게 둘러싸일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통행세가 필요한 거요?”
“우리도 흙만 파먹고 사는 것은 아니니만큼 이해해 주슈! 어서 있는 것 모조리 썩 내놓으시오. 그렇다면 보내 주겠수.”
하렌이 턱짓을 보내자 호위무사 대장이 금화가 무더기로 있는 주머니를 그에게 내던졌다.
툭.
주머니를 집어 본 산적의 얼굴이 밝아졌다.
적어도 수십 골드는 될 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돈을 만져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산적은 대범한 척을 했다.
“험험! 우리가 고작 이 정도 돈으로 납득했다고 보슈!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슈, 행동으로! 고작 수십 골드로 입을 닦으려 하다니. 여봐라! 놈들을 어서 쳐…….”
“자, 잠깐 기다리시오!”
하렌은 산적과의 싸움을 원하지 않았다.
분명 싸우면 하렌 자신이 간단히 이기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 과정에서 병사 한 명이라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었다.
“나도 이제 이게 한계요!”
그러면서 던진 것이 또 수십 골드.
산적이 주머니를 열어 보니 대충 70골드는 되는 듯해 보이는 큰돈이었다.
“험험!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어서 가 보시오. 꼭 큰 이윤을 남길 수 있길 바라겠소.”
선처를 받은 산적이지만 오히려 선처를 내려 주는 산적의 모습에 하렌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고맙소.”
“별말씀을.”
산적의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오랜만에 큰돈을 만졌으니 어디다 쓸지 생각해 두는 것이다.
“흐흐! 이거 참, 돈이 많아도 고민이라더…… 헉!”
쿵!
산적이 갑자기 자신의 앞으로 날아온 쿼렐을 보며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저, 적이다!”
산적 중 하나가 수풀 사이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을 보며 허리춤에 찬 검을 길쭉하게 내밀었다.
산적 두목이 호기 좋게 그들 앞에 나섰다.
“이놈들! 감히 누구 영역에 넘어왔는지 알기나 하느냐? 죽고 싶지 않으면 저놈들처럼 통행료를 내고 썩 꺼져라!”
슝슝슝슝!
하지만 대답 대신 내려온 것은 수십 발의 쿼렐이었다. 다행히 대장이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부하들이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으아악!”
하렌은 인상을 찡그린 채 그들을 보며 물었다.
“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이번에도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에반이 그들을 보자 몸을 벌벌 떨었다.
“저, 저자들은…….”
하렌이 에반을 보며 물었다.
“저자들을 알고 있는 거요?”
“파란 망토와 초록색 부츠, 그리고 갈색 석궁들까지…….”
갑자기 나타난 50여 명의 괴한들은 나무들 사이로 몸을 숨기며 은밀하게 움직였다.
하렌은 에반을 보며 어서 말해 보라는 듯 재촉했다.
“대체 누구요?”
“우, 울프 레인저들입니다.”
“울프 레인저라니?”
“저도 레인저 생활을 해 왔지만, 울프 레인저들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 왔지만 개개인들 모두가 익스퍼트 급 이상에 산악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는 레인저들이랍니다.”
“이, 익스퍼트!”
레인저들이 소드맨 상급에 이르렀다고 해도 대단하다 할 정도인데 전원이 익스퍼트라니?
익스퍼트 급이라면 웬만한 기사단 못지않게 강하다는 뜻이 아니던가?
“저, 저들이 도대체 왜 우리를?”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좋습니다. 놈들의 눈에 찍히고 살아남은 자들이 없으니.”
산적 두목은 울프 레인저들에게 대항하려는 속셈이었는지 부하들을 무조건 밀어 넣었다.
“영역을 침범한 놈들인 만큼, 용서를 가하지 마라!”
이 산을 손바닥 보듯 하고 있는 산적들이지만, 레인저들 또한 산에 대해서는 홈그라운드라고 할 정도로 지형을 잘 이용했다.
호위무사 대장도 하렌에게 귀띔을 했다.
“일단 피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산적들을 방패로 삼고 도망친다면 어떻게든 도주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 알겠소.”
하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도주했습니다.”
“음…….”
울프 레인저.
휘날리는 파란 망토, 초록색 부츠, 그리고 갈색 석궁.
그 모든 것에 은빛 늑대가 수놓아져 있다.
자유도시 에밀뿐만 아니라 아일란 왕국 전역에서 약 100여 명 정도의 소수 정예로 활동한다고 알려진 비밀 단체.
레인저들도 그 본거지를 찾거나 추적에 성공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은밀하고 강한 단체였다.
울프 레인저의 단장은 큰돈이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엉덩이를 떼는 가격만 해도 수백 골드고 위험도에 따라 가격이 수십 배까지 뛰어 만 골드 이상의 의뢰도 종종 있었다.
그 정도 액수다보니 로열 크로이츠 상단에서도 간신히 그들을 포섭할 수 있었다.
임무는 수도로 향하는 프리 머천트 상단을 괴멸할시킬 것.
그리고 지부장이 가지고 있는 어떤 한 ‘물건’을 회수할 것.
벡터 단장은 눈을 찡그리며 상단이 움직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처 마을이나 도시는?”
부하 중 하나가 지도를 펼쳤다.
“이틀 거리에 하나 있습니다.”
“그때까지 놈들을 괴멸시킨다.”
벡터 단장이 발을 돌리려는 찰나, 누군가의 손이 벡터 단장의 발목을 붙잡았다.
“으으…….”
바로 산적 두목이었다.
온 몸에 피 칠을 한 채 품 안에 있던 비도를 빠르게 벡터 단장에게 날렸다.
“죽어라! 이놈!”
슉!
발목이 붙잡힌 상태에서 날린 비도.
거리도 코앞이었으니 십중팔구 맞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턱.
벡터 단장은 무심한 눈빛으로 손목에 그 비도를 맞았다.
그러나 비도는 손목에 맞았지만 충격은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벡터 단장의 곁으로 은은하게 둘러싸여 있는 마나의 기운 때문이다.
산적 두목은 눈을 치켜뜨며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소, 소드 마스…… 크헉!”
촤악!
벡터 단장의 곁에 있던 부하가 산적 두목의 머리를 단번에 잘라 냈다.
철퍼덕!
그 머리는 허공을 비산하며 땅바닥으로 거칠게 떨어졌다.
떨어진 머리에서도 산적 두목의 눈은 감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