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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10화)
chapter 5 도주와 추격(3)


그때, 발칸이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딸랑! 딸랑!
주기적으로 설치해 둔 마법 알람이 계속해서 울렸다. 이동하면서 1분 간격으로 설치해 둔 알람이었으니, 상대는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무슨 일이신가?”
하렌은 갑자기 발칸이 뒤를 돌아보자 그렇게 물었다.
발칸은 하렌의 말에 대답하기보다는 제일 선두에 서 있는 에반을 향해 물었다.
“지금 당장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없소?”
“이게 최고 빠른 길이오.”
“그럼 추적꾼들을 따돌릴 만한 장소는?”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잖소?”
발칸이 심각한 표정으로 움직이는 와중에도 뒤를 연신 돌아보았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 거요?”
하렌도 짜증이 났는지 조금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답답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발칸은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놈들이 왔습니다.”
딸랑! 딸랑! 딸랑!
그 순간 발칸의 머릿속으로 1분 거리에 있는 마지막 알람의 종소리가 울렸다.
“뭣이?”
터크와 하렌, 그리고 일행 모두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곳에서 갑자기 작은 점이 점점 커지기 있었다.
“저, 저건 대체 뭐요?”
터크는 눈에 작은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괴 생명체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발칸은 흑마법사다. 같은 흑마법의 냄새가 나는 마수도 모를 리가 없다.
“스카이 아이?”
그리고 그 스카이 아이 뒤로 석궁을 든 수십의 울프 레인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쪼, 쫓아왔다!”
에반은 몸을 웅크리며 겁에 질렸다. 발칸은 에반의 양 어깨를 붙잡고 앞뒤로 흔들며 물었다.
“이곳에 놈들과 싸울 만한 장소가 있소?”
에반이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 없소이다. 그런 장소가 있다고 해도 익스퍼트 급 레인저들을 상대로 어떻게 한단 말이요?”
호위무사 대장 터크가 발칸을 옆으로 밀치고 에반을 향해 물었다.
“그럼, 근접전에서 괜찮은 곳도 없단 말이요? 이대로 석궁에 맞으면 놈들의 밥만 될 뿐이오!”
“제, 제길! 나도 이젠 모르겠소. 그곳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하지 못하겠으니!”
에반이 자포자기식으로 옆 숲 속으로 도주했다. 그 뒤로 곧바로 하렌과 터크 호위무사, 세실리아 등 모두 뒤쫓기 시작했다.
익스퍼트 급 레인저라면 쿼렐 한 발 한 발에 마나를 담아 사용할 수 있다. 고작 석궁에서 발사되는 쿼렐의 위력이 바위도 뚫어 버리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호위무사들이 가지고 있는 방패가 아무리 두터워도 바위만 한 강도를 지니지는 못할 터. 장전과 정확도가 높은 석궁의 위력에 놈들의 사거리에 있으면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에반은 달리면서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예상대로 울프 레인저들의 숲 속에서의 속도는 최강이었다.
점점 놈들과의 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었다.
“놈들이 오고 있소! 어떻게 해서든 떨쳐 버려야…….”
말을 하던 터크가 문득 입술을 깨물며 그 자리에서 멈췄다.
하렌은 터크의 행동에 버럭 화를 냈다.
“무슨 짓인가! 어서 이리 오지 못하겠소!”
“어차피 저리 죽나 이리 죽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최소한 아가씨가 도주할 시간은 벌겠습니다.”
“이런, 미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저러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는 하렌이었다.
하지만 하렌은 뼛속까지 지금 당장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상인이었고, 터크는 뼛속까지 무사였다.
하지만 터크가 멈춰 서서 목숨을 버릴 각오라면, 세실리아 또한 인생에 있어 항상 당돌한 여인이었다.
세릴리아는 터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또! 정말 그럴 거예요? 그런다고 제가 좋아할 것 같으세요? 그리고 터크 대장이 죽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저희는 수도까지 갈 수도 없다고요. 누가 저희를 보호해 준다고요?”
“이틀 거리에 있는 도시에 도착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만을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희 상단에 필요한 것이지요. 아가씨는 상단 그 자체이십니다. 아가씨는 살아 돌아가셔야지요?”
세실리아가 고운 이마를 찡그렸다.
“그런 것 필요 없거든요? 그리고…… 꺄악!”
탕!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쿼렐을 터크가 세릴리아를 밀쳐 내고 검면으로 막아 냈다. 대장간에서 비싼 값을 주고 산 롱소드의 검 면에 흠집이 생겼다.
“어서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서요!”
하렌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에반은 저 멀리 먼저 도주하고 있었다.
호위무사들도 터크와 같은 마음을 먹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상인들의 무사치고 정말 대단한 충성심이로고.”
울프 레인저 측에서 수십 발의 쿼렐을 날렸다.
퓨퓨퓨퓨!
그중 눈먼 쿼렐이 발칸의 앞으로 날아왔다.
마나의 기운을 담은 쿼렐은 보통 쿼렐보다 속도도 두어 배는 빨랐다.
하지만 상대는 발칸.
흑마법사이자 네크로맨서, 더불어 흑암의 탑주인 자였다.
스스슥!
한순간 발칸의 왼쪽 팔목 주위에 작은 뼛조각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 실드(Born shield).”
네크로맨서의 3서클 방어 마법.
뼈의 강도를 바위보다 강하게, 그리고 강철만큼 굳세게 만드는 동시에 원하는 대로 변형시킬 수 있는 사령 마법이었다.
실제 뼈를 사용하면 한층 더 높은 성능을 보여 주지만, 마기만으로도 충분히 구현이 가능하기에 유용한 방어 마법.
그리고 한 가지 기능이 더 있었으니.
텅!
본 실드는 부딪친 원거리 공격을 공격자에게 그대로 되돌릴 수가 있었다.
슝!
쿼렐이 날아올 때와 같은 속도로 그대로 날아가 한 레인저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컥!”
그 레인저는 곧바로 쓰러졌고 뒤따라오던 동료 레인저들의 발에 밟혀 그대로 즉사했다.
하지만 본 실드가 막아 낸 쿼렐은 한 발뿐, 나머지는 모두 호위무사들을 향해 쏟아진 상태였다.
“컥! 컥!”
쿼렐에 공격당한 호위무사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상상 못할 속도에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은 것이다.
하지만 발칸에게는 이들을 도울 이유도 도울 수 있는 마법도 없었다.
흑암의 탑주라 해도 흑마법은 살상 마법으로 가득 찬 것들뿐이다. 애초에 몸을 보호하는 방어 마법이 몇 개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쿼렐들을 다 보호할 수도 없었다.
발칸의 눈이 그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변했다.
아무리 그라 해도 익스퍼트 급 레인저들을 50명이나 자신 있게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어? 어?”
세실리아는 놀랍다는 듯이 발칸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크로맨서?”
아무래도 본 실드를 본 모양이었다.
네크로맨서와 흑마법사를 배척하는 아일란 왕국에서 본 것이니 그녀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발칸의 손가락에서 붉은 점이 레이저처럼 쏘아져 나가자 더 기겁했다.
“마, 말도 안 돼! 사, 사령마법을 익힌 자가 어떻게 흑마법을? 두, 두 가지 계열을 익힌 자는 절대로 상승 계열로 가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크아악!”
그사이 붉은 선의 공격에 울프 레인저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흑마법사의 3서클 공격 마법인 레이저 포인트였다.
그리고 세실리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은 사령마법의 3서클인 본 실드를 캐스팅 없이 가볍게 사용하더니, 이제는 흑마법의 3서클 마법인 레이저 포인트를 입조차 열지 않는 무영창으로 남발하고 있었다.
캐스팅 없이 마법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그 마법의 2서클은 높아야 하며 무영창으로 마법을 사용하려면 그 서클의 3서클 이상은 높아야 한다.
적어도 그렇다면 네크로맨서로서는 5서클, 흑마법사는 6서클의 경지에 오른 엄청난 강자가 아닌가?
“한 가지 계열을 파도 5서클에 들기 어려운데, 어떻게 그 두 개 다 대마도사의 경지에…….”
하지만 발칸은 세실리아의 말 따위에 귀 기울일 수가 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울프 레인저들이야말로 정말 진짜배기들이었으니까.
“흑마법사다! 놈부터 죽여라!”
레인저들이 타깃을 바꿔 발칸에게 쿼렐을 발사했다.
퓨퓨퓨!
그 모습을 본 발칸은 세실리아의 팔을 붙잡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앞만 보고 달리시오. 뒤는 절대 바라보지 말고!”
“예? 네, 네!”
발칸이 뒤로 손을 내밀자 본 실드의 주변으로 뼛조각이 더욱 많이 모여들더니 크기를 불려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기가 커진 본 실드는 강도가 약해지고 마기의 소비율이 많아진다.
탕탕!
발칸이 만들어 낸 본 실드가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 발을 막아 내자 본 실드는 더 이상 쿼렐을 튕겨 내지 못했다.
형체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력이라니.’
발칸은 달리는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선두에 있는 울프 레인저를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흘러나온 발칸의 말은 경악스러웠다.
“소드 마스터?”
소드 마스터!
아무리 울프 레인저 집단이 뛰어나다고 해도 소드 마스터라는 말은 선뜻 믿기 힘든 사실이다.
한 나라에도 고작 열 명 남짓, 대륙에서 따지고 보면 그 수가 100명도 채 되지 않는 강자가 레인저 무리에 있다니?
발칸은 그녀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아, 아파요!”
“아프다고 느끼면 당장 앞으로 달려!”
“아, 알겠어요, 아저씨. 그러니까 좀 놓으라고요.”
발칸이 그녀의 손목을 놓자 그녀는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
몬스터와 조우한다고 해도, 적어도 소드 마스터와 익스퍼트 급들이 몰려 있는 울프 레인저들과 대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발칸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호위무사들을 잔인하게 도륙하고 다가오는 울프 레인저들을 보았다.
소드맨 상급 이상의 호위무사들과 싸웠는데도 그들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울프 레인저의 우두머리인 벡터가 턱짓을 했다.
“그대는 상단의 마법사가 아니로군. 누구요? 누구인데 우리의 일에 상관하는 거요?”
발칸은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난 흑암의 탑주요.”
“탑주?”
벡터가 눈을 부라리며 발칸을 위아래로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