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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13화)
chapter 6 발칸, 헬라인 수도 입성!(3)


“그자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는 없소? 일단 흑마법사라는 것만 알아서는 그자의 위치를 쉽게 파악하지 못할 거요.”
“수도 봉쇄령이 내려졌으니 지금쯤 성 근처에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세한 그의 정보는 제가 따로 사람을 불러 나름대로 조사한 것들을 드리겠습니다.”
노엘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지부장이 기름기 묻은 얼굴로 웃기 시작했다.
“후후! 어차피 한 배를 탄 동지끼리 그런 말씀 하실 필욘 없습니다. 각자의 이익이 걸려 있는 문제이니.”
노엘 후작도 그에 대한 말에 별다른 반대는 아니었다.
“흠. 하긴 그렇겠군.”
일왕자는 그들의 대화에 어색함이 느껴지자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아무리 이익을 가지고 움직인다 한들,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니 조금 섭섭하게 느껴지는 것을 아시오들?”
노엘 후작과 지부장이 그제야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저하.”
“하핫! 아니오. 어차피 나 또한 이익이 있고, 원하는 바가 있으니 자네들과 있는 것이지. 자자! 이러지들 말고 일단 사나이들끼리 축배라도 드는 게 어떠하오? 노엘 후작, 저택에 술이 있소이까?”
노엘 후작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하, 저는 평소에 술을 가까이 두지 않습니다.”
“그런가? 소문이 사실이었구려. 노엘 후작은 술, 여자, 돈을 가까이 두지 않는다더니. 가까이 두는 것은 그 한 자루의 검이오?”
일왕자와의 면담에도 그는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점 때문에 상인에 불과한 지부장이 그를 대함에 있어 떨림이 없는 것이다.
“제가 이 근처에 괜찮은 집을 알고 있습니다.”
지부장이왕자의 농에 슬그머니 웃고 있는 노엘 후작을 대신해 말했다.
“역시 꼼꼼하시구려.”
“그럼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여봐라!”
노엘 후작이 외치자 집사가 곧바로 문을 열고 나타났다.
“집사, 마차를 준비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후작 각하.”
집사는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리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왕자와 지부장이 엉덩이를 떼려면 적어도 할 말은 다 끝마친 뒤일 것이니.
일왕자는 노엘 후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노엘 후작, 곧 있으면 태양의 신 로한의 성녀가 찾아와 비가 그치게 되면 황제 폐하의 서거에 대한 추모식과 장례식을 동시에 열 생각이오. 그 장례식이 끝나면 수도 봉쇄령을 철회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저하.”
노엘 후작은 지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일왕자가 지부장에게 전담시킬 일은 전적으로 상인들의 영역이었다.
“황제 폐하의 병이 나날이 악화되어 서거하셨다고 평민들에게 은근슬쩍 운을 떼시오.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프리 머천트 상단과 2왕자, 그리고 흑마법사에 대한 소문도 말이오. 흑마법사만 잡히면 프리 머천트 상단은 약에 대한 책임으로 아일란 왕국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오.”
어떤 일이 개입이 되었든 간에, 프리 머천트 상단은 약의 배달이 실패했다는 것으로 철수하게 된다.
그렇다면 2왕자는 자금줄을 잃고 강한 자금난에 시달릴 것이다.
그 자금난을 틈타 흡수만 한다면 일왕자의 왕위에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일왕자의 계획이었다.
이왕자는 민심까지 잃고 힘도 잃어버린 채 피의 숙청, 즉 백성들의 분노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달고 사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지거나 깊은 산골이나 섬으로 유배되어 평생을 살게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부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 일이 성공하여 일왕자가 왕좌에 오르게 된다면 로열 크로이츠 상단은 아일란 왕국의 상권을 장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지부장은 그 뚱뚱한 얼굴로 미소를 숨겼다.

* * *

발칸이 하얀 사제복으로 갈아입자 생각보다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아무리 준수하다고 해도 그는 네크로맨서이며 흑마법사. 신을 믿고 마(魔)를 배척하는 그들의 옷이 발칸에게 어울릴 리가 없었다.
사제복에는 후드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칸은 얼굴을 드러내고 다녀야 했다.
사제들은 겉으로는 발칸 일행을 환영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혀를 찼다.
‘쯧쯧! 어찌 저런 탐탁지 않은 상인들이 끼어들어서 우리 행렬을 망치는 겐가.’
사제들 대부분도 추기경이 일을 그르치며 뇌물을 먹었다는 사실을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번 행렬은 아일란 왕국의 황제 폐하의 장례식인데…… 성녀님께서는 이 일을 까마득히 모르실 것이야.’
성녀는 이 사회의 악에 대해 봐서도, 들어서도 안 되고 항상 청렴한 눈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만 태양의 신 로한 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그 누구도 성녀에게 고하거나 하지 못했다.
‘제발 저자들을 성녀님께서 아는 체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 하지만 성녀님은 기억력이 좋아서 새로 들어온 저자들을 모를 리도 없을 테고. 끄응.’
한 명의 사제가 그렇게 머리 아파하는 사이, 정말로 한 여인이 발칸 일행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바로 성녀였다.
“안녕하세요?”
발칸은 성녀가 다가오자 어쩌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음이 맞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그 누구보다 빠른 임기응변을 가진 자가 바로 하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성녀님?”
“네…….”
성녀는 앵두 같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발칸 일행은 처음 만나는 것으로 각인되고 있었다.
즉, 모르는 자들이란 뜻.
발칸은 성녀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사제들이 그의 눈빛에 성을 내고 싶을 정도로 발칸의 눈은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발칸은 일부러 그러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흑마법사와 성녀, 이 대립적인 관계에서 성녀란 존재를 똑똑히 각인시키고 싶었던 마음에 눈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우선 미의 여신과 같은 머리색인 금발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코는 오뚝했으며, 입술은 앵두 같고 피부는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얀 얼굴이었다.
키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얼굴만 자세히 보면 온실의 화초처럼, 마치 귀족 같은 생활을 지닌 영애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 온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분명히 혼자서 바깥을 나돌아 다닌다면 흑심을 가진 남자들이 얼마든지 나타날 것이다.
“누구……시죠?”
하렌은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저희들은 아직 신앙심이 약해 로한 님께 선택받지 못한 견습 사제들에 불과합니다. 친히 성녀님께서 말씀을 걸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인데요.”
“이 마을에서 로한 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고 있는 견습 사제입니다. 이곳에서 합류하게 되었으니 모르시는 것이 당연하지요.”
하렌의 말은 청산유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하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성녀는 거짓말이란 것과 거짓된 사람의 마음을 알 수가 없는 노릇.
거짓을 일삼는 상인들조차도 남의 속을 모르는 판에, 성녀라고 알 턱이 없었다.
“그렇군요.”
그녀는 금방 납득했다.
그만큼 하렌의 연기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곧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발칸을 쳐다보았다.
추기경조차 별 의심할 수 없었던 발칸을 성녀는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하렌이야 발칸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지만,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세실리아로서는 등에 땀이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신은…… 로한 님에 대한 신앙심이 보이지 않아요.”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의해 사제들의 얼굴도 점차 굳었다.
성녀의 입에서 신앙심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발칸의 겉모습은 평범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외모가 꽤 준수하다지만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으니 특출 난 점은 찾기 어려웠다.
“이 녀석은 제 아들입니다. 제 장남인 녀석이죠. 몇 년 전부터 용병 생활을 겪어 오다가 속죄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견습 사제로 들어왔습니다.”
태양의 신 로한의 사제들은 이성과의 교제를 철저히 금하고 있는 종교다.
하지만 이렇듯 견습 사제 중에서는 참회하고 싶은 마음에 태양의 신 로한의 신자들이 되는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렌이 설명하는 사이에도 발칸은 성녀의 눈을 거절하지 못하고 계속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성녀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발칸은 눈을 떼며 고개를 돌렸다.
“이름이 무엇이죠?”
“발칸입니다.”
“발칸이란 이름은 세례명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세례명은 없습니다.”
“제 세례명은 발렌티나 루시아랍니다.”
성녀는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했다.
하렌도 발칸의 허리를 억지로 구부리며 인사를 했다.
“친히 이름을 얘기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태양의 신 로한 님께서는 좋은 분이세요. 반드시 거친 용병 생활로 깃든 힘든 마음을 속죄할 수 있게 면죄해 주실 거예요.”
하렌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성녀님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면죄가 되는 듯한 기분입니다.”
성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포근히 웃었다.
“별말씀을.”
그녀의 눈에는 어떠한 색안경도 껴 있지 않은 듯했다.
용병도 노예도 귀족도 그녀의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것이 분명하리라.
그러나 발칸은, 발칸만큼은 그녀의 웃음에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성녀가 몸을 돌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발칸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추기경도 깨닫지 못한 마기를 성녀는 깨달을 수 있다는 얘긴가…….’
성녀는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챘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무엄하게도 태양신의 사제를 사칭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니, 그녀라면 흑마법사인 자신이 속죄하기 위해 견습 사제가 되었다고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은밀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의 마기를 눈치 챘다는 것.
그것이 성녀로서의 능력이든 성녀로 만들어 준 능력이든 간에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수도 한가운데에서 정체를 폭로당하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으니까.
발칸은 성녀의 세례명을 머릿속에 되뇌었다.
‘발렌티나 루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