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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15화)
chapter 7 발칸의 위용(2)
방 안에서는 이미 뜨거운 열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루엔이 이미 발칸에게 작업 들어간 것이다.
그 인기 많던 루엔도 발칸의 매력이 맘에 든 탓인지 쉽게 접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발칸은 루엔의 아름다움을 뒤로한 채,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그만둬 주시오.”
“에이, 오빠. 다 아시면서 그러시는 거 아니거든요?”
“아, 아니, 대체 뭘…….”
그녀는 그러면서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칸은 당황하기만 할 뿐, 쉽게 넘어오거나 하지 않았다.
그때 미부인인 리베라가 방 안으로 난입했다.
루엔은 리베라가 안으로 들어오자 삐친 듯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여기 왜 들어오셨어요?”
“호호! 혼자만 재미를 보려 했니?”
루엔은 흥이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다 넘어왔다고 착각을 하며 발칸에게 더 끈적끈적한 눈빛을 보냈다.
“자, 잠깐, 시작하기 전에 물어볼 것이 있소이다.”
리베라는 어떤 것이든지 대답할 의양이 있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도둑 길드의 위치를 알고 있소이까?”
“도둑 길드……?”
물건 따위를 훔치는 것이 아니라, 정보나 지식을 훔치는 것으로 도둑 길드라 칭한다.
세상 그 어떠한 정보도 모르는 것이 없다는 그들.
하지만 철저한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에 소개가 아니고서는 쉬이 볼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
리베라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칸이 새까만 흑안으로 자신을 두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빨려들 것만 같은 매력적인 눈.
리베라로서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고…… 있어요.”
“안내해 줄 수 있겠소?”
“미안하지만 그것은 불문율이에요. 서로 공존하는 입장에서 말이죠.”
“돈이라면 얼마든지 내겠소.”
리베라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함께 있는 루엔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발칸은 쉽게 포기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좋소. 노예 시장이 있다고 들었소. 노예 시장의 위치와 시간에 대해 얘기해 주시오.”
리베라는 그것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노예 시장은 엄연히 자신들의 장사 수단 중 하나였다. 그것을 쉽게 밝히려고 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리베라는 어쩔 수 없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만약 이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일단락에 거절했을 것이다.
“그것은 얘기해 드릴 수 없겠어요. 대신 도둑 길드로 안내해 줄게요, 어휴! 하지만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도둑 길드는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만 정보를 팔아요. 지금 상태로 가 봤자 정보를 사기도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거예요.”
“그것은 내가 판단할 문제이니 안내만 해 주시면 되오.”
리베라는 달아올랐던 몸이 식어 버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작게 한숨을 한 번 내쉬는 것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럼, 준비하고 나올 테니 기다리세요.”
발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발칸은 리베라의 안내에 따라 30분을 넘게 이곳저곳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한두 번 돌아다닌 것으로는 외우지 못할 만큼 골목길들이 난해했다.
“저도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 안내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랍니다. 이곳에서 똑바로 5분만 걷는다면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발칸은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골목길이 난해하기 때문에 아무리 치안대라도 쉽게 난입할 수 없고, 난입한다고 해도 마음만 먹는다면 길목을 차단시킬 수도 있다.
도둑 길드다운 철저한 대책이었다.
리베라는 발칸을 혼자 보내기가 염려되었는지 그 자리를 자꾸 맴돌았다.
“정말 괜찮겠어요? 그들의 손에 당신의 목숨이 쥐락펴락하는데 말이에요. 어때요,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것이?”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소이다.”
범인이라면 목숨이 경각에 걸린 일이니 떨 만도 한데 이 사내는 심장이 강철로라도 된 것인지 전혀 흔들림 따위가 없었다.
‘기사? 아니, 용병?’
하지만 기사라면 무거운 중갑옷은 기본이고, 특히 로브 따위는 입지 않는다.
그렇다면 용병.
용병들 가운데 로브 안에 자신들의 무기를 숨겨 두고 급습으로 상대를 처리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저 로브 속에 수많은 무기들이 있다고 생각되자 리베라는 절로 침을 삼켰다.
“아, 알겠어요. 그래도 몸조심하도록 해요. 당신이 다치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어요.”
리베라는 도둑 길드와 연관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이 거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마중하지 않아도 괜찮겠소?”
“괜찮아요. 그들도 저를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번엔 도리어 리베라가 염려 말라는 듯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발칸에게 윙크를 했다.
“그리고 성히 오게 되면 또 들러 줘요. 그때는 공짜로 서비스해 줄게요. 알았죠?”
짙은 향냄새와 반쯤 몸을 드러낸 여인들이 있는 그런 곳은 발칸에게 그다지 유쾌한 곳이 아니었다.
페로몬 향수를 뿌리며 처음 보는 남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유혹하는 것은 발칸에게 생소한 경험이었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알겠소.”
발칸은 후드를 뒤집어쓰면 대답했다.
“어휴!”
리베라는 발칸의 목석같은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막상 저렇게 말해 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이었다.
오늘 처음 본 사내라도 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너무도 아쉬웠다.
“진짜로 오기나 할…… 어머?”
리베라가 아쉬운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발칸의 모습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도둑 길드는 총 5층으로 구성된 건물이었다.
한 층이 200평이 넘었으니 뒷골목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건물.
그건 도둑 길드에 속해 있는 정보원들의 숫자도 그만큼 많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도둑 길드의 수문장인 알트는 10년이 넘게 이 일을 맡고 있었다.
“귀족이십니까?”
알트는 뚜벅뚜벅 다가온 검은 로브의 손님을 향해 최대한 존중하게 그렇게 물었다.
“난, 귀족이 아니오.”
귀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알트가 세심하게 그를 훑어보았다.
“상인이오?”
그의 말투는 어느 정도 내려갔다.
“상인 또한 아니오.”
“끄응! 그럼 대체 왜 온 것이냐?”
귀족도 상인도 아니었으니 그가 대번에 반말로 말투를 바꾸었다.
“정보를 사러 왔소.”
알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흥, 정보는 아무나 사는 것인 줄 아느냐? 네놈에게 팔 정보 따위는 없으니 썩 꺼져라! 그렇지 않으면 혼꾸멍내 주겠다!”
발칸은 알트를 노려보았다.
알트는 전형적인 격투가 스타일로 주먹을 무기로 쓰는 자였다. 나이는 30대 정도 돼 보이지만, 몸에 쌓아 놓은 마나가 적지 않았다.
실전 경험을 풍부하게 쌓아 놓은 웬만한 용병들도 그의 주먹에 상대가 되지 않을 듯싶을 정도였다.
“이곳은 도둑 길드가 맞소?”
“이곳이 도둑 길드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죽고 싶지 않다면 어서 꺼져라. 이것이 너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다.”
발칸은 그의 경고에도 눈썹 한번 끄떡이지 않았다.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도둑 길드를 깎아내렸다.
“옹졸한 소인배들의 집단이로군. 도대체 도둑 길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거요? 귀족을 위해? 상인들을 위해? 웃기는 소리가 아닐 수 없구려.”
알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니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말 다했느냐?”
“할 말이라면 많지.”
“이놈! 다시는 그따위 헛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혓바닥을 뽑아 주마!”
순간 그의 마나가 폭발적으로 움직이자, 발칸도 그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뒤로 날렸다.
슉―!
순간적으로 나간 주먹이 허공을 내지르자 알트는 허탈함을 느꼈다.
이 정도 주먹이라면 웬만한 용병들도 나가떨어지는데, 눈앞의 사내는 이 주먹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알트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상태.
상대를 몰라보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나를 이긴다면 문 뒤로 들어가게 해 주겠다!”
“능력이 안 되면 무력으로 이기라는 소리로군.”
발칸에게는 오히려 이런 일이 훨씬 나았다.
알트의 주먹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손가락에 레이저 포인트 마법을 중첩시켰다.
탕!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간 붉은 레이저 포인트 마법이 땅을 꿰뚫었다.
알트는 등골이 서늘한 느낌이 들자 곧바로 몸을 굴려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이, 이런! 흐, 흑마법사?”
괜히 도둑 길드의 수문장이 아니라는 듯이 알트는 발칸의 마법을 보고 곧바로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발칸은 알트가 당황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로 곧바로 그의 목덜미를 붙잡고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그의 눈은 평소보다 척 가라앉아 있었다.
“켁켁!”
공중에 떠서 다리를 휘저었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오히려 발칸이 목을 틀어쥔 손아귀에 힘을 가하자 알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를…… 이긴다 하더라도, 켁켁! 정보를 살 수는 없다. 도둑 길드의 형제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정신을 잃어 가는 도중에도 토해 내는 알트의 말에 발칸은 도둑 길드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쾅!
발칸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몰라도 제법 단단해 보이던 문이 박살 났다.
그런 발칸의 등장에 다소 놀랐는지 30여 명 정도의 남자들이 무기에 손조차 두지 않고 있었다.
발칸은 그들을 향해 쥐고 있던 알트를 내던졌다.
콰당!
벽에 부딪친 알트가 숨을 몰아쉬며 손바닥 자국이 난 목을 쓰다듬었다.
“크윽! 조, 조심해! 저놈, 흑마법사다.”
도둑 길드원들도 알트가 제압당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긴장감을 조성했다.
알트는 도둑 길드의 수문장임에 부끄러움이 없는 길드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
그가 가볍게 제압당했다면 상대의 실력이 놀랍다는 것이리라.
“크으! 이놈, 이러고도 네놈이 용서받기를 원하는 것이냐?”
“난 정보를 사길 원했을 뿐이다. 정보만 준다면 더 이상의 행패는 부리지 않을 것이다.”
발칸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그것은 더없는 치욕이었다.
수많은 길드원이 있음에도 무력을 행사한 단 한 명의 요구를 들어준다니!
“이미 늦었다! 오늘 네놈은 살아서 돌아가기 힘들 것이다. 아니, 네놈의 신분을 캐 삼족을 멸할 것이다. 저놈을 쳐라! 마법사이니 단숨에 공격하면 어쩌지 못할 것이다!”
도둑 길드원들은 은신에 능할지 몰라도 전투에는 그다지 능하지 못하다.
그들 대부분이 단검이나 원거리 투척물을 손에 쥔 채 발칸을 향해 일제히 날렸다.
슈슈슉!
하지만 발칸은 느긋한 표정으로 마나 홀의 마기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그러자 그의 전신으로 수많은 뼛조각들이 모여들더니 몸을 통째로 덮는 거대한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본 실드(Born shield)!”
네크로맨서의 방어 마법인 본 실드.
그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방어 마법이 적은 네크로맨서들에게 아주 유용한 마법이었다.
탕탕탕!
단검을 포함한 원거리 투척 무기들이 본 실드에 부딪치자마자 튕겨져 공격자에게 되돌아갔다.
“으아악!”
단숨에 30여 명의 길드원들이 제압당하자 살아남은 알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서클의 마도사에게 이미 캐스팅 속도란 통용되지 않는 말과 같았다.
수많은 인원을 단번에 무력화시킨 발칸은 본 실드를 해제하고 알트에게로 향했다.
저벅저벅!
알트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입을 열었다.
“으으…… 사, 살려 주시오!”
명색에 수문장이라는 자가 발칸의 위압감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발칸이 풍기는 기운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지독했다.
“길드장은 어디 있나?”
“5, 5층에 있습니다.”
“고맙소.”
발칸은 알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듯이 2층 계단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