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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16화)
chapter 7 발칸의 위용(3)
2층 반응도 1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층이 올라갈수록 길드원들의 수준도 달라지는 것인지, 1층과는 달리 본 실드에도 당황하지 않고 충분히 맞섰다.
하지만 곧이어 이어진 발칸의 레이저 포인트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강력한 살상 마법으로만 무장하고 웬만한 공격은 모두 튕겨 내 버리는 본 실드 앞에서 발칸을 위협할 공격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발칸은 마침내 4층으로 올라섰다.
그러자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길드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막아라! 이곳이 뚫리면 길드장님이 계시는 5층이다!”
“쳐라!”
길드원들의 공격은 발칸을 모두 스쳐 지나갔다.
발칸은 이미 움직임도 보통 마법사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방어 마법으로 무장한 백마법사들과는 달리, 흑마법사들은 신체 능력도 그들과 남다른 것이 사실이었다.
움직임이나 반응 속도를 높여 주는 헤이스트 없이도 발칸은 그들의 공격에 본 실드나 간단한 동작으로 충분히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한정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발칸에게 유리한 장소가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건물을 통째로 날려 버리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크게 일을 벌이면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4층의 길드원들은 지나온 1, 2, 3층의 길드원들 따위는 상대도 되지 못할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웬만한 기사들 못지않게 강하니 정보 길드 하나가 보안 문제에 대해 안전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정보들은 바깥에 흘러나가면 세상이 크게 흔들릴 만한 큰 사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원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고, 지금껏 수차례 정보를 훔쳐 가기 위해 침입한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정보 길드의 보안을 얕본 탓에 길드원들의 검에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그만큼 도둑 길드는 보안 문제에 대한 신경은 전폭적으로 강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발칸의 마법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발칸이 사용한 마법은 고작 사령마법의 3서클인 본 실드와 흑마법의 3서클인 레이저 포인트.
하지만 본 실드는 웬만한 공격은 무리 없이 막아 내고 튕겨 내는 훌륭한 방어 겸 공격 마법이며 레이저 포인트는 캐스팅도 없이 난사가 되는 탓에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었다.
“크으! 보통 놈이 아니다. 모두 본 실력을 모두 드러내라. 모두 당할 가능성이 크다.”
발칸의 공격에 크게 기세에 휘둘린 자들이 두 눈을 반짝였다.
그들 모두가 마나를 다루는 익스퍼트에 오른 자들이었다. 개개인은 수문장인 알트보다 약할지 몰라도, 단체로 공격한다면 본 실드는 마나 공격을 몇 번 막아 내지 못할 터였다.
그들이 마나를 끌어 올림과 동시에, 발칸 또한 본 실드를 캔슬하고 곧바로 강한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마나 홀에서 쑥 뽑아져 나온 많은 마기가 공기 속에 녹아든 마나와 접촉하며 재배열을 이루기 시작했다.
곧 발칸의 주위에서 거대한 마기량이 뿜어져 나와 범접할 수 없는 기류를 풍겨 냈다.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
백마법사에 비해 어려운 흑마법, 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머리가 과열할 정도로 많은 두뇌를 사용하여 엄청난 캐스팅 속도를 보여 준다는 데에 있다.
길드원들은 모두 각자 검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으르렁거렸다.
“놈이 캐스팅 중이다! 놈을 죽여라!”
“고위급 마법이다! 놈이 캐스팅을 끝마치기 전에 족쳐라!”
우우웅―!
길드원들의 무기에 녹아든 오러가 파란 기류를 풍겨 내며 시퍼런 예기를 발산했다.
그런 숫자가 사십 명이 넘었다.
한 번만 막아 내지 못해도 발칸의 몸은 두 갈래로 갈리게 되는 것이다.
마나를 사용하자 그들은 이전 같지 않은 몸놀림을 보여 주었다.
“상대는 고작 하나다! 죽어 간 형제들의 복수를 하자!”
4층을 수호하는 지크의 말에 길드원들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와아아아!”
도둑 길드답지 않게 요란스런 소리를 내질렀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 온 그들도 발칸의 기운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리라도 내지르지 않으면 상대의 기도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분명 수문장인 알트와 1층, 2층, 3층을 쓸고 올라왔을 텐데도 흐트러지지 않는 숨소리는 질색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넓게 퍼져 공격해라! 여우 같은 놈이다.”
철저한 방어 속에 공격을 가하는 치밀한 놈.
길드원 몇몇이 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아 온 지크로서는 산개하여 한 번에 공격하는 것이 더욱 좋은 방법이었다.
길드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초원의 맹수처럼 단숨에 뜯어 죽이려고 하자 지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팔방을 전부 점했으니 도망갈 곳도 없었고, 놈은 마법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마법을 준비하는 도중에 공격을 받거나 동요가 생기면 마법이 강제 취소되며 마나 홀에 강력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놈! 네놈의 실력이 뛰어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4층은 네놈이 생각한 것만큼 쉬운 곳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 해도 고위급 마법을 캐스팅하는 시간이 짧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발칸은 그들이 생각하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당당히 6서클에 이름을 올린 마도사!
흑암의 탑주인 그였다.
그가 마침내 손을 위로 들어 올리자 강력한 마기가 풍겨 나왔다.
“블라인드(Blind).”
상대의 눈을 무력화시켜 단시간 동안 장님을 만들어 주는 사령마법이었다.
1인에게 사용한다면 고작 2서클에 불과하지만 다수에게, 그것도 익스퍼트 급에게 사용하려면 최소 5서클 마법사는 돼야 한다.
“크악! 누, 눈이!”
발칸을 공격하던 자들은 시야를 잃어버리자 순간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지크는 시야가 사라지자 육감에 의존하며 당황하지 않고 소리쳤다.
“저주 마법이다! 그 자리에서 육감에 의지해라!”
하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자들에게 그런 것이 통할 리가 없었다.
4층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길드의 보안을 위해 존재한다.
그만큼 시야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단 뜻.
그들이 초인이 아닌 이상, 익스퍼트에 불과한 상태로 육감에 의지한 채 상대의 검날을 피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크악!”
“으아악!”
그들은 서로를 잔혹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깃든 검이었던지라 검세 하나하나에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 시체가 되어 버렸다.
지크는 그들 중에서도 알트 이상으로 실력이 좋았다. 4층의 수문장으로서 길드의 온 기대를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발칸의 캐스팅 속도에는 치를 떨어야 했다.
“으으! 개자식!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이라니!”
시간이 점차 지나자 사라진 시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지크는 상대의 검날을 육감으로 피해 냈다.
그래도 그들 모두가 익스퍼트에 이른 실력자들이다 보니 완벽히 피해 내는 것은 어려웠다. 그의 몸엔 이미 각종 무기들로 당한 상처가 많았다.
다행히도 그는 철저히 약점 부위는 피해 가며 맞았기 때문에 몸을 운신하는 데는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목숨을 연명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허, 헉!”
지크는 눈을 뜨고 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길드원들이 도륙 현장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그들 한가운데에 검은 로브를 걸친 남자만이 뼈로 이루어진 기형 방패, 본 실드를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발칸은 그들의 잔혹한 현장에도 무표정을 고수했다.
“길드원들이 모두 죽어도 무심한 길드장이라니.”
도둑 길드가 1층에서부터 4층까지 모두 쓸렸음에도 불구하고 길드장은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다.
발칸은 그것을 걱정했다.
“쯧쯧. 이러다 길드장이 도망가지 않았을지 걱정이군.”
지크는 떨리는 속내를 감추고 발칸을 노려보았다.
“기, 길드장께서는 지금 외출 중이시다. 이 참혹한 현장을 보시면 반드시 네놈을 용서치 못할 것이다.”
발칸은 무심한 눈길로 지크를 바라보았다.
지크는 그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것마냥 신경이 곤두섰다.
분명 미부인인 리베라가 바라보았던 발칸의 흑안은 매력적이었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소드 마스터도 아닌 그가 애초에 대마도사인 발칸의 살기를 받아 내기란 무리에 가까웠다.
발칸은 벌벌 떠는 지크를 보며 입을 열었다.
“길드장은 언제 오나?”
“그것을 네놈에게 대답할 의무는 없다!”
발칸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언제 오나 물었다.”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더욱 가중되는 살기가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지크의 두 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렀다.
“마, 말할 수 없다…….”
“아무튼 좋다.”
발칸은 시체들을 피해 5층 계단을 향해 발을 돌렸다.
그가 5층으로 그렇게 사라져 버리자 홀로 남은 지크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쿵!
지크는 멍한 눈길로 중얼거렸다.
“길드장님에게 어서 알려야 한다.”
* * *
도둑 길드의 길드장인 반자크는 정신이 없었다.
노엘 후작과의 좋은 거래를 얻어 내고 돌아오니 길드원 대부분이 참혹하게 도륙당해 있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체 어떤 새끼가! 혹시?”
노엘 후작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노엘 후작 또한 분명히 도둑 길드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끌어내어 도둑 길드를 없앨 생각은 없었다.
“으으……!”
그때, 미약한 신음 소리에 반자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바로 번개 같은 속도로 신음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다름 아닌 알트의 신음 소리였다.
수문장인 알트가 다리가 풀려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기, 길드장님……!”
알트가 반가운 기색으로 반자크를 불렀다.
알트와 반자크는 평소에 엄청난 친분을 과시하는 사이였다.
고작 수문장에 불과했지만, 반자크에게 있어서 알트는 훌륭한 거목이었다.
그런 거목이 속절없이 당해 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머리 끝까지 차고 올라갔다.
“대, 대체 누구에게 당한 것이냐!”
“흑마법사…… 입니다.”
“흐, 흑마법사? 그런 놈이 대체 왜……? 아니, 놈이 고작 한 놈이었단 말이냐?”
알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자크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알트, 너의 복수를 해 주겠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뼈를 발라 삼족, 아니, 구족까지 철저하게 산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마!”
“지, 지금쯤 위층에 있을 것입니다.”
“뭐, 뭐라? 간도 크구나!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느긋하게 위층에 있어!”
반자크는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2층에 올라간 순간, 1층보다 더욱 참혹한 장면에 눈을 옆으로 돌렸고 3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4층에 올라갔을 때는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그런 장면이 생각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피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일반인들은 흑마법사가 처녀의 피나 아기들의 피를 마시며 목을 축인다고 생각하지만 반자크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피의 향연을 보니 그 거짓을 알고도 진실같이 느껴질 뿐이었다.
반자크는 한쪽에 졸도해 있는 지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약한 숨소리를 내뱉는 것으로 보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운 좋게도 검날들이 치명상을 피해 갔기에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상태가 과히 좋지 못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과다 출혈로 사망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반자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 나만 이곳에 있었어도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텐데!”
반자크는 노엘 후작과의 거래를 뼈저리게 후회하며 5층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