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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군주 1권(17화)
chapter 7 발칸의 위용(4)
5층은 어느 곳보다도 캄캄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곳에서 반자크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자는 뻔뻔하게도 길드장 책상 앞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 이놈이……!’
반자크는 품속에서 한 자루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는 길드장을 고작 도박으로 따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둠 속에 완벽하게 동화한 상태였다.
‘네놈을 죽이고 얼굴을 확인해야겠다! 네놈에 관련된 여자는 모두 매춘부로 팔아 버리고 남자들은 산짐승의 먹이로 던져 주마!’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을 듯싶었다.
몇 십 년을 거쳐 이루어 낸 도둑 길드가 한순간에 무너져 있으니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반자크는 무척이나 은밀한 발걸음으로 시퍼런 단도를 발칸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단도는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어 상대의 눈이 좋다고 해도 눈치 채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탕!
‘으잉?’
반자크는 서둘러 단도를 거둬들이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분명 상대의 연약한 목덜미를 노렸는데 단도가 도리어 튕겨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은밀함을 위해 마나를 사용하진 않았다지만 피부를 찢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자크는 상대의 목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자 연약한 피부가 아닌, 수많은 뼈들이 목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자크는 기습이 실패하자 단도에 시퍼런 마나를 불어 넣으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크으……! 놈! 감히 이런 짓을 벌여 놓고도 용서받기를 원하느냐?!”
지금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상대는 자신의 기습을 막은 상대였다.
정말로 상대가 흑마법사라는 것이 의심이 갈 정도.
그때, 흑마법사라는 생각에 반자크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엘 후작의 의뢰가 무엇이었던가!
이왕자에 합류되어 있는 흑마법사를 찾아 달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서, 설마…….”
자신들이 알아본 바로 상대는 4서클, 아무리 높아 봤자 5서클 정도의 흑마법사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익스퍼트 중에서도 최상급에 들어선 자신의 검을 막아 내는 것은 어중간한 서클로는 불가능하다.
대마도사!
어쩌면 상대는 6서클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칸은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에게서는 어떠한 기운도 일어나지 않았다. 목을 감싸던 본 실드도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소. 정보를 사려고 했을 뿐. 그들이 공격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죽이지 않았을 것이오.”
“그, 그걸 궤변이라고 늘어놓는 것이냐! 이미 내 길드원들이 모조리 네놈의 손에 죽었다. 그러고도 나를 기다렸단 말이냐?”
“미안하게 됐소. 하지만 나 또한 나를 보고 매달리는 자들이 많소. 이해해 주시오.”
메뚜기 떼들의 공격에 프라시스 영지가 얼마나 고심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크으……!”
길드원을 모조리 죽여 놓고 이해해 달라니. 반자는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기습에 실패했으니 이제 놈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외려 상대가 6서클 마도사라면, 자신이 먼저 순식간에 죽을 것이다.
그때 발칸이 품 안에서 금색 동전을 주머니째 꺼냈다. 그리고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길드장이라면 나에게 응당 정보를 파시오. 작은 정보이니 이 정도면 될 거라 생각하오.”
반자크는 발칸의 말에 수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자에게 복수를 하려면, 일단 자신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한다.
‘찢어 죽일 새끼!’
반자크는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음에 통탄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오?”
“노예 시장에 대한 모든 정보. 시간, 규모, 장소. 그런 것들 말이오.”
반자크는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노예 시장 때문에 모든 길드원들이 떼죽음을 당했으니 말이다.
“정보료가 부족하오! 지금 치안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노예 시장 정보료가 배는 비싸졌소! 뿐만 아니라, 당신 때문에 우리 길드는 복구하는 데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오.”
발칸은 그 정도의 부탁도 들어주지 못할 만큼 냉혈한 자는 아니었다.
자신이 꺼낸 만큼의 동전을 또 꺼냈다. 그렇게 꺼낸 돈이 수천 골드는 되는 듯했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반자크는 돈을 받아 들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그가 종이 뭉치를 가져와 발칸에게 내밀었다.
“이것이오.”
“고맙소.”
발칸이 정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받아 들었다.
반자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 가서 이상한 소문을 내고 다니지 말아 주셨으면 하오.”
명색에 도둑 길드가 단 한 사람의 손에 괴멸되었다는 소문만큼은 피하고 싶은 것이 반자크였다. 그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도둑 길드는 남은 정보마저 누군가에게 빼앗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 그는 이 방대한 정보의 유출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어디 가서 자랑할 일도 아니니 떠벌릴 생각은 없소.”
반자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발칸의 이야기만 들으면 도둑 길드는 별 시답잖은 곳이라는 얘기가 되니 당연했다.
“난 이만 가 보겠소.”
발칸은 종이 뭉치를 품에 넣은 채 발길을 돌렸다.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던 반자크도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노엘 후작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chapter 8 재회(1)
B급 정보. 위험도=B+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지만 17년 전부터 수도 헬라인에 암시장을 비롯해 노예 시장이 만들어졌다. 인간부터 시작해 엘프, 드워프, 호빗 등 이종족들의 노예도 유행하였으며 매달 4번 정도 시장이 열린다.
그 밑으로 매번 시장이 열리는 장소와 규모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내일이로군.”
발칸은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제일 가까운 노예 시장 개방 시간이 새벽 5시.
그 이후는 일주일 후에나 열리게 되니 발칸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이번 새벽 5시 시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황제의 서거로 곳곳에서 장례식을 추모하기 위해 찾아오게 될 터니 새벽과 같이 성문을 열 것이었다.
지금도 각 나라의 사신들이 찾아오는데 봉쇄령 때문에 철저한 검문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일란 왕국의 황실 측에서는 이번 봉쇄령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봉쇄령으로 피해를 입은 상인이나 귀족들, 혹은 타국의 사람들도 하나하나 신경 써서 보상을 해 줘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제일 중요한 국가의 이미지가 손실되었다.
그것은 뼈아픈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발칸은 지니고 있던 노예 시장 정보에 대한 것을 원소 마법으로 태워 버렸다.
화르륵!
재가 되어 흩날리는 것을 보며 발칸이 발길을 옮겼다. 그가 이동하는 곳은 용병 의뢰소였다.
반자크는 수척해진 얼굴로 노엘 후작과의 접촉을 요했다. 도둑 길드가 무너진 이상 한시라도 빨리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했다. 그 대상이라고는 지금 당장 노엘 후작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일란 왕국 최고의 실세 가문이자 최고의 무가(武家).
반자크는 지금 당장 노엘 후작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정보를 틀어쥐고 있었다.
‘노엘 후작의 도움을 받는다면 도둑 길드를 재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접촉을 해야 하는데.’
노엘 후작과의 만들어 놓은 접촉선은 이틀에 한 번, 각자 자신들이 준비해 놓은 자들이 거래를 한다. 그리고 매번 접촉 장소와 시간은 바뀐다.
오늘 거래를 했었으니 노엘 후작과의 접촉을 필요하다면 이틀 후에나 가능하다.
하지만 반자크에겐 이틀씩이나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반자크는 결국 노엘 후작이나 자신의 얼굴을 아는 휘하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무리 반자크가 뛰어난 도둑 길드장이라고 해도 험난한 노엘 후작가를 멋대로 뛰어들어 가는 무모한 짓은 할 수 없었다.
아일란 왕국 최고의 검술가답게 그의 기사들 또한 수준 높은 검술을 구사했다.
‘끄응!’
반자크에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 그는 저택 앞에서 죽치고 기다렸다.
많은 사람들이 저택을 들락날락거렸지만 정작 자신의 얼굴을 보이며 후작에게 데려다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서성이고 있을 때 반자크에게 반가운 얼굴이 저택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니, 당신은……?!”
노엘 후작을 옆에서 모시고 있는 집사였다.
집사는 상당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야밤중에 반자크가 찾아올 이유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작 각하를 뵙고 싶소. 급한 일이오.”
“후작 각하께서는 연무장에 계시오. 훈련이 끝나거든 오시오.”
집사는 후작이 훈련할 때 누군가가 방해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부탁을 거절했다.
하지만 반자크의 표정은 간고했다.
“부탁이오, 급한 일이오! 결코 노엘 후작 각하께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실이 되진 않을 것이오.”
“정말이오?”
집사가 의심하자 반자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년을 도둑 길드에 몸담았었소. 나에게 거짓이 있을 것 같소?”
집사는 고민을 하는 척하더니 이내 승낙했다.
“좋소. 그럼 지금 당장 저택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소.”
반자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집사의 뒤를 따랐다.
집사는 시녀들이나 시종들만 이용하는 쪽문으로 반자크를 안내했다.
되도록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 응접실까지 이동한 집사는 반자크에게 말했다.
“후작 각하를 모시러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바라오.”
“고맙소.”
반자크가 자리에 앉자 곧이어 시녀가 차와 쿠키를 내왔다.
하지만 반자크는 그것에 일절 손대지 않았다.
반자크는 평소에도 어딜 움직여서도 함부로 먹거나, 행동하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껏 목숨을 연명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조심성이었다.
그는 대체로 누굴 쉽게 믿거나 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엘 후작이 자신의 도둑 길드를 재건시켜 줄 수 있는 자라 해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