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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7화)
2장 에브게니아(4)
“으랴압!”
대평원 한복판에 기합 소리와 함께 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노린 것은 늑대.
그러나 늑대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반격했다. 늑대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퍼억!
다행히 그것은 운 좋게도 반격을 하던 늑대에게 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는 더욱 속력을 내서 그를 들이받았다.
퍼억!
“커헉! 야, 뭐 해!”
억눌린 비음을 토해 내며 서너 걸음 밀려나 넘어진 그는 준서였다. 준서는 뒤에서 서포트 하고 있는 진우를 원망스런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젠장. 왜 안 되지!”
진우는 마법이 시전되지 않자 당황했다. 분명 좀 전만 해도 매직 에로우를 만들어 쏘는 것까지 되었는데 이번엔 그것이 잘되질 않는다. 주위의 마나는 형을 만들 듯 말 듯하며 주춤거리고 있었다.
“젠장!”
마법이 시전되지 않자 진우는 오른손의 나무지팡이를 힘껏 쥐고 늑대를 향해 달려갔다.
준서가 그런 진우를 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야! 너 미쳤어? 마법사가 접근전을 하냐?”
늑대는 자신의 앞에 있는 준서를 무시한 채 그대로 진우에게 돌진했다.
―크릉!
늑대가 힘찬 발돋움을 하며 진우에게 도약했다.
“이익!”
갑작스런 늑대의 공격에 당황한 진우가 급하게 몸을 숙였다. 그러나 최대한의 속도로 몸을 숙였건만 무슨 일인지 평소의 몸놀림이 나오질 않았다.
‘뭐야, 움직여! 내 몸!’
물속에서 움직일 때 부력이 작용해 움직임이 힘들 듯, 지금 그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당최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있었다.
단지 몸의 움직임만 느려진 것이 아니다. 주위의 모든 경관이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였고, 그것은 늑대도 마찬가지였다.
“이이익!”
파앗!
간신히 피했는지 늑대의 발톱이 그의 오른쪽 뺨을 스쳐 지나갔다. 스친 곳에 생채기가 생기며 이내 붉어졌다.
피하려다 넘어진 몸을 재빨리 일으킨 그는 다가올 늑대의 공격에 대비했다. 마침 준서도 일어난 모양인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뭐 하냐?”
흥분이 가라앉은 듯 준서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마법이 안 써진다.”
“아깐 됐잖아?”
“지금은 안 돼.”
어이없다는 듯 진우를 쳐다보던 준서가, 공격해 오는 늑대를 보곤 말을 멈추었다.
“쳇. 일단 저것부터 잡고 보자.”
준서의 말에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르릉!
늑대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왔다. 준서도 지지 않겠다는 듯 천천히 달리며 방패를 전면에 세웠다.
“차지(Charge, 돌진)!”
스킬을 사용하자 그의 몸이 쭈욱 늘어나는가 싶더니 어느덧 늑대의 지척에 다가갔다.
쾅!
준서의 방패에 정면으로 맞은 늑대가 비틀비틀거렸다. 준서는 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들어 늑대를 찔러 갔다.
―카륵!
초점이 없던 늑대의 눈에 갑자기 빛이 확 들어오더니, 호를 그리며 찔러 오는 준서의 검을 덥석 물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준서의 손에 잡혀 있던 검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 허공을 날았다.
“젠장!”
멍하니 자신의 검이 날아가는 것을 본 준서는 늑대가 다시 공격해 오자 방패를 들어 방어했다.
퍽!
“으악!”
늑대가 있는 힘껏 부딪쳐 온 몸통공격은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준서는 방패로 방어를 했어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던 진우의 눈에, 조금 전 늑대로 인해 날아간 검이 보였다. 불행히도 늑대 근처에 떨어진 그 검은 주인을 기다리는 듯했다.
“죽기밖에 더 하겠냐.”
방패밖에 갖고 있지 않는 준서에게 검을 건네면 상대하기 수월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늑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슬금슬금 걸어갔다. 어차피 마법도 안 되는 판에 검을 줍는 것이 대수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으윽!”
한편, 준서는 방패 하나만 달랑 들고 늑대의 공격을 막는 중이었다. 여태까지 사냥해 온 늑대와는 달리 보스 급 정도 되는 듯 늑대는 쉴 새 없이 그를 압박해 갔다.
쾅! 쾅쾅!
늑대가 공격할 때마다 북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준서는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크릉.
늑대가 준서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준서는 방패의 경사면을 이용해 충격을 줄이면서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까딱 중심이라도 잃어서 넘어지는 날엔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될 상황이었기에 그는 온 신경을 집중해 늑대의 공격을 막았다.
‘응?’
그때 그의 눈에, 진우가 늑대 뒤로 슬금슬금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방향으로 보아 자신이 떨어뜨린 검을 잡으러 가는 듯했다.
진우와 준서의 눈이 마주쳤다. 진우의 눈이 마치 그에게 안심하라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진우 덕에 자신감을 얻은 준서는 적극적인 공격태세로 전환했다.
“에이잇!”
그의 방패가 횡으로 그어졌다. 카이트 실드의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이 늑대에게 쏘아져 갔다. 하지만 늑대는 보란 듯 고개를 밑으로 떨어뜨림으로써 피해 냈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늑대는 갑자기 턱에서 통증이 밀려오자 주춤했다.
준서가 늑대의 턱을 발로 차 버렸기 때문이다.
퍼억!
―크륵!
하지만 그것은 별다른 대미지를 입히지 못한 채 오히려 늑대의 화만 돋웠다. 늑대는 몸을 한껏 웅크렸다가 한 번에 준서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힘을 응축했다 튕기는 스프링처럼, 늑대의 몸이 준서에게 쏘아져 갔다.
준서가 헛바람을 삼키며 다급히 방패를 들었다.
콰아앙!
“쿨럭!”
그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튀어나왔다. 힘을 분산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것에 힘으로 맞서려 하니 충격이 내부까지 전달된 것이다. 그는 입에서 비릿한 피의 향을 느끼며 몇 미터 날아가 처박혔다.
“잡았다!”
그때 드디어 진우의 외침이 들려왔다. 늑대의 공격이 있기 전 상황이 급박함을 느끼며 얼른 검을 낚아챘지만 이미 준서는 검을 들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진우의 환희에 가득한 목소리는 늑대를 흥분시켰다.
늑대가 타깃을 준서에게서 진우에게 옮긴 것이다.
―크륵.
“어, 어어…….”
두 눈이 붉게 충혈된 늑대가 살기에 가득 찬 눈으로 진우를 훑어봤다. 그리고 그에게 몸을 돌리더니 이내 발돋움을 하며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에이…… 씨!”
진우는 어쩔 수 없이 늑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단 한 번의 휘두름이었지만 그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동작에서는 소름마저 돋았다.
늑대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급하게 멈춰 섰다.
“어라?”
별생각 없이 휘두른 검에 갑자기 늑대가 멈추자 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궁금증을 풀 새도 없이 늑대가 갑작스럽게 진우를 향해 도약했다.
―크륵!
“우씨.”
기사로 전직한 준서도 한방에 날려 버린 늑대다. 그렇기에 접근전을 벌이는 캐릭터가 아닌 마법사가 방어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진우는 늑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허리를 숙였다.
콰콰콰콰!
‘움직여! 내 몸!’
온 힘을 다해 몸을 움직이자 또다시 사방에서 거대한 압력이 느껴졌다. 그 압력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는 필사의 노력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앗!
허공에 뜬 늑대의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늑대의 공격이 한차례 훑고 가자 진우는 잽싸게 늑대의 공격범위에서 벗어나 준서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은 늑대에 의해 저지되었다.
―컹컹!
바로 뒤에서 늑대가 달려오니 계속 준서에게 다가가다간 죽을 판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늑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얍!”
검이 허공을 가르며 늑대를 일직선으로 찔러 갔다. 그 모습에 흠칫한 늑대가 뒤로 몸을 날려 공격권 밖으로 피했다. 기세를 이어 연속으로 검을 휘두르려던 진우에겐 낭패였다.
자세를 바로잡은 늑대가, 자신을 공격한 진우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갔다.
그는 방어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생각해 피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몸은 물먹은 솜처럼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핏.
이런 그의 노력이 성공했는지 옆구리가 살짝 찢어지긴 했지만 간발의 차로 늑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늑대가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는 얼른 검을 들어 늑대의 정수리를 찍어 내렸다.
푸욱.
살과 뼈를 뚫는 소리가 들리며, 검날이 늑대의 정수리를 파고 들어가 턱 밑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늑대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그들의 주위에는 일곱 마리나 되는 늑대들이 죽어 있었다.
“헉헉……! 후욱!”
늑대와의 전투를 끝낸 진우는 숨을 골랐다.
‘도대체 왜……?’
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좀 전까지만 해도 잘만 되던 마법이 갑자기 시전되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장소에서. 그는 황당함을 넘어서 어이가 없어졌다.
“이야, 대단한데?”
어느새 왔는지 준서가 늑대 옆에 주저앉아 그 시체를 손으로 쿡쿡 찌르고 있었다. 그의 옷과 갑옷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내 생각엔 네가 더 대단한 것 같은데. 후우…….”
진우가 여전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들 주위의 일곱 마리 늑대 중 여섯 마리를 준서 혼자 처리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자리를 털고 일어선 준서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건 기초 중에 기초일 뿐. 그나저나 네 퀘스트 완료했다. 자.”
말을 마친 준서가 손에 들려 있던 자그만 주머니를 진우에게 던졌다.
“어라? 이걸 언제 모았냐?”
주머니 안을 살펴보던 진우가 놀람이 깃든 물음을 준서에게 던졌다. 주머니 안에는 그의 전직 퀘스트에 필요한 늑대의 이빨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아까.”
준서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설레설레 휘저었다. 그리고 방금 잡은 몬스터 주위를 살펴보다가 눈을 빛냈다.
“오, 나왔다. 케케케.”
“뭔데?”
“비밀. NPC 누나와 나를 이어 주는 매개체라고 할까?”
“……?”
준서의 생뚱맞은 대답에 어이가 없어진 진우는 눈만 끔벅였다.
성문에 다다르자 성문 앞엔 여전히 경비병 NPC 에르문이 있었다.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가 에르문에게 가서 말했다. 그를 본 에르문이 얼굴에 미소를 드리운 채 입을 열었다.
“오,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시름 놓게 되었군요. 이것은 제 성의입니다. 사양하지 마시고 받아 주십쇼.”
「30브론즈를 획득했습니다.」
에르문이 그에게 30브론즈를 건네주자 기계음이 들리면서 그 돈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고맙습니다.”
진우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마법사의 탑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야.”
마법사의 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도중, 뒤에 있던 준서가 진우를 불러 세웠다.
“엉?”
“나 나가 봐야겠다. 시간이 좀 늦은 듯한데?”
준서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벌써 해가 서쪽으로 넘어갔는지 하늘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하늘이 뭐?”
진우의 대답에 준서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시간은 현실 시간과 똑같아. 여기가 저녁이면 현실도 저녁이고 여기가 아침이면 현실도 아침이라는 거지.”
“아하. 그럼 지금은 밤인가?”
“빙고. 그리고 내가 이걸 그만 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지.”
준서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진우도 빙긋 웃으며 답했다.
“아, 그래. 잘 가라.”
“오냐.”
진우의 대답을 들은 준서는 피식 실소하고는 로그아웃 했다.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
한참 그 모습을 보던 진우는 이내 자신이 갈 길을 걸어갔다.
마법사의 탑은 낮보다는 사람이 적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많았다.
진우는 카운터에 가서 노마법사 앞에 늑대의 이빨 다섯 개를 놓았다.
“오, 자네. 드디어 임무를 완수하고 왔군.”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노마법사가 책에서 시선을 떼고 진우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는 주름투성인 얼굴로 미소 지었다. 노마법사가 자세를 바로 고치며 입을 열었다.
“자, 지금부터 자네는 견습마법사가 아닌 정식마법사(매지션)이네. 정식 마법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지. 정식마법사는 강함의 정도에 따라 각 1∼9 등급으로 나뉜다네. 각 등급마다 배울 수 있는 마법도 다르고 그 위력도 천지차별이지. 즉, 다시 말하면 높은 등급이 되면 그만큼 강력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 이거네. 그리고 정식마법사는 자기에게 맞는 속성을 가질 수 있다네. 속성을 정하는 것은 일단 미루고. 이런 식으로 자연의 속성을 이용하는 마법사를 우리는 순수마법사(Pure Magician)라 하네. 마법이라는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말하지.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마법사들은 순수마법사라 부르지 않네. 또한 우리와 다른 어둠의 힘을 빌어서 사용하는 놈들은 흑마법사(Dark Mage)라 불리지. 그놈들은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 마법을 행하는 놈들이야. 언젠간 하늘의 분노를 면치 못할 걸세.”
흑마법사에 대한 감정이 어지간히 안 좋은 듯 노마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다시 미소를 지으며 진우의 어깨를 두드리곤 말을 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자네가 순수마법을 택한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일세. 허허허. 흠, 그럼 속성을 선택해야겠지?”
노마법사가 카운터 밑에서 어린아이의 머리만 한 수정구를 꺼냈다. 수정구는 안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했고 그 수정구를 감싸 쥔 손 모양의 받침대가 있었다. 얼핏 보면 수정구를 들고 있는 사람의 손목어림부터 잘린 것을 그대로 갖다 놓은 것 같았다.
“자, 이것이 속성을 알아볼 수 있는 마법 아이템이라네. 속성은 자연 친화력에 따라 결정되지. 그래서 수많은 속성이 있다네. 바람, 물, 불, 나무, 흙, 무속성 등 수많은 속성이 있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희귀한 속성도 있을 수 있네.”
노마법사의 말을 듣던 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속성? 속성이 없는 건가요?”
“아니, 자네가 아까 사용했던 매직 에로우 있지? 그것이 무속성이라네. 어떤 속성에도 간섭받지 않고 오로지 마나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마법! 그것을 우린 무속성이라 부르네.”
“흠.”
“아무튼 일단 자네의 속성을 알아봐야 하니까 수정구에 손을 얹어 주게.”
노마법사가 손을 얹는 시범을 보이자 진우는 그대로 따라 했다.
우우웅.
그의 손이 닿은 수정구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수정구를 감싸 쥔 손가락이 하나 둘씩 펴지더니 급기야 손바닥을 펼친 받침대 위에 수정구가 놓인 형태가 되었다.
우우웅.
떨림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노마법사가 이상하다는 듯이 수정구를 바라봤다.
“이거 왜 이래? 고장 났나?”
속성이 나타났다면 떨림이 멎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성을 확인하고 그에 걸맞은 마법서를 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니 둘 다 답답할 수밖에.
막 노마법사가 카운터 밑에서 새로운 수정구를 꺼내려 할 때 떨림이 갑자기 심해졌다.
우우우웅!
손바닥 전체를 타고 온몸을 도는 진동이 진우를 강타했다.
“이, 이런 고장 났구만!”
노마법사가 기겁하며 손을 뻗었다.
우뚝.
그때, 조금 전까지 폭발할 듯 떨리던 진동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속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파직―!
순간 수정구 안에서 연속적으로 번갯불이 튀었다.
그것을 본 노마법사가 눈을 빛냈다.
“이건…… 번개 같군.”
파직파직―!
그가 속성을 알아채자마자 수정구 안의 번갯불이 미친 듯이 튀더니 이내,
지직, 쩌저정!
수정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결국 깨져 버렸다.
노마법사와 진우가, 깨진 수정구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수정구가 깨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한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치부해 왔던 것이다.
친화력이 너무 강하면 수정구가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깨진다!
수정구가 깨질 만큼의 강한 친화력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높다는 뜻인가?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노마법사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수정구가 깨지긴 했지만 번개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가 말끝을 흐리며 뒤쪽 책장에 가서 책 한 권을 꺼내 왔다.
“자, 이것이 번개에 대한 마법서일세.”
【‘번개 기초 마법서’를 습득했습니다.】
“사실 나도 번개 속성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한다네. 여태까지 번개 속성이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거든.”
노마법사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웬일인지 노마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우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번개! 그 강력한 힘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람을 즉사시키는 것은 물론이며 공기와의 마찰로 3만까지 올라가는 온도!
그 강력한 힘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번개에 이끌렸는지, 그는 자신이 번개와 친화력이 높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노마법사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희열에 몸을 떠는 그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