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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8화)
2장 에브게니아(5)
마탑에서 나온 진우는 상태 창을 열었다.
【아이디 : 토르
레벨 : 5
명성 : 3
직업 : 순수마법사(Pure Magician)
체력 : 550/550
마력 : 650/650
힘 : 5
민첩성 : 5
지능 : 5
행운 : 5
지구력 : 5
보너스 스탯 : 15】
‘명성이 올랐네?’
노마법사가 준 퀘스트를 완료하고 에르문의 퀘스트를 완료함으로써 명성이 조금 올라갔다. 두 퀘스트를 완료한 것치곤 무척 조금 올라갔지만 그것은 퀘스트 난이도에 따른 문제거니 생각한 진우는 이번엔 다른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보너스 스탯?’
보너스 스탯은 말 그대로 스탯을 올리는 도구다. 이것을 이용해 스탯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둘째 치고, 스탯을 어디에다 투자해야 하는 거야?’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진 그는 스탯 창을 닫은 후 도움말을 열었다.
‘스탯…… 찾았다.’
도움말을 읽어 내려가던 진우는 ‘스탯의 종류와 특성’에 손을 가져갔다.
【힘 : 근력 및 타격력 상승
민첩 : 순간움직임 및 정확도 상승
지능 : 마법 대미지 상승
행운 : 크리티컬 히트의 퍼센티지 상승
지구력 : 체력 및 방어력 상승】
‘그러니까, 지능에 투자하면 되는 건가?’
도움말을 확인해 본 결과 진우는 자신이 투자해야 할 스탯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모두 열다섯 개의 스탯을 모두 지능에 찍었다.
스탯을 모두 사용한 진우는 하늘을 보며 살짝 숨을 들이켰다.
“후아…….”
준서가 나간 후 시간이 더 지났는지, 이젠 반짝이는 흰 점이 검은색 도화지 위에 박혀 있었다.
‘자야겠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진우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메뉴창을 열어 로그아웃 했다.
타다다다다다다.
교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진우의 귀에 누군가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포착되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쉬익―. 쿠당탕!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곳에는 정체 모를 남자가 일자로 누워 있었다.
“크윽…….”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천천히 일어나는 그는 준서였다.
“후후. 이제 하산해도 좋다, 진우.”
“웬 하산?”
알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리는 준서를 보며 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이런 놈이었지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 그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준서는 작은 눈에 눈꼬리가 약간 올라갔지만 영악해 보이기보다는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170센티미터가 조금 넘을 듯한 키의 준서는 학교의 유명한 악동이었다.
“한진우. 일어나 봐.”
준서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진우의 등을 퍽퍽 치며 입을 열었다.
“크윽…….”
진우는 오만 인상을 다 쓰며 부스스 일어났다. 그의 등을 치는 준서의 손에 깃든 힘이 예사롭지가 않다.
“왜?”
진우는 아직도 아픈지 연신 인상을 찌푸리며 허리를 쭈욱 폈다.
“지금 학교 끝났는뎁쇼.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야?”
준서는 질렸다는 눈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귀에 대고 직접 소리까지 질렀지만 도저히 깰 생각을 하지 않아 부득이하게 그의 등을 내리친 준서였다.
“끄응…….”
진우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가방을 들쳐 멘 순간 준서가 갑자기 눈을 빛내면서 그의 손을 잡고는 재빨리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 어디 가?”
진우가 여전히 부스스한 눈으로 준서를 바라보았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지 준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성큼성큼 걸었다.
진우는 준서가 가는 곳이 어딘지 궁금해 계속 물었지만 준서는 ‘가 보면 알아’라는 말만 반복했다.
우뚝.
드디어 준서의 발이 멈추었다. 진우는 이곳이 어딘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멀티실?”
준서가 도착한 곳은 강당으로도 사용되는, 학교의 자랑인 멀티실이었다. 컴퓨터가 있는 곳이 아니라 대학 강의실 구조처럼 되어 있는 데다 그 크기는 강의실에 비해 두 배는 넘었다. 진우는 왜 여기 왔느냐는 눈빛으로 준서를 바라보았다.
준서는 씨익 웃고는 멀티실의 문을 활짝 젖히면서 진우에게 말했다.
“후후. 웰컴! 올해 새로 태어난 동아리 가상게임 토의회다!”
문 안쪽에는 세 명의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문이 열리자 그들은 반사적으로 문이 열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진우는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게 도대체 뭔 일?’이라는 감정을 담아 준서를 바라보았다.
준서는 진우의 마음을 알았는지 그가 물어보기도 전에 대답했다.
“가상게임 토의회. 가상게임이 나온 뒤에 생길, 가상과 현실 간의 차이점과 차후 문제가 발견할 때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갖고 토의하는 동아리다.”
“그러니까, 거기에 왜 나를 데려왔냐고…….”
진우가 투덜거리며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준서를 바라보았다.
“……라는 것이 표면적 이유고 여기는 에브게니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야. 이 동아리 만들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준서가 어깨를 으쓱했다. 진우는 이제야 준서가 오늘 하루 종일 학교에서 안 보였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브게니아가 나온 지 하루 만인 바로 오늘 개설했을 것이고, 에브게니아를 하는 사람들을 찾으러 전 학년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래. 내가 이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진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그들 곁에 왔는지, 그곳에는 멀티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헤헤. 그래도 형님 덕에 이만큼 모았잖아요.”
“선배라고 부르라니까…….”
준서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만난 것은 분명 오늘일 텐데 언제 그렇게 친해진 듯 선배란 호칭을 형님으로 바꾼 준서의 능력에 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쪽은 2학년 농구부 서준환 형님. 형님, 이쪽은 제 친구 진우예요.”
“만나서 반갑다.”
준환이 진우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듯 준환은 농구부답게 키가 컸다. 잘생기진 않았지만 남자다운 매력이 물씬 풍기는 얼굴이다. 처음 만났는데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의 태도에 진우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준서 친구인 한진우라 합니다.”
진우가 준환의 손을 잡았다. 긴 앞머리에 숨겨진 그의 눈을 보며 준환은 씨익 웃었다.
“이쪽은 연극부 이민정, 밴드부인 이두수. 우리 모두 그것을 살 수 있었던 행운아였지.”
준환이 한 사람 한 사람 가리키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다. 도적 클래스를 하고 있는 이두수라 한다.”
“성직자 이민정.”
형식적인 인사라지만 너무나 딱딱한 민정의 말에 진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두수가 진우에게 말했다.
“아아, 소년. 너무 딱딱한 말투에 놀라지 말게나. 이래 봬도 우리 학년에선 ‘얼음공주’라 불리는 사람이니.”
작은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 오뚝한 코, 빨간 입술, 그와 함께 세련된 헤어스타일까지. 아름다움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그녀의 얼굴은 가히 공주라 불릴 만했다. 문제를 꼽자면 키가 좀 작다 할까.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선 따뜻한 느낌보다는 차갑고 냉랭한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예쁘지? 이 동아리로 모시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느새 진우의 옆으로 다가온 준서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툭툭 건드리며 속삭였다. 그의 얼굴엔 장난스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자, 이제 대충 얼굴은 익힌 듯하니까 서로 친하게 지내자고요.”
박수로 주의를 끈 준서가 목청을 돋워 말했다. 그리고 준서의 말을 마지막으로 서로 안면을 튼 그들은 간단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즐거운 게임 하시기 바랍니다.」
“흐읍―.”
막 접속한 듯 희미한 빛이 사라지지 않은 한 유저가 그곳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앞머리가 코끝까지 내려오는 그는 진우였다.
“후우― 아, 상쾌하다. 현실하고 분간이 되질 않는다니까.”
진우는 숨을 내뱉고는 무기상점으로 발을 옮겼다. 저번 전투 때와 같이 마법을 못 쓴다면 검이라도 있어야 몸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스티의 무기상점
화려하게 장식된 검과 방패가 그려진 간판 밑에 필기체로 상점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미스티의 무기상점에 도착한 진우는 무기점 NPC인 미스티에게 걸어갔다.
“30브론즈로 살 수 있을 만한 무기 있나요?”
화로 앞에서 망치질을 하던 미스티가 장갑을 벗고는 그에게 다가와 대답했다.
“30브론즈? 흠. 보아하니 마법사 같은데 이 지팡이는 어떤가? 가격에 비해 성능이 좋은 편이야.”
미스티가 벽에 진열된 지팡이 중 하나를 꺼내려 하자 진우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지팡이는 필요 없습니다. 음…… 검 종류면 적당하겠군요.”
“엥? 마법사가 검을 들고 다녀서 뭐 하게?”
진열대에서 물건을 꺼내려던 미스티가 진우를 보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NPC 역할에 충실하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열대에서 검을 하나 꺼내 왔다.
“내가 직접 만든 검이다. 수많은 담금질로 인해 아다만티움같이 단단하지.”
미스티가 검면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말했다. 진우는 검의 정보를 보았다.
【단단한 강철검
미스티가 만든 검이다. 미스티는 이 검이 아만다티움같이 단단하다고 자부한다.
등급 : 일반
대미지 : 14∼15
내구력 : 85/85】
확실히 노마법사가 준 지팡이보다 대미지가 뛰어나, 진우는 흔쾌히 30브론즈를 미스티에게 건넸다.
“또 오게.”
진우는 가볍게 목례하고는 마탑으로 걸어갔다. 미스티는 멀어지는 진우의 뒷모습을 보더니 이내 다시 화롯가에 앉아 다시 망치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탑.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법사로 전직하기 위해 모여들어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마법이 안 써진다고?”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노마법사의 입에서 경악에 가까운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장내의 소리에 묻혀 버렸다.
노마법사 앞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앞머리를 소유한 소년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가 노마법사를 놀라게 한 장본인인 듯했다.
“네. 안 써지던데요?”
“자네, 마나 느끼기는 확실히 익힌 겐가? 내가 맨 처음에 준 마법서 말일세.”
“물론이죠.”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소년의 고개가 위아래로 힘차게 끄덕여졌다. 지금 80년 살아온 노마법사를 고민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이는 진우였다.
“‘의지로 마나를 다스리자’라는 책은?”
“물론이죠.”
“분명 처음엔 쓸 수 있었다는 소리지? 전투할 때 말고 가만히 있을 때 말이네.”
“네.”
노마법사는 일으켰던 몸을 서서히 의자에 맡겼다.
잠시 그 자세를 고수하던 노마법사가 깍지를 끼고는 진우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엔 말일세, 자네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 같네.”
“에이, 설마요.”
“아니야. 의지란 본디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라네. 즉,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면 의지는 여러 개로 분산되는 것이지. 아마 자네는 마법을 사용하고자 하는 마음 말고도 다른 의지를 갖고 있었을 걸세.”
“흠.”
진우는 그 때의 일을 떠올리다가, 확실히 마법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의지를 갖고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바로 준서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
진우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기자 노마법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노력하게. 마법만 만들길 원해야 하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졌을 때 자네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걸세.”
자리에서 일어난 노마법사가 진우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