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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10화)
3장 특이한 전학생(2)
진우가 성문 앞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준서가 NPC에게 말을 걸고 있다.
“에이, 누나 나랑 딱 한 번만 데이트하자니까요. 내가 그것도 구해 줬잖아요.”
“저는 성문을 막기 위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어서 그럴 수 없군요.”
“에잉∼.”
몸을 배배 꼬며 애교를 부리는 준서의 모습에 진우는 이마에 실핏줄을 돋은 채 그의 뒤로 다가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퍼억!
“커헉! 어떤 놈이야?”
준서가 도끼눈을 뜨며 뒤를 돌아보았다.
“엥? 뭐야! 왜 때려!”
준서는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진우를 노려보았다.
“그냥.”
“……?”
영문을 모르겠다는 준서의 눈을 무시한 채 진우는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 해? 안 갈 거야?”
“아. 으응.”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준서는 진우의 뒤를 따라왔다.
“쉿!”
진우보다 먼저 늑대 무리를 발견한 준서가 엄지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조용―히.”
준서는 진우에게 주의를 준 뒤 늑대에게 은밀히 접근했다.
“스탑.”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되자 준서는 손으로 진우를 막으며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서포트 부탁한다, 친구.”
“나 마법 안 되는 거 알잖아.”
“그럼 나 위험할 때 뛰어들어서 주의나 좀 끌어 줘. 그럼.”
“야!”
진우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준서는 늑대 무리를 향해 뛰어갔다.
“차지(Charge)!”
준서는 방패를 전면에 내세우고 스킬을 썼다. 그러자 준서의 다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쾅!
준서의 공격에 격중된 늑대가 비틀비틀거렸다. 준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들어 늑대의 목을 찍어 내렸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늑대의 피가 준서의 온몸으로 튀었다. 순식간에 늑대 한 마리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준서는 그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미 주위에 늑대들이 몰려 으르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서는 방금 전 죽인 늑대와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늑대를 향해 몸을 튕겼다. 순식간에 늑대와 거리가 좁혀졌다. 준서의 빠른 몸놀림에 당황한 늑대는 본능적으로 준서를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에 쉽게 당할 거라면 뭐 하러 일곱 마리나 있는 곳에 무모하게 뛰어들어 갔겠는가. 준서는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해 오는 늑대를 향해 방패를 집어 던졌다.
퍽!
카이트 실드의 모서리가 늑대의 입 안에 틀어박혔다. 늑대는 입에 틀어박힌 방패를 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준서는 그런 늑대의 바람을 무시한 채 놈의 옆구리를 검으로 그어 내렸다.
썽컹.
반으로 갈라진 늑대의 시체가 무너져 내렸다.
늑대의 입에 틀어박힌 방패를 회수한 준서는 다시 한 번 방패의 전면을 내세우더니 스킬을 외웠다.
“차지!”
그러자 그의 신형이 눈으로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며 늑대 무리에서 약간 떨어진 늑대를 향해 돌진했다.
쾅!
늑대가 비틀거리자 준서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순식간에 세 마리의 늑대를 처리한 준서를 늑대들도 그제야 경계하기 시작했는지 세 마리가 한꺼번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세 마리가 달려들 때도 한 마리는 뒤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아마 그놈이 지난번 잡아 봤던 보스 급 몬스터인 듯했다.
세 마리의 늑대가 준서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늑대가 코앞에까지 다가왔을 때쯤 준서는 방패를 위로 던지고는 점프했다. 아마 방패의 무게 때문에 높이 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 듯했다.
―크륵?
순식간에 준서가 머리 위로 올라가자 늑대들은 저마다 하늘을 보았다.
준서가 씨익 웃으며 가운데에 있는 늑대의 목에 검을 틀어박았다. 준서는 가운데 늑대가 죽은 걸 확인도 하지 않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왼쪽에 있는 늑대를 향해 검을 던졌다.
푹 하며 늑대의 오른발에 검이 박히자 늑대는 무척이나 아픈 듯 앞발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크르르륵!
쿵!
조금 전 방패를 던질 때 충분히 감안해서 던진 모양인지, 방패는 준서가 있는 곳에서 1미터도 안 되는 지점에 떨어졌다. 준서는 재빠르게 방패를 들고는 늑대에게 돌진했다.
“차지!”
준서가 엄청난 속도로 왼쪽 늑대를 향해 돌진했다.
쾅!
차지에 격중된 늑대는 어지러운 듯 발이 꼬여 넘어졌다. 준서는 늑대의 오른발에 틀어박힌 검을 뽑아 놈의 머리를 몸통과 분리해 냈다.
준서가 차지를 시전할 때쯤, 오른쪽에 있던 늑대도 준서를 공격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늑대를 보며 준서는 방패를 던졌다. 단지 아까처럼 회전력을 걸어 날리지 않고 마치 ‘옜다, 다 너 가져라’ 하는 식으로 던졌다.
콰앙!
늑대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방패와 정면충돌했다. 그러나 그것은 별 타격이 없었던 듯 방패는 늑대와 부딪히고 오른쪽으로 튕겨 나갔다. 늑대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준서에게 다시 돌진하려 했을 땐 놈의 턱부터 머리까지가 검으로 뚫려 있었다.
준서는 방패를 던질 때 애초에 대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것은 시야 가리기. 방패를 던지자마자 그 자신도 늑대를 향해 검을 찔러 가고 있었던 것이다. 방패가 늑대와 충돌하고 오른쪽으로 튕겨 나간 뒤 곧바로 준서의 검이 늑대의 머리를 꿰뚫었던 것이다.
그제야 피로 물든 보스 급 늑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늑대가 울었다. 아무래도 부하들이 당한 것에 대한 분노인 듯했다.
―크르륵!
늑대가 더한층 사나운 목소리를 내며 준서에게 뛰어들었다.
“큭.”
준서가 침음성을 흘리며 방패를 들었다. 좀 전의 결투로 스태미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에게 저항할 여력이란 없었다.
콰앙!
“으악!”
늑대가 방패에 정면충돌하자 준서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방패를 놓치고 자신도 넘어졌다.
―크르르.
넘어진 준서의 몸에 늑대가 올라탔다. 늑대가 기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이익.”
늑대에게 눌린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늑대가 다리로 사지를 꽉 누르고 있었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를 들어 받아 보려고도 했지만 그러기엔 늑대의 목이 너무 높았다.
―크헝!
늑대가 한차례 울부짖으며 입을 벌려 준서의 목을 물으려 고개를 내렸다.
‘진우 이 자식은 뭐 하는 거야.’
위험할 때 서포트 해 달라고 했던 부탁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진우의 얼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로그아웃이겠지.’
준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푸욱!
그리고 그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았다.
“후아.”
‘엥?’
분명 로그아웃 되어 아무것도 못 느껴야 할 그가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상황이 파악 안 된 그가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으허억!”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뾰족한 검 끝. 기겁한 준서는 재빨리 몸을 뺐다.
“어?”
사지를 압박하던 힘이 느껴지지 않고 몸이 너무 쉽게 빠지자 당황한 준서는 눈을 비비며 앞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 것 같던 늑대는 머리에서부터 입까지 검으로 뚫려 있었고, 그 검을 쥐고 있는 이는 진우였다. 결국 진우가 늑대를 죽인 것이다.
“어때? ‘비겁하게 숨어서 뒷목 찌르기’ 스킬이?”
검을 들고 있던 진우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던 준서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스킬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비겁하게 숨어서 뒷목 찌르기?”
“응.”
“그런 스킬도 있었나?”
“없었지.”
“그럼 어떻게 쓴 거야?”
“내가 방금 만들었어.”
진우가 늑대의 목에서 검을 빼 내며 씩 웃었다. 자신이 개발한 스킬이 어지간히도 맘에 드는 모양이다.
너무나 어이없는 대답에 잠시 멍해졌던 준서는 자신의 눈앞으로 손이 쑥 들이밀어지자 고개를 들었다.
진우가 일어나기 편하도록 손을 내밀어 준 것이다.
준서는 잠시 멍하니 그 손을 쳐다보더니 이내 힘껏 잡고 일어났다.
“치, 친구!”
준서는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것이 바로 우정이구나.’
진우의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왔다. 그것에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해졌지만 들려오는 진우의 말에 고마운 마음이 싹 가셨다.
“이거 내가 잡았으니까 이제 네가 아이템 주워.”
“뭐, 뭐?”
“힘들어. 뭐 하러 내가 널 일으켰다고 생각하는데?”
“…….”
“여기요.”
티모의 의뢰소로 간 진우는 자신에게 의뢰를 맡겼던 울퉁불퉁한 근육의 남자에게 늑대의 피를 건네주었다.
“호오, 정말로 해냈군. 자, 여기 약속대로 20브론즈일세.”
「20브론즈를 획득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문구가 뜨고 기계음이 들렸다. 그는 티모의 의뢰소를 나와서 거리를 걸었다.
‘마법사, 포기할까.’
로한의 시내를 걷던 진우의 어깨가 유난히 축 처졌다. 좋아, 하고 시작한 마법사인데 정작 마법을 못 쓰니 도저히 마법사를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후우―.”
그의 입에서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오늘도 로한 시내의 분위기를 한층 가라앉히는 암울한 한숨이었다.
진우의 반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쉬는 시간은 물론 수업시간에까지. 좋게 말하면 활발한 거고 나쁘게 말하자면 개념 없이 떠든달까?
그의 반 남학생들이 이번에 새로 전학 온 여학생, 이유정에게 몰려들었다. 마치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취미가 뭐야?”
“집은 어딘데?”
“나랑 사귈래?”
순간 정적. 남학생들은 이 적막감을 깨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다. 마지막 말을 한 학생A는 모두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더니 이내 집단 구타를 당했다.
퍼퍼퍼퍽!
“아…… 강이…… 강이 보여…….”
구타를 당하던 중 학생A는 황홀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한편, 그렇게 말을 걸어 보려 하고 있었지만 유정은 무표정을 고수했다. 한 마디라도 터 보려던 남학생들은 이내 질린 듯 뒷담화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쳇. 우리 같은 건 상대도 안 하겠다는 건가?”
“백마 탄 왕자님이라도 기대하나 보지.”
남학생들이 신랄한 뒷담을 하며 자리에 돌아갔다. 개중엔 황홀한 표정으로 기도할 때처럼 두 손을 모아 여왕님이라 중얼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즐거운 게임 하시기 바랍니다.」
“후우―.”
접속하자마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진우는 갑자기 굳게 결심 어린 눈을 하더니 냅다 뛰기 시작했다.
‘잡생각을 날리는 데 뛰는 것보다 좋은 건 없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진우의 입이 자꾸만 곡선을 그렸다. 미친놈 취급받기 딱 좋은 표정이라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쿵!
“꺄악!”
“으악!”
고개를 푹 숙인 채 달리느라 당연히 앞을 볼 수 없었던 그는 어떤 물체와 충돌했다. 서로 부딪친 진우와 한 여자가 뒤로 넘어졌다.
“아, 죄, 죄송합니다!”
여자는 진우와 부딪친 것이 자기 탓인 줄 아는 듯, 연신 죄송하단 말을 뱉으며 주위에 떨어진 자신의 물건들을 주웠다.
당황했는지 무척이나 허둥지둥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진우의 검을 주워 든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음, 이게…… 내 것이 아닌데……? 앗! 죄송합니다!”
진우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그녀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진우에게 검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진우는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건네받았다.
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배시시 웃었다.
“헤헤. 고마워요.”
그녀의 얼굴을 본 진우의 몸이 잠시 굳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이……유정?”
“……!”
그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 아아아아앗! 너는 창가 쪽에 앉은, 앞머리가 길고 덩치 큰!”
“덩치 큰…….”
그 말이 마치 별명처럼 들렸다.
“앗! 따라왔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잽싸게 진우의 뒤로 숨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구의 남자 세 명이 이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어이, 꼬맹이 아가씨. 우리랑 같이 사냥하자니까? 이래 봬도 레벨이 꽤 높은 편이란 말이야.”
“그럼. 어른이 하는 말은 들어야지? 꼬맹이 아가씨.”
그들은 진우 뒤에 있는 유정을 보며 말했다.
“어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만 비키지? 그녀는 우리가 먼저 봤다고.”
리더인 듯 제일 앞에 있는 거구의 사내가 말했다. 그는 울퉁불퉁한 근육을 과시하며 연신 손마디를 꺾었다.
“흥, 너희들 이제 죽었어. 이 사람이 누군 줄 알아? 레벨 15를 넘기는 검사라고!”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사내들의 말에 울컥한 유정이 혀를 삐죽 내밀며 소리쳤다.
“나 검사 아닌데…….”
마법사라 항변하려던 그의 변명은 사내의 놀람에 묻혀 버렸다.
“뭐, 뭐라!”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잠시 충격에 멍해 있던 그들이 곧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더니 이윽고 리더인 사내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훗, 우리도 합치면 15는 된다! 좋아! 너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레벨인 만큼 우리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겠지? 그렇지 않으면 넌 남자도 아니야.”
“나 검사 아니라니까…….”
“흥, 좋아! 덤벼, 이것들아!”
이번에도 진우의 변명은 뒤에 있던 유정의 외침에 묻혀 버렸다.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유정은 한쪽 눈을 찡긋거리더니 이내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 뿐이다.
“굿 럭!”
“나 검사 아닌데…….”
“에이, 그럼 검은 왜 차고 다녀? 얼른얼른 이기고 돌아와!”
한숨만 나온다. 당최 그의 변명은 도저히 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