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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11화)
3장 특이한 전학생(3)


그들은 중앙광장으로 모였다. 거구 삼인방은 지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결투를 신청한다. 만약 네가 이기면 깨끗이 포기하겠지만 우리가 이기면 여자를 넘겨라!”
‘나 참, 무슨 시대극 찍는 것도 아니고…….’
거구 삼인방의 리더 사내는 마지막 말을 할 때 얼굴이 화끈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결투(PK)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자 진우는 검을 빼어 들었다.
그의 행동에 사내들은 긴장했다. 이유인즉슨, 에브게니아는 레벨 올리기가 무척 힘들다. 서버가 열린 지 사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레벨 15나 된다는 것은 현재 최상위권 레벨이라는 얘기다. 물론 한국인에 한해서이지만.
외국에는 벌써 마스터 레벨을 넘긴 유저가 수십 명이 된다고 한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진우와 사내들의 팽팽한 긴장 속에 묻혀 갔다. 그리고 주위가 완전히 조용해졌을 때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거구 삼인방이 검을 꼬나쥐고는 진우를 향해 달려갔다.

‘쳇. 몸이 느려!’
지난번 늑대와의 결전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몸이 물먹은 솜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압력이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하! 레벨 15가 겨우 이 정도면 레벨 20도 잡을 수 있겠는걸! 어이, 너희 둘! 이놈은 나 혼자 잡겠다. 구경이라 하라고. 하하하하!”
진우가 피하기만도 벅차 하자 사내가 미친 듯이 웃으며 거구A와 거구B를 향해 말했다. 거구A, B도 그의 말에 히죽 웃으며 검을 거두었다.
리더 사내가 진우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의 검이 머리를 향해 찔러 오자 진우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칼을 맞대면 힘 스탯이 부족한 그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 실패한 그의 검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반 바퀴 회전하며 돌아가더니 이번엔 진우의 허리를 찔러 왔다. 피하는 것이 힘들다 생각한 그는 검을 비스듬히 세워 힘을 최대한 분산시켰다.
쿵!
그러나 역시 힘 스탯이 모자라는 탓에 몇 걸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를 향해 돌격했다.
‘젠장! 마법만 되었으면!’
그는 아까부터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었다. 처음 전투가 시작했을 때부터 계속 마법을 시전하려 했지만 역시 주위에 있는 마나는 형을 만들 듯 말 듯 계속 주춤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진우는 검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 리더 사내가 검을 들어 진우의 검을 막았다.
챙!
그러자 공격당한 사내는 가만히 있는데 진우는 그 반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났다.
“이거 너무 약하잖아. 레벨 15 맞긴 하냐? 여자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말한 것 아니야?”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함쳤다.
그리곤 진우를 향해 돌진해 오더니 그의 검이 호를 그리며 그를 찔렀다.
‘피하긴 늦었다!’
그렇게 생각한 진우는 재빨리 검을 들어 충격을 최소화하려 했다.
챙!
하지만 진우의 표정은 곧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의 검이 사내의 검을 쳤지만 상대의 검은 속도가 줄지 않은 채 그대로 그의 가슴을 찔러 왔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괜히 바꿔 가지고…….’
찔러 오는 검을 보며 그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때 노마법사와의 대화 내용이 그의 머릿속을 섬전처럼 스쳐 지나갔다.

‘노력하게. 마법만 만들길 원해야 하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졌을 때 자네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걸세.’

‘마법만 만들길 원한다……라.’
그는 노마법사가 한 얘기를 곱씹어 보며 다가오는 검을 무시했다.
‘또다시 위기에 처할 바에야 차라리 도박을 하는 편이 낫지.’
그는 다가오는 검도, 검에 찔리는 것에 대한 공포도,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마나를 움직이는 데만 주력했다.
고개를 돌리자 푸른 마나가 눈에 띄었다. 항상 그의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그것들은 진우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도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그가 사용할 마법을 떠올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주위의 마나가 모이면서 형을 형성해 갔다.
마법을 완성하자 진우는 최대한의 속도로 사내의 검을 피했다. 여기서 죽으면 죽도 밥도 안 되기 때문에 그는 필사적이었다.
“으아아아아!”
노력이 성공한 듯 사내의 검은 그의 오른쪽 어깨를 뚫고 갔다. 뚫린 자리에서 피가 주륵주륵 흘러내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사내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이런, 곱게 죽을 것이지…… 응?”
불길한 느낌이 그를 엄습했다. 진우의 왼손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진우의 왼손에 머물렀다. 왠지 모르게 진우의 왼손은 밝은 광휘로 둘러싸여 있었다. 파직파직 하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뭐, 뭐야!”
“라이트닝 볼트!”
라이트닝 볼트를 머금은 진우의 왼손이 사내의 가슴을 찔러 갔다.
그 손이 가슴팍에 닿자 사내는 아연실색했다.
“이런 마법도 쓰다…… 으갸갸갹!”
무슨 말을 하려던 사내는 라이트닝 볼트에 격중되어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진우의 마법을 본 유정, 거구A와 B, 구경꾼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개중엔 침을 질질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진우는 자신의 눈앞에 감전되어 쓰러진 거구 삼인방의 리더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내려다보았다. 그때 그의 앞에 네모난 창이 생겨났다.
진우가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고 네모난 창을 보았다.

【결투승점이 올랐습니다.】

그는 결투승점이 뭔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전투를 본 구경꾼들이 저마다 쑥덕거렸다.
“저, 저거 검사 아니었나?”
“분명 검을 사용하긴 했지만…….”
“마법도 쓰잖아?”
“마법이랑 검을 같이 쓰는 직업도 있었나?”
“이야, 너 대단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유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온 유정이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말했다. 진우는 괜히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유정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위의 마나 중 번개속성을 끌어 모아 양손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양손에 라이트닝 볼트가 생겨났다.
‘이런 식으로 가면 매직 에로우 몇십 개는 만들 수 있겠는걸.’
단지 문제점이 있다면 대미지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정도. 그가 끌어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엔 엄연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마나를 계속 분리하다 보면 그 위력도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법.
물론 그런 문제는 고(高) 서클의 마법사가 된다면 해결될 것이다. 마나의 절대량이 늘어날 테니까.
“자, 그럼…….”
그는 양손에 라이트닝 볼트를 완성시키고 거구A, B를 노려보았다.
삽시간에 그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리고 그들도 조금 전 자신들의 리더가 당했던 신세를 면치 못했다.

“너 멋졌어!”
전투가 끝나고 그들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그들을 힐끗힐끗 보는 것이 유정의 미모가 어지간히도 대단한가 보다.
‘그런데…….’
학교에선 그렇게 무덤덤하고 냉정하던 그녀가 가상세계에 오자 철없는 아이처럼 방방 뛰어 대는 모습이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다.
진우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정말 놀라운데.”
“응? 뭐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학교에서의 네 모습과 지금의 네 모습이 쉽게 일치가 되지 않아서.”
“음∼.”
그녀는 검지를 입술에 얹더니 고민하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모습에 유정을 힐끗힐끗 쳐다보던 남자들이 가슴을 움켜쥐고 풀썩풀썩 쓰러져 갔다.
“컥. 심장마비가…….”
“크흑,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네.”
“천사가 틀림없어.”
‘우리 반 녀석들이랑 똑같네. 남자는 다 저런가?’
남자인 그가 이런 말을 하면 우습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상념에 잠겨 있던 진우는 그녀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글쎄? 학교에선 어떤데?”
진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냉정하고 차갑고 무덤덤한?”
“에∼ 너무해!”
진지한 표정으로 솔직하게 말하자 그녀는 삐친 듯 볼을 부풀렸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 주위 사람들은 또다시 풀썩풀썩 무너져 내렸다.
“너 전에 우리 반 애들이 말 걸었을 때도 묵묵부답이었잖아.”
그의 말에 이제야 알았다는 듯 유정은 손바닥을 탁 쳤다.
“아! 그건 내가 원래 남자들이랑 말을 잘 못해.”
“지금 나랑은 잘하고 있잖아…….”
자신과 여태껏 말해 놓고선 저런 뻔뻔한 이유를 대는 유정의 태도에 진우는 입을 딱 벌렸다.
“음…… 그러네? 여기에서는 컴퓨터로 채팅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가?”
유정도 자신의 태도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진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에휴……. 난 의뢰소 가서 퀘스트 받을 거니까 이만 헤어지자.”
“에∼ 싫어! 또 그런 사람들 오면 어떡해?”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진우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지그시 누르며 대꾸했다.
“그럼 어쩌자고…….”
“물론 같이 다녀야지!”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듯 저 태연하고 뻔뻔한 표정이라니. 골칫덩이를 맡은 것 같아 그의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욱더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니 맘대로 하세요.”
앞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진우의 모습에 유정은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앗! 같이 가!”

“오, 이거 저번에 왔던 애송이로군.”
티모의 의뢰소에 도착한 그들은 퀘스트를 받기 위해 근육덩어리의 남자를 찾아갔다.
‘그나저나…….’
진우가 근육맨을 보고 말했다.
“당신 이름이 뭐야?”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는지 그는 한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자신의 오른쪽 가슴팍에 있는 명함을 가리켰다.

의뢰소 주인 ‘티모’

“설마 내가 누군 줄도 모르고 여기 온 건가?”
“티모의 의뢰소라는 것밖에…….”
정말 몰랐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는 진우를 보며 티모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오늘도 의뢰를 받으러 왔나, 애송이?”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자…… 아, 이게 좋겠군. 혹시 대평원에 있는 피로 물든 늑대라고 알고 있나?”
알다마다. 준서가 잡으려고 했던 몬스터였다. 진우는 세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 늑대들이 요즘 성문 경비병들을 못살게 군다 하더군. 힘도 셀뿐더러 상당히 영리한 놈이야. 이놈들을 다섯 마리 잡는 것이 임무라네. 어때, 해 보겠나? 미리 말해 두지만 자네가 잡기엔 조금 벅찰 수도 있어.”

【의뢰소 퀘스트 : 피로 물든 늑대 잡기
대평원에 경비병을 못살게 하는 늑대가 있다. 보통 늑대보다 더욱 강하며 영리하다. 이것을 잡아 경비병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자.
난이도 : E
제한 : 없음】

“할게요.”
진우는 퀘스트를 수락하고 의뢰소 밖으로 나왔다.

“나는, 나는?”
의뢰소 밖으로 나오자 유정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응? 너 뭐?”
“나도 퀘스트!”
“하아…….”
이 골칫덩어리가 문제다.
“멤버 어드레스 있지? 줘 봐.”
“그게 뭔데?”
“흠. 친구 등록이랑 비슷한 개념이라 보면 돼. 가방 안에 있으니까 잘 찾아보라고.”
“에, 너무 추상적이야…….”
그녀는 투덜대며 열심히 가방을 뒤적였다.
“여기!”
유정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더니 진우에게 불쑥 내밀었다. 진우는 유정의 멤버 어드레스를 받고 그것을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멤버 어드레스를 유정에게 주었다.
“가방에 넣어.”
그러자 유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군말 않고 하란 대로 했다.
“어? 친구등록 됐네? 앗, 파티창이다. 수락수락…… 엇? 퀘스트 공유? 수락수락…….”
유정의 멤버 어드레스를 받은 진우는 유정에게 파티신청을 했다. 파티 구성이 완료되자 그는 퀘스트 공유를 신청했고, 그들은 곧 북문 너머 대평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