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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13화)
4장 즐거운(?) 파티 사냥(2)
준서를 가뿐히(?) 처리한 진우는 티모의 의뢰소로 향했다.
“오호. 대단하구만, 대단해. 이젠 애송이라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하겠군.”
티모가 등까지 뒤로 젖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자, 약속대로 보상이라네.”
「50브론즈를 획득했습니다.」
‘왜 못 움직이는 거지?’
티모의 의뢰소를 나와 거리를 걷던 진우는 빨리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거대한 압력의 정체에 의문을 품었다.
‘버그라도 걸렸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의문에 대한 답을 좀처럼 찾을 수 없자 진우는 다시 노마법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했다.
“압력? 움직일 때마다 그런 게 느껴진다고?”
노마법사는 눈앞의 소년에게 또다시 어이없는 질문을 듣자 황당함에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소년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그 역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갑자기 손가락을 탁 튕겼다.
“아, 그러고 보니 기사 양성소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군.”
“기사 양성소요?”
“우리 마법사들이 마법사의 탑을 만들었듯이 기사들도 예비기사들을 키우기 위한 양성소가 있네. 그 시설을 기사 양성소라 부르지.”
노마법사가 뒤에 있는 책장에서 지도를 하나 꺼내 오더니 카운터에 펼쳤다.
“자, 이곳이 지금 마법사의 탑이 있는 곳이네. 그리고 북서쪽으로 쭉 가다 보면 북서문이 나오는데 그 근처에 기사 양성소가 있네. 바로 여기.”
노마법사가 북서문 바로 아래 위치한 건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들리는 바로는 이곳에 그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네. 이쪽으로 한번 가 보게. 거기서 자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게야.”
노마법사가 지도를 둘둘 말고는 진우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진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사 양성소로 갔다.
물론 노마법사는 진우의 그런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지만.
북서문 근처에 위치한 기사 양성소. 북서문을 나갈 때면 한 번쯤은 고개를 돌려 보게 되는 이곳은 항상 기합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거기! 동작이 느리다!”
교관인 듯 지휘봉을 들고 있는 사내가 수련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멋진 은색 갑옷 사이사이로 드러난 근육은 그가 평범한 교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대단하네.”
기사로 전직하기 위해 오는 사람 외에 대부분은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이곳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전형적인 마법사 차림과는 다르게 오른쪽엔 지팡이, 왼쪽엔 검을 착용한 사람이었다.
“누구한테 말해야 하나…….”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러 온 진우였다. 진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교관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저기…….”
옆에서 모기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리자 교관은 인상을 찌푸렸다.
‘쯧쯧, 요즘 어린것들은 기합이 모자라. 내 단단히 교육시켜야겠군.’
그는 찌푸린 인상 그대로 진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허! 기사가 되기 위해 찾아왔다면 목소리부터 키우는 게 좋을 것이다! 안 그러면 내 따끔히 매질을 할 테니…… 응?”
진우의 차림을 확인한 교관은 처음 단단히 혼내야겠다는 생각은 저만치 사라지고, 궁금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마법사 같은데 검을 착용한 것이 또 이상하다.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교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넌 뭐냐?”
“네?”
“보아하니 마법사 같은데 왼쪽에 있는 그건 뭐냔 말이다.”
교관은 손가락으로 진우의 왼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한 진우는 그가 가리키는 것이 검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 마법이 안 나갈 때 호신용으로 썼었는데…….”
“쯧쯧, 역시 폼이군. 너한텐 볼일 없다. 나가라.”
말을 마친 교관은 몸을 홱 돌리더니 다시 수련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교관의 행동에 당황한 진우가 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뭐냐?”
다분히 짜증이 섞여 있는 말이 교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마법사한테 알려 줄 것 따윈 없다. 나가라.”
교관의 몸이 또다시 홱 돌아가려 하자 진우는 더욱 세게 그를 붙잡았다.
교관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이것이…….”
“호, 혹시 몸을 누르는 압력에 대해 알아요?”
진우의 말에 금방이라도 뚜껑이 열릴 것 같던 교관이 움찔했다.
“뭐?”
“압력이요. 몸을 누르는…….”
“흠…….”
교관이 턱에 손을 괴었다. 진우는 그 모습에 꿀꺽 침을 삼켰다. 만약 그가 모르면 또다시 해답을 찾는 일이 어려워지리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생각을 마쳤는지 교관은 턱에 괴었던 손을 내렸다.
“따라와라.”
교관이 그 말과 함께 건물 안으로 휘적휘적 걸어가자 진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소박했다. 몇 개 없는 가구는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 여기저기 색이 바랬다. 밤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부는 상당히 어둠침침했다. 창문이라고는 환풍을 위한 조그마한 창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있는 창문도 건물 꼭대기에 달려 있으니 빛이 제대로 들어올 리가 더욱 없다. 그렇기에 오른쪽에 자리한 벽난로에서 나오는 빛으로 간신히 주변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압력이라…….”
책상에 앉은 교관이 먼저 운을 뗐다.
“자네의 질문, 딱 3년 전이군. 그때도 한 번 받아 보았네.”
그의 말에 진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이미 한 번 받아봤다면 해결책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그의 눈이 빛났다.
“츠키노와. 그의 이름이네. 3년 전에 예비 기사로 내가 가르친 놈이지. 우리는 기사를 키울 때 교관들 밑에서 수련하게 한 뒤 간단한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면 기사로 임명해 주지.”
‘그러니까 전직하려면 여기서 수련해야 한단 말이네. 게다가 아이디…… 일본인인가?’
그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여느 평범한 수련생과 다를 바 없었지. 그러나 참 성실한 놈이어서 내 맘에 든 몇 안 되는 녀석 중 하나였네. 그는 기사로 임명된 후 우리가 주는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했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반드시 성공해 냈지.”
그때를 생각하는지 교관의 입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한테 찾아와서 몸이 잘 안 움직여진다는 거야. 마치 거대한 힘이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 같다면서.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서적을 읽고 지인들을 찾아가 봤지만 결국 답을 얻을 수 없었지.”
“그, 그럼……?”
교관의 말을 들은 진우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너무 성급하게 판단 내리지 말게. 내가 그 일을 포기하고 정확히 2년 후, 그놈이 찾아왔네.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말이야.”
진우의 눈이 빛났다. 그가 뭐라 말하려 하자 교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벽면에 있는 책장으로 가서 한 권의 책을 꺼내 왔다.
“그때의 일을 정리한 책이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책으로 남겨 달라고 부탁했지. 아마 이것이 자네가 찾는 해답이 되지 않을까 하네.”
교관이 책을 건네자 진우는 두 손으로 그것을 조심스레 받았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이런 젠장! 일본어잖아!”
첫 페이지를 넘기자 알아볼 수 없는 언어가 쓰여 있었다. 무척 기대했기에 실망 또한 컸다.
‘아냐, 통역도 자동으로 되는데 설마 이게 안 되겠어?’
진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도움말을 열어 보았다.
‘통역…… 통역…… 여기 있다.’
드로세 근위기사 단장님의 부탁을 받아 나 같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쓴다.
‘저 교관의 이름이 드로세인가 보네. 근위기사단 단장이라니…… 대단한데.’
진우는 고개를 들어 드로세를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책에 머리를 파묻었다.
책을 쓴다니 가슴이 떨린다. 나는 일본인으로, 츠키노와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다. 내 소개는 이쯤으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나는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나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압력이 느껴져서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급박한 순간에, 눈으로는 확인이 되는데 몸이 안 움직여지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순간 나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모든 시간이 정지한 세상. 시간이 정지했기 때문에 나 또한 움직이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자세히 보면 모든 것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이 공간을 시간이 정지했다는 의미에서 시정공간(時停空間)이라 부르겠다.
‘나는 단지 느려지기만 했을 뿐인데 이 사람은 정지까지 했다니…… 엄청 답답했겠네.’
그렇기에 나는 시정공간에서 어떻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내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불편을 떠안고 살아가기로 했다.
‘뭐야, 실패했나?’
시간이 흘러 내 레벨은 어느덧 중상위권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쯤, 움직임을 제한하는 압력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내 스탯 창에서 유난히 힘 스탯만 높은 것을 발견했다. 이 레벨이 되도록 나는 무조건 힘에만 스탯을 투자했다.
보통 기사들이 힘과 맷집에 투자해 안정적인 사냥을 즐기는 반면 일격필살을 좋아하는 나는 무조건 힘에만 투자했다.
아마 내가 힘에다 스탯을 투자할 때마다 압력이 조금씩 누그러졌겠지만 눈에 띄게 누그러진 것은 이 정도의 레벨이 되어서였다.
계속 밑으로 읽어 내려가던 진우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럼 자신도 중상위권 레벨 때까지 힘에만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와 같은 기사라면 몰라도 자신은 마법사였다.
중상위권 레벨까지 힘만 투자하라는 것은 마법사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여러 가지 책을 읽어 보고 인터넷도 검색해 본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동체시력이라고 들어 봤는지 모르겠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눈으로 포착하는 이것은 사물 전체를 인식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이것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눈으로 포착할 뿐 빠르게 다가오는 물체를 피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근력이 필요한 것이다. 시력을 따라갈 만한 근력이. 그리고 이 게임에서의 근력이란 곧 힘이다.
탁.
다음 장에 내용이 더 있는 듯했지만 진우는 여기서 책을 덮었다.
‘그러니까 힘에만 스탯을 모조리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구만. 헛걸음했네.’
그의 얼굴엔 실망했다는 기색이 다분했다.
“어떤가?”
드로세가 진우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도 진우의 표정을 보고 눈치 챘는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아― 감사합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한 진우는 드로세에게 책을 돌려주며 몸을 돌렸다.
끼익.
문이 열리고 진우가 나갈 때까지 드로세는 말없이 그저 그의 축 처진 어깨만 바라보았다.
진우가 나가고 잠시 후 드로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펼쳐 보았다.
사르르륵.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며 진우가 안 읽은 부분에서 정확히 멈추었다.
그러나 나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막 세계 랭킹 7위에 올랐을 때 에브게니아 대륙 서쪽에 위치한 무법지대 브리시에서 멀린이란 마법사를 만났다. 불의 마법을 주로 사용하던 그 마법사는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내 공격을 피했고 나는 그에게 패배했다.
마법사인 그에게서 이런 몸놀림은 나오기 힘들다. 아니, 나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갑자기 팍 꺼져 버려서 다른 곳에 나타나 마법을 이용해 나를 공격하는가 하면, 듣도 보도 못한 마법으로 날 궁지에 몰아넣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블링크를 쓰는지 안 쓰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건만 그는 해괴한 방법으로 공격을 피했다.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려 자부심이 가득한 나에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결투 후 나는 그도 나와 같은 경험을 겪었음을 알아냈다. 움직임을 제한하는 힘 말이다. 나는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 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웃으면서 말해 줄 수 없다 했다.
내가 모든 마법사가 그렇게 되면 마법사가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투덜댔지만 그는 전 세계에서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자신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그처럼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나온다면 세계 랭킹의 순서는 한 칸씩 뒤로 밀릴 것이다.
새로 탄생한 마법사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