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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14화)
5장 아이템 원정단(1)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즐거운 게임 하시기 바랍니다.」
여느 때와 같이 접속한 진우는 퀘스트를 받기 위해 티모의 의뢰소로 걸음을 옮겼다. 이것이 거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파란 창이 떴다.
[어디냐? ―아블로스]
[퀘스트 얻으러 간다.]
[오늘 동아리끼리 던전 탐험하기로 한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아블로스]
진우는 준서의 말을 듣고, 잊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이, 한진우! 제대로 듣고 있지?”
“그래, 그래.”
“너 저번처럼 또 잊어버리면 가만 안 둬!”
“알았다니까…….”
“좋아, 그럼 오늘 뭐 하자 했지?”
“던전 탐험하자면서.”
“굿.”

진우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무, 물론이지.]
[오케이! 파티 신청한다. ―아블로스]
준서의 말을 끝으로 파티창이 뜨며 수락할지 거부할지를 물어보았다.
당연히 수락을 선택한 진우는 모이기로 한 장소인 여관으로 걸음을 돌렸다.

“여어.”
여관에 도착한 진우를 향해 준서가 손을 흔들었다. 진우는 그들에게 다가가 합석했다. 준서 외에도 사람이 더 있었는데 진우가 익히 알고 있는 동아리 초창기 멤버들이었다.
진우가 자리에 앉자 준서가 세계지도를 꺼내 테이블에 펼치고는 한곳을 손으로 짚었다.
“여기, 우리가 갈 던전이야.”
모두의 시선이 준서의 손이 짚은 곳으로 모였다.
‘허물어진 고대 신전?’
모두가 준서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로 정한 이유는, 이곳에서 슈퍼 급 아이템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야.”
진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이 준서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슈퍼 급?”
“응. 슈퍼 급.”
“그게 뭔데?”
순간 준서와 다른 사람들은 진우를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설마 정말 모르는 거야? 이 게임을 한 지 5일 정도 됐는데도?”
“응.”
준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잘 들어, 이곳에서는 아이템에 등급이 붙게 되어 있어. 각 등급별 아이템의 위력은 천지차이라 할 정도지. 낮은 순으로 일반, 매직, 슈퍼, 레어, 유니크 등급이 있어. 유니크는 전 서버에 열 개 미만이라고 알고 있어. 희귀한 만큼 가치도 높지. 또 슈퍼와 레어는 최상, 상, 중, 하, 최하로, 또다시 다섯 개로 등급이 나뉘어져. 그리고 우리가 지금 가려는 곳은 슈퍼 급, 즉 2등급 아이템이 나오는 곳이지. 그리고 이 게임이 시작된 이후로 슈퍼 급 아이템은 단 일곱 개밖에 안 나왔다고 알려져 있어. 레어나 유니크는 전무하고.”
준서의 말을 들은 진우가 손을 튕겼다.
“그럼 최상을 구하러 가는 건가?”
“아니, 그건 그렇지 않아. 단지 슈퍼 급 아이템이 나온다는 소문만 있을 뿐이니까.”
준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대평원의 끝자락. 밑으로 컬리프 산맥이 보이고 그 밑에는 로한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 다섯 명의 인원이 나타났다. 각기 다른 복장을 걸치고 있는 그들은 슈퍼 급 아이템을 얻기 위해 원정 나온 진우 일당이었다.
“그나저나, 선배는 클래스가 뭐예요?”
진우는 옆에서 걷고 있는 준환에게 물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난 무투가.”
그는 앞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남자는 주먹이지.”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에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다 왔어.”
앞에서 걷고 있던 민정이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진우와 준환이 잡담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허물어진 고대 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곳에는 고대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서진 돌기둥과 집, 곳곳에 남아 있는 집터의 흔적. 그곳에는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야, 여기 이끼 낀 것 좀 봐.”
주위를 배회하던 두수가 초록빛을 띤 돌을 보고 히죽 웃었다.
다른 일행과 마찬가지로 그곳을 둘러본 진우는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던전의 입구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본 것이라곤 허물어진 기둥이나 부서진 폐허, 이끼 낀 벽돌뿐이었다.
그러나 준서의 말에 그의 의문은 곧 풀렸다.
“여기야.”
준서는 그나마 조금 온전해 보이는 집을 찾아가 그곳 바닥을 들추었다.
그러자 비밀통로인 듯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들어가 보자고…….”
준환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제일 먼저 들어갔다. 그를 시작으로 그들은 차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비전투 클래스인 진우와 민정은 제일 마지막에 뒤따라갔다.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준서는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횃불을 꺼내 불을 붙였다.
횃불로 밝힌 내부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곳곳에 해골들이 널려 있고 피는 굳은 모양인지 벽을 붉게 칠해 놓았다.
어린아이인 듯 작은 체구의 해골에 박힌 검을 본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여기 적정 레벨이 몇이지?”
그가 앞서 가던 준서에게 물었다.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우가 말하자 다들 아차 하며 뺨이라도 맞은 듯 준서에게 고개를 휙 돌렸다.
준서가 손을 탁 튕겼다.
“아, 그걸 안 알아봤네.”
순간 준서의 주위로 싸늘한 살기가 몰려들었다. 준서도 그것을 느낀 모양인지 순간 움찔했다.
“아하하…… 슈퍼 급이라는 말에 그만…….”
준서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지 연신 손을 퍼덕였다. 그런 준서를 구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앞에서 들려온 준환의 음성이었다.
“온다.”
준환의 음성에 그들은 전면을 바라보았다. 준환의 말처럼 어두운 곳 저편에 눈을 번뜩이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눈만 번뜩이는 그들의 모습은 충분히 소름 끼쳤다.
조금씩 일행에게 다가온 그것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본 진우 일행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마, 맙소사. 헬 하운드!”
어둠 속에서 나타난 몬스터는 놀랍게도 헬 하운드였다.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지옥의 파수꾼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얼핏 보면 개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덩치가 늑대만 하고 입 밖으로 삐죽 나온 송곳니는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제, 젠장. 승산이 없어! 던전을 나가자.”
“무리야. 원래부터 던전은 들어오면 출구가 닫히게 되어 있다고. 나가는 방법이라고는 상점에서 ‘오카리나’라는 아이템을 사 와서…….”
말끝을 흐린 민정이 준서를 바라보았다. 덩달아 모두의 고개가 준서에게 돌아갔다.
수많은 시선을 감당 못한 준서는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모두는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준환의 얼굴 옆으로 진우의 라이트닝 볼트가 스쳐 갔다.
파츠츠츠츠츠.
“으악! 뭐하는 거야, 소년!”
그가 시전한 라이트닝 볼트가 준환을 향해 도약한 헬 하운드에게 적중했다.
“뭐해요! 방어하라고요.”
그가 소리치며 라이트닝 볼트 2탄을 준비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마나가 잘 모이지 않았다.
‘쳇. 폐쇄된 공간이라 마나가 희박하다.’
마나 느끼기 스킬을 극성까지 습득한 진우의 눈에는 주변의 마나가 훤히 보였다. 그것은 밖에서의 그것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때마침 준서 일행도 전투 준비를 마친 모양인지 그들의 얼굴엔 비장함이 가득했다.
“젠장, 엉뚱한 후배 둬서 이게 무슨 꼴이냐…….”
“제발 레벨 다운만은 안 되어야 할 텐데…….”
“…….”
민정은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크르릉.
그때 헬 하운드가 쇄도해 왔다.
준환과 준서는 헬 하운드를 향해 마주 달려갔다. 접근전에 유리한 클래스는 그 둘이었기 때문이다.
헬 하운드의 지척에 도착한 준환이 주먹을 뒤로 빼며 상체를 숙였다. 그리곤 허리를 비틀며 뒤로 뺐던 주먹을 위로 내질렀다.
퍼억!
정통으로 준환의 주먹에 맞은 헬 하운드가 발을 꼬며 비틀거렸다.
“망할.”
준환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미지를 가하자 헬 하운드의 위에 바(Bar)가 뜨며 체력게이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준환의 공격은 헬 하운드의 체력을 아주 조금밖에 줄이지 못했다.
‘그래도 아예 안 닳는 것보단 낫군.’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헬 하운드를 상대하는 준서의 상황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장기인 차지 스킬이 당최 통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으랴압! 차지!”
방패를 전면에 내세운 그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헬 하운드와 부딪쳤다.
그러나 헬 하운드가 비틀거리는 것도 잠시뿐, 너무도 잠깐이라 아예 충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헬 하운드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을 옆으로 틀며 준서의 옆구리를 공격해 왔다.
“큭.”
당황한 준서는 그저 멍하니 헬 하운드를 바라보았다.
스르르르― 푹.
헬 하운드가 준서의 옆구리를 향해 입을 쩍 벌린 순간, 어둠 속에서 희끄무리한 인간 형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형체를 갖추었을 때 어둠 속의 단검은 헬 하운드의 목을 정확히 찍고 있었다.
“하나 잡은 건가?”
그는 도적 클래스로 전직한 두수였다. 준서도 이내 긴장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휴우, 고마워요.”
하지만 그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크헝!
헬 하운드는 완전히 죽지 않았던 것이다. 목 부근에 검이 그대로 꽂힌 채 헬 하운드는 그대로 준서에게 몸통을 들이받았다.
퍼억!
“크악!”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벽에 처박혔다. 고개를 들어 체력게이지를 확인한 그는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젠장. 뭐가 저리 세다냐.”
단지 한 대 맞았을 뿐인데도 그의 체력게이지는 밑바닥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헬 하운드는 벽 속에 처박힌 준서를 향해 다시 쇄도해 갔다.
준서는 그런 헬 하운드는 바라만 보았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헬 하운드의 목을 찔렀던 두수도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 넋을 놓고 있었다.
파츠츠츠츠츠.
진우는 그런 헬 하운드를 향해 라이트닝 볼트를 날렸다. 라이트닝 볼트가 주변을 환하게 비추며 헬 하운드에게 접근했다.
파지지직.
―크르르륵.
라이트닝 볼트에 격중된 헬 하운드가 간헐적으로 몸을 떨더니 완전히 죽은 듯, 체력게이지가 사라졌다.
준서는 그런 헬 하운드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우의 공격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강제로 로그아웃 될 뻔했던 것이다.
준서가 도와준 진우를 보며 고맙다고 눈짓했다.
파앗!
그때 준서의 몸이 환한 빛에 휩싸이면서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이른바 성직자의 치료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고, 고마워요.”
준서는 민정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한 채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이런 위험한 던전으로 데려온 자신의 잘못도 있지만 상처를 치료해 주는 민정의 몸짓 하나하나는 마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젠장, 처리했으면 나 좀 도와 달라고!”
혼자서 헬 하운드를 상대하던 준환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준서와 두수 둘이서 헬 하운드 하나를 겨우 잡은 것을 보아 그 둘의 레벨을 상회할 것이 분명했다.
진우는 그를 도와주기 위해 대기 중의 마나를 또다시 끌어 모았다.
‘젠장. 빛이 밝지가 않아.’
역시 대기 중 마나가 부족해 그의 라이트닝 볼트는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비켜요!”
그가 준환에게 소리 지르며 라이트닝 볼트 제3탄을 쏘았다.
라이트닝 볼트는 파츠츠츠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날아갔다.
“으헉!”
뒤에 다가오는 라이트닝 볼트를 느낀 모양인지 그가 헛바람을 삼키며 왼쪽으로 몸을 튕겼다.
파지지지직.
―크허허헝!
라이트닝 볼트를 맞고 타격이 없진 않았던지, 헬 하운드의 털이 쭈뼛쭈뼛 하늘을 향해 섰다.
하지만 그건 헬 하운드의 눈빛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 뿐이었다.
헬 하운드가 몸을 옆으로 누인 준환을 공격했다.
“망할.”
준환이 외마디 욕설을 내지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우웅.
그때 준환의 주먹에,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한 에너지가 모이더니 금세 형체를 이루며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이르었을 때 준환은 눈을 부릅떴다.
“흐읍! 소닉붐 피스트(Sonic―boom Fist)!”
준환은 푸른빛이 일렁이는 주먹을 헬 하운드에게 내질렀다.
달려오는 중이라 미처 피할 새가 없었던 헬 하운드는 그대로 준환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크르…….
준환은 음속을 돌파한 주먹으로 헬 하운드의 몸을 살짝 건드리고는 재빨리 뒤로 빼서 양팔을 교차했다. 다음에 폭발이 일어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쉬욱 콰아앙!
준환의 주먹이 닿은 자리에 닿은 부위를 중심으로 에너지의 파동이 생기더니 이내 터져 버렸다. 그 충격파에 헬 하운드와 준환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벽 속에 처박힌 헬 하운드가 완전히 침묵했는지 그것의 위에 체력게이지가 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