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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16화)
5장 아이템 원정단(3)
“휴우.”
그들의 곁에 도착한 민정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스티지 사이를 뚫고 온 그녀의 몸에는 스티지 여럿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을 외웠다.
“힐링.”
손에서 밝은 광채가 일어나자 그녀는 그 손을 자신의 몸에 갖다 댔다. 그러자 밝은 빛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 침을 꽂아 피를 빨던 스티지가 급히 침을 빼서 달아났다.
빛을 싫어하는 스티지의 특성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진우는 또다시 라이트닝 볼트를 생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또다시 스티지를 향해 던졌다.
파츠츠츠츠츠.
전체 수에 비해 죽어 떨어지는 수가 형편없자 그는 실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여도 끝없이 나오는 물량공세에 맥이 빠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도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는지 스티지의 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준환의 소닉붐이 3분의 1을 줄여 놨다면, 그는 나머지 3분의 2에서 3분의 1만큼을 없앤 것이다. 라이트닝 볼트를 마구 폭사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한계가 오는 듯, 눈앞에 떠오른 마나게이지는 서서히 밑바닥에 도달하고 있었다.
“으아아! 차지!”
준환은 방패를 앞에 내세운 채 스킬을 썼다. 방패에 격중된 스티지들은 방패와 닿자마자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차지의 목적이 대미지를 입히는 것이 아닌 만큼, 스티지도 잠시 기절했을 뿐 시간이 지나자 다시 날개를 퍼덕였다.
차지 스킬로 스티지의 포위를 뚫은 준서가 진우 곁에 다가왔다.
“젠장, 방법이 없을까?”
준서가 검을 꼬나쥐며 중얼거렸다. 이미 그들의 눈에는 희망이란 단어를 찾기 어려웠다.
스르르륵.
그때 어둠에 몸을 숨겼던 두수가 몸을 드러냈다.
“휘유. 이거 상황이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는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소풍 나온 사람처럼 태연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일행은 한동안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 잠깐만요, 선배. 지금 죽을 분위기인데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요?”
준서가 따지듯 묻자 두수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으윽.”
어느덧 치료를 끝냈는지 준환이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아직까지 거동하기 힘든지, 그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
준환이 기대에 찬 눈으로 두수를 바라보았다.
두수는 그런 준환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그리고 이내 씨익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앞으로 나갔다.
“차크라.”
그가 나직이 말을 뱉었다. 두수의 입에서 말이 나온 순간 그의 몸에서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끼륵?
그를 공격해 오던 스티지들은 그의 몸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피어나자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쓰쓰쓰쓰.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그의 손으로 모이더니 이내 모양을 갖추었다. 두수의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피처럼 붉은 다트(Dart)가 생겨났다.
다트가 생겨났음에도 그의 몸에서는 계속 붉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피로 만드는 거라 쏠 때마다 체력이 떨어지지만 관통력 하나는 일품이지.”
혼자 중얼거린 그가 스티지를 향해 눈을 번뜩이곤 다트를 던졌다.
“이야압!”
그의 손이 번개같이 빠르게 움직이며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 다트들이 일제히 스티지를 향해 쇄도해 갔다.
“블러디 다트 스톰(Bloody―darts Storm)!”
두수의 입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오며 그의 손이 더욱더 빠르게 움직였다. 다트가 날아가고 남은 자리에 새로운 다트가 생겨나며 또다시 스티지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에 따라 두수의 체력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끼아아아!
핏빛 다트가 몸을 관통할 때마다 스티지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몸을 관통한 다트는 스티지 한 마리만 죽인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듯, 뒤에 있던 수많은 스티지들을 뚫고 가 천장에 박혔다. 천장에 박힌 다트는 자기의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원래의 형태인 피로 돌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 저……!”
그 광경을 본 일행은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다트를 던진 두수의 얼굴은 핏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져 가고 있다.
당황한 민정이 묵묵히 일어나 그를 향해 힐링을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두수가 말했다.
“힐링도 소용없어. 이 스킬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회복은 전혀 먹혀들지 않거든.”
그는 마치 예전에 그랬던 경험이 있는 듯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이대로 죽으면 여기에서 나온 아이템 정도는 나눠 달라구.”
그러는 사이에 두수의 손은 더욱더 빠르게 움직였고, 그에 비례해 스티지들은 무수하게 죽어 나갔다.
주륵.
그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마저 붉은 기체로 변하며 다트를 만들기 위해 손가락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투둑.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드디어 마지막 스티지가 두수의 핏빛 다트에 맞아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고요한 적막 가운데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마치 모든 생물들이 죽은 듯 그곳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털썩.
두수는 서 있기도 힘든지 무릎을 꿇었다.
그 소리에 퍼뜩 정신 차린 일행은 그에게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괜찮냐?”
두수의 상태를 본 준환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준환도 그가 괜찮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수의 몸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경각에 치달아 보였다. 그의 얼굴과 갑옷 틈 사이사이로 보이는 피부는 백짓장처럼 하얘졌고 머리는 하얗게 탈색되었다. 두 눈은 움푹 들어갔고, 피부는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 뼈에 간신히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힐링.”
그런 두수의 몸에 민정이 치료마법을 사용했다.
강제 로그아웃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두수의 체력게이지는 밑바닥을 헤매고 있을 뿐 제로가 아닌 것이다.
두수의 몸을 밝은 빛이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두수의 몸을 치료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색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피부에 점점 혈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는 후유증이 심한 듯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악몽 같은 스티지들을 물리친 진우 일행은 원래의 공터로 가기 위해 통로를 걷고 있었다.
“으윽.”
진우의 옆에서 걷고 있는 두수는 아직도 후유증이 심한지 연신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엄청난 기술이던데요.”
비틀거리는 두수를 향해 준서가 말을 걸었다.
“뭐, 그 정도야…….”
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엄청난 건 사실이지.”
그가 얼굴에 자부심을 가득히 띠며 말했다.
“도대체 레벨이 몇이냐?”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듯 준환이 두수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후후, 비밀.”
두수는 피식 웃었다.
어느덧 여러 개의 통로가 있던 방에 도착한 모양인지 통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로를 지나 공터가 나오자 준환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좋아. 휴식.”
그의 말을 끝으로 일행도 하나 둘씩 앉기 시작했다.
준서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포션을 꺼내 마셨다. 민정도 어느덧 포션을 꺼냈는지 그녀의 손에는 파란색 물병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마개를 따고 그것을 입에 가져갔다.
다른 일행이 휴식을 취하자 진우는 앉아서 명상 스킬을 사용했다.
간단히 포션을 먹으면 마나가 다 차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포션을 먹어 가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가 원하던 마법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게임 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는 진정한 마법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응?’
명상 스킬을 시전하자 푸른 마나들이 주위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농도가 너무 짙어 앞이 흐릿해질 정도였다. 마나는 그의 주위를 배회하더니 이내 몸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헉.’
진우는 그것에 놀라 스킬을 중지하고 일어나려 했지만 마나가 급속도로 올라가자 이내 의심을 없애고 명상에 집중했다.
급속도로 차던 마나가 점점 줄어들고 풀 마나가 되자 멈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앞에 파란색 창이 떴다.
【명상 레벨이 9가 되었습니다.】
【마나 느끼기 레벨이 6이 되었습니다.】
‘레벨이 벌써 9? 이렇게 금방 오르면 누구나 다 이거 사용하겠다.’
급격한 레벨 상승에 어이가 없어진 그는 잠시 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명상 레벨 오른 건 알겠는데 마나 느끼기는 왜 오른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마나 느끼기는 벌써 마스터 레벨에 접어들어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더 이상 레벨 업을 할 수 없는 레벨이었던 것이다.
마나 느끼기 레벨이 올라간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결론이 나오질 않자 진우는 포기하고 정보를 보았다.
【명상(Lv9) : 시전할 시 기본 마나 회복량의 200퍼센트 증가. 단 시전자가 반드시 앉아 있어야 함. 0/100】
【마나 느끼기(Lv6) : 대기에 들어 있는 마나를 느끼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함.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 숙련도 100/100】
‘……! 200프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한 회복 속도를 본 진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앉아서 회복할 수 있는 양이 초당 40이고 그 두 배라면 초당 80이 된다. 그의 마나가 850인 것을 감안하면 그것은 엄청난 속도인 것이다. 아마 포션을 쓰더라도 이렇게 빨리는 올릴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나네.’
명상의 정보를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문 그는 이번엔 고개를 갸웃했다. 마나 느끼기에 이상한 목록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까지는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 모아 그것으로 형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만 마나가 사용되어 왔다. 즉, 대기 중의 마나가 희박하면 그만큼 마법을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위의 설명을 보면 꼭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마나가 희박한 곳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이용해서 마법을 구현하면 될 것이 아닌가.
가지고 있는 마나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법의 대미지는 더욱더 높아질 것이다. 대기 중의 마나를 끌어 모아 마법을 구현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그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득이 되면 됐지 절대 불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명상과 마나 느끼기 스킬의 시너지 효과를.
시너지 효과란 서로 다른 마법이 상호작용 하여 서로의 레벨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말한다. 보통 서로 관련 있는 마법에 적용되는 효과인데 지금 명상과 마나 느끼기의 관계가 그러하다. 명상은 주위의 마나를 흡수해 자신의 마력을 회복하는 마법이고, 마나 느끼기는 말 그대로 주위의 마나를 느끼는 마법이다.
자신의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흡수하는 것과 주변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고 필요한 것만 골라서 흡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깨운 것은 준환의 목소리였다.
“자, 이제 가 볼까.”
준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일행도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선택하고 싶지 않아.”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선택이 조금 전 일행을 괴멸 가까이 몰아넣었기 때문에 아무도 반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도 앞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 또한 준환의 전철을 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지 준환이 얼굴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진우를 제외한 모두가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
진우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진우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잠자코 있던 준서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형! 제가 고를래요!”
“안 돼.”
“왜요!”
“너 때문에 이 꼴이 된 걸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
그의 마지막 말에 준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사실이 사실인 만큼 그도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이쪽으로 가죠.”
진우가 입을 열자 모두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말 않고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눈앞의 벽에 뚫려 있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통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