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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19화)
6장 난 마법사야(3)


로한 남서문을 나온 그들은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곳은 무척이나 큰 나무들이 즐비했다. 성인 열 명이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만한 나무는 그나마 작은 편에 속했다. 땅을 뚫고 나온 뿌리 때문에 발 디딜 곳이 없는가 하면, 거대한 이파리가 빽빽한 하늘은 햇빛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곳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음침했다.
“대단한데…….”
베르토는 연신 감탄성을 내뱉었다.
“보통 나무가 이 정도의 크기인데 기간틱이라 불리는 그 몬스터는 얼마나 클지 상상도 안 가는군요.”
해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인 듯 하나같이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베르토가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나오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나무입니다. 숲에 살고 있는 오크나 오우거들도 간간이 눈에 띄지요. 제가 알기로는 나무 몬스터들의 뿌리는 발이 되고 그들의 나뭇가지는 팔이 된다 합니다.”
베르토가 커다란 나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런 나무도 언제 몬스터로 변해 저희를 습격해 올지 모릅니다. 평소에는 평범한 나무의 형태를 유지한다 들었으니까요.”
베르토의 말을 듣고 주위를 경계하던 헬버느가 입을 열었다.
“그럼 몬스터로 변하기 전에 먼저 없애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베르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평범한 나무를 훼손했다가는 로한 경비병이 와서 삼림 훼손죄로 잡아가기 때문이지요. 감옥에 사흘은 들어가 있다 나와야 합니다.”
그의 말에 일행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말을 한 베르토 자신도 막막했는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변할 때까지 기다려야죠. 그럼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베르토는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일행도 베르토를 따라 천천히 전진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말을 안 했군요.”
앞서 가던 베르토가 뒤를 돌아보았다.
일행은 물음표를 띄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 몬스터가 나오면 저와 토르 님이 전방을 맡고 두 분은 후방 지원을 해 주시면 됩니다.”
“제가 전방을 맡습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
진우의 물음에 베르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허리에 찬 검으로 보아 기사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인데 의외로 그 당사자가 의문을 표하니 말이다.
“전 마법사입니다만…….”
“네?”
베르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허리에 찬 검은……?”
“지팡이가 필요 없기에 부득이 갖고 다니는 거지요.”
진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베르토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던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베르토의 표정을 본 진우가 의문을 표했다.
“혹시 어떤 속성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
“전격계입니다만……?”
“음.”
베르토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태도에 진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제가 곤란해 하는 이유는 이곳이 숲이기 때문입니다.”
“…….”
“숲이기 때문에 불이 번질 위험이 있지요. 만약 불이 번지면 그때도 역시 삼림 훼손죄로 잡혀갈 겁니다. 아니, 그전에 우리가 그 불속에서 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그제야 베르토의 의도를 알아낸 진우가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럼 불이 안 번질 정도의 마법을 쓰면 되겠군요?”
“아, 네…… 그러면 됩니다만 제가 알기로 마법사는 대미지 조절을 못 한다 들었는데…….”
베르토의 말에 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예를 들어, 파이어 볼을 쓴다 칩시다. 파이어 볼을 쓰면 발동 조건에 맞는 마나가 소모된다고 합니다. 발동 조건에 맞지 않게 마나를 낮추면 마법이 시전 안 된다는 말이지요. 마나가 제로일 때 마법이 안 나가는 것과 동일한 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파이어 볼은 그것을 시전할 수 있는 마나가 정해져 있다는 거지요. 즉, 동일한 마나를 소모하니 위력도 동일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베르토는 말을 마치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진우가 그런 그를 보며 씩 웃었다.
“뭐, 여차하면 안 쓰면 그만이죠.”
베르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마법사가 마법을 안 쓰면…….”
뭐라고 더 말하려던 베르토는 뒤에서 들려온 헬버느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얘기 중에 죄송하지만 저 앞에 손님이 등장하셨는데요.”
베르토와 진우가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거기엔 거대한 나무에 비견될 만한 거대한 몬스터가 우뚝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고 몸집은 4미터나 되었다. 터질 듯한 근육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기선을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우거…….”
베르토가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일행 중 아무도 없었다.
―크오오오!
오우거는 괴성을 지르더니 일행을 향해 재빠르게 돌진했다. 몸집과 맞지 않게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이런.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전방을 맡아야겠군요. 후방지원 부탁합니다.”
말을 마친 베르토가 등에서 대검을 꺼내 양손으로 꽉 쥐더니 앞으로 달려 나갔다.
“프로텍트(Protect).”
성직자인 해드가, 달려가는 베르토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다.
“멀티플 샷(Multiple Shot)!”
헬버느는 뒤에 차고 있는 화살통에서 두 개의 화살을 꺼내 활에 장전하더니 오우거를 향해 쏘았다.
피융.
오우거는 몽둥이를 들어 화살을 막아 가며 베르토를 향해 몽둥이를 내리찍었다.
“헉!”
베르토가 헛바람을 삼키며 재빨리 대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콰광!
“크억!”
오우거의 힘이 어찌나 센지 베르토의 발이 땅으로 움푹 파고들어 갔다.
진우는 재빨리 마나를 모았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렉트릭 쇼크(Electric Shock)!”
진우가 주문을 외치자 일행은 대경실색했다. 진우의 마법으로 숲이 불타 버리는 상상을 했는지 베르토를 제외한 두 명이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염려한 것과는 달리 숲에는 불이 일지 않았다.
파직파직.
오우거의 몸에서 번갯불이 튀더니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우거의 귀와 콧구멍, 입술 사이에서 양전하와 음전하를 충돌시켜 스파크를 만들어 낸 뒤 그것으로 내부적인 충격을 주어 잠시 동안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3클래스 마법인 일렉트릭 쇼크가 발현된 것이다.
“뭐해요!”
진우가 오우거 앞에 멀뚱멀뚱 서 있는 베르토에게 소리쳤다.
베르토도 갑작스런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은 듯 멍하니 있다가 진우의 외침을 듣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베르토는 오우거의 몽둥이를 막고 있던 대검을 빼내고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야압!”
그리고 대검을 횡으로 그었다. 베르토는 그것이 오우거를 허리부터 절단 낼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퍽!
하지만 기대를 저버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자 베르토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상처도 못 입히다니…….”
베르토가 검이 맞은 부위를 보며 중얼거렸다. 대검이 부딪친 자리는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말짱했다.
그로 인해, 감전되었던 오우거가 정신을 차렸다.
―크어어어.
오우거는 자신의 배를 때린 베르토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몽둥이를 들어 그를 찍어 갔다.
“젠장.”
베르토는 재빨리 옆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너무 순간적이라, 오우거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퍼억!
“크헉!”
베르토는 다리에서 감각이 사라지자 비명을 질렀다.
“크으윽!”
오만인상을 쓴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오우거의 몽둥이에 맞은 다리가 납작하게 짓뭉개져 있었다.
“힐링.”
해드는 기도문을 외우며 베르토에게 힐링을 시전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상처를 치유하는 밝은 빛은 가까이에서 시전했을 때보다는 약했다.
진우가 그런 베르토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손에는 어느덧 백색의 번쩍이는 뼈의 검이 들려 있었다.
“일렉트릭 쇼크!”
진우는 달려가면서 오우거를 향해 마법을 쏘았다.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이 캐스팅을 할 때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행동은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움직이면서 마법을 쓰면 그만큼 마나가 더 빨리 떨어지긴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파직파직.
자신의 몸속에서 스파크가 튀자 오우거는 괴로운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일렉트릭 쇼크의 성공 확률이 10퍼센트 미만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운이 좋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마법사에게 통용되는 말이지 진우에겐 전혀 해당하지 않는 통계였다.
이미 대기 중의 마나를 느끼고 다스릴 수 있는 그에게 방해가 될 것이라곤 없었다.
즉, 그에게 확률이란 것은 곧 집중력의 정도였다.
“에잇!”
진우는 몽둥이를 들고 있는 오우거의 팔을 향해 수직으로 검을 그었다.
썽뚱.
―크어어어어어!
오우거의 비명 소리와 함께 놈의 팔이 아주 매끄럽게 잘려 나갔다. 베르토의 검이 전혀 타격을 못 주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전개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진우를 놀라게 한 것은, 움직임을 제한하는 압박이 전보다 덜해졌다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츠키노와의 가설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그것이 아주 약간이라 할지라도.
후우웅.
진우가 지금의 상황에 놀라고 있을 때 순간 파공성이 울리며 오우거의 다른 쪽 팔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진우는 재빨리 허리를 뒤로 젖혔다.
‘크윽.’
예전보다 덜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를 억누르는 압박은 대단했다. 오우거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배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익.”
허리를 뒤로 젖힌 진우가 위에 보이는 오우거의 팔을 향해 수평으로 검을 그었다. 힘을 쓰기에 불편한 자세긴 하지만 그런 문제는 검과 함께 몸을 옆으로 돌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서걱 하는 절단음과 함께 이번에도 오우거의 팔은 매끄럽게 잘려 나갔다.
―크어어어어!
없어진 양팔을 위로 치켜들며 괴성을 지르는 오우거의 모습은 어느 누가 보기에도 딱했다. 팔꿈치부터 없어진 팔을 위로 치켜들며 흔들자 피가 이리저리 튀었다.
몸을 추스른 진우가 오우거에게 달려가 허리를 급격히 돌리며 원심력을 이용해, 놈의 허리를 향해 수평으로 검을 그었다.
이번에도 매끄러운 절삭음이 들렸다.
그가 검을 긋자 검이 지나간 자리를 중심으로 오우거의 상체가 앞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오?
오우거는 하늘이 기울어지는 광경에 의문을 표하며 그대로 절명했다.
쿵!
오우거의 거대한 몸뚱이가 무너지자 진우는 그것에서 시선을 떼고는 베르토에게 걸어갔다.
베르토는 넋을 놓고 있는 것이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괜찮아요?”
진우는 넋을 놓고 있는 베르토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베르토는 그의 손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호, 혹시 마검사세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진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저요?”
진우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네, 동영상에 올라온…….”
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의 납작하게 뭉개졌던 다리는 언제 회복되었는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글쎄요……. 동영상에 찍힐 만큼 거창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검사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있던 게시물이었는데 그곳에 전격계마법과 검을 동시에 쓰는 유저가 있더군요.”
베르토의 말에 진우는 손가락을 탁 튕겼다.
분명 유정의 일에 휘말렸을 때의 일이었다.
‘덕분에 마나 사용법을 터득했으니 고마워해야 하나?’
진우는 실소했다.
진우가 부정하지 않자 베르토가 경악에 물든 얼굴로 외쳤다.
“여, 역시!”
어느덧 베르토의 주변으로 몰려온 헬버느와 해드도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마, 마검사?”
어찌나 놀랐는지 그들은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들의 말을 들은 진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마법사가 검 들고 다니면 다 마검사입니까?”
“하, 하지만 검을 잘 쓰지 않습니까? 좀 전에도 그렇고…….”
베르토는 이미 죽어 버린 오우거를 가리켰다.
“그건…….”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한 진우는 말끝을 흐렸다.
‘오우거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놈이 내지른 주먹을 피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움직임을 제한하는 압력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피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단지 빈틈이 보이는 대로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 누가 믿어 줄 것인가.
‘아마 더욱더 어이없어 하겠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우가 이내 입을 열었다.
“단지 무기가 좋아서 그랬을 뿐이지요.”
진우는 자신의 검을 가리켰다.
보석처럼 번쩍이는 백색의 검신과 고급스러워 보이는 손잡이는 일행들의 입을 벌려 놓기에 충분했다.
“아…….”
“멋진 검이군요.”
검을 본 베르토 일행은 부러운 빛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탄성만 내질렀다.
진우가 검을 허리춤에 꽂아 넣으며 말했다.
“전 마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