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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20화)
6장 난 마법사야(4)
숲 속 깊숙이 들어온 일행은 저마다 주위를 경계했다.
주변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더욱더 음침하고 칙칙한 분위기를 풍겼다.
“별다른 공격은 없군요. 역시 밤이 되어야 하나 봅니다.”
베르토는 주위를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검을 빼 들었다.
―취에엑!
“오, 오크!”
일행의 전면에서 갑자기 오크 떼가 튀어나왔다. 풀숲을 헤치며 나오는 그 수는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나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모습과 달리, 무엇에 쫓기고 있는지 오크들의 얼굴은 두려움과 공포, 다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행은 저마다 무기를 꼬나쥐고는 다가올 오크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얍!”
오크 떼가 지척에 도착하자 베르토는 검을 횡으로 그었다.
―취륵!
베르토의 앞에 있는 오크들은 허리부터 이등분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이 잘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듯, 허리가 잘리고 남은 두 다리를 연신 앞뒤로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꼬꾸라졌다.
“응?”
베르토는 자신들을 피해 뒤로 달려가는 오크들을 보고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오크들이 일행은 안중에도 없는지 그들이 있는 곳은 비켜 갔기 때문이다.
“뭐야, 이거……?”
일행 모두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울 때 앞쪽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쿵! 쿵!
그것의 다리인 듯한 그림자가 위로 올라갔다 내려질 때마다 지축이 뒤흔들리면서 거대한 소리가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이 커다란 나무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자 일행은 놀람과 경악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마, 맙소사!”
“도, 도대체 얼마나 크기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의 정체는 거대한 나무였다. 마치 살아 있는 듯 그것의 뿌리는 발이 되고 나무 몸통 양옆에 뻗어 나온 줄기는 팔이 되었다. 팔이 달려 있는 곳에서 조금 윗부분에는 그것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고. 머리 위로도 잔가지가 무척이나 많았다.
하지만 이파리는 달려 있지 않았다.
“기, 기간틱 트리!”
베르토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이름을 들어 거대한 나무인 줄은 알았지만 이토록 거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였다.
주변의 나무들도 보통 이상이라고, 아니 거대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데 기간틱 트리 앞에서 그것들은 어린 나무같이 보였다.
일행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지축이 흔들릴 때마다 그들의 몸도 위로 들썩거렸다. 대지가 마치 파도가 일어난 듯 출렁거렸다.
“자, 잡을 수 있을까?”
해드가 절망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진우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그가 만난 거대한 몬스터란 몬스터들은 저것에 비하면 자라나는 새싹 수준이었다.
쿵! 쿵!
기간틱 트리가 또다시 지축을 뒤흔들며 일행에게 다가왔다.
“제, 젠장.”
베르토는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댔다.
진우가 그런 그들을 보며 나직이 말을 내뱉었다.
“마법…… 사용해도 되겠죠?”
진우의 물음에, 뺨이라도 맞은 듯 일행이 얼굴이 일제히 그쪽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저거한테 맞아서 죽나 숲이 불타 죽거나 같을 듯싶은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의 말에 아무도 반론하지 못했다.
베르토는 결심을 내린 듯 입술을 굳게 깨물고는 진우를 바라보았다.
“사용하세요. 어차피 토르 님 말대로 저것한테 죽나 숲이 불타서 죽나 마찬가지일 것 같으니…….”
그의 말을 들은 진우는 헬버느와 해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고개가 동시에 위아래로 흔들렸다.
“하세요.”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장렬하게 싸우다 죽죠.”
진우가 그런 그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파직 파직 파직.
대기 중의 음전하와 양전하가 그의 손에 모이면서 엄청난 스파크가 튀더니 이내 지름 1미터가 넘도록 부풀어 갔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라이트닝 볼트의 최종판이었다.
진우는 기간틱 트리를 노려보곤 그것을 냅다 집어던졌다.
“라이트닝 볼트!”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외침은 어느 때보다 우렁찼다.
라이트닝 볼트는 자체적으로 대기 중의 양전하와 음전하를 끌어들여 부풀더니 기간틱 트리에 도착할 때쯤에는 두 배 가까이 커졌다.
그리고 기간틱 트리에 부딪친 순간 엄청난 열을 발생시키며 폭발했다.
퍼즈즈즈즉.
―그어어.
기간틱 트리의 입이 열리며 중저음의 괴성이 숲에 울려 퍼졌다.
진우는 기간틱 트리에게 대미지를 주었는지 확인도 안 한 채 손을 뻗어 펼쳤다.
“스파크!”
기간틱 트리의 주변에 사각형의 번개의 막이 씌워지더니 파직파직 소리를 내며 폭발을 준비했다.
파직 파직 파직!
그것이 멀뚱멀뚱 서 있을 때 진우의 손이 움켜쥐어졌다.
“합!”
그러자 폭발의 한계점에 도달한 스파크가 번쩍 하며 밝은 빛이 음침한 숲을 환하게 밝혔고, 이내 꽈과광! 하는 거대한 폭발음이 숲을 들썩였다.
“으악!”
“허억.”
갑작스런 섬광에 그들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고 폭발음에 인상을 찡그렸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자 일행은 천천히 팔을 내리며 모두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푸스스스.
빛이 사그라지자 거기에는 온몸에 작은 불씨를 피우고 있는 기간틱 트리가 서 있었다.
“서, 성공인가요?”
베르토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봤지만 그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그어어어어!
쿵! 쿵! 쿵!
기간틱 트리는 몹시 화가 난 듯 발을 들었다 내렸다 했다 하며 진우 일행이 있는 쪽으로 열심히 접근해 왔다. 까맣던 흰자위와 동공은 빨갛게 물들었고 머리 위에 달린 잔가지들은 하늘로 삐죽삐죽 섰다.
하지만 크기가 크기인 만큼 이동 속도는 상당히 둔할 수밖에 없었다.
타격이 없진 않는 듯 기간틱 트리의 체력 게이지는 총량에서 4분의 1만큼 줄어 있었다.
진우는 자신이 끌어 모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한 손에는 대기 중의 양전하를 다른 손에는 음전하를 끌어 모았다.
양손이 밝게 물들어 있는 것이 그가 얼마나 많은 전하를 모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진우는 양손을 천천히 가까이 댔다.
파지지지직―!
그러자 그 중심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이내 급속하게 팽창해 나갔다.
일행은 말없이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나와는 수준이 다른 것 같군. 아무래도 고렙의 유저인 것 같다.’
일행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지름이 1미터쯤 늘어난 번개의 구체가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하지만 좀 전과 같이 그것이 기간틱 트리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진우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총동원해 라이트닝 볼트에 주입했다.
퍼직퍼직퍼직.
진우의 마나가 주입된 라이트닝 볼트는 스파크 튀는 소리부터 달라져 있었고 그 밝기는 반경 10미터를 환하게 비출 정도였다.
“라이트닝 볼트!”
엄청난 에너지가 깃들어 있는 라이트닝 볼트가 그대로 기간틱 트리에게 날아갔다.
이번에도 역시 자체적으로 양전하와 음전하를 끌어 모아 부풀 대로 부푼 라이트닝 볼트는 지름이 4미터는 될 만큼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조금 전 잡았던 오우거의 크기만 했다.
지름이 4미터가 되는 라이트닝 볼트가 기간틱 트리에게 날아가자, 그 영향으로 주변에 있던 나무에 급속도로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까도 살짝 불이 붙긴 했지만 이번 것은 차원이 달랐다.
―그어어?
기간틱 트리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백색의 찬란한 번개의 구체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것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기간틱 트리는 양팔을 교차하며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다.
퍼―엉!
기간틱 트리에게 날아간 라이트닝 볼트는 아무런 저항 없이 놈의 몸통을 그대로 뚫어 버렸다. 그 덕에 기간틱 트리의 교차한 양팔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요, 몸통에는 지름이 4미터는 될 만한 엄청난 구멍이 뚫렸다.
―그어어어어!
기간틱 트리는 고통이 심한 듯 양발을 들썩거렸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행동이었으니…….
구멍이 뚫린 곳을 중심으로 기간틱 트리의 몸뚱이가 고개를 꺾더니 밑으로 떨어졌다.
쿠우우웅!
그 거대한 몸이 대지와 충돌하자 충격파가 사방에 번졌다. 땅이 들썩인 것은 물론이요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소리가 숲을 휩쓸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는 기계음이 들렸지만 일행 중 누구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만큼 진우가 보여 준 신위는 대단했다.
진우는 기계음을 무시한 채 기간틱 트리가 떨어진 곳 주변을 훑어보았다.
반짝.
기간틱 트리 주변의 어느 한곳이 빛났다. 다분히 아이템이라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진우는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녹색의 구슬이었는데 마치 나무의 정기를 한곳에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자, 어떻게 분배할까요?”
과도한 마나를 사용해서 그런지 진우의 얼굴은 무척 초췌해 보였다. 피부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어 버렸고 군데군데 흰머리도 눈에 띄었다.
“이, 이런…… 힐링.”
진우의 모습에 해드가 다급히 힐링을 시전했다.
밝은 빛을 머금은 그의 손이 진우의 몸에 닿자 그의 몸은 백색의 빛에 감싸인 채 천천히 회복되어 갔다.
그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일행은 다시 웃음을 찾았다.
“대단하군요. 저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맨 처음 입을 연 이는 베르토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헬버느와 해드가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오오오, 저게 말로만 듣던 매직아이템인가?”
순간, 뒤에서 소리가 들리자 그들의 고개가 뺨이라도 맞은 듯 홱 돌아갔다.
“아마 그러겠지. 기간틱 트리를 잡아서 나온 아이템이니 분명할 거야.”
그곳엔 키가 2미터는 될 만한 근육질의 사내가 근육을 과시하며 일행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한국인은 아니었다. 오뚝한 콧날에 움푹 파인 눈은 나름 미남자라 할 만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그의 양옆에는 신관 복장을 하고 있는 비쩍 마른 사내와, 키가 무척이나 작고 영악한 얼굴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프로텍트. 블레스.”
성직자처럼 보이는 유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근육질의 사내에게 연신 보조마법을 걸었다.
영악한 인상의 소년은 등에서 활을 꺼내 들었다.
그들의 행동에 진우 일행은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뭐하는 거죠? 지금 한판 붙겠다는 겁니까?”
베르토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무리의 대답은 일행의 생각과 일치했다.
“물론.”
사내가 진득한 미소를 지으며 등에서 대검을 꺼내 들었다.
“자, 이제 아이템을 넘겨주실까?”
그들이 있는 숲은 불이 번질 대로 번져 마치 하나의 화염덩어리를 연상시켰다.
진우 일행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아이템을…… 달라고?”
긴장한 모양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그래. 응당 그래야지. 안 그러면 우리가 여태껏 너희를 따라다닌 보람이 없을 것 아니냐?”
그는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쪽에서 진우 일행을 노려보던 성직자가 보조마법을 다 사용했는지 자신에게 바리어를 쳤다.
“일단 저것부터……!”
성직자의 옆에 있던 왜소한 사내가 화살을 장전하고는 재빨리 진우의 손을 쏘았다.
“헉.”
진우는 갑작스레 자신의 손 쪽으로 날아오는 화살에 그만 아이템을 놓쳐 버렸다.
데구르르.
불의 벽 저편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아이템을 멍하니 본 그들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불청객들을 노려보았다.
“얼른 해치우고 로그아웃 하자고. 숲이 불타 버리기 전에…….”
진우에게 화살을 쏜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말에, 대검을 든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베르토 일행을 향해 돌격했다.
“헉.”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진우 일행은, 대검을 치켜든 채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그를 보며 헛바람을 삼켰다.
발이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새에 해드의 지척에 도착했다.
“일단 성직자 놈부터 잡고…….”
그가 허리를 비틀며 대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서걱.
“크악!”
날카로운 절삭음이 들리며 해드의 허리가 대검에 이등분되었다.
대검에 잘린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듯.
강제로 로그아웃 된 해드가 있던 자리를 넋 놓아 보던 헬버느는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슈슉.
다음 순간, 그녀의 등 위로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그냥 죽어 주면 좋았을 것을…….”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혀를 차며 재빨리 활을 장전했다.
“궁수는 궁수끼리 놀아 보자고. 하하하!”
그가 비웃음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헬버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자신도 활을 장전했다.
진우 쪽의 상황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커헉.”
베르토는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대검을 자신의 대검을 들어 막아 냈다.
하지만 사내는 힘에만 스탯을 투자한 모양인지, 베르토는 대검에 부딪치자마자 저만치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스탯 이전에 레벨에서 차이가 나는 듯했다.
그러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달리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것이다. 좋은 아이템을 착용한 듯 그의 신발이 유난히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