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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22화)
7장 핸섬 가이(2)
드륵.
교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이리로 오세요, 교장선생님.”
이 선생이 눈웃음을 치며 자신의 자리로 교장을 안내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여러분들의 두발 검사를 맡게 됐습니다.”
교탁 앞에 선 교장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두발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앞에서부터 쭉 둘러보던 그는 진우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학생, 이름이 뭔가?”
진우는 교장을 올려다보았다.
새하얀 머리카락은 가운데는 텅 빈 채 양옆에만 삐죽삐죽 솟아 있었고, 부리부리한 눈과 작달막하지만 탄탄한 체구…….
“헤, 헤이야치?”
그렇다. 그의 생김새는 놀랍도록 철권3과 4에 나오는 꼼시의 귀공자 헤이야치와 놀랍도록 흡사했다.
“뭐라 했지?”
교장은 자신을 넋 놓고 쳐다보는 진우를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진우는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헤, 헤이야치…….”
“……?”
“하, 한진우입니다.”
진우는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연신 손을 퍼덕였다.
교장은 명단에 한진우라는 이름을 적었다.
“앞머리가 너무 길어. 내일까지 당장 자르게.”
그러고는 몸을 홱 돌리며 다른 학생들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흑흑…….”
진우의 옆에 걷고 있는 준서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왜 그래?”
진우가 준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흑흑…… 이 몸 이준서,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 멋들어진 머리를 유지하느라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준서는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런 준서를 진우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자르면 되잖아.”
진우의 말을 들은 준서가 갑자기 고개를 벌떡 세우더니 꽥꽥 소리 질렀다.
“뭣이! 이런 남자의 로망도 모르는 자식! 여기는 공학이다, 공학! 공학에 다니면 공학에 다니는 남학생의 본분을 지켜야 할 것이 아니냐!”
“하아…….”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흑흑.”
준서는 미용실에 갈 때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준서와 진우가 미용실에 들어가자 종업원이 그들을 보며 인사했다.
“어느 분이 자르실 건가요?”
준서와 진우가 서로를 가리켰다.
“그럼 이쪽 분 먼저 해도 될까요?”
종업원이 피식 웃으며 진우를 가리켰다. 코까지 덮는 앞머리가 무척 답답해 보였나 보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업원이 안내해 주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종업원이 안내해 준 자리에 가서 앉자 미용사인 듯 허리에 가위를 찬, 멋들어진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이 진우에게 다가와 물었다.
“깔끔하게 해 주세요. 고등학생 신분에 맞게…….”
“어머, 요즘 학생답지 않은 말인데요?”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학생 나름이지요.”
삭둑삭둑.
가위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진우의 머리카락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진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낯선 모습에 감회가 새로웠다.
“어머?”
가위가 진우의 앞머리를 잘랐을 때 미용사가 얼굴을 붉히며 감탄성을 내뱉었다.
진우는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얼굴이 신기하다는 듯 뚫어져라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그의 생김은 상당히 준수했다. 우뚝한 콧날과 갸름한 턱선은 여자답기보다는 남자다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준서는 믿기질 않는지 입을 떡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준서도 앞머리가 코끝까지 내린 진우의 얼굴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집에서조차도.
미용실 밖은 브랜드 매장으로 유명한 거리였다. 양옆으로 유명 브랜드의 옷가게가 쭉 늘어서 있고 가게마다 옷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그 사이를 진우와 준서가 걷고 있었다.
“어머 쟤 좀 봐.”
진우와 준서가 지나가자 주위의 여자들이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그들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주위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진우는 고개를 푹 숙였고, 준서는 이렇게 잘생긴 친구를 두고 있다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때, 가게 안에서 커다란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 거참, 좀만 깎아 달라고요.”
“손님, 죄송하지만 여긴…….”
그 덕에 진우와 준서의 고개도 소리가 나온 곳으로 돌아갔다. 거기엔 한 소년이 가게 안에서 흥정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뭐 이딴 곳이 다 있어?”
종업원이 계속 난처하다는 듯 말하자 소년은 가게에서 뛰쳐나왔다.
툭.
가게에서 뛰쳐나온 그는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소년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앞의 사내가 자신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Shit! 어떤 자식이야?”
그가 부딪힌 사람은 머리를 자르고 나서 환골탈태한 진우였다. 키가 185센티미터가 넘는 진우가 부딪힌 사람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런 진우의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부딪힌 것에 대한 불쾌감 때문이 아니라 원수를 만난 분노였다.
“놀랍군.”
진우가 나직이 내뱉었다.
진우의 덩치에 위축된 소년은 그의 살기 충만한 목소리를 듣자 흠칫 몸을 떨었다.
“뭐, 뭐야! 부딪혔으면 미안합니다라고 해야 할 거 아니야? 어디서 눈을 부라려?”
자기가 먼저 부딪혀 놓고 어디서 그런 뻔뻔함이 나오는지, 준서와 주위 사람들이 경멸에 가득한 눈초리로 왜소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진우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마치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하지만 그의 주먹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진우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는지 소년은 슬슬 뒷걸음치다가 이내 달아나기 시작했다.
“S…… Shit! 너, 너 내가 봐준 줄 알아! 아, 알겠어? 그, 급한 일이 생겨서 가, 가봐야 해서 그래…… 젠장!”
몸집이 작은 만큼 달아나는 것도 날렵했다. 시비를 거는 실력만큼 눈앞에서 사라지는 기술 또한 일품이었다.
“아, 멋져…….”
진우의 행동을 본 주위의 여자들의 눈이 삽시간에 몽롱해졌다. 개중엔 자신의 남자친구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고 두 손을 모아 선망의 시선을 가득 담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진우는 입술을 굳게 깨물고는 달아난 사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세상 좁다 하더니 정말로 좁군.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소년은 진우의 아이템을 빼앗아 간 일행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현실과 가상은 엄연히 다른 곳. 가상에서 저지른 일을 현실에서 갚을 수는 없는 법이지. 다음에 가상에서 만나면 반드시 복수해 주겠어.’
진우는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발을 돌렸다. 준서도 그런 진우를 따라 재빨리 발을 돌렸다.
‘다음엔 반드시……!’
“음.”
서동 고등학교 교장인 해이종은 너무나도 어이없는 말에 한 손으로 머리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그의 책상 너머로 한 소년이 서 있었는데, 185센티미터는 넘을 듯한 장신에 떡 벌어진 어깨, 긴 다리와 긴 팔 그에 어울리는 수려한 용모까지.
“안 될까요?”
굳게 다물려 있던 소년의 입이 열렸다.
그의 말을 들은 교장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를 깔끔하게 잘라 온 것은 좋은데 말이야.’
“하지만 진우 군. 그건 학교 규정에 어긋나는 일인데 말이야.”
교장의 책상 너머에 있던 소년은 진우였다. 교장은 곤란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분명 그것은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진우의 말을 들어 보면 그가 얼마나 곤란을 겪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지금도 진우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려는 여학생들이 교장실 문 앞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부탁드립니다.”
진우는 절박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교장은 한숨만 내쉬었다.
“어머, 쟤 좀 봐.”
“우리 학교 학생이네? 전학 왔나?”
평소와 같이 준서와 함께 등교하던 진우는 주위의 반응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주위 여학생들이 꺄악꺄악 하면서 서로 소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험담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기분이 언짢은 건 어쩔 수 없었다.
“……?”
교문을 지나 학교 안에 발을 내디딘 진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학교의 창문이란 창문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메어 터져라 끼어 있었고, 교실에 있어야 할 학생들은 저마다 운동장에 나와서 고개를 쭉 빼고 있다.
‘연예인이라도 오나?’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한 진우는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우가 교실로 가는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전교생의 시선이 점점 더 집중되었다.
“까악! 왔어! 왔어!”
운동장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던 학생들이 저마다 소리를 질렀다.
남학생들은 극소수였고 대부분 여학생들이었는데 그녀들은 서로 얼싸안으면서 진우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생길 수가 있지…….”
여학생 군단에 끼어 있던 극소수의 남학생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비로소 그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나왔음을 안 진우는 연신 인상을 찡그리며 교실로 걸어갔다.
자신이 우리 안의 원숭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드륵.
교실 문을 열며 교실에 발을 내디딘 진우에게, 끼리끼리 모여앉아 수다를 떨던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진우를 보자마자 멍하니 풀려 버리는 얼굴.
그들의 머릿속에 공통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누구?’
그들은 넋 놓고 진우를 쳐다보았다.
여학생들은 확 달라진 진우의 모습에 저마다 얼굴을 붉혔다.
‘도대체 왜 이래?’
진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런 진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여전히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에 인상을 찌푸린 진우는 조용히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그가 가는 방향으로 아이들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고, 이내 그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저기…… 거긴 임자 있는 자리인데…….”
반 아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이 유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진우의 옆에 자리 잡은 유정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진우의 시선을 피했다.
“그새 자리가 바뀌었나?”
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질문에 유정은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 말했다. 그녀는 부끄러운지 시선을 땅으로 떨어뜨렸다.
“아니…… 한진우라고, 우리 반 애 자리인데…….”
유정의 말을 들은 진우는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나인 줄도 몰랐단 말이야?’
진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 아이들은 유정의 말이 맞다는 듯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중 준서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한진우인데.”
그가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명찰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개를 떨어뜨렸던 유정이 감전이라도 된 듯 퍼뜩 고개를 들어올리며 경악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0.1초의 정적, 그리고 그 뒤에 울려 퍼진 아이들의 고함 소리.
“에에에엑!”
“하아…….”
그 사이로 피곤한 진우의 한숨 소리가 울렸다.
그 후 이틀 동안 진우는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여러 명에 둘러싸이거나 멀리서 느껴지는 시선에 도저히 자신의 생활을 가질 수가 없었다.
“…….”
진우는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온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장실까지 따라오게?”
심지어 화장실까지 쫓아온 여학생들도 있었으니, 평소 무관심 속에 살아왔던 그가 이런 대접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미, 미안…….”
뒤따라온 여학생들이 저마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는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이봐, 거기 너!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진우는 여학생 군단 속에 끼어 있는 여학생 중 시뻘겋게 타들어 가는 얼굴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이를 보고 속으로 소리쳤다.
그녀의 머리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 같았다.
결국 도저히 견디다 못한 진우는 교장실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제발 머리 좀 기르면 안 될까요?”
교장은 그의 첫 마디에 별의별 감정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