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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게니아 1권(23화)
7장 핸섬 가이(3)


교장은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진우를 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자신이 생각해도 그런 생활은 견디지 못할 것 같다.
‘저것들은 망원경까지 사 온 건가…….’
교장은 창밖을 바라보며, 창가에서 망원경에 눈을 들이대고 있는 소녀 떼를 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교장은 결심을 한 듯 머리를 누르던 손을 책상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좋아. 허락하겠네.”
교장의 말을 들은 진우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진우는 교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 참, 교장 생활 23년 동안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교장 해이종은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접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즐거운 게임 하시기 바랍니다.」
게임에 접속한 진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자신은 여전히 긴 앞머리가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있는 상태라 전처럼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받아 왔던 대접이 가장 편한 것이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사람들의 태도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우는 티모의 의뢰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오, 이번에도 일을 받으러 왔나?”
티모의 의뢰소로 들어온 진우를 티모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예전의 애송이라 놀렸던 태도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를 보며 미소 짓던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모도 그를 보며 씨익 웃더니 입을 열었다.
“요즘 도적들이 기승을 부린다네. 얼마 전 영주님의 따님이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도적들에게 중요한 물품을 빼앗겼다 하는데 이걸 찾아오는 게 임무라네. 어때 받아 보겠나?”

【의뢰소 퀘스트 : 잃어버린 목걸이 찾기
영주의 따님이 대평원 북쪽 끝에 있는 도적들에게 소중한 목걸이를 빼앗겼다고 한다. 도적들에게서 영주 따님의 소중한 목걸이를 되찾자.
난이도 : E
조건 : 없음】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우는 북쪽 끝이란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꽤 멀 것 같은데…….’
의뢰 받기를 완료한 진우는 의뢰소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서는 NPC와 흥정도 가능한 모양인지 유저와 NPC들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진우는 그런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쳐 북문에 다다랐다.
그때 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분명 크라시아 산맥이라 했지?”
“아아, 분명 그랬지.”
“이번엔 제대로 된 매직 아이템이면 좋겠는데 말이야.”
“쳇. 전에 얻었던 아이템은 겨우 일반 급이었잖아? 매직이니 뭐니 그렇게 떠들어 대더니 말이야.”
“매직이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줄 아냐? 퍼센티지로 나오는 거니 몇 번을 다시 잡아도 모자라. 한 번에 나온다는 건 그만큼 운이 좋은 거라고.”
“그래도 요 근래 얻은 네 개는 다 매직 급이었는데 그때 얻은 것만 일반 급이니 속이 상하지. 게다가 저번 몬스터는 크기가 대단했잖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아쉽다는 감정이 배어 있었다.
“자자,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얻자고. 저기 앞에 가는 놈들이지?”
방금 말한 사람이 진우의 앞쪽에 있는 한 일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나머지 두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진우의 뒤에 있던 사람들이 그의 옆을 스쳐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앞서 가자 진우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앞에 가는 일행은 등에 거대한 대검을 들쳐 멘 중검사와 활을 메고 있는 궁수, 앞뒤로 십자가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성직자…….
전형적인 파티 구성이었다.
그리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진우는 자신의 앞을 걸어가는 그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구태여 찾아다닐 필요가 없겠군.’
진우는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차분히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천천히 앞의 세 명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8장 비굴한 자식(1)


“젠장.”
대평원 한복판에, 땀을 삐질삐질 흘려 가며 열심히 양팔과 다리를 앞뒤로 휘젓는 한 유저가 있다.
회색의 로브로 몸을 가리고 후드는 뒤로 젖혀 있어 그의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 있다.
보기만 해도 답답한 긴 앞머리, 그 앞머리 때문에 앞을 볼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사람이었다.
“제길, 제길.”
그는 진우였다.
입에서 훅훅 나오는 단내는, 만약 현실이었다면 냄새로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듯했다.
그는 뭐가 그리 급한지 미친 듯이 발을 놀리고 있었다.
이윽고 스태미나가 떨어졌는지 그의 움직임이 천천히 느려지더니 이내 멈추었다.
“헉, 헉…….”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허리를 숙인 그가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이토록 멀 줄이야…….’
진우는 자신의 무지를 자책했다.
‘이럴 줄 알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을 사 오는 거였는데!’

북문을 나온 진우는 거리를 둔 채 앞의 세 명을 따라갔다.
‘성문에서 멀어지면 그때 공격이다.’
우뚝.
진우가 속으로 다짐을 할 때 그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뭐 하는 거지?’
진우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 세 명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그들이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마름모꼴의 문장(紋章)이었는데 그 안에는 금방이라도 살아서 날뛸 것 같은 말이 정교히 그려져 있었다.
그들은 그 속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하더니 문장에 마나가 충만히 깃들었을 때 그것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스스스스스.
문장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더니 이내 점점 부풀어 문장에 그려져 있는 말로 변해 갔다.
진우가 그 광경을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보고 있을 때 그들은 새로 생겨난 말에 올라탔다.
“가자.”
등에 거대한 대검을 들쳐 맨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양옆의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찼다.
히히힝.
그리고 그들은 금세 대평원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진우은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젠장!”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양팔과 다리를 앞뒤로 맹렬히 휘젓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
스태미나가 다 채워진 듯 진우는 우렁찬 고함을 내지르며 대평원을 뛰어가기 시작했다.
‘만나기만 해 봐라!’
그는 자신을 이렇게 뛰게 만든 그들에게 속으로 다짐했다.

한참 뛰던 그는 저 앞에 작은 마을로 보이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럭키!’
그는 그곳에서 말을 살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더욱 속력을 내서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어라?”
그러나 그곳에 도착한 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은 물론이요 가축조차 보이지 않는 그곳은 버려진 마을처럼 황량했다. 바람이 쓸쓸히 불어와 먼지를 날리니 폐가가 따로 없었다.
진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의 집 문을 두드렸다.
우지끈.
손으로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문짝 자체가 떨어져 나가는 사태에 진우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터벅터벅.
그때 문 안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진 문짝을 보며 멍하니 있을 때였다.
“이, 이걸 어떡하지?”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 오자 그의 얼굴은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어쨌거나 문을 부순 건 자신이었기에…… 결국 그는 자신이 망가뜨린 문을 우주 저편으로 던져 버리고, 나타난 사람을 보며 반색했다.
“아, 안녕하세요?”
찔리는 게 있는지라 진우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문 안쪽의 사람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진우를 훑어보았다.
“외부인이군.”
남자인 듯 중저음의 목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그의 음성은 불쾌하다기 보단 들떠 있었다.
사내의 말에서 떨어진 문에 대한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아 진우의 얼굴은 삽시간에 밝아졌다.
“아하하…… 혹시 이곳에서 말을 살 수 있나요?”
진우가 눈을 반짝 빛내며 물었지만 문 안의 사내는 눈을 감았다 뜨며 고개를 뒤로 돌릴 뿐이었다.
“얘들아, 오랜만의 손님이다.”
그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지자 어둠 속에서 손에 단검을 쥐고 입에 두건을 두른 사내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오옷! 오랜만의 손님이군요, 형님.”
어둠 속의 사내가 손에 있는 칼을 돌렸다.
형님이라 불린 그는 이 집단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환영한다. 헤로도트 도적단에 온 것을.”
그는 씨익 웃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치아만이 유난히 새하얗게 빛났다.
그의 말을 들은 진우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호오, 이번에도 일을 받으러 왔나?’
티모의 의뢰소로 들어온 진우를 티모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예전의 애송이라 놀렸던 태도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를 보며 미소 짓던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모도 그를 보며 씨익 웃더니 입을 열었다.
‘요즘 도적들이 기승을 부린다네. 얼마 전 영주님의 따님이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도적들에게 중요한 물품을 빼앗겼다 하는데 이걸 찾아오는 게 임무라네. 어때 받아 보겠나?’

‘너희들이었냐!’
티모의 의뢰소에서 티모가 했던 말을 생각한 진우는 그들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젠장. 그럼 여기가 북쪽 끄트머리고, 크라시아 산맥은 대평원을 넘어가야 있는 곳이니까 거의 다 온 셈인가?’
그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한순간 그의 머리 위에 전구가 반짝했다.
‘속전속결!’
진우는 재빨리 주위의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마나를 모으는 진우의 모습에 도적단의 리더 헤로도트의 얼굴이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애초에 차림새가 마법사인지라 단번에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이런. 마법이다. 얼른 공격해!”
헤로도트가 고래고래 고함치며 직접 진우에게 뛰어갔다.
“이런!”
“야, 오른쪽부터 공격해!”
헤로도트의 말을 들은 도적단도 얼굴이 급변하더니 서둘러 발을 놀렸다. 접근전을 하는 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마법사들은 그야말로 천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거리 공격만 하는 마법사에게는 그들이 천적이겠지만 말이다.
“늦었어!”
진우는 어느덧 다 모인 마나를 느끼며 눈을 빛냈다.
“라이트닝 익스플로전!”
지지지직―!
그가 주문을 외치자 그의 몸에서 반구의 형태로 번개의 막이 퍼져 나가더니 가까이 접근한 도적들을 새까맣게 태웠다.
“끄악!”
“으드드드드드.”
라이트닝 익스플로전에 맞은 그들의 머리카락이 삐쭉삐쭉 솟았고 떨리는 입술은 좀처럼 멈출 수 없었다.
“크아악!”
그 중 타격이 가장 컸던 자는, 진우가 마법사임을 알고 제일 먼저 그에게 접근한 헤로도트였다.
진우의 지척에서 라이트닝 익스플로전의 대미지를 고스란히 받은 그의 옷과 피부는 형체도 알아볼 수도 없이 새까맣게 탔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엔 새까만 숯덩이가 있는 듯했다.
“뭐야, 되게 약하네. 응?”
새까맣게 탄 헤로도트 주변에 아이템이 생겨났다.
그것은 목걸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거 퀘스트 아이템인가?’
진우가 눈을 반짝 빛내며 재빠르게 그것들을 주워 아이템 가방에 넣었다.

【‘잃어버린 목걸이’를 습득했습니다.】

“럭키!”
그는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럼 이제 가 볼까!”
주위에는 아직도 감전의 후유증에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떠는 열 명 남짓한 도적단이 있었다.
그는 그들을 간단히 제치고 대평원 저 끝으로 뛰어갔다.
“우오오오오오! 너네 걸리면 죽었어!”
대평원 한복판에서 양팔과 양다리를 맹렬히 앞뒤로 휘저으며 달려가는 한 소년의 처절한 비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