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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6화)
2장 노예들을 장악하다(3)


거한들의 머리가 터지고 팔이 부러져 덜렁거렸다. 두 다리가 한꺼번에 반대로 꺾인 거한은 구슬프게 울었으며, 부러진 자신의 갈비뼈에 폐를 찔린 자는 입으로 피를 왈칵 토해 냈다. 그러나 그자도 곧 무차별로 날아든 카라스의 망치 머리에 안면이 함몰되며 절명했다.
순식간에 20명에 가까운 이들이 회생 불능의 중상을 입거나 즉사했다.
“미, 미쳤어, 저놈은 미쳤어!”
누군가가 외쳤다.
그러자 거한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이제는 아무도 앞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반경 3미터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족족 병신이 되어 나오거나 죽어 쓰러지니 앞으로 나설 엄두가 나질 않는 것이었다.
리퍼가 허둥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이 쌍놈들아! 어서 저 새끼를 조지지 못해! 고작 하나를 가지고 빌빌거려? 엉!”
그러면서 그는 수하 노예 한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곧바로 카라스의 망치가 날아왔다.
꽈지직!
등을 떠밀린 노예의 목이 180도 반대로 돌아갔다.
“끄…… 끄흐……?”
그 사내는 목이 등 뒤로 돌아간 채 동료들을 마주 보며 이상한 웃음을 흘리다가 쓰러져 죽었다. 그 모습에 모두의 모골이 송연하였다. 공포가 물결치듯 거한들 사이로 번져 갔다.
“나, 난 못해.”
“그래. 아무리 여기 생활이 엿 같아도 그렇지. 이렇게 죽는 건 싫다고.”
“나도 동감……이야.”
거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리퍼였다. 그는 악다구니를 쓰며 수하들을 구타했다. 하지만 거한들은 여전히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이 쓸모없는 쓰레기들 같으니! 저놈은 하나라고! 고작 저놈 하나를 처리하지 못해서 빌빌거리나! 앙! 사내라면 용기 있게 나서서 저런 놈을 그냥……!”
“그럼 네가 해 보던가.”
카라스의 냉정한 한마디가 리퍼의 말을 끊었다.
일순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거한들의 시선이 리퍼에게 집중되었다. 그 눈빛들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꿀꺽.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켰다.
바로 리퍼였다.
“왜, 왜들…… 이러나?”
“…….”
거한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리퍼를 주시하고 있기도 했다. 그중에 누군가가 무뚝뚝하게 운을 떼었다.
“그럼 조장님 말마따나, 조장님이 직접 나서 보슈.”
“뭐, 뭐?”
카라스도 자신의 목덜미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 의견 좋군. 제발 네놈이 직접 나서 보지 그래?”
“크, 크윽! 나, 나는……!”
리퍼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가만히 놔두었다간 두려움에 오줌까지 질질 지릴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닌 리퍼의 수하들이었다.
어느새 거한들은 카라스가 아닌 리퍼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리퍼의 팔다리를 잡았다.
“뭐, 뭐냐! 이거 안 놔! 나는 네놈들의 작업조장이라고! 이 개자식들아! 이거 놓지 못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악!”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리퍼를 향해 누군가가 말했다.
“조장께서 수하들을 사지로 내몰았으니, 이번에는 직접 책임을 지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직접 해결을 해 보시던가 말이지요.”
거한들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리퍼를 들어 올려 집어 던졌다.
“크윽! 제, 제기랄……?”
형편없이 바닥을 구르다가 일어서던 리퍼는 그대로 딱 굳어 버렸다. 바로 눈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움찔.
리퍼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철 기둥처럼 단단한 다리, 날렵한 허리와 탄탄한 복근, 그 위에는 무쇠같이 압축된 대흉근이, 그리고 그 위에는…….
“카, 카라…….”
덥석!
카라스의 한 손이 리퍼의 목을 움켜쥐었다. 리퍼는 찍 소리도 못하고 그의 손에 목을 잡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숨을 쉬지 못해 컥컥거리며 리퍼는 벌게진 얼굴로 통사정했다.
“크, 컥……! 카, 카라……스. 사, 살려……. 내가 잘못했…….”
“닥쳐.”
“크으, 쿨룩! 제발……!”
“닥치라고 했다.”
퍼억.
카라스의 주먹이 리퍼의 복부를 깊숙이 훑었다.
리퍼의 몸이 직각으로 꺾였다. 그는 토악질을 하며 혼절하였다.
카라스는 축 늘어진 리퍼를 한 손으로 질질 끌었다. 그는 폐기물 처리장을 벗어나 공장을 향해 걸어갔다. 영문을 모르는 리퍼의 수하들이 수군거리고 눈치를 살피며 뒤를 졸졸 따랐다.
철커덩, 철컹!
야심한 시각임에도 공장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야간 작업조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용광로는 원래 24시간 항상 불이 밝혀져 있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으……으…….”
혼절했던 리퍼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는 부글거리는 용광로 바로 위쪽, 좁은 교각에 올려져 있었다. 화끈거리는 기류가 솟아 올라왔다. 살이 익을 것 같은 열기였다.
떨리는 리퍼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그곳에 카라스가 있었다.
용광로에서 열기를 타고 올라오는 상승 기류가 카라스의 긴 흑색 머리칼을 치솟아 휘날리게 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의 사신이 강림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리퍼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카라스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이제 와서 용서를 빌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 그래도…….”
“날 핍박한 것은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가드들에게 아첨하며 얻은 권력으로 같은 노예들을 착취한 대가는 치러야겠지. 안 그런가?”
“그, 그건…….”
카라스의 손이 리퍼의 어깨를 밀었다.
타악.
“잘 가라.”
“……!”
뒤로 밀려난 리퍼의 발이 허공을 밟았다. 그는 헛숨을 들이키며 추락했다. 바로 아래에서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용광로가 리퍼를 집어삼켰다.
“끄…… 끼에아아아아아아가그르르륵―!”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곧 잦아들었다.
카라스는 용광로 위 교각에 오연히 서서 공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를 따라왔던 리퍼의 수하들은 물론이고, 방금 장면을 목격한 모든 노예들이 일손을 멈추고 카라스를 올려 보고 있었다.
침묵으로 휩싸인 공장에 카라스의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도 리퍼를 추종하는 자가 있는가?”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카라스가 재차 말했다.
“이제부터 이곳 3구역의 노예들은 모두 내가 접수한다. 반대하는 자가 있으면 올라와라!”
이번에도 대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아래에 있던 모든 노예들은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일제히 카라스를 향해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린 것이었다.
17세의 카라스가 공장 모든 노예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당직을 섰던 부관 레이하트가 가드대장 슈너드 남작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곧 레이하트는 지난밤의 경과를 보고했다.
“보고 드립니다. 작업조장 리퍼가 죽었습니다.”
“뭐?”
“간밤에 예의 그 카라스라는 놈을 치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살해당했습니다.”
“리퍼에게는 패거리가 제법 있지 않았는가. 카라스라는 놈에게도 추종자들이 있었나?”
“그것은 아닙니다. 카라스라는 놈은 단독으로 움직였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여러 노예들의 증언이 일치하니, 아마도 거짓은 없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주변 노예들의 반응은?”
“다소 술렁이고 있기는 하지만, 카라스라는 놈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럼 그놈을 처벌했다간 노예들이 동요하겠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귀관의 견해는?”
“소관의 짧은 견식으로는, 이대로 카라스라는 놈이 작업조장의 자리를 인계받도록 만드는 것이 모양새가 두루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발은 없을까?”
“소수의 반발이야 있긴 하겠습니다만, 적어도 대다수의 노예들은 예전부터 리퍼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퍼의 힘에 눌린 나머지 불만을 비치지 못하던 판국에 카라스라는 놈이 그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준 셈이지요.”
슈너드 남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급 마호가니 목제 파이프에 연초를 채웠다.
그가 말했다.
“카라스를 새 작업조장으로……. 그럼 그렇게 시행해.”
“예, 알겠습니다.”
레이하트는 절도 있게 경례하며 집무실 문을 나섰다. 그때 슈너드 남작이 뒤늦게 생각이 났다는 듯 레이하트를 불러 세웠다.
“아, 내가 잠시 깜빡했었군. 귀관은 지금 즉시 병력을 동원해 그 카라스라는 놈을 끌고 와서 독방에 처넣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일단 사전 교육이 필요할 것 같으니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귀관은 너무 나서지 말게. 만에 하나 그놈이 발광하다가 귀관이 해를 입기라도 하면 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검보다 행정처리 능력을 보고서 그대를 곁에 두고 있는 것이니 잊지 말도록.”
“……예.”

그로부터 정확히 10분 후, 레이하트는 가드 20명을 이끌고 노예들의 수용소로 들어섰다. 멀건 죽으로 아침을 때우며 하루를 열던 노예 1,500명이 겁에 질려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레이하트가 양손을 허리에 짚고서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이중에 카라스라는 놈이 있다는 것을 안다. 당장 나오도록.”
웅성웅성.
노예들이 수군거렸다. 곧 그 수군거림을 헤치고 한 근육질의 앳된 청년이 나타났다.
카라스였다.
그런데 노예들의 태도가 이상했다. 모두가 그를 보더니 공경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레이하트가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네가 카라스인가?”
끄덕.
카라스는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방자한 모습에 몇몇 가드가 발끈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관인 레이하트의 눈치를 살펴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레이하트가 재차 물었다.
“간밤에 네놈이 다른 노예들을 다치게 만들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고 들었다. 시인하는가?”
“시인한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대신 노예라면 자신의 신분에 맞게 조아리는 법을 조금 익혔으면 하는데 말이야. 말버릇도 조금 고치고.”
“…….”
그는 침묵했다. 사실 카라스는 아침이 되면 이런 사태가 생길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리퍼는 공장의 윗선들과 연줄이 있는 자였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가드들이 간섭을 해 올 것은 명명백백했다.
카라스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날 잡으러 온 것인가?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타협할 것이 있어서 왔나?”
레이하트가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제법 똑똑하군. 그렇다면 우리의 지시에 어떤 방식으로 따라야 할지도 알고 있겠지? 순순히 따라와라.”
“……알겠다.”
그때 레이하트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잠시 일렁였다. 그것은 호승심이었다. 하지만 카라스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터라 그것을 보지 못했다.
카라스는 레이하트의 앞으로 가서 두 팔을 내밀었다. 곧 그의 손목은 물에 적신 쇠심줄로 몇 겹이나 단단히 묶였다.
모든 노예들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 가운데, 카라스는 레이하트 일행에 의해 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