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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8화)
3장 메탈슈트 제작(2)


그날 밤, 모두가 잠든 후 카라스는 폐기물 처리장을 향했다. 이미 카라스의 폐기물 처리장 출입 허가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는지 그를 막는 가드는 아무도 없었다.
폐기물 처리장에 도착한 그는 주위에 누가 없는지 살폈다. 이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고철 덩어리 위에 앉아 품속을 뒤졌다.
곧 계란 모양과 같은 크기의 검은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라스가 리퍼의 잠자리에서 찾아낸 물건이었다.
“후우, 아직도 믿을 수가 없군.”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 물건은 바로 메탈슈트의 핵심 부품인 코어였다.
코어는 착용자의 마나를 변환, 증폭하여 메탈슈트를 움직이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또한 생산 과정에서 워낙 복잡한 고도의 마법적 처리를 필요로 하는 물건이기에 이런 공영의 공장 외에는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한마디로 메탈슈트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치인 것이다.
그는 새삼 리퍼의 대담함에 혀를 내둘렀다.
리퍼가 반쯤 미친놈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코어를 빼돌려 베개 아래에 숨겨 두고 있었을 줄이야.
“어이, 이봐.”
카라스는 코어를 쥐고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말을 걸어 보아도 코어에서는 항상 똑같은 대답, ‘카밀카사’라는 한 마디만 돌아왔다.
그가 지금껏 듣기로는, 코어는 만들어진 직후부터 각기 독특한 자아를 지닌다고 하였다. 그 성격 또한 천차만별이라, 수다를 좋아하는 놈도 있고 과묵한 놈이 있는가 하면 성격이 차분한 놈도 있고 간혹 성질이 개차반인 코어까지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카라스의 손에 들린 이 코어는 성격이 있는지 없는지, 자아가 제대로 잡혀 있는지 어떤지 모를 지경이었다.
곧 카라스는 결론을 내렸다.
‘성능이 썩…… 좋지는 않군.’
썩 좋지가 않다.
실은 정말로 많이 순화시켜서 표현한 말이다. 그가 찾아낸 이 코어는 거의 쓰레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대개 코어가 지닌 자아의 강도는 코어의 성능과 정비례한다. 그런데 그의 손에 들린 이 검은 코어는 아예 자아라고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메탈슈트에 장착을 해서 성능 테스트를 할 것도 없이, 마나 증폭률 또한 형편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차적인 가공 처리도…….’
되어 있지 않았다.
카라스가 전에 제노 영감에게서 들었던 바로 코어라는 물건은 영혼석, 즉 소울스톤(Soul Stone)이라는 특수한 광물을 원료로 한다고 하였다. 마법사들이 특수한 마나 집적진 위에서 소울스톤을 연마하고 압축하여 코어의 기본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일단 그 공정을 거치고 나면 코어에는 기본적인 증폭률이 설정되고 자아가 생겨난다.
그런데 그걸로 공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2차적인 공정, 바로 제련과 가공처리의 단계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형태가 잡힌 코어는 아이드테리움(Idterium)이라는 촉매에 100일간 담겨 가열 처리를 거친다. 그 과정을 제련이라고 부른다.
그 제련의 단계가 끝나면 코어 겉면으로 코팅된 아이드테리움 표면에 마법진을 새기고, 그 위에 다시 마나 전도율이 높은 오리콘실버(OriconSilver)라는 금속으로 2차 코팅을 한다.
완성품인 코어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카라스의 코어는 그 단계들을 하나도 거치지 않은 듯했다. 그저 소울스톤을 압축하여 기본적인 형태만 간신히 잡아 놓은 것이다.
그래도 카라스는 코어를 금덩이 보듯 살피다가 다시 품에 집어넣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질이 떨어진다 하여도, 이 물건 덕에 이제 한 가지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카라스가 누구인가.
한때는 무림의 고수이기도 했지만, 미 국방성 펜타곤에서 무기 기계공학도의 삶을 살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조사한 탈출 루트, 거기에 메탈슈트의 보유여부가 이쪽의 준비사항에 추가된다면…….’
장비도, 재료도 열악하다. 때문에 시간이야 조금 더 걸리겠지만 그의 지식과 경험이라면 조악한 메탈슈트 하나쯤 못 만들 것도 없었다.
하지만 코어만큼은 달랐다.
아무리 그가 기계에 뛰어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마법이 필요한 코어만큼은 죽었다 깨어나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껏 그는 탈출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 메탈슈트 보유라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해 왔었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의 힘으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인 코어가 손에 굴러들어왔지 않은가.
문득 예전 전생에서 봤던, 감옥을 탈출하는 주제의 영화가 뇌리에 떠올랐다. 작은 망치로 벽에 구멍을 뚫고 탈옥을 감행하는 영화였다. 비록 시간이야 오래 걸렸지만 그 주인공은 어떠하였나. 결국 오욕의 강을 건너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마시게 되지 않았는가.
덜커덩, 철컹.
카라스는 폐기물 처리장에 가득한 고철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점점 바빠졌다. 가슴이 희망으로 차오르고 있는 것이다.
메탈슈트만 있다면, 이제 탈출도 완전한 불가능의 영역에 있지만은 않게 된다.
몇 년이 걸려도 좋았다.
이제는 길이 생겼다.

이윽고 아침이 밝았다.
“어이, 영감.”
“으음?”
작업조장이 되어 제3구역 곳곳의 작업을 둘러보던 카라스가 제노 영감을 찾았다. 제노 영감은 지난번의 토혈 사건 이후로 계속 몸이 좋지 않은 처지였다. 하지만 이곳은 개인의 사정 따위는 알아주지 않는 곳이다. 해서 제노 영감은 그간 제대로 쉴 수도 없이 혹사당하곤 하였다.
카라스는 잠시 제노 영감의 안색을 살피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날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뭐? 도와달라고?”
제노 영감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존심 하나만큼은 하늘을 찌르는 고집쟁이 인간이 바로 카라스다. 그런 그가 먼저 도움을 청해 오다니,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카라스는 그런 제노 영감의 놀람은 무시하고 제 하고 싶은 말부터 꺼냈다.
“내 듣기로는 리퍼보다 훨씬 이전에 영감이 작업조장을 맡았었다고 해서 말이야.”
“그런데?”
“아무래도 여긴 너무 넓어서 혼자 관리하고 둘러보기가 힘들어. 그래서 조수가 하나 필요할 것 같군. 영감이 내 조수가 되어 줬으면 해.”
“허허허?”
제노 영감은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사실 이름만 거창하게 작업조장이지, 그렇게 분주할 것도 없다. 여기 있는 3구역 노예들의 전체적인 공정을 몇 파트로 나누어 하루에 두 번 둘러보고 점검하면 할 일은 다 마치는 셈이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제노 영감이 아는 카라스가 그 정도의 일을 힘에 부쳐 할 리는 절대로 없었다.
제노 영감은 알았다.
카라스가 몸이 불편한 자신에게 쉴 기회를 주려 한다는 것을.
영감이 말했다.
“너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 지금 날 보고 늙었다고 무시하는 게지? 아직 이렇게 쉬기엔 한참 일러. 망치질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손을 떨고 있나?”
“…….”
“다른 건 몰라도 작업 중에 송장 치우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 주위에 민폐를 끼칠 생각이야?”
제노 영감의 안색이 굳었다. 그는 잠시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마지못해 한 마디 내뱉었다.
“……제기랄.”
“그럼, 찬성한 걸로 알겠어.”
“어, 어이?”
“곧 다른 놈들을 보낼 테니까, 이 자리는 놈들에게 맡기고 폐기물 처리장으로 와. 명령이다.”
그렇게 말한 카라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 자리에는 제노 영감의 허탈한 웃음소리만이 남았다.

“허허, 참……. 이건…….”
폐기물 처리장에 도착한 제노 영감은 입을 딱 벌렸다.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카라스가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라스, 이건 대체 뭔가?”
그 말에 한창 폐기물과 고철 덩어리 위를 분주히 쏘다니던 카라스가 영감을 돌아봤다. 그의 입가에 시원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보면 몰라? 분류 작업.”
“그걸 여기서 왜 하나?”
“필요하니까.”
“허허……. 재활용도 못 하는 이런 쓰레기들이 필요해? 완전히 미쳤군. 혹시 폐품 장사라도 시작하려는 겐가?”
카라스가 입술을 묘하게 비틀었다.
“음, 정확해.”
“…….”
“뭐 해? 누가 탱자탱자 놀라고 부른 건 줄 아나? 어서 이리로 와 보라고. 발 아래쪽 조심하고.”
영감은 걸음에 주의하며 카라스가 부르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카라스가 씨익 웃었다.
“바로 알아보네? 역시 영감을 부르길 잘했어.”
하지만 제노 영감은 대답도 않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실눈을 찡그리며 카라스가 바닥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살폈다.
“이건 구동부 자재로군? 이게 폐기물 처리장에 있었나? 게다가 이건 코어 보호 장치 덮개가 아닌가? 덮개 아래에 붙은 건…… 허허, 오리콘실버 조각이로구먼.”
제노 영감은 내심 경악했다. 방금 영감이 고른 것은 모두 하나같이 비싼 부품들이었다.
이곳 공장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보낸 그도 폐기물 처리장에 이런 노다지가 있는 줄은 모르고 살았다. 다들 그렇듯이, 이곳에 있는 것들은 곧 재사용이 불가능한 폐기품이라는 타성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영감이 다급히 카라스를 돌아봤다.
“이걸 대체 어떻게 찾았나?”
“미친 듯이 뒤져서.”
카라스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철이 있었다. 저만큼을 뒤져서 찾아낸 보상이 바로 아래에 늘어진 약간의 부품들이었다.
감탄하는 제노 영감을 향해 카라스가 말했다.
“이제 영감은 내가 없을 때는 대신 3구역의 작업을 관리해 주었으면 해. 그리고 가끔 내가 영감을 찾을 때가 있을 거야. 그땐 이곳으로 와서 분류 작업을 도와줘. 아직 쓸 만한 부품들을 완전히 다 알아볼 자신이 없으니까. 해 줄 수 있겠지?”
“으음. 그런데, 이걸 왜 하는지는 물어봐도 될까? 혹시, 슈너드 남작인가?”
“…….”
카라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노 영감은 그게 긍정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역시 그 남작이 압력을 넣었나 보군. 어쩔 수 없구먼. 그래, 알았다. 다른 놈도 아닌 네놈의 부탁이니 들어주는 거다.”
“고맙군.”
“원 녀석도. 말로만? 허허.”
그렇게 제노 영감은 카라스를 도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카라스는 순조롭게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자신만의 메탈슈트 제작을 위해서.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카라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폐기물 처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미친 듯이 고철 덩어리들을 분류하고 나누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남작에게 올릴 상납을 위해서, 실제로는 메탈슈트 제작에 필요한 재료 확보를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그도 재료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여 수시로 제노 영감을 부르곤 하였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날 무렵부터는 재료의 가치 유무를 묻기 위해 영감을 부르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 갔다.
폐기물 처리장은 그야말로 숨겨진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장부상에서 누락된 쓸모 있는 부품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기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엔 죽은 리퍼의 공이 컸다. 생전의 그는 슈너드 남작의 착복을 돕기 위해 장부를 수시로 건드리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공장에 유입되는 재료에 비하여 완성품에 쓰인 재료와 재사용되는 재료, 폐기되는 재료 등의 수량이 조금씩 불일치불일치결과가 생겨났다. 바로 지금, 뉴. 바로팠기물 처리장을 뒤져서 찾아내고 있는 부품들이 장부에서 누락된 그 재료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막대한 고철을 혼자서 힘들게 뒤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공장의 노역보다도 더한 육체노동이었다.
하지만 카라스는 그것조차도 수련의 일부로 대체했다. 매일같이 무거운 고철 덩어리를 나르며 그의 몸은 더욱더 단단하고 탄력적으로 변해 갔다.
게다가 작고 미세한 부품들을 빠르게 찾아내고 분류하는 긴 과정은 그의 안력 향상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