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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10화)
3장 메탈슈트 제작(4)


붉은 하늘이 걷히고 밤이 왔다.
카라스는 다시 폐기물 처리장을 찾았다. 술에 취해 먹고 떠드는 노예들의 고함 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왔다.
그는 그 아련한 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폐기물 처리장 구석의 창고로 갔다. 그리고 창고 내부의 이중벽을 뜯어냈다.
그러자 이중벽 뒤에 우뚝 서 있던 메탈슈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카라스는 감회 어린 한숨을 내쉬며 메탈슈트를 살폈다.
슈트의 키는 2.3미터. 무게는 약 120킬로그램. 변신 착용 기능과 기본적인 운동 기능만을 간신히 갖추었다. 게다가 작은 체구 때문에 외부 장갑도 빈약하기만 하였다. 한마디로 최하급의 성능을 지닌 메탈슈트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 슈트야말로 지난 3년 동안 카라스가 흘린 땀과 노력의 결정체였다. 그리고 또한, 오늘 밤 그의 오랜 노력은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리라.
곧 카라스가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3년 전에 입수했던 코어였다. 간신히 기본 공정만을 마친, 제련 과정조차 거치지 못한 최하급의 코어.
그동안 카라스가 알아본 바로 이 코어의 증폭률은 0.1카펠(Kf)이었다.
보통 무게 1톤의 메탈슈트가 착용자의 운동성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증폭률이 1카펠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증폭률이 없다시피 한 것이다.
키리릭.
카라스의 손짓에 메탈슈트의 흉부 장갑판이 열렸다. 그 중앙에 있는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그 구멍으로 코어를 신중하게 밀어 넣었다.
곧 심장을 받아들인 메탈슈트가 낮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탄생의 첫 울음이었다.
기이잉…….
‘제발, 제발.’
카라스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메탈슈트의 안면 장갑에 뚫린 눈구멍에서 붉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이 카라스를 향했다.
‘됐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단 첫 시동은 걸렸다. 성공이었다.
그는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의 손바닥이 메탈슈트의 가슴에 박힌 코어를 짚었다. 그가 말했다.
“메탈슈트는 들으라. 나는 그대와 맹약을 원한다.”
바로 메탈슈트와 인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단계, 주종의 맹약을 맺으려는 것이다.
과연 카라스의 예상대로 메탈슈트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코어에 새겨진 맹약의 기본 절차가 발동되었다. 그간 침묵하던 코어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 거부한다.
“……뭐?”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에 카라스가 반문했다.
그러자 메탈슈트가 재차 말했다.
― 맹약을 맺고 싶거든 먼저 힘으로 날 꺾으라, 비루한 인간.
메탈슈트가 위압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니, 정확히는 코웃음을 치려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꽈아아앙―!
격노한 카라스의 정권이 메탈슈트의 흉부 장갑판에 먼저 작렬해 버렸으니까.



4장 작열하는 불길 속에서(1)


콰앙―!
인간의 한계에 육박하는 막강한 타격력 앞에 120킬로그램짜리 메탈슈트의 상반신 전체가 출렁였다. 하지만 카라스는 아랑곳 않고 주먹을 계속 내다 꽂았다.
“뭐가 어쩌고 어째?”
꽝―! 콰앙!
탈출 하나만을 위해 그간 많이도 참고 살아온 카라스였다. 그만큼 많은 스트레스가 쌓였던 상태. 그런 차에 스스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한낱 저급 메탈슈트마저 기어오른다. 당연히 꼭지가 돌 수밖에 없다.
― 자, 잠깐…….
“닥쳐.”
콰앙, 콰직!
메탈슈트를 직접 만든 그였다. 어디가 약한지, 어디를 어떻게 치면 부서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메탈슈트가 완전히 박살 나지 않을 만큼만 힘을 주어 주먹을 꽂아 갔다.
콰아앙!
재차 쇳조각이 튀었다.
― 그, 그만……!
“그만은 무슨.”
꽈앙!
두꺼운 견갑이 통째로 우그러졌다. 하지만 카라스는 개의치 않고 메탈슈트를 걷어찼다. 그만 버티지 못한 메탈슈트가 바닥을 굴렀다.
카라스의 발이 들렸다. 그대로 밟으려는 것이다.
― 자, 잠시만! 이러다간……!
메탈슈트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콰지직!
― ……!
메탈슈트의 머리가 박살 났다.
피이이잉…….
곧바로 시동이 꺼졌다.
“빌어먹을.”
카라스는 욕설을 내뱉으며 메탈슈트의 코어를 빼내고 박살 난 머리를 떼어 냈다. 그리고 연장과 다른 부속을 가져와 부서진 부위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수리가 끝나기까지는 꼬박 나흘이 걸렸다.
카라스는 연장을 한쪽에 내던지고는 곧바로 메탈슈트의 가슴에 코어를 집어넣었다. 곧 메탈슈트가 눈을 떴다.
“메탈슈트는 들으라. 나는 그대와 맹약을 원한다.”
메탈슈트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 차라리 날 죽여라.
꽈아앙―!
어두운 폐기물 처리장 구석에서 묵직한 타격음이 울렸다.

그 검은 코어는 카라스의 예상보다 훨씬 고집이 있었다. 오기로 똘똘 뭉쳐 있기도 했다. 마치 카라스의 성격을 빼다 박은 것처럼. 어쨌건 그렇게 수리와 파괴가 다섯 번쯤 더 반복되었다.
하지만 매 앞에는 장사 없다고 하였던가.
일곱 번째의 시도 끝에, 드디어 카라스는 메탈슈트를 완전히 복종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맞는 것에 지친 메탈슈트가 백기를 올린 것이다.
둘 사이에 맹약이 맺어졌다.
그리하여 카라스는 메탈슈트의 오너인 메탈슈터가 되었다. 카라스는 메탈슈트에게 ‘카밀카사’라는 이름을 붙였노라 알려 주었다. 의외로 카밀카사는 자신의 이름을 썩 마음에 들어 했다.
화아아악―!
맹약의 절차가 끝난 직후, 카밀카사의 모습이 새까만 빛에 둘러싸여 사라졌다. 이내 슈트를 삼킨 그 빛이 하나의 구체로 압축되었다. 그리고 카라스의 등에 내려앉았다.
“크으윽!”
그가 신음을 삼켰다.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등을 물어뜯었다.
잠시 후, 고통은 사그라졌고 카라스의 등에는 커다란 문신 하나가 남았다. 그는 폐기물 처리장 한쪽에 있는 구리판을 벽에 기대 세워 자신의 등을 비춰 보았다.
강철로 만들어진 1장의 날개 문양이 등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소환의 문장……인가.”
자신의 메탈슈트를 아공간에서 소환하는 도구이자, 메탈슈트의 코어와 연결된 열쇠. 그것이 이제 자신의 신체에도 새겨진 것이었다.
그는 시험 삼아 소환의 문장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반응은 곧바로 일어났다.
키이이이이……!
파아앙!
바로 뒤쪽에서 돌풍이 일었다. 아공간에서 메탈슈트가 소환되며 그 부피만큼의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나는 현상이었다.
키리릭! 철컥!
소환된 그의 메탈슈트, 카밀카사가 스스로 형태를 변환시켰다. 전면부의 모든 외장 장갑이 개방되었다. 그러자 착용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드러났다.
철커덕! 카가각.
첫 착용의 순간이다.
마치 갑옷처럼, 카밀카사가 순식간에 카라스의 몸을 감쌌다. 모든 이음새가 한꺼번에 조여지며 기능적으로 설계된 바디라인이 드러났다.
그 모든 과정은 실로 복잡했다. 하지만 착용이 완료되기까지 실제로 걸린 시간은 약 0.5초 정도. 카라스는 모든 과정이 성공적이었음을 느끼며 눈을 떴다.
쿠웅.
감격적인 첫 걸음이다.
그는 계속 사지를 움직여 갔다.
일단 착용에는 성공했으니 이제부터는 움직임에 이상이 있는지 꼼꼼히 체크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가 나중에 탈출을 감행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고장이 나면 낭패일 테니까.
“크으, 이거, 생각보다 힘들군.”
카라스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폭발적인 근력을 지닌 그였기에 움직임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메탈슈트 설계 과정에서 전생의 공학 지식을 제법 응용하였다. 역관절 기술과 그 외 탄성 제어 공학 등이 대표적이었다. 덕분에 카밀카사는 카라스의 근육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표현하면서도 기민하게 기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