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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11화)
4장 작열하는 불길 속에서(2)
사실 메탈슈트는 착용자의 마나를 증폭하여 동력원으로 삼는다. 하지만 카라스는 금제의 낙인 때문에 자신의 내공, 즉 마나를 사용할 수가 없는 몸이다.
때문에 그는 애초부터 자신의 근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메탈슈트를 설계했었다. 카밀카사의 크기나 중량이 적게 나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최대한 가벼워야 쉽게 움직일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열악한 장비와 여건, 재료로는 착용중량을 200킬로그램 정도로 줄이는 게 한계였다.
어쨌건 30분 정도 테스트를 거치고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였다. 200킬로그램짜리 옷을 입고 근력운동을 한 셈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반쯤 밀폐된 공간 안이라 땀이 배출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덕분에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전면 덮개를 열어 바깥 공기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금제의 낙인이 없던 시절에는 몸이 땀으로 젖으면 내공을 이용해서 한꺼번에 증발을 시킬 수도 있었는데, 그 사소한 능력이 못내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화아아악!
“……!”
거짓말처럼 땀이 날아갔다. 순간 하단전에서 폭발적으로 솟구친 내공에 의해 모두 증발해 버린 것이다. 마치, 그가 방금 떠올린 예전의 시절처럼.
그는 경악했다.
쌓인 내공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마음이 일면 기운이 절로 일어나는 경지는 이미 예전에 이루었다. 하지만 그것도 금제의 낙인이 찍힌 이후로는 모두 막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라니?
카라스는 서둘러 자신의 몸을 살폈다. 너무나 놀랍게도, 그간 내공이 흐르지 못해 탁기가 쌓여 가던 혈맥에 가느다란 내력의 흐름이 일어나고 있었다.
꿀꺽.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는 내력의 흐름을 따르며 경로를 살폈다.
그리고 더욱 놀랐다.
‘하단전이…….’
내력의 흐름은 하단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흐름이 하나 보였다. 하단전에서 올라온 내력이 다시 심장, 즉 중단전으로 모여들더니, 등으로 이어지는 한 줄기 내력의 띠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띠를 살폈다. 띠는 중단전과 등에 새겨진 소환의 문장을 하나로 이어 주고 있었다.
문득 하나의 생각이 카라스의 뇌리를 스쳤다.
소환의 문장은 메탈슈트의 코어와 곧바로 연결된다.
그렇다는 것은…….
키이이잉……!
메탈슈트 카밀카사의 코어가 활성화되며 카라스의 내공을 증폭시켰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코어 원래의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건…….’
카라스는 감격해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는 이제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깨달았다.
코어와 연결된 소환의 문장, 문장에 연결된 중단전, 그리고 하단전.
그 연결 라인이 자연스러운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그의 하단전 속에 꽉 들어차 움직이지 못하던 내공이 한 번 물꼬가 트이자 중단전과 소환의 문장을 지나 코어로 물밀 듯 흘러간 것이었다.
카라스는 감격을 억누르며 카밀카사를 벗었다. 그리고 아공간으로 돌아가게 했다.
“…….”
역시나 예상대로, 메탈슈트를 벗게 되자 내력의 흐름도 자연히 끊겼다. 슈트를 착용한 상태여야만 금제의 낙인이 짓누르는 힘을 무시하고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카밀카사를 착용했다.
그리고 폐기물 처리장 구석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그간 오랫동안 미루어 왔던 축기를 시작했다.
스으읍…….
메탈슈트를 착용한 상태에서 운기조식을 하려니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곧 그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오랜만에 가라앉은 자기 자신을 관조했다. 그리고 집중했다.
카라스의 하단전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와 동시에, 하단전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받아 낸 중단전이 짜릿한 감각을 선사했다.
이내 등에 새겨진 소환의 문장이 중단전에서 건너오는 기운을 받아 카밀카사의 코어에 전달했다. 코어는 일종의 발전기가 되어 그 내공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렇게 증폭된 내공이 다시 카라스의 하단전으로 몰려들었다. 하단전이 더욱 뜨거워졌다. 그 뜨거워진 기운이 다시 중단전을 향해 치고 올라가 코어로 밀려갔다.
이렇게, 하단전과 중단전, 소환의 문장과 코어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하나의 링크(Link)가 형성되었다.
그 링크를 타고, 카라스의 몸속에서 기운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력의 줄기가 점점 더 거세졌다. 마치, 산자락에서 흐르던 시냇물이 점점 위세를 불려 가며 끝내는 도도한 흐름으로 바다를 향하는 것만 같은 형상이었다.
비단 코어의 증폭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고오오오…….
이때 누군가가 카라스를 봤다면 눈을 휘둥그렇게 떴을 것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그의 온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용오름 치듯 세차게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전신 모공이 열려 있었다.
그 전신 모공은 그가 일찌감치 완성해 두었던 전신 세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여기 3구역에 들어온 이후 지난 4년 동안 필사적인 노력으로 외공을 수련해 왔다. 항상 스스로를 육체의 한계점으로 몰아붙였고, 그 과정에서 위험을 느낀 몸이 단전의 내력 일부를 끌어들여 뼈와 관절, 근육을 치유해 왔다.
그 치유의 과정에서 소모되고 여유분으로 남은 극히 소량의 내공이 자연스럽게 신체조직 속으로 스몄다. 전신에 퍼져 있던 세맥 속으로.
그렇게 쌓인 내공은 실로 막대했다.
매번 쌓인 양은 적었으나 그 세월이 4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동안 세맥에 알게 모르게 쌓였던 내공들이 한꺼번에 깨어나고 있었다. 하단전에서부터 코어까지를 아우르는 내력의 흐름이 잠자고 있던 전신 세맥의 내력을 일깨운 것이었다.
‘크, 크윽……!’
갑자기 불어난 강대한 내력의 흐름이 카라스의 몸에 부하를 주었다. 이를 꽉 깨무는 그의 코와 입에서 실낱같은 피가 흘렀다. 절로 전신이 덜덜 떨렸다. 사지에서 일어난 힘줄이 곧 터질 것같이 팽창했다.
곧 그의 몸속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지금 일어나는 강대한 내력의 기운과, 그간 내공을 사용하지 않아 팔대경락을 자연스럽게 막아 가고 있던 탁기와의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었다.
치이이익……!
메탈슈트 안의 온도가 급속도로 올라갔다. 하지만 카라스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있었다. 이미 그는 추위도, 더위도, 외부의 어떤 자극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다.
곧 카라스의 임독양맥과 팔대경락을 막고 있던 탁기가 내공에 의해 말끔히 연소되었다. 그의 전신에서 뜨거운 김이 한 차례 폭사되어 뿜어져 나왔다. 가열된 탁기가 전신모공으로 한꺼번에 배출된 것이다.
그 직후부터, 카라스의 몸을 떨게 만들던 경련이 사라졌다. 그의 표정은 고요함을 되찾았으며, 들숨과 날숨 교차하는 조용한 소리만이 폐기물 처리장을 흐르고 흘렀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카라스가 눈을 떴다.
“…….”
그는 가만히 일어서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입꼬리가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더없이 벅찬 희열이 그를 기쁘게 했다.
“후후후…… 크하하하하하!”
웃었다.
크고 호탕하게.
하늘을 오시하며, 그는 더없이 벅찬 웃음을 터뜨렸다.
금제의 낙인이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카라스의 천마신공의 성취가 단번에 3성에 다다른,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었다.
* * *
카라스는 탈출 결행을 이틀 후로 잡았다. 그날이 달이 뜨지 않아 가장 어두운 밤이 될 것 같았기에.
남은 이틀 동안 그는 시치미를 떼고 낮에는 3구역의 공장에 나가서 일상적인 업무를 소화했다. 이 무렵 즈음에는 제노 영감의 건강이 더욱 나빠져서 작업을 감독하는 것조차 힘에 겨워 했기 때문이었다.
가끔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내가 사라지면 제노 영감이 추궁을 받느라 고생 좀 할지도.’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너무 매몰찬 것도 같지만, 그런 것이 걱정되어 평생 이곳에 묶일 생각은 없었다.
첫날은 그렇게 무난하게 지나갔다.
이윽고 둘째 날, 결행의 날이 밝았다.
그날 아침에도 카라스는 정상적으로 3구역의 공장으로 나섰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공장도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철커덩!
키리리리릭!
곳곳에서 쇳물이 튀고, 불똥이 날아다녔다. 또한 수 톤에 달하는 중장비와 철판이 바삐 옮겨지곤 했다. 똑같은 공장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의 것과는 다르게 안전 설비 하나 없는 실로 위험천만한 일터였다.
그 모습들을 물끄러미 보는 카라스의 뇌리에 지난 4년 동안 이곳에서 구르면서도 잘도 사고 한 번 당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찌 보면 신기했다.
4년 전, 그가 처음 이 공장에 왔을 때 제노 영감이 말해 줬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때 제노 영감은 이곳이 어디냐는 카라스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터, 메탈슈트 공장.’
제노 영감의 말은 정확했다.
이곳은 실로 위험한 곳이었다.
그만큼 사고도 잦았다.
카라스가 기억하기로, 지난 4년 동안 거의 열흘에서 보름에 한 번 꼴로 사망, 또는 그에 준하는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 대부분의 경우엔 어찌 보면 사망 사고가 차라리 나았다. 의료 시설이 전무하고 위생 환경이 열악한 이곳에서 중상을 입는다는 것은 차라리 죽음이 부러워질 고통 속에서 생존의 희망도 없이 신음해야 한다는 뜻이기에.
‘훗, 그래도 이제는 이곳도 마지막이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면 여기에 대한 기억도 보기 좋게 미화가 되려나.’
절로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아직 탈출을 시도하지도 않았건만, 그는 이미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드디어 천마신공이 3성의 경지에 올랐다. 덕분에 2성의 무공인 천살회귀도법(天殺回歸刀法)과 3성의 무공인 반탄기공 묵룡갑(墨龍甲)을 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카밀카사를 착용한 상태에서만 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게 어디인가.
게다가 카라스가 천마신공을 연성하는 과정에서 메탈슈트 카밀카사의 코어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0.1카펠이었던 코어 증폭률이 0.2카펠로 돌연 소폭 상승한 것이었다.
이는 언뜻 보았을 땐 작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꽤나 큰 발전이었다.
단순 계산으로만 했을 때, 1톤의 중량에 1카펠의 증폭률은 메탈슈트에게 착용자와 완벽히 같은 운동성능을 부여한다. 이를 정규출력비 전투효율이라 말한다.
마찬가지 계산법으로, 착용중량 200킬로그램에 0.1카펠의 증폭률을 지니는 카밀카사는 카라스의 원래 운동량을 50%의 속도로 소화할 수 있었다. 즉 카라스의 운동능력보다 절반이나 줄어든 속도로 움직이게 되니 0.5의 전투효율을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증폭률이 그 두 배인 0.2카펠로 오른 지금은 그 핸디캡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이전보다 두 배의 속도. 즉, 카라스의 움직임을 별 무리 없이 그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니까.
사실 완성된 메탈슈트의 코어 증폭률이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카라스도 그 사실은 잘 알았다. 그래서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였고 제작과정이 잘못된 것인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는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불안하다고 이제 와서 멀쩡한 메탈슈트를 해체해서 분석할 시간도 없거니와,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비록 최하급의 메탈슈트이지만…… 그것을 착용한 상태에서 펼쳐질 3성의 천마신공. 이를 떠올리는 카라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어디선가 불길한, 쇠 긁히는 소리가 났다.
“으음?”
한창 상념에 빠져 있던 카라스가 무심결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직후, 그의 어깨가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