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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14화)
5장 역천의 연공법(1)


가드 페르히는 결코 알지 못했다.
카라스는 이미 4년 전 리퍼의 습격을 받던 때와 같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간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으며, 수많은 성취와 성장을 이룬 상태였다.
또한 카라스의 가치관은 여타의 인간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제노 영감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기는 하였으나 그로 인해 슬픔에 잠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계속 거듭된 전생을 통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죽음에도 둔감해진 것이었다.
때문에 카라스는 제노 영감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애초부터 냉철함을 유지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 그가 페르히의 알량한 매복을 처음부터 모를 리가 없었다.
‘어……? 피했……어?’
페르히는 허공을 헛되이 찌르는 자신의 검을 보며 어리둥절하였다. 이내 그의 시야 한구석에서 카라스의 주먹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더니 곧 시야를 가득 채워 왔다. 너무나 느리게 보였지만, 기실 그것은 찰나지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페르히의 머릿속에 청천벽력이 쳤다.
꽈앙!
“끄…… 께엑!”
그의 한쪽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단 일권.
한 주먹에 왼쪽 안구가 터져 버렸다. 안구를 감싸고 있던 안와마저 골절되었다. 또한 왼쪽 광대뼈도 가루가 되다시피 하여 완전히 함몰되었다. 게다가 코까지 부러지고 내려앉아 직각으로 꺾여 버렸고, 목뼈에도 단번에 금이 갔다.
단 한 번, 그것도 외공으로만 휘두른 한 번의 주먹질에 페르히는 목숨이 위태로울 중상을 입게 되었다.
쿠당탕탕!
타격력에 의해 뒤로 쓰러진 페르히의 몸뚱이는 그대로 네 바퀴나 바닥을 구르다가 겨우 멈추었다.
“끄, 아아아윽! 히, 히이익!”
뒤늦게 찾아온 지옥 같은 고통.
페르히는 그 고통에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런 그에게 카라스가 냉엄한 눈동자로 다가섰다.
“히, 히이익, 오, 오지…… 마!”
페르히는 거의 울다시피 궁둥짝을 바닥에 끌면서 물러났다. 그는 메탈슈트를 소환할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그 사타구니는 이미 흠뻑 지린 오줌으로 젖어 있었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것이었다.
아니, 전의를 논하기에 앞서 카라스의 막대한 위력과 살기가 공포로 변하여 이미 그의 심령을 완전히 제압한 상태였다.
하지만 카라스의 손속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페르히를 죽이기로 마음을 굳혔기에. 카라스의 강건한 손아귀가 페르히의 뒤통수를 잡았다.
콰지직!
무릎이 페르히의 안면을 강타했다.
“크, 케엑!”
그 일격으로 페르히의 아래턱뼈가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 부서진 이빨 조각들이 그의 입에서 와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카라스는 멈추지 않았다.
꽈앙! 콰직! 와드득!
“끄……! 하……! 끼에…….”
부서진 이빨이 조각나 사방으로 튀었다. 박살난 뼛조각이 안면 피부를 뚫고 튀어나왔다. 돌출된 안구가 가느다란 신경에 매달려 허공에 덜렁거렸다.
타격이 거듭될수록 페르히의 얼굴은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갔다. 처음에는 휘휘 내저어지던 그의 팔이 어느새 바닥을 향해 가라앉았다. 그리고 타격이 가해질 때마다 고통으로 맥없이 움찔거렸다.
콰지직―!
마지막 일격이 가해졌다.
페르히의 숨이 끊어졌다.
그의 부서진 얼굴은 이미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카라스의 얼굴 또한 인간의 것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흉흉하였다. 튀어 오른 피가 그의 상반신과 얼굴 곳곳에 묻어 있어 그 살벌함을 한층 더하였다.
그때였다.
키이이이이잉―!
돌풍이 불었다.
카라스가 눈을 부릅떴다.
‘이건…….’
허공에서 날카로운 굉음이 울리며 신장이 4미터에 가까운 메탈슈트 한 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페르히가 죽자 그와 메탈슈트 사이에 맺어졌던 영혼의 맹약이 자동으로 해지되었고, 아공간에 있던 메탈슈트가 물질계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게다가 그 굉음은 근처에 있던 가드들의 주의를 단박에 끌어 버렸다.
“무슨 일인가!”
“페, 페르히?”
근처를 지나던 가드 두 사람이 카라스와 그 앞의 참상을 목격하였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호각을 불었다.
삐이이익―!
곧 비상용 호각 소리를 들은 가드들이 분주하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미처 현장에서 몸을 빼지 못한 카라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기실 그라고 완벽한 인간일 리가 없다. 그는 메탈슈트를 기계적으로는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아직 맹약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초심자나 다를 바가 없었다.
때문에 그도 맹약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 도리가 없었고, 페르히를 죽이자마자 주인 잃은 슈트가 모습을 드러내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곧 그는 20여 명의 가드들에 의해 포위되었다. 곳곳에서 가드들의 메탈슈트가 소환되었다. 슈트는 총 6기였다.
카라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속으로는 괜한 짓을 벌였다는 후회도 들었다.
‘아까 이곳의 사고 따윈 상관치 말고 탈출할 것을 그랬나…….’
그런 심정과는 별개로 그의 머릿속은 냉철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가드를 살해했고 그것이 현장에서 목격된 상황. 어떤 수단으로도 이 일을 무마시킬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잡히면 죽게 되리란 것.
입술이 이지러졌다.
쓴웃음이었다.
그와 동시에, 카라스의 몸이 극도로 가속되었다.
파앙!
“크윽?”
그의 예상치 못했던 돌진에 가드가 당황했다. 가드가 얼결에 내지른 검을 카라스가 유연하게 피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틈으로 팔꿈치를 꽂아 넣었다.
꽈지직!
“끄어……!”
가드의 갈비뼈가 단숨에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하지만 카라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도약하며 몸을 회전시켜 그 옆에 있던 다른 가드의 안면을 후려 찼다. 가드의 고개가 홱 돌아가며 일격에 목이 부러졌다.
나머지 가드들과 메탈슈트들은 그제야 정신을 다잡고 대응에 나섰다.
“비천한 노예놈 주제에 어디서 까부는 것이냐.”
키이잉, 철커덕!
메탈슈트를 착용한 가드 하나가 카라스의 앞을 막아섰다. 메탈슈트가 허리에서 강철봉을 뽑아 들었다. 길이만 2미터에 무게만 1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메탈슈트 전용의 병기였다.
부우우웅―!
강철봉이 막강한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카라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씨이익.
그의 입가로 웃음이 번진다 싶은 찰나 카라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너무나 간단하게 강철봉을 피한 그가 메탈슈트의 공격 거리 안쪽으로 순식간에 돌입했다. 그리고 돌진의 기세를 살려 슈트의 허벅다리에 정권을 꽂아 넣었다.
꽈아아앙―!
사람의 주먹이 낸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굉음. 놀랍게도 메탈슈트가 잠시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본 가드들의 눈이 경악으로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가드들이 사용하는 메탈슈트는 20년 전까지 파티엔 공국의 정규 기사단이 사용하던 안타레스급 규격의 기체였다.
안타레스급은 최근의 유행으로 보면 비교적 준중량에 속하는 가벼운 모델이지만, 그래도 전고가 3.8미터에 전투중량은 2.5톤에 달한다.
또한 코어의 증폭률도 4.0카펠에 근접하여 총 1.6배의 전투효율을 내는 기체였다.
이는 곧 2.5톤의 거구가 탑승자의 움직임을 1.6배 증폭시켜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런 막강한 고성능의 메탈슈트가, 고작 인간의 주먹질 한 방에 휘청거렸다. 가드들이 경악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직 끝이 아니야.”
카라스가 중얼거리며 재빨리 메탈슈트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인간으로 치면 아킬레스건이 있을, 슈트의 발뒤꿈치 위쪽을 거칠게 밟았다. 꽈직, 하는 소리와 함께 슈트의 발목 구동부가 우그러졌다.
그때였다.
“재롱도 여기까지다!”
후우웅―!
다른 메탈슈트가 옆에서 카라스를 노리고 주먹을 휘둘러 왔다.
이건 명중이다.
절대 피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직감한 슈트 안의 가드가 회심의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같은 순간, 카라스도 그 가드와 똑같은 웃음을 흘렸다. 짧은 찰나의 간격을 두고서 서로의 눈빛이 격한 불꽃을 튀기며 스쳐 갔다.
키이이잉―!
카라스의 뒤쪽 공간이 열렸다.
동시에 그의 등에 새겨진 소환의 문장이 새하얀 광채를 쏟아 냈다.
촤라라라락!
카라스의 뒤편, 허공에 기이한 흑색의 서클이 그려졌다. 그 회전하는 서클 속에서 낱낱이 해체된 모양의 흑색 메탈슈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해체된 부품 하나하나가 순서대로 카라스의 몸을 감쌌다. 차가운 금속음이 연이어 울렸다. 카라스는 메탈슈트 카밀카사의 착용을 순식간에 완료했다. 그를 향해 날아오는 메탈슈트의 주먹이 당도하지도 않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카라스는 곧바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꽈아아앙―!
묵직한 충격.
거세게 쇄도하던 메탈슈트의 주먹이 카밀카사의 손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안타레스급 메탈슈트는 2.5톤, 카밀카사는 고작 200킬로그램. 이렇듯 둘 사이에는 극명한 중량의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 때문에 카라스의 카밀카사가 뒤로 주욱 밀려났다.
카라스의 뇌리로 카밀카사의 목소리가 떠듬떠듬 울렸다.
― 우리, 너무, 가볍다.
여전히 어눌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카라스가 자신을 이토록 가볍게 만든 것에 대한 원망이 약간은 서려 있었다.
메탈슈트는 여러 가지 강점을 지닌 인간형의 대형 병기다. 그 강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단연코 무게를 꼽는다. 육중한 전투중량에서 나오는 일격은 성벽과 방어진을 허물고 적의 모든 공세와 철갑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공국을 비롯한 대륙의 모든 국가들은 마치 군비경쟁이라도 벌이듯 육중한 메탈슈트와, 그 무게를 운용하기 위한 고출력의 코어를 개발해 왔다. 그런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카라스가 만든 카밀카사는 시대의 요구에 완전히 역행하는 실패작인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작이라는 판단은 단순히 카밀카사라는 기체 하나만을 놓고 보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카라스가 되뇌었다.
“가볍다고?”
씨이익.
그의 입가로 난폭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와 함께, 그의 등에 새겨진 소환의 문장을 통해 카라스의 단전과 카밀카사의 코어가 링크되었다. 그 강제적인 연결이 이어지자 금제의 낙인 때문에 막혀 있던 진기의 유통이 활발히 이어졌다.
곧, 카라스의 잠들어 있던 단전이 깨어났다. 막대한 공력이 일어나 코어를 일깨웠다.
3성의 천마신공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천마신공과 더불어 카밀카사는 종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메탈슈트로 변모했다.
키리릭.
카밀카사가 허리를 뒤튼다 싶은 순간, 그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
메탈슈트 속의 가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콰지지직―!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카밀카사의 뒤꿈치가 메탈슈트의 머리를 짓밟았다.
“커억!”
메탈슈트의 머리가 단숨에 반파되었다. 그 충격은 내부의 가드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며 그대로 기절했다.
착용자가 정신을 잃자 전투중량 2.5톤의 안타레스급 거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단 12분의 1 무게밖에 되지 않는 최하급 메탈슈트가 날린 일격에 전투불능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가드들에게 닥친 수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개자식이!”
다른 메탈슈트가 육중한 강철봉을 가로로 휩쓸 듯 휘둘러 왔다. 정통으로 맞는다면 카밀카사라 하여도 허리가 두 동강이 날 위력이었다.
하지만 카밀카사는 피하지 않았다.
“하!”
카라스의 일진 기합과 함께 극도의 묵색 반탄강기가 카밀카사의 전신에서 피어났다. 바로 천마신공 3성의 무공인 반탄기공, 묵룡갑이었다.
터어엉―!
강철봉이 직각으로 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