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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15화)
5장 역천의 연공법(2)
반면 카밀카사의 표면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게다가 타격에 실린 막대한 무게를 그 자리에서 버티기까지 했다.
카라스가 천근추(千斤墜)의 신법을 동시에 펼쳤기 때문이었다.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결과에 가드가 허둥거리는 사이, 카밀카사의 손바닥이 메탈슈트의 한쪽 무릎을 찍어 눌렀다. 수라혈수인의 장력이 메탈슈트의 무릎 관절 구동부를 반대편으로 꺾어 버렸다.
카라스의 뇌리로 카밀카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 이건, 대체, 어떻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기색.
카라스는 한마디로 그 물음을 묵살했다.
“닥치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나 해.”
쓰러진 메탈슈트의 강철봉을 카밀카사가 집어 들었다. 그리고 봉의 휘어진 부분을 부러뜨렸다. 덕분에 강철봉은 카밀카사의 몸집에 맞는 길이의 무기로 탈바꿈했다.
키기기긱.
반쪽짜리 강철봉을 든 카밀카사가 천천히, 특이한 동작을 취했다.
그를 둘러싼 남은 메탈슈트 4기가 일제히 긴장하여 자세를 낮추었다. 그들로서는 카밀카사의 저 움직임이 천마신공 2성의 천살회기도법의 기수식이라는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도법이 펼쳐졌다.
파카카카카캉―!
벼락이 날았다.
쇳가루가 튀었다.
파편이 쏟아지고, 굉음이 사방을 진동케 했다. 찰나지간에 펼쳐진 그 아수라지옥도의 틈을 카밀카사가 전광석화와도 같이 꿰뚫고 튀어나왔다.
모두가 멈추었다.
숨 막히는 정적.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4기의 메탈슈트도, 그들 사이를 꿰뚫고 튀어나와 등을 보인 채 봉을 수평으로 내민 카밀카사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멈추었다. 그리고 침묵하였다.
“…….”
팅강.
어느 순간, 메탈슈트 한 기의 어깨에서 작은 볼트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그 작디작은 볼트는 메탈슈트의 견갑과 흉부 장갑의 사면을 타고 통통 굴러 내리더니 곧장 발 아래로 낙하하였다. 그리고 차가운 바닥에 가볍게 부딪혔다.
콰아아아아아앙―!
굉음.
4기의 메탈슈트가 동시에 내부에서부터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흉부 장갑 안쪽의 코어가 파괴되며 마나가 폭주, 거기에 코어 표면을 둘러싼 아이드테리움이라는 코팅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격렬한 산화 반응을 일으키며 연소하는 바람에 대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덕분에 겨우 혼란에서 벗어나고 있던 공장은 다시금 혼돈의 구덩이에 내려앉아 버리고 말았다.
카라스는 그 틈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탈출의 시간이다.
그는 아직껏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맨몸의 가드들을 서둘러 정리하고는 미리 조사해 두었던 탈출 루트를 향해 재빨리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하였다.
콰지직!
강렬한 충격이 뒤편에서부터 카밀카사를 강타했다.
“커윽!”
예상치 못한 충격에 카밀카사가 저만치 쓰러져 나뒹굴었다.
다행히 부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묵룡갑의 반탄기공이 일격에 깨어졌다. 게다가 기척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강적이다.
뒷골이 찌릿하며 소름이 돋았다.
카라스의 머릿속에 위험경보가 울렸다.
그는 재빨리 균형을 회복하며 강철봉을 휘둘러 후방을 방어했다.
콰아앙―!
강철봉을 들어 올리자마자 거대한 배틀액스가 위에서 떨어졌다.
육중한 충격이 카밀카사를 짓눌렀다.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순간적으로 내기가 진탕되었다. 카라스의 입가로 실낱같은 피가 흘러나왔다.
단 일 격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네놈이 어떻게 메탈슈터가 되었지?”
중후한, 그러면서도 갈라진 목소리가 위에서 울렸다.
슈너드 남작의 목소리였다.
“크으…….”
카라스는 필사적으로 버티면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다른 안타레스급보다 훨씬 큰 기체가 보였다.
전고 4.8미터 높이에 4톤의 전투중량을 지닌 거대한 메탈슈트. 게다가 6.0카펠의 증폭력을 지닌 코어는 1.5배의 전투효율성을 지녀 실로 괴물이라 불릴 만하였다.
바로 슈너드 남작의 전용 기체인 엑자일이었다.
카밀카사의 외형을 잠시 살핀 슈너드 남작이 빙긋이 웃었다.
“혹시 폐기물 처리장에서 스스로 만든 건가?”
“…….”
“맞나 보군.”
쿠우웅!
엑자일의 거대한 발이 카밀카사를 걷어찼다. 위에서 눌러 오는 배틀액스의 힘에 대항하기에도 벅찼던 카밀카사는 그 일격에 20미터가량이나 튕겨 날아갔다.
카라스는 카밀카사를 간신히 조종하였다. 덕분에 바닥에 내리꽂히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 하지만 당혹스러움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최악이다.’
지난 4년간 수없이 탈출을 계획하고 머릿속으로 예비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그 결과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탈출 과정에서 절대로 마주쳐서는 안 되는 인물이 바로 눈앞의 슈너드 남작이라는 사실이었다.
카라스가 추정해 본 슈너드 남작의 무위는 실로 막강했다. 서로 메탈슈트 없이 맨몸으로 겨룬다 하여도, 천마신공 3성의 성취가 있을 때 비로소 평수를 이룰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지금은 카라스가 실제로 신공을 3성의 수준까지 성취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하다. 단번에, 완전히 제압을 못하면 탈출이라는 것은 절대로 요원한 일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지금은 서로 간에 착용하고 있는 메탈슈트의 성능이 너무나 극과 극이었다. 남작의 엑자일은 안타레스급 중에서도 지휘관용으로 만들어진 업그레이드형 커스텀 기체.
반면 카라스의 카밀카사는 안타레스는 고사하고 성벽 공사장의 작업용 메탈슈트보다도 성능이 떨어지는 최하급이 아닌가.
착용자의 역량은 엇비슷하나 병기의 성능이 너무나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상황. 이래서는 저항 자체가 아예 의미가 없다.
“흐흐, 지금껏 이 몸을 속여 오면서 폐기물 처리장에서 몰래 메탈슈트를 만들어 왔다? 날 완전히 바보로 알았군. 실제로 바보로 만들기도 했고.”
남작의 엑자일이 굉음을 내며 다가왔다. 카라스는 카밀카사를 간신히 일으켰다. 방금 먹은 일격으로 카밀카사의 구동에는 이미 상당한 무리가 오고 있는 상태였다.
카가각.
카밀카사가 강철봉을 꼬나 쥐었다. 그리고 전광석화같이 달려들며 선공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남작의 배틀액스가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그 거대한 도끼에는 희미한 마나의 덩어리가 맺혀 있었다.
둘의 병기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위이잉.
순간 카라스는 머릿속으로 울리는 이명을 들어야 했다. 세상이 멈춘 듯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 느낌이 싫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카밀카사의 전면장갑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을 끝으로, 카라스의 기억이 끊어졌다.
* * *
‘간신히 혼란이 가라앉았습니다. 남작님.’
‘수고가 많았군.’
‘저…….’
‘궁금한 것이 있나, 레이하트 경? 묻도록.’
‘이자에 대한 처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궁금하나?’
‘…….’
‘본인도 아깝기는 하다만, 자작님의 뜻이니 어쩔 수가 없지. 삼 일 후에 공개 처형을 집행하라 명하셨다. 놈이 만든 허접스런 메탈슈트는 다시 해체되어 폐기물 처리장을 굴러다니게 되겠고.’
‘그렇군요.’
‘그럼 이만 가도록 하지. 공기도 눅눅하고 냄새도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예.’
철커덩.
차갑고 음습한 감옥의 철문이 닫혔다.
똑…… 똑…….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어깨에 내려앉았다.
선득한 고통이 메아리쳤다.
피식.
입가에 떠오르는 것은 쓴웃음.
카라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소를 흘렸다.
“빌어먹을 영감 덕분에 나도 물러졌었잖아……. 큭큭.”
삶을 거듭하며 타인에 대한 정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근 4년간 제노 영감과 동고동락하다 보니 이곳의 노예들에게 어느새 잔정이 들어 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가장 냉정해야 했을,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감정에 휘둘리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는 냉철하게 행동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가드들과 충돌한 것 자체가 이미 냉정함을 잃은 행위가 아니었나.
역사를 통틀어, 성공을 눈앞에 두고서 마지막 순간에 작은 감정에 흔들려 일을 그르친 영웅호걸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자신도 그러한 전철을 밟게 될 줄이야.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웃음만 흘리고 있는 것이다.
철그렁.
몸을 움직여 보려 해도 사지를 단단하게 고정시킨 굵은 사슬만 출렁일 뿐이었다. 게다가 원래 그의 등에 만들어졌던 문신, 메탈슈트 소환의 문장에도 괴이한 마법진이 문신으로 추가되어 새겨졌다. 소환의 문장을 봉인하는 마법 문신이었다.
이로써 그는 더 이상 메탈슈트 카밀카사를 소환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말은 곧 이제 코어와 자신의 단전을 링크시킬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며, 내공을 기반으로 하는 천마신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게다가 아까 비몽사몽간에 들은 바로는 공개 처형은 삼 일 뒤에 이루어진다 하였다.
‘체크메이트……인가. 완전히 막다른 골목이로군.’
그런 생각에 그의 쓴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더욱더 생각에 골몰했다.
아직은 끝이 아니다.
이렇게 허무한 끝을 맞이하려 그간 필사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
문득, 그의 시선이 자신의 팔뚝을 향했다. 정확하게는 팔뚝에 찍힌 금제의 낙인을 주시했다.
‘이것만 없었으면 축기가 가능했을 터인데…….’
그렇다고 없앨 방법도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이대로 대책 없이 있다간 꼼짝없이 죽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축기……. 축기…….’
단 하나.
점점 그 생각만이 계속 들었다.
‘이러다간 이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 차겠군.’
그런 생각에 카라스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피식거리던 웃음이 살짝 굳었다.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 듯하였기 때문이었다.
‘축기로 머리를…….’
어디선가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첫 번째 생이었던 천마대제 파군성의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때 어린 파군성이었던 시절, 그를 가르치던 스승이자 전대의 천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아련히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