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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16화)
5장 역천의 연공법(3)
― 단전은 상, 중, 하 이렇게 세 군데가 있다. 보통 축기를 행함은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다. 뿌리에 해당하는 하단전을 튼튼히 하면 자연히 줄기를 이루는 중단전이 똑바로 설 수 있다. 그리하면 꽃과 과실, 즉 상단전이 비로소 만개하는 것이니. 결국 이것이 축기의 기본이자 순리에 부합하는 기초이니라.
카라스는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었다. 그의 정신은 이미 깊은 상념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차츰 스승의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 하지만 그 순리에 역행하는 진정한 마공도 존재하는 바, 원래 천마신공의 연공도 역천(逆天)의 연공법에서 비롯하였느니라.
‘역천의…….’
회상의 장면 속에서, 스승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 물론 그 위험이 너무나 극단적이라 지금은 사라졌지만 바로 여기, 상단전인 두뇌에 축기를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나무를 뒤집어서 거꾸로 심는 것과 같이 미친 짓이지. 하지만 그 공능은 막대하다. 상단전이 열리면 사해의 기운을 모두 몸 안에 갈무리할 수 있게 되니, 그를 두고 선대의 마존들께오선 북명신공(北溟神功)의 시작이라 칭하셨느니라.
그랬다.
생생히 기억났다.
고대의 천마신공은 역천의 연공법으로 이루어졌었다고 하였다.
역천의 연공이란 일반적으로 행하는 연공법과 달리 아무런 기초도 없이 곧바로 상단전, 즉 두뇌에 곧바로 축기를 시작해 버리는 것이 그 요결이었다.
그 효과는 지대했다.
성공만 한다면 수년이나 걸릴 일반적인 축기의 과정을 단번에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역천의 연공은 천마신공보다 상위의 무공인 북명신공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단숨에 절세의 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수련법의 달콤한 결과물에 대가가 없을 리가 없다. 결론적으로 그 방법은 너무도 위험하였다. 뿌리와 줄기가 빈약한 나무는 그 무게를 지탱치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 당연지사.
때문에 역천의 도를 수행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이 아니었다. 수련 도중에 살아남을 확률이 고작 천 분의 일이요, 그 살아남은 천 명 중의 한 사람마저도 절반의 확률로 광인, 혹은 폐인이 되어 버리는 연공법이기도 했으니까.
그러한 이유로 역천의 연공법은 세월이 지나며 마교에서조차 외면 받게 되었다.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 보니 선뜻 도전하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였고, 절로 수련법 자체가 실전되어 비급으로만 전해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절세의 심법인 북명신공 또한 완전히 실전되었다.
당시, 스승의 말에 호기심을 느낀 어린 파군성은 그 비급을 훔쳐보기는 하였다. 하지만 이내 참혹한 성공률에 고개를 가로저었었다.
카라스는 계속 생각했다.
지금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 절대적인 원인은 바로 팔뚝에 새겨진 금제의 낙인이다. 저 낙인 때문에 하단전을 봉인당했고, 내공을 사용할 수 없어 이렇게 비참한 꼴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역천의 마공이라면 금제의 낙인과는 전혀 상관없이 축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낙인은 단지 하단전만 봉인하고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확률이 지극히 낮은, 어리석은 도박에 다름이 아니었다.
일천 중에 구백구십구의 확률로 실패하면 무조건 죽음. 요행히 살아남아도 절반의 확률로 폐인.
한마디로 2,000분의 1의 성공 확률이 아닌가.
담대한 그도 그 생각에 잠시 멈칫했다.
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한 번 크게 출렁였다.
그래, 하자.
어차피 다른 방법도 달리 없잖은가.
카라스의 입가에 다시금 쓴웃음이 떠올랐다.
‘사람 팔자가 어찌 될지는 점쟁이도 모른다더니.’
이 최악의 연공법을 이런 상황과 장소에서 스스로 실행해야 하는 처지가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하지만 그런 자조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미 카라스는 기억을 되살리며 역천의 연공을 위한 자세를 취해 가고 있었다.
고민에 이은 결단이 내려지면 누구보다도 빠르고 신속한 행동력을 보이는 것, 그것은 분명히 카라스가 지닌 크나큰 장점 중의 하나였다.
문득, 그가 스산하게 으르렁거렸다.
“망할 영감쟁이, 이거 어쩔 거야. 혹시나 지옥에서 만나게 되면 제대로 책임지라고.”
그 직후 카라스는 눈을 감았다.
곧 무시무시한 기운이 감옥 내에 스멀스멀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우선 백회혈부터.’
카라스는 정신을 집중했다. 역천의 연공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백회혈을 개방하여 하늘의 기운을 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차츰 그의 들숨과 날숨이 안정되어 갔다.
이내 백회혈을 타고 흘러 들어온 기운 때문에 정수리가 찌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기운이 뜨겁고 차가운 두 흐름으로 갈라졌다.
뜨거운 기운이 카라스의 안면을 향해 거침없이 내려왔다.
그 양기의 움직임에 따라 불로 지지는 듯한 화끈한 통증이 전정혈과 노회, 상성, 신정혈을 타고 이마를 지나더니 양 미간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반면 차가운 기운은 카라스의 후두부를 향해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 내려왔다.
백회를 출발한 서늘한 음기는 곧 후정, 강간, 뇌호혈을 타고 하강하더니 마침내 풍부를 지나 아문혈에 자리 잡았다. 후두부와 목이 만나는 경계 지점이었다.
이내 미간에 자리 잡은 열기와 후두부에 자리 잡은 한기가 서로 이어졌다. 그 접점에는 바로 카라스의 상단전, 즉 두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다…….’
카라스는 더욱더 자신의 내면을 향해 집중했다.
그러자 카라스의 자아가 육체에서 분리되었다. 마치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듯, 그는 자신의 자아를 육신에서 분리시켰다.
육신은 자아에 속한 부산물이다.
내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다. 육체가 내게 속한 것이다. 육신은 깨달음으로 이르기 위한 도구의 한 가지일 뿐이다.
동시에 육신은 그 무엇보다도 두터운 감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렇게도 자신의 육신에 집착하고 육신에 얽매여 살아간다.
그것이 욕망이다. 자고 싶은 욕망이 그러하고, 먹고 싶은 욕망이 그러하며, 성행위를 하고픈 욕망이 그러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안락함과 쾌적함을 추구하려는 욕망과 소망이 그러하다.
그렇게 대부분의 인간들은 스스로의 육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나 이 순간 카라스는 그 얽매임에서 벗어났다.
사실 그는 무욕과 무소유의 삶과는 그다지 연관이 없는 자다. 오히려 항상 갈구하며 살아가는 자가 바로 카라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갈구하는 욕망이 평상시의 범주를 넘어섰다.
물극필반(物極必反).
달이 차면 절로 기울 듯, 악도 극에 이르면 선이 되고 선도 극에 이르면 악이 된다 하였다.
지금의 카라스가 그러했다.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확률이 낮은 도박을 감행하고 있으며, 실패하는 순간 죽음이 오리라는 것을 명명백백히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자아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 강해진 상태였다. 그 애착이 오히려 그의 자아를 육신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분리된 자아로 스스로를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상시 명상 상태에서 하는 관조와는 격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상태였다.
그러자 비로소 본격적인 축기가 시작되었다.
고오오오…….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방에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그 태풍의 눈에는 카라스가 있었다. 막대한 기운이 카라스를 향해 모여들어 그의 상단전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와 함께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
잠시 눈을 뜬 카라스는 경악했다.
확장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시간이 가속되고 있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주위 사물의 시간이 느려졌다.
근처를 날아다니는 파리가 느리게 보였다. 먼지나 티끌 하나하나에 새겨진 흠집이 명확히 보였다.
비정상적인 축기로 인해 상단전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생긴, 일종의 신기(神氣)가 들려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축기는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변의 시간이 더욱 느려졌다.
혹은 카라스의 시간이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그의 육신은 빛살 같은 시간의 속도에도 불구하고 노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빨라진 것은 그의 의식의 시간이지 육체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카라스가 느끼는 시간으로는 어림잡아 2, 3년이 훌쩍 지나갔다. 하지만 실제로 흐른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이었다.
그동안 상단전에 대한 축기는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그 축기의 한계점에 이르자 카라스의 인중, 그러니까 천중혈에 깨알보다 작은 빛의 덩어리가 생겨났다. 상단전으로 이루어 낸 진기의 정수였다.
스으읍.
카라스의 호흡을 따라, 진기의 덩어리가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청량한 느낌이 입안에 돌았다.
그와 동시에 진기의 덩어리는 녹아들 듯 카라스의 신체로 스며들었다.
‘됐다……!’
카라스는 희열에 잠겼다.
상상도 못했던, 막대한 양의 순수한 진기가 자신의 몸으로 퍼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봉인되어 있던 하단전과 중단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단전의 축기와는 무관하게 지금껏 카라스가 열심히 단련한 천마신공의 내공이었다.
카라스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지금 하단전과 중단전이 움직여선 안 된다. 만약 이대로 두면 상단전의 진기와 서로 얽혀서…….
‘……!’
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굉음이 그의 내부에서 울렸다.
칼로 쑤시는 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그 통증이 중단전을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방금 상단전을 통해 유입된 순수한 기운과 그가 지니고 있던 천마신공의 기운이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화입마경의 시작이었다.
‘크, 큰일이다…….’
잘 되어 가는가 하여 안심했던 것이 실수였다.
카라스가 예전부터 쌓아 온 천마신공의 내공은 지금 상단전을 통해 들어온 기운과 성질이 아예 달랐다. 때문에 두 기운이 섞이지 못하고 극심한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크흡!”
크게 들썩이는 그의 코와 귀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극도로 높아진 내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혈관이 파열되었다.
그는 순식간에 혈인(血人)의 형상이 되어 버렸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쿠웅. 쿠웅.
심장 뛰는 소리가 목구멍으로 올라올 듯이 커졌다.
그러다가 작아졌다.
다시 커졌다.
다시 작아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소름이 돋는다. 피부 한 올 한 올에 배어든 오한이 살갗을 바깥부터 한 겹 한 겹 벗겨 내는 것만 같다.
박동은 빨라지는데 혈압은 떨어진다. 그와 함께 타는 듯한 심한 갈증이 인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침은 단 한 방울도 고이지 않는다. 이미 그의 입안은 피로 질척하였다.
전형적인 주화입마의 증상이다.
카라스는 속수무책으로 나락에 빠져들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신체가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꽈드득, 콰직!
섬뜩한 소음.
갈비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관절과 근육이 경련하며 뒤틀렸다. 마치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채 버려진 인형처럼, 카라스의 몸은 구석구석 부서지고 무너지고 붕괴하고 있었다.
때문에 극도의 고통이 느껴질 법도 하건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편안하기만 하였다.
그는 여전히 자아를 육신에서 분리시킨 상태였기에,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과정을 제3자의 시각으로 비교적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만큼 냉정함을 잃지 않을 수 있기도 하였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카라스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직시했다.
전체적인 진기의 흐름이 한눈에 보였다.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진기의 흐름과 충돌에도 패턴이 있었다.
그는 그 패턴에 주목했다.
그리고 패턴에 간섭했다.
그의 간섭을 받은 진기가 기문혈 근처에서 부딪혔다. 충돌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인해 혈도에 충격이 왔다.
의외로 주화입마의 기운은 그의 통제에 따라 원하는 곳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이제 카라스는 다른 곳에 주목했다.
바로 금제의 낙인이 찍힌 자신의 팔뚝, 그리고 봉인당한 메탈슈트 소환의 문장이 있는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