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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18화)
6장 심판의 날(1)


콰아아앙―!
철문이 폭발하듯 통째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반대편 벽에 처참하게 박혔다. 간수장의 몸이 날아오는 철문에 부딪혀 벽에 짜부라졌다. 피를 잔뜩 빨았던 모기가 터지듯 선혈이 왈칵 뿌려졌다.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다.
그 먼지를 헤치고 카라스가 걸어 나왔다.
“…….”
그는 자신의 몸을 질주하는 내공의 흐름을 느꼈다. 그 흐름은 예전, 천마신공을 마음껏 구사하던 때와도 달랐다. 기존의 천마신공에 실전되었던 북명신공이 더해졌다.
그 영향일까.
열린 상단전을 통해 바깥의 외기(外氣)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 외기는 팔대경락을 일주천하는 천마신공의 기운에 합세하였다. 그러자 천마신공이 더욱 증폭되었다.
그 덕분에 천마신공의 성취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4성의 천마신공.
비록 이전과 한 단계의 차이라고 해도 그 격차는 실로 엄청났다.
천마신공은 경지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그중에서 마경개안에 해당하는 천마신공 초마경(初魔境)이 바로 3성까지이고, 4성의 경지부터는 마인각성(魔人覺醒)의 단계라 하여 천마신공 중마경(中魔境)의 경지라 일컫는다.
따라서 3성과 4성은 그냥 보았을 때는 그저 1성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녹아든 성취의 단계 격차는 실로 막대하였다. 3성의 성취를 이룬 자 다섯 명이 4성의 인물 하나를 상대하여 힘을 쓰지 못할 정도이니, 그 격차를 어찌 다 설명하랴.
게다가 같은 4성의 천마신공이라 해도 카라스의 것은 북명신공을 바탕으로 일군 성취이다. 그 차이는 컸다. 그는 이미 전대의 마두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천마신공을 창안하는 첫 발자국을 떼었다.
그뿐일까.
씨이익.
카라스가 미소 지었다.
‘카밀카사.’
그의 부름에 메탈슈트, 카밀카사가 아공간에서 꿈틀거렸다. 카라스는 상단전이 열리며 개발된 제3의 눈, 심안(心眼)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남작의 엑자일에 의해 박살 났던 외부 장갑판이 말끔히 복구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카밀카사는 아공간 내에서도 주변의 기운들을 자신의 주위로 뭉쳐 내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카밀카사의 코어가 있었다. 북명신공의 영향을 받은 카밀카사의 코어가 자연히 흡력(吸力)을 발휘하게 된 것이었다.
카라스는 웃었다.
그 웃음에 마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지금의 카라스는 마치 마왕이 현세에 강림하기라도 한 듯한 지독한 마기를 흘리고 있었다.
콰지직!
카라스의 손짓에 복도 옆의 다른 감방 철문이 우그러졌다. 재차 주먹으로 내리치자 두터운 철문이 완전히 박살났다.
안에서는 다른 죄수 하나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카라스가 그를 향해 냉엄하게 말했다.
“나와라.”
“예…… 예?”
“너는 이제 자유의 몸이다. 나와라.”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걸으며 같은 행위를 반복하였다. 곧 얼떨떨한 얼굴의 죄수들이 어두운 복도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그들은 복도 끝에 끔찍한 몰골로 죽어 있는 간수장의 시체를 보고서야 지금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때였다.
“무슨 일이냐!”
지하 감옥 위층에서 소란스러운 발소리와 고함이 달려 내려왔다. 위에 있던 다른 간수들이 아래쪽의 심상찮은 기색을 뒤늦게 감지한 것이었다.
불안해하는 죄수들을 뒤로 두고, 카라스가 행렬의 맨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돌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죄수들이 웅성거리며 뒤를 따랐다.
“어?”
가장 앞서서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간수 하나가 카라스를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직후, 카라스의 시선이 간수의 눈을 직시했다. 그의 눈동자가 혈기 어린 어두운 적색 빛을 머금었다.
위이이잉!
간수의 눈이 풀렸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자세가 구부정하게 변했다. 그러다가 곧 제정신을 차리고는 대경실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카라스의 수도가 날아갔다.
콰지직!
정면에서 내리친 수도에 간수의 머리가 내부에서부터 박살이 났다. 간수는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카라스는 쓰러진 간수의 시체를 밟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비쳤다.
방금 간수를 죽이기 직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무공 하나를 시전해 보았다.
그 무공은 사실 천마신공의 성취가 7성에 이르렀을 때에나 겨우 시전이 가능할 천마환위심공(天魔換位心功)이라는 심령술이었다.
하지만 이제 4성에 달한 성취의 수준으로도 방금의 카라스는 심공을 간수에게 어느 정도 성공시켰었다.
‘혹시 상단전 개발의 영향일까.’
원래 상단전은 인간의 정신과 심령에 직접적인 관여를 한다. 카라스는 내심 이후 이 현상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다시 주먹을 내뻗었다.
콰아앙!
가장 앞에서 곤봉을 후려쳐 오던 간수가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그 여파에 휩쓸린 간수 두 명이 와르르 쓰러졌다.
어느새 카라스는 계단을 벗어나 위층으로 올라왔다. 그곳에는 흉악범이 아닌, 일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이 있었다. 물론 숫자도 아래층의 죄수들보다 이쪽이 훨씬 많았다.
카라스는 태연히 감방 문을 부쉈다.
죄수들이 차례차례 쏟아져 나왔다.
간수들이 패닉에 빠졌다.
죄수들이 희번득한 눈알을 굴리며 간수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지하 감옥은 아비규환의 도가니에 놓이게 되었다.
그 혼란을 이끄는 자가 바로 다름 아닌 카라스였다. 그는 죄수들의 행렬 가장 앞에 서서 당당히 걸었다. 흥분한 죄수들이 ‘카라스! 카라스!’를 연호하며 뒤를 따랐다.
곧 카라스가 이끄는 행렬은 지하 감옥의 최상층, 간수들이 기거하는 곳에까지 다다랐다. 간수들은 아래에서 일어난 죄수들의 폭동을 감지하고는 이곳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어선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무너졌다. 카라스가 직접 손을 쓸 것도 없었다. 수백에 달하는 죄수들이 한꺼번에 몸으로 밀어붙이자 홍수 앞의 부실한 제방처럼 방어선이 단숨에 쓸려 버린 것이었다.
결국 지하 감옥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문이 열렸다.
그 문을 통하여 죄수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갔다.
카라스도 그 죄수들의 흐름에 편승하여 감옥을 빠져나갔다.
감옥 출구는 카라스에게 너무나 익숙한 곳, 메탈슈트 3구역 폐기물 처리장 근처에 있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가드들의 다급한 호각 소리가 차례차례 울리고 있었다.
카라스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어물쩡거리다간 곧 몰려올 가드들에 의해 포위되겠지.
과연 가드들은 신속히 출동하였다. 하지만 죄수들의 숫자는 많았다. 그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 서슬에 3구역 수용소의 노예들까지 자극받았다. 최근에 발생했던 큰 사고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분위기의 노예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제노 영감과 카라스가 가드들에 의해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덕분에 노예들 사이에도 이래저래 불만과 흉흉한 기운이 가득하던 판국이었다.
그 결과 죄수들의 집단 탈출에 자극받은 3구역 노예들의 폭동이 동시에 일어났다.
가드들이 독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며 그들을 진압했다. 메탈슈트 공장 3구역은 끝없는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카라스는 그 기회를 틈타 신법을 전개하였다. 천마신공이 4성에 오르자, 기존에 사용하던 신법인 마룡신형보의 수준이 깊어지며 자연히 상위의 신법인 백귀야행(百鬼夜行)으로 변모하였다.
이 신법은 은밀하고 또한 극도로 기이하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종적을 감지하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하물며 이런 혼란 속에서 가드들이 그를 감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덕분에 카라스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그가 향하는 곳은 예전부터 봐 두었던 탈출루트가 아니었다.
카라스가 향하는 곳.
그곳에는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건물 한 채가 있었다.
바로 메탈슈트 공장의 총책임자이자 그의 생부인 트리스탄 자작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그러나 유전자상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카라스의 얼굴에는 짙은 살기가 배어 있었다. 또한 한소끔 사나운 미소가 걸려 있기도 하였다.

* * *

달각.
찻잔을 내려놓은 시녀가 종종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트리스탄 자작은 그 젊은 시녀의 뒤태를 장식품 보듯 감상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돌아본 곳에는 자작을 찾아온 높은 손님이 있었다.
자작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알프레드 공자께서 친히 이렇게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자 자작의 맞은편에 앉은 손님, 알프레드 베크룩스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두툼하게 살집 오른 턱이 절로 실룩거렸다.
하지만 이 뚱뚱한 삼십 대의 사내야말로 진정 거물이다. 국가를 초월하여 대륙의 경제권을 쥐락펴락하는 베크룩스 은행 가문 총은행장의 차남이자 제2계승권자이자인 알프레드 베크룩스가 그의 정체이니까.
알프레드가 말했다.
“내 얼마 전에 이곳 공장에서 불행한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네만. 그게 맞는가?”
“……맞습니다.”
“한낱 개인의 것이 아닌, 공국 공영의 공장이네. 그런 곳에서 크나큰 사고가 나서 공정에 차질이 생겼다 함은 국가적인 손실일 테지.”
“그럴…… 테지요.”
알프레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공왕 베론께서 이 공장에서의 일로 무척 상심이 크시다고 하더군.”
“…….”
공왕 베론의 이름이 언급되자 트리스탄 자작이 순식간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알프레드 자작이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직접 보시게.”
자작은 서류를 훑어보았다.
“…….”
메탈슈트 공장에 납품되는 강철과 각종 희귀 자원의 공급처를 베크룩스 은행 산하의 광산으로 바꾸겠다는 계약 문서였다.
알프레드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면 내 친히 공왕에게 좋은 말을 해 주겠네. 어떤가?”
책임 추궁을 면하게 해 준다니,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다.
자작은 냉큼 펜과 잉크를 꺼내 서명을 하였다.
아니, 하려 하였다.
“급보입니다!”
덜컹!
자작의 심복인 사집관 하렌이 응접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달려 들어왔다. 그러다가 안에 손님이 있는 것을 보고는 움찔 멈추었다.
트리스탄 자작이 하렌의 예의 없음에 진노한 기색으로 물었다.
“귀한 손님께서 계신데 이게 무슨 무례인가.”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안이 너무나 시급하여…….”
“말하라.”
“제3구역의 노예들과 죄수들에 의해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뭐?”
자작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요란한 경보음이 건물 전체에 울렸다.
왜애애애앵…….
공장의 모든 구역에 동시에 울리도록 만들어진 알람 마법이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특급 경보에 해당하는 전체 알람 마법은 공장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울 정도의 대형 사고나 폭동이 일어났을 때만 발동하도록 설계되었으니까.
자작은 너무나 놀라 하렌을 시켜 슈너드 남작을 호출케 했다. 명을 받은 하렌이 숨도 고르지 못하고 밖으로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하지만 하렌은 1분도 지나지 않아 집무실로 되돌아왔다.
쿠당탕탕!
하렌이 구겨진 휴지 조각처럼 굴러와 집무실 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도 남은 여세로 인해 반대편 벽까지 굴러가 처박혔다. 그런데 그의 몸통 위에는 응당 있어야 할 머리가 없었다.
당황한 트리스탄 자작과 알프레드가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들을 향해 둥근 물체가 날아왔다. 알프레드가 엉겁결에 그것을 품에 안아 받았다.
하렌의 잘린 머리통이었다.
“히, 히이익!”
알프레드가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트리스탄 자작은 적이 침입했음을 직감하고 벽으로 달려가 장식용 장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외쳤다.
“경비병! 경비병! 밖에 누구 없느냐!”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대답 대신 들려온 소리가 있기는 했다.
저벅저벅.
그것은 고요한 발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