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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저 드래곤 1권(20화)
6장 심판의 날(3)


카밀카사의 주먹이 용광로 지지대를 내리쳤다. 그 요란한 굉음이 메아리가 되고 산울림이 되어 모든 이들의 가슴에 불길한 파문을 그렸다.
불길함이 현실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끼이이익…….
지지축이 우그러지자 거대한 용광로도 통째로 흔들렸다. 그리고 가드들을 향해 넘어지며 녹은 쇳물을 퍼부었다. 며칠 전 노예들에게 일어났던 재난이 이제는 가드들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낸 것이다.
“으, 으아아악!”
“자, 잠깐!”
“끄하으아아아아!”
“꺼, 꺼내 줘어억!”
모든 메탈슈트는 기본적으로 약간의 내열 및 마법방어 설계가 되어 있다. 일반적인 화공과 공격 마법에는 어지간히 버틴다는 이야기다. 그토록 견고한 방어력. 그게 메탈슈트의 무서운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해도 펄펄 끓는 쇳물을 통째로 뒤집어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속적인 열기에 메탈슈트가 견딘다 하여도 쇳물 때문에 내부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간다. 게다가 쇳물에 의해 슈트를 함부로 벗을 수도 없게 된다. 결국 착용자에게 오는 결말은 하나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듯 안타레스 여섯 기가 쇳물 속에서 버둥거리다 천천히 멈추었다. 그 안의 가드야 말을 하지 않아도 뻔했다. 통째로 익어 훈제구이가 되었을 것이니까.
화재가 급속도로 번졌다.
가드들은 카라스와 화재라는 두 거대한 적을 맞아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 가고 있었다. 그런 안타레스들 사이에 카밀카사가 내려앉았다.
번개가 내리쳤다.
아니, 그런 듯한 착각이 스쳤다.
카밀카사가 혼잡한 틈을 빠져나오는 순간 근처에 있던 안타레스 세 기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박살 나며 쓰러졌다.
천마신공이 4성의 성취를 얻으며 기존에 익히고 있던 음양소팔식과 수라혈수인의 위력 또한 배가되었다. 덕분에 그 공력을 받아 움직이는 카밀카사의 동작에도 저절로 막대한 힘이 실렸다.
카밀카사의 동체가 백귀야행의 신법을 타고 움직였다. 그러면서 오른 주먹으로는 음양소팔식을, 다른 왼쪽 장심으로는 수라혈수인을 동시에 펼쳤다.
때리고, 차고, 꺾고, 부딪고, 비틀고, 후리고, 내치고, 밀었다가, 당기고, 찍고, 올려 치고, 빼앗고, 나란히 베고, 찌르고, 일도양단!
그 모든 동작들이 힘차면서도 유려하게 이어졌다. 마치,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서 카밀카사가 홀로 한 폭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철커덕.
이윽고 그 춤이 멈추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싼 안타레스들은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구의 메탈슈트드들이 연달아 무릎을 꿇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런 메탈슈트의 동체에는 카밀카사에 의해 입은 치명적인 타격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크으윽! 제, 제기랄! 이게 어찌 된……!”
개중에는 의식을 잃지 않은 가드가 안타레스를 벗고 몸을 내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즉각 카밀카사의 공세에 전신의 뼈가 박살 나 참살당했다.
주춤.
남은 가드들의 안타레스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제 그들도 스무 대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 전력의 절반 이상이 꺾인 것이다.
게다가 시시각각 화재가 크게 번지고 있었다. 노예들도 더욱 발광하며 난리를 치고 있기도 하였다.
슈너드 남작은 이를 갈며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부관 레이하트를 불렀다.
“나는 직접 저놈을 다스려야 할 것 같군. 그러니 자네는 별도의 대원들을 추려 화재와 노예들을 진압하게.”
“분부 받들겠습니다.”
“어서 서두르게.”
“예.”
부관 레이하트는 특유의 물결치는 금발을 휘날리며 자리를 떠나갔다.
젊지만 유능한 수하다. 메탈슈트를 다룰 줄도 모르고, 무예에는 별 재주가 없지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은 누구보다도 발군이다. 잠시 그 뒷모습을 보는 슈너드 남작의 눈가에 신뢰의 빛이 떠올랐다.
이내 남작의 전용 기체, 지휘관용 안타레스급 메탈슈트인 엑자일이 거구를 드러냈다.
남작은 재빨리 착용을 마쳤다.
그의 시선이 난리의 중심에 있는 카밀카사를 향했다. 그 사이에도 카밀카사는 호쾌한 일격을 가드의 안타레스에게 선사해 공장의 폐기물과 고철 생산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남작이 짓씹듯 내뱉었다.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옴을 느꼈다.
공장의 총책임자이자 이곳의 영주인 트리스탄 자작이 살해당했다. 게다가 가드들의 메탈슈트가 대량으로 파괴되었으며 공장 시설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 모든 일들이 사적으로 몰래 메탈슈트를 제작한, 3구역 노예 한 놈의 손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이게 상부에 알려지면 공장의 보안을 책임지는 자신은 책임 추궁을 면치 못하리라.
아니, 어쩌면 목이 날아갈지도.
“큭큭큭. 서부 연방으로 망명이라도 해야 하나.”
남작은 쓰게 웃으며 엑자일을 움직여 갔다.
이후의 일은 이후에 생각하면 된다. 일단 저 빌어먹을 노예 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일이 급선무다.
카라스도 남작의 엑자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을 일찌감치 알았다.
다른 안타레스들과 드잡이를 벌이는 와중에도 남작의 동향에 신경을 썼으니 당연한 일이다. 두 번 다시 지난번 같은 기습은 당하지 않을 작정이었기에.
자연히 싸움이 중심은 둘의 신경전으로 이어졌다. 두들겨 맞던 안타레스들이 주변에 둘러선 가운데, 그 공터의 중심에 카라스의 카밀카사와 남작의 엑자일이 마주 섰다.
남작이 말했다.
“감옥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지? 게다가 더 이상 메탈슈트를 소환하지 못하도록 봉인을 새겼었는데 말이지.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놈이로군. 재미있기도 하고.”
“꼭 답이 필요해서 묻는 건가?”
카라스가 되묻자 남작이 실소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겠지.”
서로를 보는 둘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카밀카사가 절반이 부러진 메탈슈트용 장검을 꼬나 쥐며 자세를 낮추었다. 남작의 엑자일도 거대한 배틀액스를 꺼내들었다.
키이이이이잉―!
크고 작은 두 기체에서 동시에 기성이 울렸다. 극도의 마나가 코어를 거치며 출력이 증폭되며 나는 소리였다. 슈너드 남작의 배틀엑스가 파르스름한 빛을 발했다. 카라스의 검도 빛을 머금었다. 칠흑의 검은빛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가드 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슈트 마나 웨폰…….”
마나 웨폰이란 무기에 마나를 덧씌우는 기사들의 고급 기술, 일종의 검기(劒氣)를 이름이었다. 그것을 메탈슈트에 다시 접목시킨 더 고난이도의 기술이 바로 슈트 마나 웨폰이었다.
그런데 그 절정의 기술이 바로 지금 남작과 카라스에 의해 펼쳐지고 있었다.
이내 두 기체가 서로를 향해 정면으로 충돌했다.
파아앙―!
무기를 덮은 마나가 서로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둘은 동시에 슈트 마나 웨폰을 일으켜 정면으로 부딪힌 상황.
곧 서로간의 격차가 명확하게 갈렸다.
치아아악―!
카밀카사의 검이 배틀엑스의 날 귀퉁이 일부분을 잘라버렸다. 검은 그것도 모자라 엑자일의 머리에 있던 가시 장식 하나를 베어 내기까지 했다.
“……!”
남작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나끼리 서로 부딪힌 상황에서 상대방의 무기에 서린 마나를 일방적으로 베어 냈다. 그만큼 카라스의 마나가 남작의 것보다 정순하며 밀도가 높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카라스가 남작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마나를 다룬다는 의미. 게다가 그 실력의 격차는 카밀카사의 코어가 형편없는 것임을 감안하면 더욱더 벌어진다.
꿀꺽.
남작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지난번에 저 노예 놈을 제압했을 때는 이런 재주를 부리지 않았었…… 아니, 못했었다. 그러니 자신이 그토록 손쉽게 노예 놈을 일격에 제압하여 사로잡았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삼 일이 지난 지금, 도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건지 저 노예 놈은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떨치고 있다.
불과 삼 일.
‘그게 가능한 것인가……?’
일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와 검 사이에서 보낸 남작으로선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역전의 용사. 예상을 넘어서는 카라스의 검압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배틀엑스를 휘둘렀다.
카밀카사가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확 젖혔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남작의 배틀엑스가 찢어발겼다. 조금만 늦게 피했으면 카밀카사는 두 동강이 났으리라.
카라스의 매서운 반격이 곧바로 이어졌다.
젖혔던 몸을 비틀더니 기이한 각도로 검을 찔러 냈다. 마침 헛손질을 한 직후였던 남작은 그 검첨에 자신의 목을 스스로 들이미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남작도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어깨를 비틀었다.
엑자일의 견갑이 카밀카사의 검에 의해 절반이나 썰려 나갔다.
목 대신 어깨의 일부를 내어준 것이다.
“크으!”
정말로 만만치 않은 상대다.
그것을 인지한 남작의 몸에서 급속도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런 육체의 반응과는 별개로 남작의 이성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남작은 말 그대로 검에 닳고 적군의 피에 절여진 베테랑이었다. 그는 카라스의 실력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리고 공방을 이어가면서도 카라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번득였다.
그러자 엑자일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카아앙―!
카밀카사의 검이 엑자일의 흉부 장갑을 절반쯤 파고들다가 튕겨 나왔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엑자일의 장갑판 자체가 너무 두터운데다 남작이 방어에 마나를 일부 사용했기 때문에 그 이상은 손상을 입힐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두터운 방어력으로 버티며 일격에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움직임이다. 그런 남작의 의도를 단박에 눈치챈 카라스가 잔혹하게 웃었다.
“애쓰는군.”
카밀카사는 더욱 폭풍 같은 공세를 퍼부었다.
카카카콱!
콰지직!
쇳가루가 튀었다.
엑자일의 동체에 깊숙한 상흔이 연달아 새겨졌다.
남작은 반격을 가하려 하였다. 카라스의 예상대로, 두터운 장갑과 월등한 메탈슈트의 성능을 바탕으로 상대의 공세를 무력화시키고 일격에 반전을 노리는 것, 그것이 남작의 노림수였다.
하지만 남작은 카라스의 경지를 너무나도 잘못 짚었다. 이미 카라스의 무위는 남작 같은 일반적인 무인의 이해를 넘어선 불가지(不可知)의 경지의 초입으로 접어들어 있었기에.
서걱.
“……!”
엑자일의 배틀액스가 일격에 잘렸다. 믿을 수가 없는 장면이다. 남작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밀카사의 왼손이 미끄러지듯 흘러와 엑자일의 흉부 장갑판 위로 내려앉았다.
그랬다.
말 그대로 흘러왔다.
높은 곳에 있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카밀카사의 왼손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동하였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움직임. 그 한 번의 단순한 동작 속에서 남작은 아름다움을 느꼈다. 너무나 안성맞춤으로 자연스러워 카밀카사의 손이 와야 할 곳으로 당연히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남작이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카라스의 일장에는 보다 깊어진 수라혈수인의 성취가 그대로 정화로서 녹아들어 있었기에.
또한 그 결과는 사뭇 파괴적이었다.
“하!”
일진 기합과 함께 한 줄기 장력이 카밀카사의 장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엑자일의 두터운 흉부 장갑에는 아무런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장력의 정체가 수라혈수인의 침투경(浸透勁)이었기 때문이었다.
침투경은 물체를 투과하는 성질을 지닌다. 때문에 내부에만 타격을 입힌다. 이 기법에 정통한 고수는 바위를 쪼갤 힘으로 날계란을 치고도 껍질에 아무런 손상 없이 안쪽의 노른자만을 파괴할 수 있다.
바로 지금의 카라스처럼.
“커으윽!”
별안간 남작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그로선 도저히 예상도 못했던 불의의 일격이었다.
그 일격으로 인해 남작의 척추에 금이 가고 갈빗대가 박살 났다. 또한 내부의 장기가 진탕되어 내출혈이 일어났다. 심각한 중상이었다.
“끄…… 으…….”
남작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았지만 이미 그의 몸에는 더 이상의 기력이 남지 않았다.
끼리릭.
엑자일의 무릎이 풀어졌다. 내부의 남작으로부터 마나의 공급이 끊기자 동작이 멈춰 버린 것이었다.
카밀카사가 땅으로 내려섰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엑자일의 거구가 굉음을 울리며 쓰러졌다.
카라스는 더 이상 남작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굳이 더 이상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다. 침투경에 당한 이상 운이 좋아 살아나 봐야 수족을 못 쓰는 폐인이 될 뿐이니까.
그는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나머지 안타레스들을 간단히 처리하였다.
이로써 이제 더는 그를 막을 수 있는 자가 공장에 남지 않았다.
카라스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때였다.
그의 뇌리로 카밀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코어. 코어를…….
단 한 번도 먼저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없는 카밀카사였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로? 카라스가 반문하였다. 그러자 카밀카사의 대답이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 나는 저놈들의 코어를 흡수하고 싶다.
그러면서 카밀카사의 한쪽 팔이 저절로 움직여 쓰러진 엑자일과 다른 안타레스들을 가리켰다.
‘코어를……?’
카라스가 속으로 내뱉은 한 마디에 카밀카사가 열광적으로 긍정하였다. 카라스의 머릿속으로 굶주린 맹수처럼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그렇다. 잡아먹는다.
‘…….’
카라스는 입을 다물었다.
메탈슈트가 다른 메탈슈트의 코어를 잡아먹다니.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일이다.
카라스는 그 원인을 단번에 파악했다.
새로 익힌 북명신공 때문이다.
다른 메탈슈트의 코어를 원하는 카밀카사. 주변의 기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자신의 북명신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