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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2화)
1. 바이엘 백작가(2)


스컬은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부라렸다. 살펴만 보고 바로 복수행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그러기는 시작부터 틀린 상황이었다.
우지끈!
화가 나 힘이 가해진 탓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소리가 났다.
“누구?”
침대에 걸터앉은 채 눈을 감고 있던 한센의 고개가 창밖으로 돌려졌다.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검은 레더메일과 망토를 하고 있는 금발의 남자였다.
“누구냐!”
힘이 없는 음성이었지만 당당했다. 몸에 독 기운이 퍼져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꼿꼿하게 몸을 세우는 한센을 보며 스컬은 창문을 뛰어 넘었다.
“네가 한센이냐?”
“그렇다. 그러는 귀하는 누구이기에 무례하게 창문을 넘어오는 것이오?”
귀족가의 자제답게 하오체를 써 가며 당당하게 대꾸했다.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한센을 보며 스컬이 말했다.
“네 외할아버지가 보내서 왔다.”
“외, 외할아버지? 거짓말 마라. 나에게는 외할아버지가 없다!”
강하게 부정하는 한센은 의심이 중첩된 시선으로 스컬을 노려보았다.
“필리아스 에드몬, 내 스승님께서 네 외할아버지라고 했다. 돌아가시면서 너를 돌봐주라고 하셨고.”
“자, 잠깐만!”
필리아스 에드몬이라는 이름을 들은 한센은 멍한 표정으로 모친의 이름을 떠올렸다.
‘일라이자 폰 바이엘… 일라이자 에드몬… 어머니의 혼전 이름…….’
에드몬이라는 성은 분명 자신의 모친이 처녀 적에 썼던 성이었다. 그렇다면 외할아버지라고 했던 필리아스 에드몬이 진짜일 가능성이 높았다. 모친의 이름을 아는 것은 자신과 누나, 그리고 아버지인 바이엘 백작 외에는 없었다.
“외할아버지가 없다 말한다면야 굳이 너를 돌봐줘야 할 이유가 없어져서 나는 좋다만.”
스컬은 진심으로 이 어린 꼬맹이가 외할아버지가 없다고 해 주기를 바랐다. 자신은 스승인 에드몬의 유언을 어기지 않아서 좋은 일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그만이었다.
“정말이군요. 내 외할아버지께서 보냈다는 말이…….”
한센은 스컬이 한 말을 기억하다 슬픈 표정을 지었다. 죽은 스승이라는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맞다니까 그러네.”
휘청!
한센은 긴장이 풀려서인지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거렸다. 금세라도 넘어지려고 하는 한센을 스컬이 어느새 다가가 부축했다.
“괜찮으냐?”
“으음… 아! 괜찮아요.”
침대에 한센을 앉힌 스컬은 마나로드에 흐르는 기운을 살짝 느껴 보았다.
‘지독한 독이다. 차가운 성질을 지닌 것으로 보아 신경독인 거 같은데… 마나의 흐름을 흩어 버리는 힘까지 있는 놈이라니.’
독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다. 그중 한센이 중독되어 버린 독은 신경을 마비시켜 서서히 죽어 가게끔 만드는 독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걸린 이상 독쯤이야 뭐… 후훗!’
독은 얼마든지 해독할 자신이 있었다. 해독제가 없더라도 자신이 익히고 있는 사문의 카오스 마나 명상법의 힘이라면 충분했다.
“중독된 것은 알고 있냐?”
“…….”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한센은 우울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마! 네가 걸린 독은…….”
“이름이 뭐예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센이 물은 것은 스컬의 이름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라 스컬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 했다.
“엘가드 스컬… 아니 엘가드 S. 에드몬 남작이다.”
본명 대신 스승인 에드몬의 작위를 사용하기로 했다. 귀족가인 바이엘 백작가에서라면 그것이 더 유용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것 중에 에드몬 남작가에 대한 것도 있었기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에드몬 남작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한센 폰 바이엘입니다.”
정식으로 귀족의 예법에 맞춰 한센이 인사했고 스컬은 약식으로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반갑다. 스승님께서 너희를 돌봐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 해서 묻는 말이다만… 무엇을 도와주었으면 되겠느냐?”
한센은 검은 레더메일과 망토를 착용하고 있는 엘가드 S. 에드몬 남작을 천천히 살폈다.
금발에 수염 없는 단정한 얼굴에 나이는 이제 스무 살을 넘어 서른 살로 넘어가는 듯 보였다. 깨끗한 피부를 지닌 귀족들 같지 않게 햇볕에 많이 그을린 것도 달라 보였다. 다만 키가 그리 크지 않았고 기사들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이 없는 점 때문에 추측하기가 힘들었다.
“남작님은 기사이신가요?”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지닌 귀족은 대부분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연병장 같은 곳에서 검을 수련하기에 얼굴이 하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비슷하다. 나 역시 검을 쓰니까.”
해결사 내지는 어쌔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비슷하다는 말로 정체를 숨겨야 했다.
“그런데 그걸 왜 묻지?”
“콜록콜록!”
파리한 안색에 심하게 기침을 하자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위독해 보였다.
“그럼 저를 도와주실 수 없으실 거예요. 루나 신전의 신관이 마나가 흩어지는 병에 걸렸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신성력도 소용이 없는 거라고…….”
한센은 신관의 말을 믿었다. 써클은 높지 않았지만 견습 마법사였고 마나홀에서 마나가 흩어지는 증상을 스스로 겪었으니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신관이라는 놈이 거짓말을 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센은 놀란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에 힘이 없어 실례임을 알면서도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독이다.”
독이라는 말에 한센은 흥분과 놀람으로 심하게 떨었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것을 배운자답게 자신을 컨트롤했다.
“그게 확실한 건가요?”
“정확하다. 마나가 흩어지는 것도 독 때문일 거다. 기운을 흩어 버리는 독이면 증상도 그렇게 나타날 거니까.”
“해독하실 수 있나요?”
“물론. 해독약이 없어도 방법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독을 건 사람에게서 해독약을 훔쳐 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죽이려고 하는 자라면 해독약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거기다 신관을 매수해서 병이라고 속일 정도의 악심이라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마나를 흩어 버리는 독이라지만 그 능력을 상회하는 마나로 밀어내면… 결국은 밀리는 것은 독이다.’
거기까지 생각할 때 한센이 굳은 결심을 했는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요.”
“말해 보거라.”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정식으로 초대할게요. 공식적으로 방문하셔서 저를 치료해 주세요. 그렇게 해 주시겠어요?”
독을 치유하는 것은 그것을 쓴 적이 모르게 하는 것이 유리했지만,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방문하여 치료를 부탁하는 것은 대놓고 적을 흔들려고 하는 것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린 소년이 거기까지 생각했다는 것이 의외였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좋다. 여관에 머물고 있을 것이니 정식으로 초대해라. 준비는 내 화끈하게 해 올 것이니 기대하고.”
스컬은 치료하는 자리에서 더욱 강렬한 쇼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암중에 숨어서 한센을 죽이려 하는 자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지에 여관은 10개 정도였다. 마법사가 영주로 있는 마법 영지, 그것도 인챈트 학파의 마법사이기에 상단의 왕래가 활발한 탓이었다. 상점도 여러 곳이 있어서 예전의 성세가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상당히 빛이 바래 있었다. 손님이 줄어 상점이 문 닫아 비어 있는 건물도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던 것이다.
똑똑!
“저 손님!”
여관의 1인실 침대에 기대어 책을 보던 스컬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엘가드 S. 에드몬 남작님을 찾는 영주성의 기사님이 계신데 혹시 맞으신가 해서요.”
“맞네. 내가 에드몬 남작이네만.”
하루도 안 돼서 자신을 데리러 보냈다는 것에 한센이라는 아이의 행동력에 합격점을 주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슨 무례인가!”
스컬은 인상을 찡그리며 들어온 기사를 타박했다.
“죄송합니다. 워낙 다급한 사안이라 실례를 무릅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허리 숙여 사과하는 기사였다.
“흐음… 사과를 하니 받아들이지.”
스컬이 사과를 받아들이자 기사는 머리를 한 번 더 숙이고 난 후, 사정을 설명했다.
“혹시 에드몬 남작님께서 이공자 한센 님의 외숙부이신 에드몬 남작님이십니까?”
‘외숙부? 후훗! 그것도 나쁘진 않지.’
스승인 에드몬의 딸 일라이자는 백작과 눈이 맞아 도망치듯 사라진 사람이었다. 외가와는 아무런 교류도 없었고 백작가의 사람들은 에드몬 남작가에 대한 것을 잊고 살아왔었다. 그러던 차에 에드몬 남작이 등장했으니, 암중에서 한센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변수의 등장을 매우 꺼려했을 것이었다.
“맞네. 어제 하루 푹 쉬고 오늘은 조카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와 주었군.”
“그러셨군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영주성으로 가시지요.”
“그러세.”
젊은 기사의 안내를 받아 스컬은 유람이라도 가듯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백작성은 이공자 한센의 외숙부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백작부인의 방에 모인 사람들도 덩달아 바빠진 상태였다.
“정체는 알아봤나요?”
풍성한 곱슬머리를 티아라로 고정하여 뒤로 넘긴 전형적인 중년의 귀족 부인의 모습을 한 백작부인은 심복인 집사장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미소에 집사장 폴슨은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의뢰만 해 두었습니다.”
“괜찮아요. 시간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아니 집사장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기품이 넘쳐흐르는 백작부인의 언행에 그녀를 아는 부하들은 더욱 몸을 낮췄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자가 직접 찾아온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한센, 그 아이가 백작에게 그에 대한 말을 했냐는 것이에요.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있어야 할까요? 대답들을 해 보세요.”
남편인 바이엘 백작을 칭할 때도 그냥 백작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음성은 매우 차가웠다.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감시를 더욱 늘리겠습니다.”
집사장과 백작부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단장 마크는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낮추며 대답했다.
“잘들 하세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다들 아실 거예요. 그러니… 한 치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어요?”
“네, 부인!”
“명심하겠습니다.”
심복들이 대답하자 백작부인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센, 그 아이는 외숙부라는 그자의 정체가 드러날 때까지 그냥 놔두세요. 당분간은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집사장이 대답하자 백작부인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기사단장 마크에게 말했다.
“마크 단장은 미리 블러드 드래곤에 의뢰를 하세요. A급 이상의 어쌔신 10명 정도면 될 거예요. 언제 사용할지 모르니 영내에 대기시켜 놓는 것이 좋을 거예요.”
백작부인은 외숙부라고 봐 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차지하기로 마음먹은 백작가의 모든 것에서 연적이었던 일라이자의 흔적을 지우기로 했다. 깨끗한, 한 점의 티클도 남아 있지 않은 그런 곳을 원했다.

“어서 오게. 내가 일라이자의 남편이자 이 아이들의 부친인 일로이드 폰 바이엘 백작일세.”
마른 듯한 체구의 평균키를 살짝 까먹는 백작이 스컬을 맞이했다. 마법사라더니 상당히 날카로운 눈매를 지녔지만 어딘지 모르게 암울했다. 거기에 목소리 자체에서도 자신감이 결여된 것이 상당히 위축된 삶을 살아온 듯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엘가드 S. 에드몬입니다.”
“하하! 20년 만에 처남을 보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네.”
처남이라는 말에 스컬은 빙긋이 미소 지었다. 따지고 보면 제자나 아들이나 동급으로 치부하면 아이들의 삼촌이라는 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선대 에드몬 남작이신 선친께서 돌아가시면서 조카들은 잘 지내는지 보고 오라 하셨기에 왔습니다. 아이들은 잘 지내는지 모르겠군요.”
눈에 힘을 주며 꼭 백작에게 질책을 하듯이 톤을 높여가면 물었다. 그것을 알았는지 백작의 눈가가 살짝 흔들렸다.
“내 부덕의 소치인지 한센이 많이 아프다네. 루나의 신관이 한 말로는 마나가 흩어지는 천형을 앓고 있다고 하네. 지금의 치료술로는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말이야.”
일반적인 독이었다면 마법사인 백작도 눈치를 챘을 것이었다. 단지 한센에게 걸린 독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천적인 기운을 잡아먹는 독 아닌 독이었다. 그런 독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병증으로 여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뭐라구요? 그게 정말입니까?”
깜짝 놀란 듯이 행동하며 스컬은 백작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면서 빠르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제국에서 손에 꼽히는 치료술사이기도 합니다. 조카를 보여 주십시오. 제가 한 번 봐야겠습니다.”
스컬이 급하게 말하자 백작도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래 주겠나? 같이 가세.”
“그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