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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3화)
1. 바이엘 백작가(3)


백작이 앞장서서 가자 스컬은 그 뒤를 바짝 따라 붙으며 한센이 누워 있을 방으로 향했다.
“여보, 어딜 가세요?”
하지만 방문을 나서기도 전에 백작부인이 등장했다. 그녀는 기사단장과 몇몇 시종들을 거느린 채 문을 막고 있었다.
“아! 어서 오시오. 한센의 외숙인 엘가드 S. 에드몬 남작이라오. 뛰어난 치료술사라기에 한센을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오. 같이 가시겠소?”
“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백작부인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흔들림은 없었지만 힘이 느껴지지 않는 음성에서 심정인 동요가 상당함을 드러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에드몬 남작입니다.”
스컬은 에드몬이라고만 밝히고 살짝 머리를 숙였다. 왼쪽 입꼬리가 올라가 있고 눈이 살짝 웃고 있는 본새가 ‘넌 끝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반가워요. 카운테스 비욘드 가일러스 폰 바이엘이에요.”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하는 백작부인의 눈빛이 도전적으로 변했다. 그 눈빛은 ‘어디 해 볼테면 해 봐라, 너 따위는 알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같이 가시겠소? 아이들의 외숙이 마음이 급한 듯해서 말이오.”
“당연히 그래야죠. 먼저 가세요.”
“그럽시다.”
백작이 다시 길을 나서고 인원이 두 배로 늘어난 채 한센의 방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외숙부.”
한센은 더욱 처량해 보이는 연기를 하며 힘겹게 인사했다. 한센의 옆에 앉아서 간병을 하는 십 대 후반의 아가씨가 일어나 덩달아 인사했다.
“카트리나예요, 외숙.”
두 아이의 인사에 스컬은 과장된 행동을 보이며 두 아이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이 한센하고 카트리나구나. 내 진즉에 찾아봤어야 하는데 미안하구나.”
침상으로 다가가 두 아이를 껴안은 스컬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내가 왔으니 이런 질병 따위는 한방에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거라.”
“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
카트리나는 외숙의 등장이 반갑지 않은지 말이 없었다. 카트리나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것이 생면부지의 외숙이 등장한 것이니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 말하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볼수록 한센의 심기가 어린 소년 같지 않았다. 자신의 친누나에게마저 비밀을 지킬 정도로 입이 무겁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매형, 잠시 한센을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게.”
백작은 치료사라고 소개한 처남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주위를 물리라고 손짓했다.
“잠깐이면 되니 편히 눕거라.”
“네.”
스컬은 한센이 침대에 눕자 품 안에서 작은 목갑을 꺼냈다. 그리고 몇 가지 도구를 가방에서 꺼내어 늘어놓았다. 치료사들이 들고 다니는 도구들이었는데, 상처 입었을 때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수련한 탓에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 해 보렴.”
“아…….”
힘없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한센의 입에 은으로 된 작은 스틱을 물렸다. 그리고 촉진을 하기 위해 한센의 몸을 만지거나 두들겼다.
“어떤가요?”
그녀가 이렇게 한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나 하는 의아함에 백작은 부인인 비욘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직은 모르겠군요. 조금 더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채혈을 조금 해야겠군요.”
“채혈을요? 그것은…….”
비욘드는 채혈이라는 말에 막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피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 피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내 아들의 피를 채혈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크큭! 걱정 마십시오. 몇 방울이면 되니까요. 그리고 백작가가 마법사 가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가문에서 실험을 위해서라면 피 몇 방울이 아니라 몇 동이라도 아끼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거야…….”
“그렇게 하게, 처남.”
“그럼…….”
백작이 중간에 나서서 허락하자 비욘드 백작부인은 뭔가 말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급히 다물어야 했다.
“따끔할 거다.”
“괜찮아요. 외숙.”
스컬이 한센의 손가락 끝을 바늘로 살짝 딴 다음 작은 유리병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이걸 대고 있거라.”
도수 높은 술로 소독한 깨끗한 거즈를 주며 상처를 지혈하게 만들었다. 금세 피가 멈추고 스컬은 유리병 속에 몇 가지 액체를 집어넣었다.
“이것은…….”
스컬은 일부러 격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리병 속의 액체가 피와 닿자마자 검게 변하는 것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왜 그러는가?”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백작 내외가 동시에 묻자 스컬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독입니다.”
“뭐라? 그게 정말인가?”
“물론입니다. 이 유리병 속에 든 액체는 가란트 학파에서 만든 마법시약으로 독을 판별해 내는 겁니다. 특히 마나를 잡아먹는 루나틱로스트라는 독약에는 상극의 반응을 보입니다.”
루나틱로스트라는 말에 백작부인의 눈에 기광이 스쳐 지나갔지만 전혀 동요의 빛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대단한 강심장의 소유자였다.
“루나틱로스트라면… 신성력을 사용하는 루나 신전의 신관들이 마나를 완전하게 없애기 위해 만들어 냈다는 그 독약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독약은 독약이되 그들에게는 독약이 아니지요. 신성력이 자리 잡으면 마나가 사라져도 상관없으니까요. 하지만 마법사들에게는 가장 독한 독약이 되는 겁니다.”
휙 소리를 내며 신형을 틀어 백작부인을 노려보는 스컬이었다. 마치 이제 어쩔 거냐고 묻는 것 같은 그의 행동에 백작부인이 노성을 터트렸다.
“감히 그 신관이라는 자가 백작가를 속이다니… 당장 루나 신전의 그 사이비 신관을 잡아 들여야 합니다.”
모든 죄를 루나 신전의 신관에게 전가할 기세였다. 그녀가 그렇게 나오자 백작도 다른 누군가를 의심하지 못하는지 마법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레이즌 단장에게 외쳤다. 백작의 사제인 레이즌은 역시 5서클에 오른 마법사로 다른 곳에 가면 남작은 충분히 차지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지금 당장 루나 신전으로 사람을 보내 지난번 한센을 진찰했던 신관을 데려오라. 신전과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니 최대한 정중하게 모셔오도록!”
“알겠습니다.”
로브를 뒤집어 쓴 마법사들 몇이 황급히 밖으로 나가자 백작은 스컬에게 물었다.
“치료를 할 수 있겠나? 그게 무슨 독인지 알아냈으면 치료도 할 수 있을게 아닌가.”
“루나틱로스트는 치료약이 없습니다. 애초에 그들에게는 독약이 아니니 해독약을 만들 이유가 없는 물건이라서.”
스컬이 약간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자 백작부인의 눈이 미세한 변화를 일으켰다.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눈은 웃는 것을 보면 상당한 고단수가 분명했다.
“허어… 이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백작은 아들이 해독할 수 없는 독약에 당했다는 말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몰락해 가는 인챈트 학파의 수장으로 어떻게든 다시 학파를 일으키기 위해 연구에 몰두했었다. 그래서 아들이 이런 몹쓸 독에 당한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대로 돌보지 못한 지난 삶에 대한 작은 후회가 그를 더욱 힘 빠지게 만들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해독약은 없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정말인가? 방법이 있다니 그게 어떤 방법인가, 말해 주게.”
놀라 묻는 백작의 표정보다 뒤에 서 있는 백작부인의 얼굴이 더욱 가관이었다. 스컬은 은근히 놀란 그녀의 표정을 즐기며 말했다.
“오늘 하루 동안 이 방 안에 누구도 들이셔서는 안 됩니다. 그럼 내일이면 한센을 괴롭히던 루나틱로스트는 해독되어 있을 겁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이유를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무슨 방법을 쓰기에 아무도 들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건지… 답답해 죽겠네, 그려.”
백작의 말에 스컬이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치료술사들의 비기 중에 자신의 마나를 환자에게 밀어 넣어 마나로 치료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인가?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거냐고 묻는 걸세.”
백작은 마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몸속에 불어넣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의문이었다.
“가능합니다. 단!”
“꿀꺽!”
바짝 긴장한 백작이 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보자 스컬은 그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기술을 사용하는 동안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마나가 흩어져 죽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군, 그래. 알았네. 내 누구도 이 방 주위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네.”
백작이 확언하듯 말하자 스컬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시가 급한 듯하니 지금 바로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방에서 나가 주십시오. 그리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주는 것, 잊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겠네. 모두 나가지.”
백작이 먼저 나가자 백작부인이 스컬을 한 번 응시한 후 차갑게 웃으며 나갔다. 모두가 나가는 것에도 단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는데 한센의 누이인 카트리나였다.
“누구세요.”
차갑게 묻는 카트리나를 보며 한센이 힘겹게 말했다.
“누나, 내가 나중에 말할게. 그러니까 나가 있어.”
“넌 가만히 있어. 외삼촌이 있다는 말은 엄마에게 듣지 못했어. 엄마는 외동딸이란 말이야.”
사기꾼을 보듯이 말하는 카트리나에게 스컬은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네 외할아버지가 보내서 왔다. 그러니 잠자코 나가 있어라. 동생이 독에 중독되는 동안 그것도 알아내지 못한 네가 나설 자리는 아닌 것 같군.”
차가운 독설에 카트리나의 입술이 묘하게 비틀렸다. 하얀 피부에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카트리나는 이제 19살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 미녀였다. 푸른 바다를 담아놓은 것 같은 눈동자가 시원스러움을 더해 주는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인해 붉게 변해 갔다.
“이익! 아무리 외할아버지가…….”
“닥치고 나가. 네 동생은 한시가 급하니까. 풋! 네 동생을 죽이려면 안 나가도 상관없겠지만.”
말을 끊으며 더한 독설로 마무리하자 카트리나는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였다.
“얘야, 그만 나오려무나.”
방 밖에서 백작이 부르자 카트리나는 마지못해 밖으로 나섰다.
“내 동생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용서하지 않겠어요.”
“그러든가.”
“흥!”
차가운 콧방귀를 남긴 채 카트리나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둘만 남게 된 스컬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숨 좀 돌리고 시작하자.”
“콜록콜록… 그러세요. 하아…….”
한센은 힘에 겨운지 기침을 심하게 하며 괴로워했다. 그런 그를 보며 스컬은 주변으로 기운을 퍼트려 보았다.
‘방문 밖에 모두 몰려 있군. 다른 곳은… 괜찮군.’
아직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 방으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한 것은 백작부인인 비욘드를 꾀이기 위함이었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으니 몰래 잠입하여 건드리기만 해도 한센과 스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었다. 특히 치료 도중에 마나가 역류하여 죽는다면 그보다 더 깔끔한 살인도 없을 것이었다.

츠츠츠측!
한센의 몸속으로 밀어 넣은 마나가 맹렬하게 마나로드를 타고 움직였다. 그러자 몸 안에 잠재되어 있던 독성이 마나를 잡아먹기 위해 덩달아 맹렬하게 날뛰었다. 마나를 먹으면서 더욱 덩치를 키우는 루나틱로스트의 독효가 기세를 울리자 밀어 넣은 마나가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더 빠르게!’
마나로드의 마나를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익히고 있는 카오스 마나 명상법은 총 3단계로 나눠져 있었다. 그중 자신이 터득하고 있는 것은 2단계로 몸 안에 2개의 서클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 마나를 응축시켜 담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아래쪽에 자리 잡은 서클에서 마나를 움직였다.
쿠콰콰쾅!
한센의 마나로드를 파괴할 듯이 밀려들어가는 마나가 더욱 속도를 올리며 이동했다. 그러자 마나에 맛을 들인 독들이 그 마나를 따라 움직였다.
‘마나홀은 안되고… 독을 태워 버릴 곳은 거기뿐인가?’
카오스 마나 명상법은 3곳에 마나홀을 만든다. 마법사들의 명상법은 심장에 홀을 만들고 그 주위를 감싸게 하는 것으로 마나서클을 만들었다. 마나홀에서 독을 태웠다가는 심장에 무리를 죽어 자칫 쇼크사를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2단계!’
한 바퀴를 완전하게 돌린 다음 2번째 마나홀의 마나까지 동원하여 밀어 넣었다. 그러자 마나는 더욱 강력해진 힘을 바탕으로 마나로드를 타고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