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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4화)
1. 바이엘 백작가(3)
‘카오스 마나 명상법의 숨은 힘은 마나의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이지… 그래서 루나틱로스트도 역으로 잡아먹을 수 있는 것이다!’
강렬한 기운을 폭사해 내며 마나를 역으로 되돌렸다. 이제껏 도망가기만 하던 마나가 하복부의 마나홀을 만들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공간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츠츠츠츠측!
엄청난 기운의 파동이 한센의 몸 안에서 발원하여 방 안 전체로 퍼져 나갔다.
“오옷! 엄청난 마나의 파동입니다.”
방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백작에게 학파의 마법사 하나가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처남이 대단한 실력자였던 모양일세.”
“이 정도면 족히 6서클의 마법사의 마나는 넘지 싶습니다.”
“으음… 그, 그렇겠지.”
백작은 5서클의 지배자였다. 자신의 마나를 능가하는 막대한 마나의 파동에 부러움을 드러냈다.
“단장. 잠깐, 나 좀 봅시다.”
백작과 마법사의 대화를 들으며 백작부인은 차가워진 눈빛으로 기사단장을 불렀다. 마법사의 영지인 이곳에서 기사들은 찬밥대우였고 그랬기에 기사단장이 백작부인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는 부인의 미래를 보장해 주겠다는 간단한 말에 넘어갔었다.
“부르셨습니까?”
속삭이듯 말하자 비욘드 백작부인이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대답했다.
“당장 어쌔신 하나를 투입하세요. 창문 밖에서 조금만 건드려도 저들은 죽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서두르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두고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 안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한센의 외숙이라는 자의 실력이 상상 이상의 자라면 지금 해치워야 했다. 그리고 비욘드는 치료가 하루 종일 될 거라는 말을 믿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에 서두르라는 말을 하며 단장에게 지시를 내렸고 단장은 대답대신 한 차례 머리를 숙여 보인 후 밖으로 뛰어나갔다. 모두 방 안의 동정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밖에서는 모르지만 치료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혼돈의 마나, 카오스 마나 명상법의 공능으로 생성된 스컬의 마나는 창세 이전의 기운이 나뉘지 않았던 그때의 마나였다. 마나만 잡아먹는 루나틱로스트의 기운은 스컬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공동에서 그의 마나와 충돌하며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마나에 뜨거움의 의지를 입힌다. 세상을 태울 것처럼 뜨거운 기운으로 변하라!’
마나를 뜨겁게 변화시켰다. 마나의 성질은 무성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주인이 익힌 마나 명상법에 따라 양의 기운을 띌 수도, 또 음의 기운을 띌 수도 있는 것이었다. 지금 스컬은 자신의 마나를 뜨거운 양의 기운으로 변화시켰다.
츠츠츠츠츳!
뜨겁게 변한 마나가 루나틱로스트의 기운을 덮치자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한 독성은 몸부림을 치며 그의 마나를 공격했다.
스르르륵!
한센의 코를 타고 검은 기류가 빠져 나왔다. 뜨거운 스컬의 마나를 이기지 못한 독이 타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으윽… 윽!”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말에 고통을 이기지 못한 한센이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참았다. 얼마나 심하게 깨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배어났다.
‘조금만 더 참아라. 이제 다됐다!’
막바지로 치닫는 것에 스컬은 더욱 강하게 마나를 집어넣으며 독을 태워나갔다.
콰아아아!
마침내 마지막 마나의 흐름을 막던 루나틱로스트의 잔재마저 태워 낼 수 있었다. 막힘없이 질주하는 마나의 흐름에 스컬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마나를 회수했다.
“후아…….”
저절로 힘이 들었다는 탄성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고생…….”
털썩!
끝까지 참아 냈던 한센의 얼굴에 모처럼 편안함이 묻어나왔다. 그러나 치열한 격전장이 되었던 몸 안의 고통이 너무 컸던 탓에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괜찮은 녀석이로군.’
참을성이 대단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부를 단검으로 후벼 파는 고통이었을 것이었다. 그것을 이겨 낸 것이니 어린아이답지 않은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아차!”
마나의 흐름이 끊기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내일 날이 밝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마나의 움직임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죽음을 향해 돌진해 오는 존재가 있을 것이 아니던가.
츠츠츠측!
다시 마나를 움직였다. 밖으로 드러나게끔 마나로드를 따라 강렬하게 회전을 시켰다. 한센의 독을 치료하기 위해 움직였던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나의 파동은 상당한 수준이라 의심을 사지는 않을 것이었다.
2. 후계싸움!(1)
시간은 흐르고 저녁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갔다. 치료를 위해 아무도 출입하지 말라고 했던 당부 탓에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만 초조하게 오갔다.
“아…….”
한센은 깜빡 잠들었던 것을 느끼며 화들짝 깨어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한센은 침상 바로 아래에 이상한 자세로 앉아 있는 스컬을 발견하고는 안심했다는 투로 말했다.
“거기 계셨군요.”
“쉿! 목소리가 크다.”
“아…….”
아직 밖에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은 한센이 깨어난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되었다. 그것을 깨달은 한센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무슨 자세인가요? 그런 자세로 하는 명상법은 처음이라서요.”
생각해 보면 상당히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의자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었으니 항문을 바짝 조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좌식이 편해 보일 수는 없었다.
“처음은 불편할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수련을 하면 마나가 더 많이 모인다.”
“그런가요? 그런데요, 그건 왜 그런 거죠?”
호기심을 드러내는 한센의 물음에 스컬이 대답했다.
“마나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많으면 많을수록 모이는 것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하지. 명상할 때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런 건 또 처음 들어요.”
“해 보면 너도 알게 될 거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할래?”
심지가 굳고 나이답지 않게 사리 판단이 좋은 아이이니 자신의 뜻대로 하기보다는 의견을 구했다. 백작부인의 행동을 보면 그녀가 한센을 중독시키고 죽이려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증거가 없어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백작부인이지만 증거가 없었다. 어설프게 해 봐야 오히려 어머니를 모함하는 불효자식밖에 안 되는 일이었다. 명확한 물증이 있어야 했다. 그것만 손에 쥔다면 부친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함정을 파 두었다. 지금 이 짓을 하는 이유도 그래서이고. 다만… 후우! 아니다.”
스컬은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백작부인을 죽여줄까 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그게 가장 편했지만 어린 아이에게 살인을 교사하라고 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에드몬 남작님, 제 곁에 머물면서 누나와 저를 지켜 주실 수 있나요?”
“…….”
빨리 스승인 에드몬을 죽이고 어쌔신 길드를 통째로 가지고 가 버린 트리알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스승의 그 마지막 유언이 발목을 잡았다. 그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아이들이 잘살아가는 모습을 지켜 주는 것이 제자의 도리라 생각되어졌다.
‘당분간만… 정 안되면 그녀만 제거하고 떠나도 될 것이니…….’
결심이 서자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당분간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는 있어 주마.”
“감사합니다. 에드몬 남작님.”
한센이 에드몬 남작이라고 호칭하자 스컬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호칭은 계속해서 외삼촌으로 해라. 혹시라도 누가 듣게 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외삼촌.”
외숙부라고 하기에는 스컬의 나이가 어렸다. 이제 겨우 10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숙부라고 부르는 것은 서로 간에 꺼려지는 일이었다.
“잠깐!”
그때, 스컬은 미세한 기운이 접근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 방에서 치료를 구실삼아 나가지 않은지 6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서야 저들이 움직인 것이었다.
“왜요?”
“침대에 누워라. 어서!”
“네? 알았어요.”
한센은 침대에 누워 다시 눈을 감았고 그 머리맡에 앉은 스컬은 열심히 치료하는 흉내를 내며 다가오는 적을 기다렸다.
스스스슷!
미세한 기척의 적은 어느새 창문 밖에 다가와 있었다.
스르륵!
나무로 만들어진 창이 살짝 열리고 상대는 그 틈으로 기다란 대롱을 밀어 넣었다.
‘독인가?’
가장 효과적인 암살 수법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에게 독을 이용하는 것은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치료에 열중인 상황이라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핏!
대롱에서 작은 침이 날아들었다. 몸에 맞으면 녹아드는 재질의 침일 것은 어쌔신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스스슷!
침이 스컬에게 적중하려는 그 순간 그의 신형이 꺼지듯이 사라졌다.
‘하, 함정!’
블러드 드래곤은 제국에서 활약하는 4대 어쌔신 길드 중 하나였다. 스컬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 하여 키우려고 했던 쉐도우문 길드와는 쌍벽을 이루는 막강한 조직이었다.
그 조직의 A급 어쌔신인 잔혹한 빌리라 불리는 그는 간단한 의뢰라고 하여 급히 파견을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날린 독침을 보이지도 않는 움직임으로 피해 낸 것에 놀라 서둘러 도주를 선택했다.
사사사삭!
잔혹한 빌리는 건틀렛에 설치되어 있는 갈고리를 사용하여 벽을 타고 순식간에 올라갔다. 아래쪽에 배치되어 있어야 할 병력은 이미 기사단장이 빼돌려 놓은 상태라 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지붕에 연결해 놓은 밧줄로 곧장 영주성 밖까지 나갈 수 있었다. 지금은 날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라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었다.
“어딜 가려고 하지?”
“헉!”
빌리는 지붕으로 올라서려고 할 때 들려온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대단한 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의 움직임보다 월등히 빠르게 지붕에 먼저 와 있을 정도라는 것이 놀라웠다.
“죽엇!”
공포를 잊기 위해 더욱 악을 내보이며 클러를 빠르게 찔렀다. 건틀렛에 삐죽 튀어 나와 있는 클러의 날은 푸르게 물들어 있어 스치기만 해도 독에 당해 죽을 것이었다.
쉬잇!
순간적으로 움직인 스컬의 신형이 클러를 찔러 넣으려고 하던 빌리의 옆을 통과해 그 뒤로 이동해 있었다.
“보이지도… 끄륵!”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지는 빌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시작해 볼까!”
스컬은 빌리를 옆구리에 낀 채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급격하게 떨어지던 그는 한센의 창문 앞에 이르자 간단한 동작으로 벽을 잡고 훌쩍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누군가요?”
“어쌔신이다.”
어쌔신이라는 말에 한센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컬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에 들려있는 어쌔신의 몸을 손가락으로 한 번 찔러보았다.
“죽었나요?”
“아니, 누가 의뢰를 했는지 알아내야지.”
“맞다. 어쌔신들은 의뢰를 실패하면 자살하지 않아요? 난 그렇게 들었는데.”
이미 내려오면서 사로잡은 어쌔신의 어금니에 들어 있던 독단을 빼냈었다. 어쌔신은 S등급이 되어야 비로써 독단을 빼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걱정마라. 절대 자살할 수 없을 테니까.”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자살하지 못한다. 어쌔신의 수법과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것만은 확실하게 자부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
“네.”
스컬은 어쌔신을 침대 옆에 눕혀 놓은 후 문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천천히 열어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치료가 끝났습니다.”
“오오! 한센은 무사한가?”
백작이 제일 먼저 달려와 한센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스컬의 뒤를 따라 나온 한센이 화색이 도는 얼굴을 보이며 대답했다.
“걱정을 끼쳐서 죄송해요, 아버지.”
“아니다. 이렇게 무사한 것만 봐도 이 아비는 기쁘구나.”
백작은 아직 방 안의 전경을 보지 못해 그저 기뻐하며 아들의 얼굴을 매만졌다.
“매형, 저길 좀 보십시오.”
“응? 왜 그러나?”
백작은 스컬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시선을 돌렸던 백작은 점점 인상이 찡그려졌다.
“저자는 누군가?”
“저를 암습하려던 자입니다. 하마터면 조카와 함께 죽을 뻔했습니다. 크큭!”
싸늘하게 조소하는 스컬은 문 바로 앞에 서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작부인을 살폈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눈은 여전히 싸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