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엘가드 스컬 1권 (5화)
2. 후계싸움!(2)
“감히… 내 성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단장! 단장은 어디 있는가?”
백작이 노호성을 터트리며 기사단장을 찾았다. 그러자 비욘드 백작부인의 명령을 받고 나갔던 기사단장이 황급히 달려왔다.
“찾으셨습니까?”
단장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놀란 얼굴이었다.
“당장 저놈을 감옥에 쳐 넣어라. 내 직접 저놈을 문초할 것이니라!”
작은 체구의 백작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처음 보았을 때의 어딘가 모르게 약해 보이고 암울했던 기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괜찮을까 몰라. 하긴 어디까지 적인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런데 말이야… 왜 백작이 저들을 돕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군. 크크큭!’
반드시 누군가는 저 어쌔신을 죽이려 할 것이었다. 죽이도록 놔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죽인 자를 따라가 보면 또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기사단장을 보건데 그리 뛰어난 자는 아니었다. 이제 간신히 익스퍼트 중급 정도에 들어선 마나량이 느껴졌다.
“내 저자를 문초하여 그 배후를 알아낼 것이니 처남은 너무 노여워 말게나.”
“아닙니다. 전 조카를 치료하느라 너무 힘이 들어서… 좀 쉬었으면 합니다만.”
“아, 내 정신 좀 보게. 그렇게 하게. 여봐라!”
“네, 영주님.”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집사장이 달려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약간 허둥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처남이 쉴 수 있도록 준비를 해 주게.”
“네, 그리하겠습니다.”
집사장은 서둘러 대답한 후 스컬에게 말했다.
“게스트 룸은 3층에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그럼 부탁하네. 매형, 나중에 뵙겠습니다.”
“편히 쉬게.”
다른 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스컬은 집사장의 안내를 받아 게스트 룸으로 올라갔다.
스르르륵!
땅에서 그림자 하나가 일어났다.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광경이었지만 그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갖추자 스컬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과연 누가 죽이러 올까. 기대되는걸. 크큭!’
지하 감옥의 제일 아래층은 가장 흉악한 범죄자가 갇히는 곳이었다. 백작령은 그나마 평온한 곳이어서 이곳에 수감되는 자들은 없었다. 그래서 빌리라는 어쌔신이 갇힌 감방의 맡은 편은 텅텅 비어 있었다. 어쌔신만의 비기를 사용하여 몰래 스며들어 온 스컬은 조용히 맡은 편 감방을 관찰하며 휴식을 취했다.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스컬이 감옥 맡은 편에서 자리하고 있는 사이 백작부인의 방에서는 기사단장과 몇몇 사람들이 모여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 자는 어쌔신입니다. 설마 불기야 하겠습니까?”
기사단장인 마크는 어쌔신들의 입이 상당히 무겁다는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영원히 닫혀 있는 입은 죽은 자의 입밖에 없습니다. 그걸 명심하세요.”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는 백작부인의 추상같은 말에 마크 단장은 머리를 숙였다.
“백작님께서 직접 문초를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자가 죽으면… 불호령이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마크 단장의 솔직한 말에 비욘드 백작부인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흥! 백작도 알고 있어요. 그자가 어쌔신을 빼돌려 감옥으로 보낸 것은 나에게 흔적을 지우라고 하는 것이에요. 아시겠습니까?”
비욘드의 말에 마크 단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과 처남을 죽이려 한 자를 처리하라고 빼돌려 준 것이라니 백작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것인지 의아했다.
“백작은 한센 그놈만 죽이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호호호! 만약 내 뜻을 거스르면 공작가에서 오는 지원이 끊기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아…….”
지금 바이엘 백작령은 비욘드 백작부인의 친정인 가일러스 공작가에서 지원되는 돈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기사단장인 마크도 그녀를 따르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가신들은 비욘드의 아들인 필리언이 다음 대의 백작이 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추세였다.
“내가 한센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있겠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 멍청한 남자라면… 호호호!”
나직하게 웃으며 백작을 향해 싸늘한 조소를 날리는 비욘드 백작부인은 단장에게 다시 명령했다.
“반드시 죽이세요. 독을 먹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어쌔신들이라면 그렇게 자살한다고 하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마크 단장이 어쌔신을 해결하기 위해 방을 나가자 비욘드 백작부인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짝!
“부르셨습니까?”
허공중에서 나타난 흐릿한 그림자가 형체를 갖춰갔다. 감옥으로 들어간 스컬이 보여 주었던 움직임과 너무도 유사한 움직임이었다.
“오라버니께 전하거라.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마법병단을 지원해 달라고 말이야.”
“그렇게만 전하면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이 보잘것없는 영지의 병력 중에 절반 이상이 내 수중에 있으니 그것이면 족하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스르릇!
그림자가 빛을 받아 사라지듯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저자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면 무서울 것이 없으련만… 필리언이 백작위를 물려받으면 그 때는 반드시 저들을 내 휘하로 끌어들일 것이야.”
오빠인 가일러스 공작이 얼마 전에 휘하에 끌어들인 어쌔신들이었다. 그들은 제국 최고의 실력을 지녔고 연락책으로 온 자만 하여도 S등급의 어쌔신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감옥에 갇혀 있는 멍청한 어쌔신을 고용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문을 열어라!”
감방 바깥에서 마크 단장의 명령 소리가 들렸다. 스컬은 감았던 눈을 뜨며 슬며시 앞쪽 감방을 감시했다.
‘여전히 수갑을 풀려고 하고 있고… 단장이 백작부인의 하수인인가?’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기사단장이 백작부인의 수족이라면 심각한 상황이었다. 마법사의 영지라 마법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지만 전력의 한축은 분명 기사들과 영지병들이었다. 그들이 모두 백작부인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는 소리였다.
“고생이 많네.”
마크 단장은 어쌔신에게 다가가 다독이는 듯한 말을 속삭였다. 어쌔신들도 마크 단장이 의뢰한 것을 알기에 우웁 거리며 재갈을 풀어 달라고 했다.
“우읍… 으읍읍!”
그때, 마크 단장은 작은 침을 꺼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푸욱!
고막을 찢고 들어가는 침으로 인해 어쌔신은 파들파들 떨며 마크 단장을 원통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게 사로잡힌 자체가 잘못이지. 나를 원망하지 말게나.”
그렇게 말한 마크 단장은 어쌔신이 죽는 것을 확인하며 외쳤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목청을 높여 외치는 마크 단장으로 인해 감옥은 금세 발칵 뒤집히고 간수들이 우르르 달려 내려왔다.
“찾으셨습니까요?”
“죄수가 죽었다. 어찌된 일이냐!”
마크 단장은 어쌔신이 죽었다며 간수들을 닦달했다. 자신이 한 일을 덮어 씌워야 하기에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누구냐! 어느 놈이 죄인을 죽인 것이냐!”
“저, 저희들은 아닙니다요.”
“믿어 주십시오. 오시기 전까지 분명 살아 있었습니다.”
간수들은 무릎을 꿇은 채 자신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장이 죽인 범인인 다음에는 곤욕을 면하지 못할 것이었다.
‘앞으로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
다 밝혀내 봐야 전의만 꺾일 일이었다. 스컬은 기사단장이 연류된 것을 보고 영지의 상황을 대강 추측해 낼 수 있었다. 영주도 허수아비이고 모든 실권은 백작부인인 비욘드가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센이 버텨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영지를 떠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선택일 수 있을 것이었다.
‘비욘드 백작부인… 그녀를 한 번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
마지막으로 비욘드 백작부인의 행동거지를 살필 생각이었다. 자신이 익힌 사문의 잠입술이라면 들키지 않고 그녀가 입고 있는 속옷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백작님,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루나 신전의 신관을 잡아오라 명령받았던 레이즌은 마법병단의 단장이자 영지의 실질적인 이인자였다. 그는 루나 신전으로 마법병단을 보내고 백작대신 일을 처리하다 황제가 보낸 칙명을 받았었다. 깜짝 놀란 그는 백작의 집무실로 달려왔었다.
“이번 황제도 어김없이 그 패를 꺼내들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석 달 후까지 병력을 보내라는군요.”
병력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깟 병력이야 농노들에게 장창 하나씩 들려서 보내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그들을 지휘해야 할 지휘관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분을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꼭 보내야 하나? 그 죽음의 땅으로 내 아들을 보내야 하는 거냐고 물었네.”
억눌린 듯한 백작의 음성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별수 없습니다. 다른 영지들은 첩이 낳은 자식들을 보낸다고는 합니다만…….”
첩이 낳은 자식들, 그들은 절대 제대로 된 귀족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어미가 귀족이라면 대접을 받겠지만 그게 아닌 다음에는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방법은 또 있습니다.”
“방법이 있다고? 그게 뭔가?”
“돈을 써서 사령관 주위에 배치시키면 됩니다.”
“그것은… 하아!”
대대로 마왕의 숲 원정대는 황제가 신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써먹는 레파토리였다. 말이 좋아 제국민을 위해 몬스터들의 대지라고 부르는 마왕의 숲을 정벌하는 것이지 죽으러 보내는 것과 다른 바 없었다. 신권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 철저하게 군대를 소모시킬 수 있는 자가 사령관으로 뽑혔다. 그리고 그자는 반드시 황제의 측근이었고 마지막 순간 정벌 실패를 선언하고 회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령관이 정벌 실패를 선언할 때 그의 옆에서 살아 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럼 돌아올 수 있으니 차라리 돈을 써서 사령관을 매수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레이즌 마법병단장의 말에 백작은 한숨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보통 그런 뇌물을 쓰는 것이라면 엄청난 액수여야 했다. 지금도 처가인 가일러스 공작가에서 지원을 받아 가며 영지를 꾸려 나가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시쳇말로 먹고 죽으려 해도 독약 살 돈이 없어서 못 죽는다는 판국이었다.
“그 문제는 나중에 결정할 것이니 그리 알게. 병력은 얼마나 보내야 하는지 말해 보게.”
“백작령은 500명입니다만 우리 영지는 살림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했는지 300명만 보내면 됩니다.”
농노병이라도 300명은 솔직히 부담스러운 숫자였다. 성인 남자 노예가 보통 50테론 정도에 거래되는 추세이니 얼추 1만 5천 테론의 돈이 소모되는 셈이었다. 돈이 모자라니 그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처가에 손을 벌려야 했다. 처가의 눈치를 더 봐야 한다는 것이 서글펐고 이런 결정도 자신의 뜻대로 내릴 수 없는 신세라는 것에 화가 났다.
“하아…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말인가…….”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백작을 보며 레이즌 단장은 머리를 숙였다. 자신의 사형이자 주군인 그의 어려움을 풀어 주지 못하는 무능력함에 입술만 깨물어야 했다.
“죄송합니다, 사형…….”
레이즌이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자 백작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후후! 아닐세. 그나저나 내 한 가지만 더 묻겠네. 누구를 보내는 것이 낫겠나? 자네들의 생각을 말해 주게.”
후계자는 절대 보내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기에 가신들이 이야기하는 아이 중에 하나가 마왕의 숲 원정대로 떠나야 한다. 죽을 확률이 무척 높기에 사실상 버려지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후우… 한센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이즌는 중립적인 입장이었다. 누가 영주가 되던지, 아니면 학파의 수장이 되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학파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아카데미에서 수학 중인 첫째 공자가 되는 것이 나았다.
“모두의 뜻이던가?”
지켜 주고 싶은 아이였지만 아버지이기 이전에 영주였다. 그래서 비욘드가 한센을 죽이려고 한 것을 알면서도 덮어 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한센일 수밖에 없었다. 가일러스 공작가의 지원이 끊기면 영지는 고사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두 모이라 전해 주게. 가신들까지 모두 말이야.”
“알겠습니다.”
레이즌은 백작이 마음을 결정을 내렸음을 알았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답하며 소리도 안 내도록 노력하며 물러갔다.
어쌔신의 죽음은 별다른 잡음 없이 자살로 공표되었다. 독을 제대로 압수하지 못한 것을 질책하기는 했지만 기사단장이 사과하는 것으로 끝을 맺어 버렸다.
“네 편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네 부친도 네 편은 아니었고.”
잔인한 말이지만 선택은 한센이 해야 할 몫이었다. 스컬은 그저 한센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
멍하니 앉아 있는 한센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듣는 것과 어렴풋이 생각할 때와는 그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더욱 아프고 세상에 동떨어진 느낌에 눈물까지 흘러내리려 했다.
“내가 너라면 영지를 떠나겠다. 너의 처지를 방치하고 있는 백작이라면 막지 않겠지. 아니 오히려 잘 생각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픈 말이었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영지를 떠나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비록 2서클의 마법사지만 조금만 더 수련을 한다면 용병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3서클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게 낫겠어요. 영지를 떠나 모험이라는 것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요.”
눈물을 참으며 쓸쓸하게 미소 짓는 한센은 모험을 해 보겠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덜 외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만 아니라면 스승님에게 배운 것을 알려 줘도 나쁘진 않을 아이인데.’
아쉽지만 마법사인 한센에게 스승인 에드몬의 수법을 알려 줄 수는 없었다. 자칫 파탄이 일어나면 ‘앗!’ 하는 순간에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문제였다.
“언제 떠날 생각이냐. 되도록 나와 함께 떠나는 것이 안전할 거다.”
한센이 떠난다면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줄 생각이었다. 그것으로 자신이 스승에게 입었던 은혜를 청산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