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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6화)
2. 후계싸움!(3)


“빠를수록 좋겠죠. 몸도 다 나았으니 제국의 수도로 가 볼래요.”
“수도라… 그럼 아카데미에 다니는 것은 어떻겠느냐? 그 정도는 내가 보내 줄 수 있다만.”
배신자 트리알이 길드를 몽땅 가지고 날랐지만 에드몬의 숨겨진 재산은 상당했고 그것을 물려받은 상황이라 잔돈푼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법 아카데미에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한센이 마법 아카데미에 흥미를 보이자 스컬은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을 굳혔다. 더 끼어들어 백작부인을 단칼에 죽이고 백작을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는 것도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똑똑!
“들어와.”
한센이 말하자 곧 문이 열리며 시종 하나가 들어왔다.
“한센 도련님, 영주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리고 에드몬 남작님도 같이 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스컬은 자신까지 찾는 것이 의외였다. 그러나 어쌔신이 죽었으니 그것에 대해 뭔가 말할 것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에 한센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갈 생각이냐?”
“그래야죠. 같이 가요.”
“앞장서라.”
한센과 함께 백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자리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한센의 굳은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한센, 너도 부른 거야?”
백작성의 1층의 작은 연회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카트리나가 한센을 반갑게 맞이했다. 남매지간이라 그런지 스스럼없이 동생의 팔짱을 끼며 활짝 웃었다.
“누나도?”
“중요한 이야기가 있나 보지 뭐.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외삼촌이야.”
한센이 외삼촌이라고 강하게 눈치를 주자 카트리나는 입술을 샐쭉거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인정할 수 없어.”
그녀가 뭐라고 하던 한센은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강력한 힘을 지닌 그를 믿어야 했다.
“들어가십시오. 영주님 이하 가신들께서도 전부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마워.”
한센은 시종이 문을 열어 주자 고맙다는 말을 하며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3개를 이어 붙여 길게 늘어진 곳에 양쪽으로 가신들이 앉아 있었다. 제일 상석에 앉은 백작과 비욘드 백작부인이 있었고 그 아래로 바로 레이즌과 마크 단장들이 차지했다.
“어서 오게. 처남도 그 자리에 앉게. 너희들도 거기 앉거라.”
백작의 굳은 얼굴을 보며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직감했다. 유난히 감이 발달한 스컬에게 이 어색한 분위기가 한곳으로 모이고 있다는 것도 감지했다.
‘한센이다!’
어색한 기류가 노리는 것은 한센이었고 상당히 좋지 않은 일이 그의 앞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다 모인 것 같으니 이야기를 하세요.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무게를 잡으시는 거예요?”
비욘드 백작부인도 모르는 일이었다. 레이즌과 단 둘이 이야기하고 결정까지 내린 상태에서 부른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읽게.”
“네.”
레이즌은 백작의 말에 짧게 대답한 후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황금 수실로 꾸며진 양피지 서류였다. 이렇게 꾸밀 수 있는 곳은 오직 황실뿐, 저 양피지 서류는 황실에서 내려온 포고령이었다.
“대륙력 1328년 짐이 제위에 오른 지 올해로 3년이 흘렀노라. 열과 성을 다해 제국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하던 중, 제국 북부에 있는 마왕의 숲에서 발원한 몬스터들로 인해 나의 제국민들이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음을 알았노라. 해서 짐은 생각했노라. 어떻게 해야 내 제국민들을 위험에서 구하고 이 제국을 만대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결론은 저 사악한 곳을 정벌하여 그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었노라. 제국의 모든 봉신들은 이런 짐의 뜻을 받들어 마왕의 숲 정벌군에 동참할지어다.”
길지 않은 포고문이었지만 내용은 상당히 지랄 같았다.
‘그 기류가 노리는 것이 한센이었으니 마왕의 숲 정벌대로 보내지는 것은 결국…….’
미간이 좁아졌다. 분노가 살살 일어나는 것 때문이었다.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황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니 결국 누군가는 그곳에 가야 한다.”
백작의 말에 비욘드 백작부인의 입이 좌우로 쭉 벌어졌다. 없애려고 난리를 쳤던 한센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에 티가 나게 기쁨을 드러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얼른 표정을 바꿨다.
“여보, 이를 어쩌면 좋아요?”
걱정한다는 연기를 하며 한센을 보며 말하는 것에 백작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장자인 필리언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 수 없이 한센을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그 위험한 곳으로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서…….”
고양이 쥐 생각해 준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가신들은 비욘드 백작부인이 그런 말을 하는 것에도 딱히 반박하거나 하지 않았다. 헛기침을 하며 무안함을 달래는 자들이 속출했다.
“비록 한센 공자님께서 가셔야 하겠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든 원정대가 실패를 선언할 때까지 사령관 옆에 머물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니까요.”
레이즌이 말하자 마크 단장도 거들었다.
“암요. 저희들이 공자님의 위험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래, 나도 내 친정의 힘을 빌어서 너의 안전을 지켜 주마. 그러니 걱정 말고 반년만 고생한다고 생각하렴.”
모두가 입을 모아 한센에게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백작은 눈을 감은 채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카트리나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소리를 지르려 했다.
찡긋!
스컬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게 한센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것을 본 한센의 눈이 약간 크게 떠질 때 그가 말했다.
“큭! 그럼 안 보내면 되겠군요.”
“에드몬 남작님, 아무리 한센의 외숙부라지만 이것은 가문 내의 일입니다. 대단한 무례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비욘드가 포스를 뿜어내며 스컬을 압박했다.
“죽이려고 하다가 엉뚱한 놈이 나타나 살려 놓았다. 그런데 자식 둘 중에 하나를 보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고, 그러니까 이전까지 했던 일은 싹 무시하고 걱정하는 척하며 거기 가서 죽어라? 세상 살기 참 쉽다는 생각 안 드시나?”
“뭐라구요?”
스컬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비욘드가 노성을 내지르자 기사단장인 마크와 그 휘하의 기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으려 했다.
“아무리 한센 공자님의 외삼촌이라고 해도 그런 무례는 용서할 수 없소. 사과하시오!”
기사단장인 마크가 호기롭게 나섰다. 그는 장갑을 벗어 드는 것으로 사과를 안 하면 결투를 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어리석은 놈!”
쉬이잇!
스컬이 신형을 날렸다. 자리의 끝 쪽에 있던 그가 순식간에 테이블 2개를 뛰어넘어 마크 단장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쉬잇!
언제 뽑혔는지 모를 폭이 넓은 브로드소드가 스컬의 손에 들려 있었다.
‘보, 보이지도 않았다… 이, 이자는 누구지?’
마크 단장은 목에 겨눠진 브로드소드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빼내던 장갑도 도로 손에 끼며 고개를 숙였다.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을 본 기사들은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기사라지만 상대가 돼야 검이라도 뽑아 볼 엄두가 나는 것이었다.
마크와 그 휘하의 기사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자 비욘드의 얼굴에도 놀람의 빛이 역력했다.
“누구든 덤벼라. 그놈의 목부터 베어 버릴 것이니.”
츠츠츠측!
스컬이 내뿜는 살기가 소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숨막히는 살기에 레이즌과 몇몇 사람을 빼고는 벌벌 떨었다.
“한센!”
“왜요?”
“넌 이순간부로 백작가의 후계를 포기하고 바이엘의 성을 버려라. 할 수 있겠느냐?”
바이엘의 성을 버리라는 것에 한센은 격동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에게 에드몬 남작가를 물려 주마. 어차피 백작의 위도 물려받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몰릴 바에는 그게 낫지 않겠느냐.”
예상하지 못했던 초강수였다. 바이엘의 성을 버리고 귀족이기를 포기해 버린다면 바이엘가의 후계자는 오직 한 사람, 수도에서 아카데미에 다니는 필리언이라는 비욘드가 낳은 아들이 다였다.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다. 너는 둘째 아들이라 에드몬 남작가를 물려받아도 상관없다. 바이엘의 성을 버리고 귀족이기를 포기한다고 귀족원에 보고하면 너와 바이엘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
스컬이 말하자 이제껏 묵묵히 있던 백작의 눈이 떠졌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그렇게 하겠다면 이 아비는 허락하겠다. 그간 너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이 많아 미안했는데 그렇게라도 해 줄 수 있다면 이 아비도 만족이다.”
갑작스런 백작의 말에 가신단과 비욘드 백작부인의 얼굴에 당혹이란 두 글자가 아로새겨졌다.
“여, 여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센을 에드몬 남작가로 보낸다니요.”
똥줄이 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비욘드 백작부인이 보여 주고 있었다. 한센이 귀족임을 포기하고 바이엘가의 성을 버리면 그에게 의무는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하고 자신의 아들인 필리언이 그 죽음의 숲으로 가야 할 판이었다.
“저 아이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소. 그리고 처가의 도움을 바랄 수 있는 필리언이 가는 것이 생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고려한 것이오.”
필리언이 간다면 네가 힘을 써서 가일러스 공작가를 움직일 것이란 말이었다. 틀리지 않은 그 말에 비욘드는 차갑게 웃었다.
“호호! 감히 내 아들을 그런 위험에 빠트리려 하는 건가요? 이 영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한다면 당신이 그래서는 안 돼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비욘드의 독설에도 백작은 허허로운 미소만 지었다.
“허허허! 그렇게 생각하시오?”
“지금껏 먹여 주고 키워 줬으면 은혜를 갚아야지. 뭐? 바이엘의 성을 포기해? 저런 막돼먹은 소리를 어디서 하는 것이냐?”
그녀는 한센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훗! 그러니까 막돼먹은 대로 살면 되는 거네. 포기선언을 해라, 한센!”
스컬의 말에 비욘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저자의 말대로 포기 선언을 하는 즉시 바이엘 가문의 아들이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아니, 가겠어요.”
“응? 지금 뭐라했느냐?”
한센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비욘드는 포기 선언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가 깜짝 놀라 되물으며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 그게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백작은 뒤로 빠진 채 백작부인인 비욘드가 말을 받고 있었다.
“레이즌 님!”
“왜 그러시오, 한센 공자.”
“아까 사령관의 옆에 머물 수 있도록 손을 쓰면 안 죽는다는 말씀 사실인가요?”
“물론입니다. 돈이 조금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원정에서 살아온 귀족들의 자제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레이즌의 확답이 끝나자 한센은 맑은 눈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비욘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게 할 말이 있으냐?”
“물론이에요. 제가 바이엘의 성을 포기하지 않고 가는 대신 원정대 사령관에게 줄 돈을 마련해 주세요. 가난한 가문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만드셔야 할 거예요.”
“그건… 알았다. 그렇게 하마.”
“두 번째는…….”
“두 번째? 또 있다는 말이냐?”
“당연하지요. 제 목숨 값이 그렇게 싼 줄 아셨습니까?”
어린아이답지 않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한센이 비욘드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만큼 최대한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번 원정이 끝나면 바이엘가를 떠날 거예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구요. 어머니가 제 입장이라면 앞날을 위해서 뭐를 준비해야 할까요?”
“그, 그거야 마법을 익혀서…….”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그건 놔두어도 배우게 되는 거고.”
스컬이 끼어들어 딴지를 놓았다.
“영지를 떼 주던가, 그것도 아니면 돈을 거하게 주던가 해야 하지 않겠어? 뭐 영지는 문제가 생길 테니 돈을 거하게, 진짜 거하게 주면 되겠네.”
스컬은 일부러 그쪽으로 유도했다. 어린 아이가 돈이나 땅을 달라고 할 거 같지 않았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말한 것이었다.
“그것 역시 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더냐?”
“물론이에요. 아버지는 가난하시니까요.”
한센이 차갑게 말하자 비욘드는 분노로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그러나 바이엘가의 성을 포기한다는 선언이 나오기 전에 막아야 했다. 아무리 위험이 없다고 해도 마왕의 숲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죽음이 다가올 수 있는 곳이었다.
‘좋다… 들어주지…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모든 힘을 동원하여 화려한 죽음의 파티를 열어 줄 것이니.’
비욘드는 그렇게 생각하자 다시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돈이야 자신이 상속받은 것도 수백만 테론이 넘었다. 그중에서 얼마를 떼어 주더라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을 그녀였다.
“100만 테론을 주마. 그 정도면 네 목숨 값으로 적지는 않을 게다. 그럼 되었느냐?”
“외삼촌?”
한센은 100만 테론이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걸로 되겠냐고 묻는 것에 스컬이 빙긋이 웃었다.
“크큭! 그 정도면 충분하지. 감사하다고 인사드려라.”
“감사합니다. 어머니!”
한센이 비웃듯이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에도 비욘드의 눈만 차가워질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가자. 이런 곳에 더 있어 봤자 골치만 아플 뿐이니까.”
“네.”
한센이 스컬을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백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만에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이거 오랜만에 재미있는 구경을 한 것 같구나. 으하하하하하!”
백작은 그렇게 웃음을 터트린 후 소연회장을 떠나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