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엘가드 스컬 1권 (7화)
3. 북부로(1)


갑작스런 사태로 인해 한센 독에 중독되었던 것부터 시작하여 어쌔신의 죽음까지 그간 있었던 일들이 한 번에 묻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바이엘 백작령은 마왕의 숲 원정대에 참가하게 될 농노군 300명을 뽑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다.
“받으세요.”
“이게 뭐지?”
스컬은 한센이 내민 상자를 받아 들었다. 묵직한 상자는 힘을 주어야 할 정도로 무거웠다.
“20만 골드에 해당하는 보석이라고 하더군요.”
“보석이라… 흠! 그런데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지?”
“삼촌에게 의뢰를 하려구요.”
의뢰라는 말에 스컬이 피식 웃었다.
“풋! 의뢰를 하겠다는 거냐?”
“네. 제가 본 삼촌은 어쌔신일 거예요. 제 생각이 맞나요?”
독에 대해서 잘 알고 기사와는 전혀 상이한 움직임을 보았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제법 눈썰미가 있다고 칭찬을 해 주어야 할 일이었다.
“맞다.”
“최고의 어쌔신이었겠죠?”
호기심보다는 뭔가를 동경하는 것 같은 한센의 눈빛을 보며 스컬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나보다 많은 강자들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말이다… 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 싸운다면 반드시 이길 생각이다. 크크큭!”
“저를 지켜 주세요. 마왕의 숲 원정대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는 게, 제 의뢰예요.”
의뢰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제까지는 스승의 외손주들을 돌봐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의뢰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때는 어쌔신계의 이단아, 해결사 스컬로 돌아가야 한다.
“살아 돌아온다면 뭐를 할 생각이냐?”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한센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모험을 하고 싶어요. 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돕고 싶고… 위대한 마법사로 이름도 날리고 싶구요. 하하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처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게 사람 살아가는 것이었다. 꿈을 가지고 밝은 미래를 살아가기를 원하는 아이라면 그렇게 살게 해 주는 것이 도리였다.
“좋다. 받아들이지.”
스컬은 이대로 떠나는 것보다 의뢰라는 이름으로라도 같이 가기를 원했다. 분명 비욘드라면 뒤로 힘을 써서 한센을 죽이려 할 것이었다. 그녀의 마수에서 지켜 주려면 반드시 자신이 따라가야 했다. 그 명분을 한센의 대답에서 얻은 것일 뿐이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무척 많았다. 뇌물을 써서 사령관의 지근거리로 배정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비욘드는 친정의 힘을 빌어서라도 한센을 최전선으로 밀어 넣을 사람이었다.
“먼저 텔레포트 스크롤을 구해야 한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볼게요. 몇 장 구할 수 있을 거예요.”
한센의 대답에 마법사 가문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성쇠가 다해 가는 학파였지만 한때는 대륙 최고의 인챈트 학파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찾아보면 반드시 있을 것이었다.
“공격용 마법 스크롤도 구할 수 있으면 많이 구해 봐. 그게 네 생명을 구해 줄 수 있으니까.”
“그건 어려워요. 파이어볼 같은 마법 스크롤은 전량 군부에서 수거해 가거든요.”
전쟁 용품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마법 스크롤이었다. 특히 파이어볼 같은 3클래스의 마법을 쓸 수 있는 스크롤은 300테론, 성인 남자 노예 6명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농노병들의 무장을 중장갑 보병 수준으로 맞춰 줘야 한다.”
스컬은 농노병들을 무장시킬 생각이었다. 마왕의 숲에서 가장 최전방에 서게 된다면 무장이라도 제대로 갖춰야 했다. 한 명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한센의 생명도 오래 갈 수 있었다.
“우리 영지는 대장간도 별로 없어서 구하기 어려울 텐데요.”
“상관없어. 마왕의 숲 원정대에 참가하려면 집결지까지 가는 동안 몇 개의 대영지를 거쳐서 가게 되니까. 그때 구하면 된다.”
“그럼 되겠네요.”
“그건 그거고, 이제 사흘 남았다. 떨리지는 않느냐?”
한센은 이제 14살의 어린 나이의 소년이었다. 그런 소년이 마왕의 숲 원정대라는 죽음의 전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 떨리는 것이 정상이었다.
“떨리죠.”
“그렇겠지. 하지만 걱정부터 하지는 말아라. 부딪혀 보기도 전에 걱정부터 하는 건 멍청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저 멍청하지 않아요. 싸워 보지도 않고 물러설 만큼 무르지도 않구요. 반드시 해낼 거예요. 나를 포기한 가문이 아쉬워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가 될 자신 있어요.”
“그래, 너라면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거든. 크크큭!”
스컬은 한센의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 올리기 위한 준비에 머리를 굴렸다.
‘정답은 독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농노병들로 살아남는 방법은 마법이 아니면 독이었다. 그중에서 마법은 가격도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다. 같은 노력을 기울여서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독이었고 그것은 자신의 장기 가운데 하나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미안하다. 공격용 스크롤이 아닌 안티 포이즌 같은 스크롤도 구하기 어려울까?”
“아니요. 그건 쉬워요. 2클래스 주문인데다 작은 마법 상점에서도 파는 거거든요. 해독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한센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공격용도 아니고 독을 해독하는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전자의 주변으로 독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큭! 나를 미행하는 것인가?’
출발을 이틀 남기고 스컬은 영지의 상점가로 향했다. 영주성에서부터 뒤가 간질간질한 것이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행보가 궁금한가 보군. 뭐 그다지 두고 볼 것도 없을 텐데.’
헛수고만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지금 상점가에서 그가 구하려고 하는 것들은 몇 가지 약초와 평범하게 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물품들이 다였다. 그것으로는 무엇을 하는지 연관관계를 알아내는 데는 큰 무리가 있었다.
스스슷!
미행하는 자가 1명이 아닌 여러 명이라는 느낌이 뇌리에 전달되어 왔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는 것이 발달된 스컬은 자신의 뒤를 따르는 자들이 동류의 사람들임을 알았다.
‘어쌔신들인가? 나만 제거하면 한센은 문제도 아니란 거겠지. 여우가 머리를 썼군.’
영주성 밖에서라면 얼마든지 암습을 가할 수 있는 여자였다. 그 정도의 독심이 있으니 남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을 것이었다.
“실력을 좀 보지. 따라와 보라고!”
스컬은 일부러 소리를 높여 말한 후, 마나를 이용하여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추격한다!”
스스스슷!
스컬의 뒤를 따라가는 자들은 모두 복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레더메일을 입고 그 위로 한쪽으로 치우친 망토를 걸친 것으로 보아 블러드 드래곤이라는 어쌔신 길드에 소속된 자들이었다.

쎄에엑!
뒤에서 날아드는 암기가 파공성을 만들어 내며 무섭게 쇄도했다.
“어림없는 수작!”
스컬은 달려가는 도중에 몇 개의 잔상을 만들어 내며 암기들을 피해 냈다. 영주성을 벗어나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냇가에 도착하자 스컬은 신형을 멈췄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
뒤로 돌아선 그는 다시 암기를 날리려고 하는 어쌔신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쳐라!”
피피피핏!
어쌔신들의 손을 떠난 암기들이 피할 공간을 점한 채 날아들었다. 푸른빛을 띠고 있는 암기들로 지독한 독이 묻은 것들이었다.
스스슷!
10개가 넘는 잔상을 만들어 내며 좌우로 움직이는 스컬의 움직임이 놀라웠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피할 곳이 없을 것 같았던 암기 세례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파앗!
쎄에엑!
어쌔신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그림자 숨기를 펼친 적들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며 스컬에게 클러를 찔러 넣었다.
“어디 소속이냐?”
스슷!
그들에게 한마디 물은 스컬 또한 그림자 숨기를 사용하였다.
어쌔신들의 수법 가운데 하이드 기술의 응용인 그림자 숨기는 실력이 높은 자는 속이기 어려웠다.
“어쌔신?”
블러드 드래곤 소속의 어쌔신들은 상대가 자신들과 같은 어쌔신인 것을 알게 되자 더욱 날카롭게 움직였다.
“한 명!”
갑자기 불쑥 나타난 스컬이 그림자 숨기로 숨어 있던 어쌔신 하나를 뒤에서 베어 냈다.
“저기다!”
슈슈슈슈슛!
일제히 뿌려진 암기가 까마득하게 날아들고 스컬은 예의 기기묘묘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사라졌다.
티티티티팅!
바닥에 부딪친 암기들이 불똥을 만들어 내며 요란스런 소리를 냈다. 그러나 스컬은 이미 공격권에서 벗어나 암기를 날린 어쌔신들의 뒤로 돌아가 있었다.
“쉐도우 하이딩!”
펑! 퍼펑!
어쌔신들은 하얀 연막 같은 것을 바닥에 던지며 이목을 가렸다. 그리고 곧장 그림자 속에 숨어드는 기술을 사용했다.
쎄엑! 스슷!
“우욱!”
피를 토하며 어쌔신 한 명이 죽어 나갔다. 갑자기 나타난 스컬의 검이 순식간의 그의 등을 가르고 지나간 탓이었다.
스르릇!
다시금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리는 기술을 쓰는 스컬과 어쌔신들은 치열하게,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끄륵!”
“저기다!”
피피피피피피핏!
또 한 사람을 죽였을 때 어쌔신들은 그가 다시 숨기 전에 최대한의 공격을 날렸다. 동료가 맞는 것을 도외시한 채 날아드는 암기들은 공간을 빼곡하게 메웠다.
“암기는 너희들만 날리는 것은 아니지.”
피피핏!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가느다란 비침에 파란 기운이 어렸다. 오러라고 불리는 마스터의 전능적인 능력이 그것이었다.
퍼퍽! 퍼버벅!
피할 엄두가 나지 않는 속도였다. 날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이미 빛살이 되어 있었고 어쌔신들과 스컬의 손 사이를 파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쿵! 쿠쿵!
썩은 짚단이 넘어가듯 어쌔신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졌다. 오러가 실린 비침은 그들의 두개골을 관통하여 찾기도 어려운 곳까지 날아가 버렸다.
퍼엉!
남은 7명이 단 한 번의 공격에 쓰러졌음에도 그림자 숨기로 빠져나가는 자가 있었다. 오러가 실린 비침을 피해 낼 정도의 스피드를 지닌 자였다. 거기에 미흡하기는 했지만 스컬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공격을 주도하던 자였다.
‘괜찮군.’
A급은 넘는 실력의 어쌔신이었다. 동료들이 다 죽었음에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적은 적, 반드시 죽여야 했다.
“거기냐!”
피피핏!
한 번에 25개의 비침이 허공을 갈랐다. 은빛의 선을 만들어 내며 날아간 비침은 미처 피하지 못한 어쌔신에게 꽂혀 있었다.
“소속은?”
한 번의 공격으로 자신의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버린 자였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는 것이 더욱 공포를 자아내게 만드는 그의 물음에 어쌔신은 어금니에 끼워져 있는 독단을 물으려 했다.
피핏!
깨물려는 순간 스컬의 손이 몇 번의 공간을 점하고 난 뒤에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입에 손을 넣어 독단을 빼내 버렸다.
“인간의 몸은 말이야 참 희한하거든. 마나가 흐르는 길을 막아 버리면 몸도 움직이지 않는단 말이야.”
맨 처음 몸 안의 마나로드를 봉쇄하는 것을 알아낸 것은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마나를 조금 더 안전하게 모으기 위해 마나로드를 연구했고 그 결과가 마나로드를 봉쇄하는 수법이었다. 주로 사람의 몸을 마음대로 해부하고 연구했던 네크로맨시 학파의 성과물이었는데 스컬의 스승인 에드몬이 그것을 입수할 수 있었다.
피핏!
“이젠 다시 말할 수 있을 거야.”
스컬이 말하자 경악으로 인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어쌔신의 입이 열렸다.
“다, 당신은… 스… 스컬.”
“날 알아?”
스컬은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백작가 두 곳에서 깽판을 치며 해결사라는 불명예를 얻었을 때도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아, 압니다.”
“호오! 의왼데. 나를 아는 놈은 다 죽었는데. 스승님하고 그 개새끼만 빼고.”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를 아는 자는 단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죽은 스승이었고 다른 한명은 죽여야 할 자, 바로 배신자 트리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