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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10화)
4. 스컬 백인대(1)


자크 행병관을 따라간 곳은 서편의 용병대가 머무는 주둔지였다. 그곳은 커다란 군막이 셀 수도 없이 세워져 있었다.
“여깁니다. 앞으로 이 백인대를 맡으시면 됩니다. 정식 명령서는 군단 사령부에서 전령이 전해 드릴 겁니다.”
스컬 백인대의 앞으로 온 자크 행병관은 서류에 백인대의 대장을 맡게 된 사람이 엘가드 S. 에드몬 남작이라고 적었다.
“내 사례는 톡톡히 할 것이니 내가 말한 것을 좀 부탁하겠네. 이것은 착수금일세.”
스컬이 건넨 것은 앞에 준 것보다 훨씬 가벼운 주머니였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동전이 아닌 보석으로 그 액수가 족히 1만 테론은 호가하는 금액이었다.
“허허… 제가 반드시 해낼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남작님.”
“내 자네만 믿겠네.”
스컬이 믿는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행병관은 군대를 배치하는 1차 책임자였다. 그들이 어떻게 작성하는가에 따라서 배치가 달라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윗선인 행병대장에게 뇌물이 전해지면 완벽하게 배치가 굳어지게 된다는 것을 감안한 것이었다.
“전 바로 가서 말씀하신 것을 처리해 놓겠습니다. 그러니 아무 염려 마시고 마음 편히 기다려 주십시오. 하하하!”
“부탁하네.”
인사를 주고받은 후 자크 행병관이 서둘러 돌아가자 자칭 스컬이라고 하는 놈들이 모인 백인대 막사에서 용병들이 우르르 나왔다.
“캬악! 퉤! 댁은 뉘슈?”
껄렁껄렁한 동작을 보이며 다가온 용병 하나가 털이 잔뜩 나 있는 배를 드러낸 채 아랫도리를 벅벅 긁으며 스컬을 노려보고 있었다.
“엘가드 S. 에드몬 남작이다. 오늘 부로 용병대의 대장으로 임명 받았다.”
용병들은 젊은 귀족 하나가 용병대장으로 임명 받았다는 말에 별 웃기는 놈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용병은 힘이 지배하는 사회이지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의뢰주와 피의뢰인의 관계라면 모를까 동료일 때는 철저하게 힘이 우선이었다.
“철모르는 귀족나리께서 전쟁놀이 하러 오셨구만. 히히!”
“그러게 말이요. 마왕의 숲이 뭐하는 곳인 줄은 알고 가려는 거요?”
용병들은 빈정거리며 스컬을 조롱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짖고 까불어도 스컬의 미소를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훗! 죄다 꼴통인 놈들만 모여 있군.’
건들거리는 폼이 영락없는 동네 불량배였다. 용병들 세계에서는 힘 꽤나 쓴다는 놈들이지만 골통기질을 버리지 못해 따돌림 받는 아웃사이더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확실하게 제압하지 않으면 언제든 기어오를 여지가 있는 자들이었다.
‘밟을 때 확실하게 밟아야 한다. 어설프게 밟으면 나중에는 두 배로 힘을 써야 하지.’
미소가 조소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살소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1분을 주지.”
싸늘한 음성에 건들거리던 용병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스컬이 내뿜는 살기에 오금이 저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으으…….”
“가, 갑자기 오한이…….”
용병들은 스컬의 변화에 뒤로 물러서며 길을 열었다. 스컬이 지나가는 곳은 길이 만들어졌고 용병들은 물러서다 서로 엉켜 넘어졌다.
“나를 이기는 놈에게 용병대장을 넘기겠다. 아! 그걸로 부족한가? 그럼 나를 이기는 놈에게 이걸 주지.”
투둑! 찰랑!
스컬이 던진 가죽주머니가 벌어지며 그 안에서 보석들이 흙바닥에 떨어졌다. 족히 수만 테론은 넘어갈 거금이었다. 그것을 본 용병들의 눈에 탐욕의 빛이 급격히 증가했다.
“썅! 사내새끼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냐. 덤벼!”
용병 하나가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육탄 돌격을 감행했다. 다부진 체격에 꿈틀거리는 근육들을 뽐내며 단단해 보이는 주먹을 뻗어 냈다.
“죽여!”
“와아아!”
용병들은 한 사람이 기폭제가 되자 겁을 상실하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의 주먹질을 보며 스컬은 빙긋 웃었다.
“시작은 네놈들이 먼저 했다. 원망하지 말도록!”
스스슷!
유령처럼 용병들의 주먹을 빠져나가며 스컬의 손이 움직였다.
퍽! 퍼퍽!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는 이미 용병들의 턱과 복부에는 스컬의 주먹이 박혔다가 바로 빠져나왔다.
“으웩!”
“케엑!”
순식간에 대여섯 명의 용병들이 복부를 부여잡고 토역질을 했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벌어진 일이었다.
“괴, 괴물…….”
“으으!”
용병들은 단 30초도 지나지 않아 스무 명이 넘는 용병들을 쓰러트린 스컬의 실력에 몸서리를 쳤다. 얻어맞은 용병들은 하나같이 속에 있던 것을 게워낸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벌써 포기하는 건가?”
스컬이 팔짱을 낀 채 용병들을 조롱하듯 말했다. 그럼에도 용병들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상대할 수 없는 실력자라는 것을 알았으니 괜히 나서서 된서리를 맞을 필요는 없었다.
짝짝짝!
“대단한 실력이시로군요.”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내는 까만 머리카락을 지닌 특이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덩치만 키운 용병들과는 다르게 세밀한 근육이 보기 좋게 발달되어 있었다. 거기에 짙은 눈썹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보이는 인상이 무척 날카로웠다. 그는 트링커라는 이름을 지닌 용병으로 현 상황에서 이들 무리의 대장이었다.
“그대가 이들의 대장이었나?”
“그렇습니다.”
귀족이라서가 아니라 놀라운 실력을 보인 탓에 트링커가 말을 높이며 대답했다.
“그대도 덤빌 텐가?”
스컬의 물음에 트링커의 눈매가 씰룩였다. 나름 실력 있는 용병으로 대우를 받으면 살아왔었다. 스컬과 같은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지만 싸움이 꼭 박투술을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검을 든다면 기사에게도 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싸우지도 않고 대장 자리를 내어 드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제가 스컬이거든요. 크크큭!”
자신을 자칭 스컬이라고 밝힌 검은 머리카락의 용병을 보며 스컬은 싸늘하게 살소를 지었다.
스컬은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명사였다. 그런 것을 허락도 없이 남이 쓴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모독이었다. 아무리 허풍을 치려고 했다지만 스컬이라는 이름에는 그에 걸맞는 실력이 있어야 했다.
“벌려 서!”
“트링커 대장, 알았소.”
“판을 만들어라!”
용병들은 대장의 명령에 따라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섰다. 순식간에 싸움판이 만들어지고 스컬은 뒷짐을 진 채 섰다. 먼 산 구경하러 나온 구경꾼처럼 트링커는 보지도 않았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스컬입니다.”
끝까지 자신을 스컬이라고 소개하는 트링커에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같잖다는 표현을 보이자 트링커의 날카로운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
“차앗!”
트링커는 자신이 익힌 실전 검술을 펼치며 스컬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쉬잇!
사선으로 베는 동작은 매우 깔끔하고 날카로웠다. 스컬이 살짝 피해 내자 얼른 반원을 그리며 돌며 횡으로 쓸어 냈다.
스스슷!
여전히 뒷짐을 진 채 발만 움직여 트링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는 스컬은 트링커를 주밀하게 살폈다.
‘익스퍼트 초급은 넘어섰고 중급은 아직인가?’
마나소드를 두르고 있는 것은 중급이었지만 검술이 받쳐 주지 못했다. 합해서 초급에서 중급 사이의 단계로 보는 것이 옳았다. 나이는 30을 바라보고 있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천재형 검사였다. 용병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없이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인재였다.
‘쓸모가 많겠어.’
인재는 많을수록 좋았다. 비록 과가 틀린 용병이지만 이제 자신이 만들어야 할 새로운 길드를 생각하면 욕심이 나는 인재였다.
‘철저하게 밟아 준다. 그럼 내 밑에 두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니!’
“합!”
쎄엑!
횡 베기에 이은 연속 공격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한 번 공세를 잡자 그 기세를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속도를 올리며 공격했다. 트링커가 막 연속 기술을 사용하여 스컬을 공격하려 할 때 뒷짐 지고 있던 스컬의 손이 풀렸다.
“앞으로.”
쉬잇!
스컬은 자존심을 최대한 밟아 주는 방향으로 손을 쓰기 시작했다.
짝!
경쾌한 타음과 함께 트링커의 뺨이 사정없이 옆으로 돌아갔다. 얻어맞는 순간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또 다시 스컬의 손이 뻗어 나왔다.
“스컬이라고.”
짜짝!
“하지 마라.”
짜짜짝!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셀 수도 없이 따귀를 맞은 트링커는 눈에서 별이 반짝거렸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런 치욕을 당해야 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크윽!”
따귀를 때리던 스컬이 손을 잠깐 멈추자 트링커는 가물거리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너희 같은 쓰레기가 스컬이라고 하는 것은 죄악이다!”
퍼억!
“우욱!”
검을 들어 어떻게든 찔러 넣으려 할 때 유령처럼 다가온 스컬의 손이 트링커의 턱에 작렬했다. 공중을 부유하듯 날아간 트링커가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이자 스컬은 용병들에게 살기를 실어 외쳤다.
“너희들도 마찬가지. 앞으로 스컬이라고 하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알겠느냐!”
“으으… 알았습니다.”
“무, 물론입죠. 네네…….”
스컬이 살기를 뿜어내며 외치는 소리에 용병들은 바짝 얼어 고개만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스컬은 이제 가서 기다릴 일만 남았음을 느꼈다.
‘과연 저자가 올 것인지 그게 관건이로군.’
반드시 필요한 자였다. 집단 전투에 관한한 용병으로 굴러먹은 트링커가 자신보다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트링커 대장, 이제 어쩔 거유?”
맨 처음 스컬에게 주먹을 날렸던 용병이 물었다. 스컬에게 뺨을 맞고 굴복했던 용병대장 트링커는 붉게 부어오른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에드몬 남작이라는 자의 실력 봤잖아. 난 그 사람이 손을 뻗는 것도 보지 못했다.”
“대단하긴 합디다. 손은 그대로 있는데 대장의 뺨에서 소리는 나지. 처음에는 대장이 쇼를 하는 줄 알았다니까, 글쎄.”
수염이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는 부하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말하는 것에 트링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 내가 미쳤다고 쇼를 하겠냐. 암튼 그놈, 아니지 그분의 실력은 진짜다.”
“그럼 대장으로 받들어 모셔야 하는 거요?”
“당연하지. 아니 그걸로 부족해. 아예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져야지. 우리 좀 키워 달라고 말이야.”
트링커는 스컬의 놀라운 실력에 굴복했다. 자신이 용병으로 10년 넘게 구르면서 터득한 마나소드, 즉 익스퍼트 초급의 단계는 용병들 중에서나 약간 우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같은 익스퍼트급의 정통파 기사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것이 자신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자에게 그 놀라운 솜씨를 배울 수 있다면… 내 인생도 바뀌지 않을까?’
용병 의뢰 실패로 퇴출당한 트링커였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자 참가한 원정대였고 익스퍼트 초급의 실력을 보여 주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익스퍼트 초급의 실력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옆이라면 생존할 확률도 올라갈 건데…….’
죽으러 간다는 생각에 장난치듯 스컬이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제국의 공적으로 찍힌 스컬이니 제국에 반항이라도 하고 싶다는 꼬인 생각에서였다. 그런 와중에 한줄기 서광이 내려온 것이니 그 빛의 한 가운데 서고 싶었다. 그리고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장을 주름잡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안 들어주면 칼을 물고 죽는다!’
결심을 굳힌 그는 분연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난 간다.”
“어딜 가요?”
“무릎 꿇으러. 가르쳐 달라고 애원이라도 해 봐야지.”
가르쳐 줄 것 같은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무섭게 냉혹한 사람으로 보였기에 용병들은 망설였다.
“우리가 강해지면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늘어지면 되지 않겠나.”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강해지면 백인대장으로 발령 받아 온 그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잘만 비벼보면 마냥 박대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나도 같이 가요.”
“가자.”
트링커가 막사 뒤쪽에 공터를 떠나 스컬에게 내준 용병대장의 군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