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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12화)
4. 스컬 백인대(3)


스컬의 말에 제라르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대강 숫자와 연관된 것임은 알 수 있었다.
“7만 테론만 주십시오.”
“7만 테론? 내역을 알고 싶네만.”
“하하! 경화가죽갑옷 1벌당 가격은 30테론입니다. 1,000벌 해서 3만 테론이고 석궁 1개의 가격은 현 시세로 10테론입니다. 합하여 5,000테론이고……. 모든 것을 합한 가격은 8만 테론이 약간 넘습니다만 제 재량으로 7만 테론에 해 드리겠습니다.”
1만 테론 이상을 깎아 준다는 것은 상당한 재량을 발휘한 것이었다. 상인이 이 정도의 가격을 깎아 줄 때는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봐야 했다.
“깎아 주는 것은 고마운데… 이유를 알 수 있겠나?”
스컬의 솔직한 물음에 제라르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그냥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십시오. 제가 보건데 멀지 않은 미래에 남작님은 굉장한 큰 손님이 되어 주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크큭!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마운 일이군. 고맙네.”
“하하! 별말씀을요. 바로 가져가시겠습니까?”
“바로 보내 주었으면 좋겠군. 돈은… 여기 있네.”
스컬은 플래티넘 주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 하나에 1만 골드가 들어 있는 것을 7개 꺼내 줌으로서 계산을 끝낼 수 있었다.
“7만 테론 잘 받았습니다. 주문하신 병장기는 바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거래 잘했네. 나중에 또 보세.”
“반드시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후후!”
기분 좋은 상인 제라르의 인사를 받으며 스컬은 군영으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마주치게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사람이었다.

“방패 앞으로!”
차차차차착!
병장기가 모두 수송되어 온 다음날 스컬은 자크 행병관의 도움으로 천인대장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수의 병력이 휘하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고 용병 백인대 4개와 한센의 농노군을 지휘하는 천인대장이 된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들인 돈이 무려 2만 테론이었으니 엄청난 출혈을 한 셈이었다.
“찔러! 막고! 버텨!”
“악!”
“악!”
용병들과 농노병들은 그간 지독한 훈련을 시키는 트링커 때문에 장족의 발전을 한 상태였다. 열흘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지독하게 구른 티를 확실하게 내고 있었다.
“방패 방어 대형으로!”
“악!”
방패를 든 병사들이 차례차례 방패의 탑을 쌓으며 이단으로 벽을 만들었다.
“샤이드 공격!”
“악!”
쉬익! 쉬쉬쉭!
대형 샤이드의 날카로운 날이 내려찍어졌다. 그에 맞춰서 방패를 밀고 서 있는 병사들은 머리를 숙이며 힘껏 방패를 미는 훈련을 소화해 냈다.
‘열심히 훈련을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몬스터들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익스퍼트에 이른 기사들이 필요한데…….’
지금 트롤 같은 대형 몬스터들과 맞상대가 가능한 실력자는 고작 4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카트리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수련만 한 마법사라 열외로 쳐야 했으니 실제로는 3명이었다.
‘방법은 그것뿐인가?’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만 제외하면 나름 괜찮은 방법이기는 했다. 거기에 초반부터 대형 몬스터와 마주칠 확률은 적을 것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갈 것이었다.
“좋았어. 한 번 해 보자.”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스컬은 병사들의 훈련에 열심인 트링커를 불렀다.
“트링커!”
“대장님, 부르셨습니까?”
냉큼 달려와 인사부터 꾸벅하는 트링커는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용병들과 병사들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느낀 것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지목하는 사람들을 내 군막으로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저기 저 젊은 병사.”
“로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다음은 저기 갈색머리.”
“네? 자, 잠깐만요.”
트링커는 확인도 안 해 주고 무조건 지목만 하는 스컬에게 원망 어린 눈빛을 보내며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부르십시오.”
“저기 샤이드 들고 있는 21번째 병사.”
스컬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지목하여 불렀고 트링커는 그가 말하는 것을 바닥에 길게 적어 갔다. 그렇게 50명에 대한 지목을 끝내자 스컬이 군막으로 가며 말했다.
“실수하면 알아서 해.”
“네? 큭… 알겠습니다.”
트링커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명령은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얼른 달려 나갔다.

“잘 들어라.”
군막에 모인 53명은 트링커와 하커, 그리고 스컬이 지목했던 50명의 젊은 병사들이었다. 능력도 따졌지만 무엇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위주로 뽑았었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알려 줄 것은 내 사문에서 내려오는 마나 명상법이다.”
“헉! 저, 정말이십니까?”
트링커가 깜짝 놀라 외쳤는데 다른 병사들의 얼굴도 경악에 차 있었다. 마나 명상법은 기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으로 마나를 다룰 줄 알게 되는 방법이었다.
“하커, 너는 알겠지만 내 사문인 쉐도우문의 역사는 2천년이 넘는다. 그 역사를 이어오며 만들어진 것이 바로 카오스 마나 명상법이다.”
“아아…….”
모두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특히 하커는 전설로까지 칭해지는 쉐도우문의 비전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모두 3단계까지 수련법이 있고 너희들에게 알려 줄 것은 1단계의 카오스 마나 명상법이다. 이것만 잘 수련해도 마스터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마나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니 열심히 수련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조건이라는 말에도 군막 안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스컬이 말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의지만 내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들은 이 마나 명상법을 익히는 순간부터… 내가 새롭게 만들 쉐도우문의 소속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겠느냐?”
트링커는 쉐도우문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단체명인데 그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쉐도우문은 스컬의 어쌔신 길드였는데… 그렇다면?’
“헉쓰!”
자신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급히 입을 막았지만 동그랗게 커진 눈은 작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정말 스컬이셨습니까?”
“크큭! 그렇다.”
당연하다는 듯이 힘 있게 말하는 스컬에게 트링커는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에휴! 그래서 그렇게 패신 겁니까?”
“물론. 누가 내 이름을 사칭하는데 용서할 수는 없었다.”
“크윽… 아직도 볼따구니가 쑤셔 오네.”
볼을 만지며 억울한 눈빛을 보내는 트링커를 응시한 후 다시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다.
“내 말대로 따르겠는가?”
“넵! 따르겠습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자 스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걸 따라하도록!”
스컬은 자리에 모인 모두에게 카오스 마나 명상법의 1단계를 알려 주기 시작했다. 자세부터 마나가 흐르는 길을 손수 마나를 동원하여 이끌어 주는 것으로 밤새워 가르쳐야만 했다.

“에드몬 남작님!”
“누군가?”
병사들의 훈련은 지속되었고 특별반으로 뽑힌 병사들은 밤잠도 잊은 채 스컬에게 마나 명상법의 수련을 받았다. 또 블랙마켓에서 사온 몰락한 귀족가의 검술서를 사다가 가르치느라 스컬도 잠을 자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래도 빠르게 농노병의 이미지를 탈출한 병사들의 모습이 위안이라면 위안거리였다.
“제국에 영광을! 군단 사령부에서 호출입니다.”
장교 하나가 직접 와서 하는 말에 스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알고 있나?”
아직 군단장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닷새 후면 마왕의 숲 원정대는 출군할 예정이었고 사령관 이하 군단장들도 속속 도착하는 추세였다. 이렇게 호출을 온 것을 보면 스컬의 천인대가 속한 군단의 군단장이 도착한 듯했다.
“군단장님께서 부임하셔서 첫 군단 회의를 연다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지금 바로 가면 되나?”
“네, 그렇습니다.”
“알았네. 바로 가도록 하지.”
스컬은 장교의 안내를 받아 군단 사령부가 있는 중앙 군영으로 이동했다. 나이가 어린 귀족들과 귀족들을 수행하는 기사들의 모습이 제법 보였지만 그들에게서는 생기를 느낄 수 없었다. 죽으러 간다는 것에 기가 죽은 모습들이었다.
“하하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포우 자작님!”
“흐흐흐! 여부가 있겠나. 내 백작부인의 뜻대로 해 드릴 것이니 염려 말라고 전해 드리게.”
“그럼 전 믿고 가 보겠습니다.”
“그러시게. 마중 나가지는 않겠네.”
“네. 하하하!”
스컬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한 명은 비욘드의 충복인 기사단장 마크였고 다른 하나는 새로 부임했다는 군단장 포우 자작이었다.
‘큭!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군.’
스컬의 옆을 보란 듯이 스쳐 지나가던 마크 단장이 손을 흔들었다.
“오! 이게 누구십니까, 에드몬 남작님이 아니십니까? 여기서 뵙다니 이거 참 우연치고는 반갑습니다.”
빈정대며 말하는 마크 단장의 모습에도 스컬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런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화를 낸다는 것이 오히려 수치였다.
“백작부인에게 반년 안에 반드시 찾아가겠다고 전하게. 오늘 쓴 돈이 헛돈 썼다는 것을 알려 주러 간다고 말이야. 크크큭!”
“흐흐흐! 과연 그렇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 거거든.”
스컬의 말에 담긴 기이한 힘이 마크의 가슴을 두들겼다.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함으로 마크의 얼굴에서 걸렸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럼 나중에 보자고. 그때는 목을 잘 살펴야 할 거야. 달려 있나 떨어져 있나. 크하하하!”
마지막 말을 들으며 마크 단장은 자신의 목을 무의식중에 만졌다. 곧장이라도 목이 분리되어 떨어져 내리는 망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5. 원정(1)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는 의당 귀족들이 거들먹거리며 앉아 있고 그 뒤에 기사들로 보이는 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다. 다들 죽으러 가는 처지에 눈싸움을 할 일은 없었지만 단 한 사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사령관만이 막사 안으로 들어 온 스컬을 노려보았다.
“엘가드 S. 에드몬 남작입니다. 저를 부르셨다고 하여 왔습니다만.”
스컬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막사 안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들렸다.
“저치가 에드몬 남작인가 보네.”
“그러게 어쩌다가 가일러스 공작가의 눈 밖에 나서 제일 먼저 죽는 자리로 몰렸을까 몰라.”
“쯧쯧! 그러게 줄을 잘 서야 한다니까요.”
수군거리는 자들은 사령관을 따라 온 중앙의 귀족들로 무늬만 귀족이거나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이번 원정에서도 절대 안 죽는 후방에서 지원 임무만 맡을 자들이었다. 그리고 원정이 실패로 끝나면 황제에게 충성했다는 이유로 승작을 하게 되어 있을, 귀족가의 피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할 황제의 수족들이 저들인 셈이었다.
‘빌어먹을 자식들이!’
스컬은 눈에 살기가 살짝 돌았지만 이내 가라앉히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적인 그 표정 변화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작이 에드몬 남작이로군. 거기 자리에 앉게.”
“감사합니다.”
사령관으로 내정되었다는 자는 제이슨 올레이그 백작으로 북군 사령관을 지낸 백전노장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만 해도 족히 50대는 넘어선 자로 갈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새치들이 삐죽삐죽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인상은 상당히 강렬하네.’
깊숙이 들어간 눈은 어찌 보면 암울해 보일 정도로 깊었고 그 사이로 번뜩이는 눈동자는 강렬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갖추고 있는 실력이 적어도 최상급의 익스퍼트 이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스터는 아니라는 것은 아이큐 두 자리만 되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죽을 수도 있는 자리에 마스터를 보내는 멍청한 짓을 범하지는 않겠지. 황제가 미치지 않은 이상은 말이야. 하기야… 황제의 눈 밖에 난 마스터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
마스터는 전술병기로 취급되는 존재들이다. 마스터 하나가 투입되면 작은 전투의 승패가 정해지기에 전술병기라 불렸다. 물론 전략병기는 아닌 것이 제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수십 명이 넘는 기사들의 차륜전에 걸리면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기에 전략병기로는 불리지 않았다. 만약 8클래스의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존재한다면 그가 진정한 전략병기가 될 것이었다.
“남작이면 천인대장을 맡아야 할 거 같은데 말이야. 지금 휘하의 부대가 몇 개 백인대인가?”
제이슨 백작의 눈빛은 아무런 사심이 없어 보였다. 분명 여기로 오기 전에 만났던 기사단장 마크가 로비를 했을 것임에도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 7개 백인대가 휘하에 있습니다. 4개는 용병대고 나머지 3개 백인대는 바이엘 백작가의 백인대입니다.”
“7개 백인대라… 남는 부대가 있던가?”
백작이 묻자 그 오른쪽에 앉아 있던 귀족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는 백작과는 다르게 스컬을 조소 어린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
“현재 다른 부대들은 모두 완편되어 남는 부대가 없습니다. 천상 7개 백인대로 천인대를 꾸려야 할 듯합니다만.”
“안타까운 일이군. 그래도 천인대를 완편시켜 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백작은 짐짓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각 군단장급의 귀족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래 마지막 천인대이니 선봉을 맡을 로스 공자의 부대로 편성하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