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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14화)
5. 원정(3)


“막아! 뒷다리에 힘을 줘서 버티라고!”
“아이, 답답이들아! 밀리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엉?”
“똥꼬에 힘 빡 주면 버텨진다. 힘 좀 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각 백인대의 백부장으로 뽑힌 용병 출신이었다. 그들은 스컬이 구해다 준 타워실드와 경화가죽갑옷을 갖춘 병사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착착착착!
병력들은 백인대 별로 집단 전술훈련을 받고 있었는데 타워실드를 이중으로 세우고 병사 둘이서 버티는 훈련이었다. 반대편에는 다른 백인대의 병사들이 있는 힘껏 밀어내며 방어 진형을 부수려고 했다.
“오셨습니까.”
트링커가 스컬을 보고 달려와 인사했다. 그 옆에는 원래부터 트링커를 따라다니던 용병들이 있었는데 전부 백인대장이거나 수석 십인장을 맡고 있는 자들이었다.
“누구신지…….”
트링커는 어린 꼬맹이 하나와 기사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스컬과 같이 오자 의문을 드러내며 물었다.
“로스 공자시다. 우리 군단의 군단장을 맡으셨다.”
“아∼ 로스 공자님… 잠깐만, 군단장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군단장님이시다.”
“이, 이런. 백인장 트링커입니다.”
군단장인지도 모르고 어린 꼬맹이라고 조금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으니 인상을 구기며 머리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로스, 음 로스 폰 차이드만입니다.”
로스는 자신의 풀네임을 한 번도 말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서 살다가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후작가의 자제가 되어 있었고, 또 이렇게 원정대의 군단장으로 참가해 있었던 것이다.
“훈련이 상당히 인상적이던데 저런 훈련이 효과가 있기는 한 겁니까?”
싱클레어는 한눈에 트링커의 실력을 알아봤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나타나는 익스퍼트급의 절제된 움직임이 자신과 비슷한 실력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지금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막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숙달되면 방어 진형을 갖춘 상태에서 공격하는 방법을 훈련할 겁니다.”
거대 용병단이 몬스터 토벌을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큰 효과를 보이는 집단 진형이었다. 저런 진형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숏스피어로 방패의 틈을 비집고 찌르는 무기로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저기가 제 군막입니다. 들어가시죠.”
스컬은 로스와 싱클레어를 데리고 군막으로 들어갔다.
“삼촌, 빨리 왔네요.”
군막 안에는 천인대로 합류하게 되면서 같이 있게 된 한센이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스컬의 뒤를 따라 들어온 자신보다 두세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소년을 보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뒤에 분들은 누구세요?”
아무리 봐도 귀족 옷을 입었지만 귀족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귀족과 평민의 차이는 별거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걸음 걷는 법부터 귀족들의 것은 다르기 마련이었다. 보통 3, 4살이 넘어가면 배우는 귀족들의 예절 교육에는 걸음 걷는 법부터 시작하여 상당히 디테일한 항목이 수십 가지가 넘는 것이었다.
“차일드만 후작가의 로스 공자님이시다. 이번 원정대의 군단장을 맡으셨어.”
스컬의 설명에 한센은 호기심에다 알아보기 힘든 이상한 빛이 어린 시선을 더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한센 폰 바이엘입니다. 바이엘 백작가의 차남입니다.”
“그러시군요. 나는 로스 폰 차일드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두 소년의 인사 나누는 폼이 수상쩍었다. 반갑다는 듯이 웃고는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영역 싸움에 나선 들고양이들처럼 낮게 갸륵 거리는 것이었다.
“흠흠! 한센 너도 천인장 이상을 맡아야 하지만, 내가 천인장을 맡게 되어서 부천인장이 되었다. 그렇게 알고 있어라.”
어색한 분위기를 탈피하고자 그렇게 말하며 로스의 앞으로 서며 한센의 시선을 차단했다. 서로 보이지 않으면 묘한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하커 여기 차를 좀 가지고 와. 군단장님께 아무 대접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스컬이 그렇게 말하자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군막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스컬이 차를 준비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쉐도우 하이딩 기술을 써서 은신해 있는 하커뿐이었다. 그는 스컬에게 카오스 마나 명상법을 전수 받은 이후 어쌔신으로서의 능력이 한 등급 더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조금만 더 지나면 특급 어쌔신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은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누, 누가 대답한 겁니까?”
싱클레어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대답하자 깜짝 놀라 목소리의 임자를 찾았다. 하지만 그의 실력으로 찾을 수는 없었다.
“하커라고 내 수하요.”
별거 아니라는 투로 스컬이 대답하자 싱클레어는 놀랐다는 반응을 고스란히 담은 눈을 한 채 고개를 살짝 저었다.
“설마 어쌔신인가요?”
“그 설마가 맞을 거요.”
스컬은 하커의 정체를 밝혔다. 하커와 같은 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은 이제는 같은 편이라는 의미였다.
“설마 했는데 대단한 실력을 지닌 어쌔신인가 봅니다.”
자신이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에 싱클레어가 놀란 것이었다. 에드몬 남작이라고 하는 스컬의 능력도 느끼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는 가일러스 공작가의 하수인이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원정에서 많은 도움이 될 사람이라는 것 정도만 아시면 됩니다. 한센, 너도 앉거라.”
스컬의 말에 한센도 쭈뼛거리며 앉았다. 스컬의 오른편에 앉으며 로스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세요.”
자신의 맞은편에 자리를 권한 한센에 의해 로스는 자연스럽게 스컬의 왼쪽에 앉아야 했다. 그의 맡은 편에는 싱클레어가 앉아 이야기의 주체가 로스가 아닌 싱클레어가 되어 버렸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합시다.”
“네, 경청하겠습니다.”
“내 휘하의 천인대와 로스 군단장님 휘하의 천인대를 묶어 준비를 단단히 하면서, 그들이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 줄 사람들을 구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상당히 냉정하게 들릴 이야기였다. 선봉을 맡게 된 로스의 군단이니 제일 먼저 죽는 것인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죽어 자신과 로스의 천인대를 훈련시킬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천인장들과 이야기를 해 보고 결정할 일이지만 우리에게 비협조적이고 적대적인 천인장들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로스와 싱클레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희생당하는 것은 자신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로스 공자께서 천인장들과 이야기를 해 보세요. 우리에게 협조적인 자들과 아닌 자들을 가려야 합니다.”
스컬이 보기에 적대적인 천인장이 대부분일 것이었다. 다른 천인장들은 대부분 백작가 이상의 귀족 자제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태라고 봐야 했다. 실력 있는 용병들로 이루어진 사령관 직속 군단을 제외한 나머지 군단들은 모래로 지은 성 마냥 흩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해 볼게요.”
“좋습니다. 그럼 후작가의 농노군을 이쪽으로 데리고 와서 훈련을 시키도록 하지요.”
“바로 데리고 옵니까?”
싱클레어는 언제부터 훈련을 할 것인지 묻고 있었다.
“바로 합시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싱클레어의 대답을 끝으로 로스 공자와 싱클레어는 자신의 군영으로 떠났다. 곧 천인대를 모두 이끌고 스컬의 천인대로 합류할 것이었다.

츠츠츠측!
뜨거운 열기가 막사 안에서 앉아 있는 젊은 병사를 휘감았다. 인상을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병사는 이를 앙다물고 참아내고 있었다.
“버텨라. 고통스럽더라도 소리를 내면 자칫 마나가 잘못되어 폐인이 될 수도 있다.”
“…….”
병사는 그 말에 더욱 입술을 깨물며 참았고 이마에는 흥건하게 땀이 솟아났다.
“이 길을 기억하라. 이 길을 카오스 마나 명상법의 마나로드다!”
강하게 외치는 스컬은 마나로드를 병사의 머릿속에 각인되기를 바랐다. 마나를 느끼게 만드는 수련을 통해 병사들은 마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카오스 마나 명상법은 일반적인 마나가 아닌 창세 이전의 기운을 가지게 만드는 지고무상한 명상법이었다. 마나와 신성력, 그리고 정령력과 마족들의 기운인 마력까지 모두 가지게 되는 명상법이 카오스 마나 명상법인 것이었다. 비록 1단계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공능은 엄청났다.
‘마나홀을 생성시켜야 한다. 강제로 하는 것이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없어!’
눈빛을 강렬하게 폭사해 내며 스컬은 마나로드를 따라 흐르던 자신의 마나를 배꼽 아래에 위치한 첫 번째 마나홀의 생성 장소로 몰았다.
빠드득!
고통이 극에 달한 탓인지 젊은 병사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부릅뜬 병사의 얼굴에 혈관이 튀어나오고 금세라도 폭발할 것처럼 붉어졌다.
“참아!”
길게 말할 수 없었던 스컬이 강렬하게 외치고 마나를 더욱 강하게 마나홀로 밀어 넣었다. 그의 마나가 마나홀이 생성되는 자리에 강하게 자리 잡고 병사의 본신 마나와 섞였다. 조금씩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마나홀이 마침내 공간을 확장하여 제 위치에 그만의 홀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후우∼”
긴 한숨이 스컬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아 내며 스컬이 말했다.
“명상법을 한 번 더 펼쳐라. 그래야 마나홀이 완벽하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마나홀을 만들어 주는 스컬의 놀라운 능력에 지켜보던 병사들의 눈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다.
“대장님 이게 정말 가능한 거였습니까?”
하커와 트링커는 놀라움으로 말도 못하고 지켜보던 다른 병사들의 궁금증을 대변하여 물었다. 그 물음에 스컬이 대답했다.
“강제로 마나홀을 만들어 주는 것은 가능해, 마나를 느낄 수 있으면 누구라도.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지.”
그 다음이 문제라는 말에 하커는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트링커는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저는 도통…….”
“하커는 짐작이 가는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주군!”
하커는 이제 스컬을 주군이라고 부르며 따르고 있었다. 어쌔신 길드를 다시 만들게 되면 길드장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마음으로부터 굴복한 하커인지라 가신을 자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커가 이야기해 봐.”
“마나홀을 유지할 수 있는 명상법이 필요합니다. 마나를 유지하려면 동일한 성질의 마나 명상법이 아니면 곧바로 흩어질 겁니다.”
“정답이다. 명상법을 모르는 자에게는 이런 일도 해 줄 수 없지. 만약에 해 준다고 해도 카오스 마나 명상법을 익히지 않은 자는 바로 마나홀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스컬의 설명에 그제야 모두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엄청난 숫자의 익스퍼트급 기사를 대량으로 찍어 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물론 그렇게 느낀 것은 트링커와 하커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 내 상태로는… 하루에 3명 정도는 가능할 것 같으니 다음 지원자 나서라.”
스컬이 자신의 마나량을 가늠해 보고 말했다. 인위적으로 마나홀을 생성해 주는 것은 엄청난 마나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마나홀을 만들어 주려면 먼저 배꼽 아래의 마나홀이 생성되는 부위에 막대한 마나를 불어넣어 인위적인 홀을 만들고 그 안으로 피시전자의 마나로 홀을 만들게 끌어당기는 일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마나홀이 생성되고 나면 그 다음은 그것을 유지해 주기 위한 명상법이 필요했다.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금발에 뇌까지 근육으로 찼을 것 같은 근육질의 청년이 나섰다. 꿈틀거리는 근육이 힘깨나 쓰겠다고 생각이 들게 하는 청년이 나서자 다른 병사들은 손을 슬그머니 내리며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좋아. 앉아라. 방식은 전과 동일하다.”
“넵! 대장님!”
다시금 시작된 마나홀을 강제로 만들어 주는 일이 저녁 늦은 시간 스컬의 군영에서 일어났다.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상단을 통해 막대한 돈을 들여 타워실드와 경화가죽갑옷을 사들이고 기타 필요한 군수품을 동원하는 일도 가까스로 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사들인 물건은 병장기뿐만이 아니고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스크롤도 있었는데 제일 많이 사들인 스크롤이 바로 안티 포이즌 스크롤이었다. 한 장을 사용하면 병사 한 명을 1시간 동안 독에 저항하게 만들어 주는 스크롤로 탐사대에서 사용하는 것을 전량 사들였었다. 한 장에 10테론씩 하는 스크롤을 무려 2만 장을 사들임으로서 20만 테론이 그것으로 날아갔다. 그 외에 자질구레한 것까지 다 합하여 한센이 받아 낸 목숨 값의 절반이 소모되었다.
“위대한 르브론 연합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제국민의 안전을 위해 마왕의 숲을 정벌하라 명하셨노라. 이에 나 제이슨 폰 올레이그 백작은 황제 폐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내놓았노라.”
백작은 생명을 내놓았다는 말을 하며 단 아래에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좌에서 우로 훑었다.
“이 자리에 모인 너희들은 총원 12만에 달하는 엄청난 대병임을 기억하라. 너희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다면 저깟 마왕의 숲이 문제겠느냐!”
12만 명이라는 병력은 언뜻 생각해 보면 상당히 많은 병력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어중이떠중이 모아 놓은 오합지졸로 각 귀족가의 농노들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정예병 1만만 가져도 격파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호흡 숨을 쉰 제이슨 백작은 12만에 달하는 농노병들과 600여 명에 달하는 기사들이 죽어 나갈 죽음의 파티를 본격적으로 선언했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나 제이슨 폰 올레이그 백작이 사령관으로서 명하노라!”
둥둥둥둥!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뻗으며 외치자 고수들이 긴장감을 돋우는 북을 심장이 뛰는 속도에 맞춰 강하게 쳤다. 그러나 조금씩 그 속도가 빨라지고 지켜보는 병사들의 심장의 박동도 같이 빠르게 뛰었다.
“출병하라! 마왕의 숲을 정벌할 것이니라!”
“우오오오오오오!”
“출병이다. 출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