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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15화)
5. 원정(3)


쿵! 쿵! 쿵! 쿵! 쿵!
사령관 직속 군단은 훈련된 용병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이 미리 연습한 대로 있는 힘껏 발을 구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마왕의 숲과 공작령을 가르는 거대한 관문이었다.
“드디어 시작이로군.”
스컬이 나직하게 하는 말에 옆에서 말을 타고 따르던 한센이 말했다.
“잘되겠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 한센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세상에서 내가 죽이려고 마음먹어서 못 죽일 사람이 없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지키려고 작정하면… 그 누구도 그를 죽일 수 없다.”
강한 자신감이 깃든 음성에 한센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믿을게요, 삼촌.”
스컬을 삼촌으로 의지하는 한센은 질문을 했을 때의 긴장했던 모습에서 소풍을 가는 듯한 여유로움을 가지게 되었다. 의젓하게 병사들의 앞에서 말을 몰아가는 어린 그의 모습에 농노병으로 이루어진 스컬의 천인대도 덩달아 진정되어 갔다.

“선봉군단은 명을 받으시오!”
마왕의 숲 초입에 들어서자 곧장 전령이 말을 몰아오며 외쳤다. 그의 손에는 붉은 끈으로 묶여 있는 명령서가 들려 있었다.
두두두두.
전령이 미친 듯이 말을 몰아 로스 공자의 앞으로 나아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로스 휘하의 군단병들의 얼굴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내가 군단장인 로스예요.”
로스가 목청을 돋워 외치자 전령으로 온 기사는 사뿐하게 말에서 뛰어내리며 오른 주먹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약식으로 전장에서 하는 기사들의 군례였다.
“사령부 소속의 기사 빌리언트입니다. 군단장 각하!”
군단장 각하라고 정중하게 외치기는 했지만 무표정한 눈빛에 존경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이것이 명령서입니다.”
“고마워요.”
로스는 싱클레어가 명령서를 받아서 넘겨주자 고맙다는 말을 하며 그것을 펼쳤다.
“이건… 우리 군단이 먼저 나가서 마왕의 숲에 있는 첫 번째 요새를 탈환하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역대로 마왕의 숲을 정벌하러 오면 의례히 세 곳의 요새를 탈환하고 그곳을 거점으로 나아가는 것이 전략입니다. 지금 즉시 군단을 이끌고 첫 번째 요새인 붉은 오크 요새를 탈환하도록 하시라는 명령입니다.”
“으음… 알았어요. 수고했어요.”
“제국에 영광을!”
기사는 다시 약식으로 경례를 붙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갔다. 이미 뒤쪽을 보니 각 군단은 멈추어 있었고 진채를 꾸리려고 하는 모습들이었다. 선봉군단이 먼저 나아가서 붉은 오크 요새를 탈환하면 그 뒤를 따라오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어떻게 할까요?”
로스의 물음에 스컬은 약간의 경멸 어린 눈빛으로 뒤쪽을 쳐다본 후 말했다.
“하커!”
“네, 주군!”
쉐도우 하이딩 기술로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하커가 대답했다.
“먼저 가서 앞쪽에 뭐가 있나 살펴보고 와. 괜히 객기 부리다 목숨 거는 일은 만들지 말고.”
“걱정 마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스스!
스컬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는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커가 스컬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정찰을 위해 떨어져 나가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일단 하커가 선두에서 정찰을 할 것이니 우리는 뒤를 따라가도록 하죠. 선두는 백작가 이상의 귀족 가문을 내세우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로스는 백작가 이상의 귀족 가문의 농노병들을 먼저 앞세우라는 스컬의 말에 며칠 동안 면담하며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냈던 귀족가의 공자들을 떠올렸다.
“싱클레어 경!”
“명령하십시오.”
“제2 천인대를 맡고 있는 블란트 공자에게 명령을 하달하세요. 선두를 맡으라고 말이에요.”
“그리하겠습니다.”
싱클레어가 전령이 되어 블란트 백작가의 농노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군단 앞으로!”
그가 가는 동안 다시 행군은 시작되고 로스의 군단은 더욱 깊숙하게 마왕의 숲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6. 개죽음이란 이런 것(1)


“전진하라∼ 저언지인∼”
목소리를 길게 늘이며 전진 명령을 내리는 기사의 외침에 농노병들은 무서움을 간신히 이겨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착차착착차착착!
중구난방으로 발걸음을 걷는 것이라 소리가 모아지지 않았다. 완벽한 오합지졸이라는 것을 그것으로 알려 주고 있었다.
“꾸이이익∼ 꾸익∼”
천인대가 전진하는 맞은편 숲에서 수풀이 해일처럼 움직였다. 누군가가, 아니 수많은 몬스터들이 수풀을 헤치며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꾸이익!”
제일 먼저 수풀에서 튀어나온 오크가 무식하게 생긴 녹슨 세이버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등장을 시작으로 해일처럼 움직이던 수풀의 움직임이 본격화 되었다.
“꾸이이익! 싹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오크들만의 단어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수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저돌적으로 달려왔다.
“자, 장창병 앞으로!”
젊은 기사는 당황했지만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수련한 덕분인지 가까스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찔러!”
“죽엇!”
농노병들은 무서운 와중에도 살기 위해 장창을 내질렀다. 눈을 감고 내지르는 자들도 태반이었는데 그런 공격에 오크들이 죽어 줄 리 없었다.
티캉! 파각!
저돌적으로 돌진하던 오크는 찔러 오는 장창을 쳐올리며 그대로 농노병의 머리통을 쪼개 버렸다. 단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천인대가 벌려 선 진형의 대부분이 그런 모습이었다.
“꾸이이익!”
“주, 죽어라!”
오크들과 맞부딪힌 병사들도 죽음의 광기에 휩쓸려 갔다. 사람은 피를 보면 두 가지 성향을 보인다. 하나는 공포에 질려 벌벌 떠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더욱 흥분하여 날뛰는 것이다. 전장은 그중에서 특히 후자의 모습을 보이는 곳이었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수의 동료들과 적의 충돌이 군중심리를 일으켜 그런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었다.
쉭!
데구르르.
“꾸이익!”
녹슨 블레이드를 휘둘러 농노병의 목을 베어 낸 오크가 가슴을 탕탕 치며 포효했다. 살기가 깃든 눈동자에 힘을 주며 뒤로 물러서는 인간들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으으…….”
“주, 죽어라!”
농노병들은 이미 자신들보다 배는 넘게 많아진 오크들에게 장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어설픈 그들의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공허한 창질과 이어진 오크들의 역공격에 또 다시 수십 명의 병사들이 피분수를 뿌리며 죽어 갔다.
“대장님, 방어선이 무너집니다. 후, 후퇴를 하셔야 합니다.”
천인대장을 맡고 있는 블란트는 백작가의 서자로 이번 원정대에서 선봉군단인 로스의 휘하에서 제2 천인대의 대장이었다. 그는 부친이, 태어나서 부친이라고 불러 본 적도 없는 백작이 붙여 준 기사 타크만의 외침에도 무서워서 입을 열지 못했다.
“대장님!”
블란트가 공포에 눌려 벌벌 떨고만 있자 타크만은 고함을 지르며 다가왔다.
“대장님!”
블란트의 팔을 잡아 흔들자 그제야 블란트가 정신을 차렸다.
“으응? 왜, 왜 그러는데?”
“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 본대가 있는 곳으로 후퇴해야 합니다. 어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타크만의 말에 블란트는 아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
“그렇게 해. 어, 어서 후퇴해야지.”
“후우… 알겠습니다.”
타크만은 이미 절반이 넘게 도륙당한 상태에서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후퇴한다. 후퇴!”
퇴각 명령을 내리고 서둘러 블란트를 데리고 본대가 있는 뒤쪽으로 달렸다. 오크들에게 도륙당하던 농노병들은 절반 이상의 전사자를 낸 상태에서 뒤로 돌아 달렸다. 그들을 아귀처럼 쫓아오는 오크들이었지만 살려고 죽어라 달리는 농노병들의 달리기가 조금은 더 빨랐다.

“저저 머저리 같은 새끼들.”
트링커가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박살나서 도망쳐 오는 제2 천인대의 모습에 분통을 터트렸다.
“트링커!”
“부르셨습니까?”
트링커는 카오스 마나 명상법을 전수해 준 이후 스컬의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비록 스컬이 익히고 있는 것들이 어쌔신들의 검술로 스피드 위주이기에 트링커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마나홀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미 중급에 육박하는 실력이 되어 있었다.
“준비해.”
“우리 애들을 출전시키실 겁니까?”
트링커는 되도록 나중에 출전시키길 원했다.
보름 정도 훈련시키기는 했어도 턱없이 모자란 훈련이었다. 이제 겨우 방패로 막고 원진과 방진, 그리고 돌격 진형이 이런 것이다란 수준으로 익힌 병사들이었다. 방패로 막고 살짝 벌린 틈으로 숏스피어를 찌르는 공격이 고작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선에 서 있는 긴 샤이드를 든 병사들이 방패병 너머로 샤이드로 찍는 공격이 가능했다.
“스크롤은 모두 나눠 줬겠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걸 지금 사용하면 나중에는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스크롤을 사용하겠다는 것은 독을 사용하겠다는 뜻이었다. 100명으로 이루어진 독을 사용할 병력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닌 독은 많아야 10차례 정도의 전투를 치루면 없어질 양에 불과했다. 그 다음부터는 독을 보충할 수 없으니 문제였다.
“지금 다 죽으면 나중에 언제 독을 쓸 건가. 준비해!”
강하게 내뱉는 스컬의 말에 트링커는 간단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은 가진 모든 것을 아끼지 말고 사용해야 할 때였다.
“알겠습니다.”
트링커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
“스컬 천인대 방어 대형으로!”
“방어 대형으로!”
“읏샤!읏샤!”
쿵쿵쿵쿵!
방어 대형으로라는 구호와 함께 발을 구르며 대오를 정돈했다. 이중으로 갖춰진 방패병들의 방어와 그 뒤에 선 샤이드를 든 병사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저 멀리서 천여 마리의 오크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스크롤을 꺼내라! 안티 포이즌 스크롤이다!”
트링커가 외치자 병사들은 1장씩 지급 받았던 고급스런 양피지로 된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차례차례 준비가 갖춰지자 스컬은 군단장인 로스와 싱클레어에게 말했다.
“나머지 천인대에도 명령을 내리세요. 3개 천인대로 좌측을, 나머지는 우측을 맡으라고 하고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만 하라고 하세요. 독을 사용할 것이니 접근하면 다친다는 말도 전하시구요.”
아무리 전술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도 삼면으로 포위해서 적을 공략하는 것은 뒷동네 건달들도 아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에드몬 남작님.”
로스는 스컬의 말에 얼른 싱클레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으아아아! 살려 줘!”
“비켜! 비키라고!”
오크들에게 쫓겨서 달려오는 병사들은 이미 채 백 명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오크들이 너무 바짝 따라오는데.”
트링커의 말에 스컬의 미간이 좁아졌다.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방어 대형을 연다면 그 틈으로 오크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럼 이런 준비도 허사가 될 것이고 피해가 극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놈들은 아군이 아니다. 막아라!”
“네? 아, 알겠습니다.”
트링커는 막으라는 명령에 일순 당황했지만 먼저 사는 게 중요했다.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아니었고 명령을 듣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저들은 그저 의지도 없이 끌려다니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살리려고 자신들이 희생당하는 것은 멍청하기 이를 때 없는 짓이었다.
“투척병 준비!”
“준비!”
목동들이 돌팔매를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슬릿이라는 물건이었다. 병기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물건이지만 작은 독병을 멀리 날리는 것에 이것보다 유용한 물건도 드물었다.
훙! 부웅! 부우웅!
슬릿을 돌리는 병사들의 눈매가 날카로워질 무렵 스컬이 외쳤다.
“스크롤 찢어! 투척하라!”
“투척하라!”
스컬이 마나를 실어 외치고 그것을 트링커가 받아서 또 외쳤다. 그러자 병사들은 안티 포이즌 스크롤을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