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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16화)
6. 개죽음이란 이런 것(2)
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
도합 1,800여 개의 마법 스크롤이 찢어지고 파란빛이 눈을 따갑게 할 정도로 번쩍였다.
휘익! 휘휙!
100명의 투척병들이 슬릿의 줄을 놓자 병사들의 머리 위를 넘어 작은 독병이 날아갔다. 달려오는 오크들과 그들에게 쫓겨 오는 병사들의 앞쪽에 떨어져 내리는 병들이 곧 바닥에 부딪히며 깨져 나갔다.
챙그랑! 와장창!
병이 깨지자 그 안에 들어 있던 독들이 공기와 만나며 반응을 일으켜 순식간에 연기를 뿜어냈다.
“크윽! 사람 살려…….”
“꾸이익!”
병사들과 오크들이 모두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는 동안에도 꾸역꾸역 뒤에서 오크들이 밀려들었다.
“충돌에 대비하라!”
“충돌 대비!”
병사들은 트링커의 명령을 복창하며 방패를 두 손으로 잡고 굳게 버텼다.
파앙! 퍼엉!
계속해서 오크들과 도망쳐 온 농노병들이 방패에 부딪쳤다. 그들은 독에 중독되어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며 방패를 밀어내려 했다.
“버텨라! 뚫리면 죽음밖에 없다!”
트링커는 방패병들이 버텨 내도록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의 외침 때문인지 병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영차! 영차!”
“으득! 뼈가 부러져도 참아!”
병사들은 자기들끼리도 독려하며 버텨 내자 이중으로 늘어선 방패 대형에 막혀 오크들은 죽어라 녹스 블레이드와 글레이브 등을 휘둘렀다.
“샤이드병 공격!”
“우리 차례다! 공격해!”
뒤에서 숨을 죽이고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샤이드병들은 방패 너머로 보이는 오크들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샤이드를 내리 찍었다.
콰직! 빠가각!
투구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 오크들이었다. 두꺼운 두개골을 샤이드가 뚫고 들어가는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돼지 멱따는 비명 소리가 전장을 메웠다.
“꾸이이익!”
“꾸익! 꾸익!”
오크들이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을 들으며 스컬은 다른 부대에 명령을 하달하고 온 싱클레어에게 말했다.
“도망가는 오크들을 토벌하는 것은 다른 부대들에게 맡기게.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오크들이 독에 중독되어 힘을 쓰지 못했기에 방패병들이 버틸 수 있었다. 거기에 행동도 느려져 초보 샤이드병들이 그들의 머리를 쪼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실전으로 경험을 쌓다 보면 나중에는 독을 쓰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수준까지 오르게 될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고수!”
전장에는 북을 치는 고수들이 항상 존재한다. 그들이 울리는 북소리를 신호로 어떻게 움직이라는 명령을 전달할 수 있었다. 아까처럼 직접 달려가는 경우는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하는 것이고 전투 중에는 북소리가 최우선적인 명령 하달 수단이었다.
둥둥! 두둥! 둥둥둥!
고수들은 싱클레어의 명령에 따라 일정한 리듬을 지닌 북소리를 울렸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적을 때 경험을 더 쌓아야 하지 않나? 내가 처음 수련할 때도 늑대 우리에 들어갔었던 거 같은데.’
스컬은 에드몬이 어쌔신들을 키워 낼 때 썼던 방법을 떠올렸다. 단검 하나 달랑 던져 주고 늑대 우리로 밀어 넣었던 사람이 에드몬이었다. 겁을 먹고 늑대들의 먹이가 되든가 공포를 이겨 내고 싸워 이기든가 둘 중에 하나만이 있는 수련 방법이었다. 그 수련을 이겨 내면 다들 한 단계 진화한 수련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실전만이 답이다. 나중에는 이런 기회가 더는 없을 수도 있다.’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방패로 밀어내고 전진하는 법도 익혀야 한다. 그것을 연습하기에 지금이 최적이었다.
“트링커!”
“말씀하십시오.”
“방패병들에게 전진 명령을 내려.”
“전진 명령을 말씀이십니까?”
트링커의 검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장으로 모시기로 한 스컬이지만 아직 오크들을 밀어낼 정도로 숙달된 병력이 아니었다. 자칫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방패병들은 서서히 앞으로 밀고 나가라! 샤이드병들은 보조를 맞춰서 공격해!”
대장인 스컬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한 트링커가 전진 명령을 내리자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던 방패병들이 조금씩 앞으로 방패를 밀고 나갔다.
“하커!”
“네, 주군!”
“뚫리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지원해. 우측은 내가 맡는다.”
“알겠습니다.”
그림자가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하커가 좌측으로 이동했다. 그가 가는 것을 보며 스컬은 말에서 뛰어내려 우측의 병사들에게 달렸다.
“읏샤!읏샤!”
병사들은 독연에 중독되어 행동이 느려진 오크들을 힘차게 밀어냈다. 그러나 개중에는 독에 대한 내성이 강한 놈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중에 하나가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철퇴를 휘두르며 방패병들을 가격했다. 한 번의 공격에 두 명 일조로 이루어진 방패조가 밀려 구멍이 생기기 직전이었다.
“저런!”
스컬은 마나를 폭발적으로 운용하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쉬잇!
날카로운 소성을 자아내며 날아가는 것은 카오스 마나 명상법의 영향으로 잿빛을 띤 마나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컬이 무기로 사용하는 강철침으로 마나가 둘러진 암기였다.
퓨웃!
막 넘어지려고 하는 방패병을 철퇴로 내려치려던 오크는 갑작스런 고통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꾸익!”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리는 육체를 느끼는 오크는 눈도 감지 못한 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가 완전히 바닥에 쓰러졌을 때에야 비로소 커다란 머리통에서 녹색의 뇌수가 터져 나왔다.
“흐어…….”
“사, 살았다.”
방패병들은 자신들이 살았다는 것에 얼이 빠진 모습으로 안도했다. 이내 자신들을 살려 준 사람이 누구인지 살피다 달려오고 있는 스컬을 보고 물밀 듯 밀려드는 존경심을 느꼈다.
‘대장님이 우리를 구해 주셨구나.’
“대장님…….”
고마움에 눈물이 찔끔 날려고 할 때 스컬이 호통을 내질렀다.
“어서 방패를 들어! 한 번 구멍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짐을 모르느냐!”
“아, 넵!”
병사들은 다시 일어나 죽을힘을 다해 방패를 들었다. 그들이 빠져 구멍이 생겼던 방어 대형은 다시 굳건하게 오크들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전투는 독 때문인지 손쉽게 끝날 수 있었다. 특히 스컬의 휘하에 있는 2개 천인대는 단 한 명의 전사자를 내지 않았다. 타워실드 위로 퍼부어진 오크들의 공격 때문에 타박상과 같은 자질구레한 부상을 입은 자들은 많았어도 이정도면 압승이라고 봐야 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내 휘하의 병사들까지 함께 공격하다니.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강력하게 항의하는 사람은 제2 천인대의 천인대장을 맡고 있었던 블란트였다. 휘하의 병사들을 모두 잃고 그에게 남은 것은 달랑 10여 명의 병사들과 기사 타크만이었다.
“정식으로 원정 사령부에 제소하겠습니다. 절대 이번 일은 그대로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타크만까지 나서서 하는 말에 로스는 모든 명령을 내렸던 스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너희들이라면 어찌했겠나?”
모여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한 번에 잡아끄는 음성이었다. 힘이 있었고 함부로 몰아치기 어려운 포스가 깃들어 있었다.
“아군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오. 그렇게 오크들과 같이 죽이지는 않았을 거란 말이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는 블란트였지만 머리로는 어땠을까 하는 회의가 일었다. 자연 눈빛이 흔들렸고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힘을 잃었다.
“다 같이 죽자는 말인가? 아니지, 나는 너 같은 멍청한 놈들 살리자고 내 휘하의 병사들을 개죽음 시킬 수는 없다.”
“마, 말씀이 심하지 않소.”
같은 천인장이었다. 끝까지 말을 하오체를 쓰며 같은 급이라고 우기는 것이었다.
“닥쳐라! 병사를 모두 잃은 네놈에게 패전의 죄를 물어 목을 베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첫 전투에서 싸워 보지도 않고 퇴각한 놈들은 목을 베는 것이 군율이다!”
스컬이 강하게 몰아붙이자 블란트는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그런 군율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사기진작 차원에서 그런 일을 벌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대꾸를 하지 못했다.
“군단장님, 오크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단 한 마리의 오크도 도망가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6천인대장 아로요입니다. 우리 천인대 쪽으로 도망 온 오크들을 모두 죽였는데 보셨습니까?”
“진짜 대단하시더군요. 멋졌습니다.”
독에 중독된 오크들은 방패의 벽에 막혀 전진하지 못하자 절반이 뒤로 도망가려 했었다. 그들을 좌우측에서 포위하고 있던 천인대들이 협공하여 주살했다. 독에 중독되어 행동도 느리고 힘도 없는 놈들을 죽이는 것이라 다른 천인대들도 별 피해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스컬의 휘하에 있는 두 천인대의 강력함에 매료되어 있었다.
‘저런 말이 나올까?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저렇게 말 못할 거 같은데.’
로스는 천인대장들이 대단하다는 말을 하며 다가오는 것에 썩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맨 처음 같이하자고 했을 때 어차피 죽을 것이고 로스와 스컬 때문에 더 빨리 죽게 됐다고 볼멘소리를 해 대던 인간들이었다. 그러던 것들이 이제 와서는 대단하다는 말을 하며 알랑방귀를 뀌려고 하고 있었다.
“공자님, 지금이라도 저들이 합류하면 싸우는 것이 더 나아질 겁니다.”
싱클레어는 어린 로스가 어깃장을 놓고 쫓아낼까 봐 얼른 끌어안으라고 조언했다.
“알아. 나 그렇게 멍청하지 않으니 염려 말라고.”
“전 걱정되어서 그랬던 건데, 역시 우리 로스 님이십니다.”
싱클레어가 멋쩍게 말하자 로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며 천인장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어서들 오세요.”
로스는 군단장으로서 승리하고 모여든 천인장들과 그 휘하의 기사들을 맞이했다.
“방패병들이 대단하더군요. 그 힘 좋은 오크들을 막아 내는 것을 보니 새삼 장비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제시 백작가의 공자인 아로요의 부관으로 갓 익스퍼트가 된 평민 출신 기사였다. 그는 나이가 40대에 이를 정도로 나이가 많았는데 돈에 팔려 온 자로 강한 전력을 갖춘 로스의 천인대에 빌붙을 작정을 하고 온 것이었다.
“우리도 에드몬 남작님께서 사비를 털어 구입하신 겁니다. 제 직속 천인대의 지휘권을 넘긴 이유가 그것입니다.”
로스가 지휘권을 넘겼다는 말을 하는 것은 넘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나도 지휘권을 넘기고 받은 장비들이니 너희들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도 있었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허참…….”
“에드몬 남작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건가요?”
어린 귀족가의 자제들은 에드몬에게 잘 보여야 국물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에드몬에게 시선을 모으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영양가 없는 놈들인데.’
솔직히 귀족가의 얼치기 자제들은 스컬에게 아무런 필요성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들이 데리고 온 기사들, 익스퍼트 초급에 갓 오른 이들이었지만 마나를 다룰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전력이었다. 그들이 필요했다. 로스의 군단에 소속된 귀족가는 23개로 산술적으로 보면 기사만 23명이 있는 셈이었다. 한센은 기사 대신 누나인 카트리나가 3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로 종군하기로 했으니 기사 22명에 마법사 1명이 있었다.
‘다 죽여 버리고 기사들만 흡수할까?’
잠깐 못된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이대로 가면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게 될 놈들이었다.
“에드몬 남작님, 잠시 저와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어허! 내가 먼저 왔는데. 차례 좀 지킵시다.”
아직 나이 어린 공자들을 대신해서 기사들이 나섰다. 어떻게든 지원을 받아 내기 위해 스컬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으려는 것이었다.
“트링커!”
“대장님, 부르셨습니까?”
트링커가 달려오자 기사들은 무슨 일인가 하여 입을 다물고 스컬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우리 쪽 작전에 대해서 알려 주고 우리가 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병력만 추려 봐. 나는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었다. 특히 같잖은 놈들이 기사이네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것을 보느니 몬스터들과 생사투를 벌이는 것이 더 편했다. 거기에 자신이 직접 상대하면 대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지원을 해 줘야 한다. 권한이 없는 트링커는 자신의 핑계를 댈 수라도 있었다.
“제가요?”
“그래, 잘 협의해 봐.”
“끙… 알겠습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부하의 도리였다. 거기에 자신에게 미루는 스컬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간파했다. 지금 직속 천인대에서 사용할 병기만 간신히 갖춘 상태였다. 저들에게 지원해 줄 것이 없으니 자신에게 협의하라고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