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엘가드 스컬 1권 (17화)
6. 개죽음이란 이런 것(3)
스파파팟!
마나를 실어 달려 나가는 스컬의 움직임은 명마라고 불리는 말들이 달리는 속도에 준하는 것이었다. 숨결도 거칠어지지 않은 스컬이 달려가는 곳은 마왕의 숲에서 첫 번째 요새가 있다고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알아보려고 가는 길이었다.
‘정찰병!’
전방에서 느껴지는 오크들의 움직임에 서둘러 나무 위로 뛰어 올랐다. 오크들은 돼지의 머리에 직립보행을 하는 몬스터로 성인 남자의 3배 정도 되는 힘을 쓸 수 있었다. 후각이 발달되어 먹잇감을 찾는데 뛰어났기에 급하게 마나를 운용하여 몸을 둘러쌌다.
“꾸이! 꾸이익!”
오크들의 언어는 두 종류를 같이 사용했는데 하나는 그들 특유의 소성을 이용하는 것으로 장단이나 길이를 신호로 하여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었다. 단어가 상당히 적은 그들만의 언어로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없기에 발달된 신호음 같은 거였다.
‘점점 더 많아진다. 요새는 아직도 보이지도 않건만.’
지금 본대가 머물고 있는 평지 지형에서 반나절을 넘게 들어왔다. 말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른 그의 움직임을 감안하면 일반 병사들은 이틀은 족히 달려와야 할 거리였다.
‘정찰병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또 소규모 부락이 어디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첫날 전투에서 천여 마리의 오크들과 조우를 했었는데 조금 더 전진하자 그들의 부락이 있었다. 여성 오크들과 새끼들을 합쳐서 3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을 학살해야 했었다. 초입부분이 그 오크 부락의 땅이었고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본 오크 부락이 하나 있었다. 일정 거리를 두고 부락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요새를 점령하고 오크 부족은 이들을 다스리는 오크 로드일 가능성이 컸다.
‘음유시인이라는 놈들이 떠드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오크 로드는 블레이드 마스터라고 했던가?’
정찰병 오크들이 지나가고 다시 요새로 향하는 스컬은 오크 로드라는 존재에 대해서 떠올렸다. 인간들의 마스터와는 어떻게 다른지 겨뤄 보고 싶다는 호승심도 생겨났다.
“단둘이 만나게 된다면 겨뤄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단둘이 만난다지만 그건 자신이 직접 요새로 잠입해 들어가서 오크 로드를 만나기 전에는 어림없었다. 해결사로 살았다지만 그 기본은 어쌔신이었고 어쌔신으로서의 모든 기본적인 능력을 마스터한 스컬이었다. 몰래 들어가서 오크 로드를 암살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싱긋 웃었다.
“저게 요새?”
스컬은 숲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너른 벌판이 보였다. 그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요새는 날고 허물어져 가는 석성이었다. 그것도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많이 겪었는지 요새의 문 쪽은 거의 박살나서 벽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이드!”
스컬은 요새 안을 정찰해 보기 위해 하이드 기술을 사용했다. 쉐도우 하이딩과는 다른 기술로 어둠의 성질을 가진 마나를 이용하여 몸을 가리는 어쌔신들의 기술이었다. 본래는 흑마법에서 유래된 것인데 수천 년의 세월을 통해 어쌔신들의 기술로 흡수된 것이었다. 실제로 이 하이드 기술은 그림자 속으로 숨는 쉐도우 하이딩과는 다르게 투명화 마법이라는 인비지빌리티와 그 효능이 같았다.
“꾸꾸익!”
“꾸우우!”
오크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버릇대로 소리를 냈다. 유난히 콧방귀를 잘 끼는 특성을 가져서인지는 몰라도 10초만 숨을 죽이고 버티면 누가 어디에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제일 높은 곳이 저 허물어진 석탑인가?’
3층 높이 정도의 석탑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요새 안을 다 살피자면 높은 그곳이 제격이었다.
“투카!”
“꾸익!”
쉬잇! 챙챙!
탑으로 가는 도중에 오크 전사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곳을 지나가야 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수련인 듯했는데 자뭇이 대단한 싸움이었다. 짧은 다리를 이용하여 잰걸음으로 달려갔다가 그대로 우악스런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후려쳤다. 자칫 죽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막고 다시 반격하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들의 수련 모습을 관찰하며 탑으로 가는데 눈에 띄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중에 특히 무기가 눈에 띄었는데, 철제 무기들을 어디서 구하는지는 모르지만 세이버 형태의 기병장도 정도로 보이는 무기들을 주로 사용했다. 글레이브라고 세이버의 날에 긴 손잡이를 단 무기도 간혹 보였다. 무식한 힘을 자랑하는 오크들이라 그런지 무기의 형태도 힘을 투사하기 좋은 환도 형태의 무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창! 창! 창! 창!
오크들은 싸우는 오크 전사들을 둥글게 에워싸고 무기를 부딪히며 흥을 돋웠다. 오크들은 계급이 철저한 원시 부족 사회로 보면 맞았는데 제일 위가 오크 로드이고 그 아래가 오크 주술사였다. 그 다음이 오크 전사로 인간 사회로 치면 기사급의 존재가 오크 전사들이었다. 이들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몬스터로 지능도 상당히 발달하여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놈들이 여기에 속했다. 특히 오크 주술사들은 인간의 마법과 같은 토템술을 사용했는데 그 위력이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제일 아래 계급이 일반 오크들과 오크 스카웃으로 알려진 놈들인데 아직 오크 스카웃에 대한 것은 스컬도 알지 못했다.
‘수가 상당히 많군. 족히 3천은 넘겠어.’
탑으로 올라가기 위해 걸어간 거리는 3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다. 요새의 중앙을 가로질러 가는 것인데 연무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오크들의 수가 그 정도는 되어 보였다. 특히 요새의 내외곽으로 원시적인 형태의 움막에 쳐져 있고 그곳에는 여지없이 여성체 오크들과 새끼 오크들이 바글바글했다.
‘내가 들어왔던 곳이 제일 후미에 있는 곳이었나? 반대쪽은 더 많이 몰려 있네.’
무너진 탑의 제일 위로 올라와서 보자 요새의 반대쪽으로 더 많은 움막들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지어져 있었다. 인간들이 만든 도시 정도로 보면 맞을 것 같은 그 광경에 고개가 저어졌다.
‘이런 요새를 1개 군단으로 점령하라는 것은 오크들에게 죽여 달라고 목을 내미는 것과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연무장에서 수련하는 오크들만 족히 3천이 넘었고 그 외에도 정찰하는 놈들과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놈들까지 합하면 4천 이상의 대규모 병력이었다. 거기에 움막에서 나오지 않은 오크들까지 합한다면 군단급은 우습게 넘어서는 병력일 것이었다. 훈련되지 않은 병사라면 3명은 모아야 오크 1마리를 상대할 수 있었다. 거기에 오크 전사들은 기사와 동급의 전력으로 봐야 했다.
‘저 연무장에 보이는 오크전사들만 해도 100여 마리는 넘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싸움이었다. 방법이 있다면 자신이 오크 전사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방법이 남아 있었다.
“일단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 아무리 죽으러 온 거라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내모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스컬은 정식으로 사령관에게 오크들의 수를 말하고 어떻게 나오는지 볼 생각이었다. 만약 지원 없이 요새를 점령하라고 하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도 있었다.
‘그때는 오크들을 유인해서 사령부 직속 군단으로 몰아주면 되는 거지. 살고 싶으면 싸우겠지.’
스컬은 싸늘한 조소를 남기고 오크 요새 정찰을 마치고 귀환했다.
“로스 군단장에게 이미 명령을 내린 것으로 기억하네만.”
삐딱하게 나오는 백작은 의자에 기대어 앉은 자세로 다리를 꼬고 있었다. 턱을 적당히 치켜들고 있어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정찰해 본 결과 요새를 차지하고 있는 오크들의 수는 1만 단위가 넘어갑니다. 그것도 남성체 오크들로만 말입니다.”
인상을 굳힌 채 스컬이 말하는 것에도 사령관인 제이슨 백작은 요지부동이었다.
“그깟 오크들이 얼마나 강하다고 그리 엄살을 부리는 건가. 정말 그 정도의 오크들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것 아닌가 말이야.”
“제가 직접 눈으로 본 것입니다. 오크 전사들만 100마리가 넘는 대규모 부락이었단 말씀입니다.”
스컬이 직접 본 것이라고 말함에도 제이슨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선봉군단의 역할이 뭔가 먼저 적들과 싸우는 것이 선봉군단일세. 일단 싸움에 돌입하면 본대도 합류할 것이니 그리 알게.”
선봉군단에 패하고 물러나면 오크들이 몰려나올 것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제이슨 백작이 노리는 바는 선봉군단을 희생시켜서 오크들을 요새 밖으로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그편이 요새를 점령하기 쉽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 왔던 마왕의 숲 원정대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었다.
“만약 싸워 보지도 않은 채 지원을 요청한다면 다음에는 군율로 다스릴 것이니 그리 알게.”
“군율이라… 명령대로 하지요. 아주 시원하게 오크들과 싸워 보겠습니다. 정말 시원할 겁니다. 큭!”
스컬은 썩은 미소를 날리며 제이슨 백작의 살짝 분노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차갑게 식어 있는 스컬의 눈동자에 제이슨 백작의 눈동자가 살짝 이상한 징후를 보였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트링커!”
스컬은 제이슨 백작과 독대한 후 곧장 임시 막사로 돌아왔다. 작은 오크 부락을 정리하고 세운 막사에는 로스를 비롯한 싱클레어와 트링커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장님, 어디를 갔다 오신 겁니까? 한참 찾았습니다.”
요새를 공략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러 제이슨 백작의 기사가 다녀갔었다. 그것을 모른 상태에서 백작을 만나고 온 것이었다.
“제자들을 다 모아라.”
“제자들을요? 알겠습니다.”
트링커 역시 스컬의 카오스 마나 명상법을 배운 제자와 같은 부하였다. 병사들 중에서 나이가 어리고 근골이 좋은 50명의 제자 아닌 제자들은 날마다 저녁이면 스컬에게서 마나 명상법과 여러 가지를 배웠다.
“다 모아 왔습니다.”
20분이 채 지나기 전에 트링커가 제자들을 모두 모아서 막사로 데려왔다. 전원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는 아니어서 스컬은 밖으로 나가 제자들을 만났다.
“모두 왔느냐.”
“네, 대장님!”
고작 한 달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그간 많은 발전을 보였다. 첫째 강제로 마나홀을 만들어 준 덕분에 작기는 하지만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검술에 대한 것이 부족하여 마나소드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움직임이라든지 오감 같은 것은 상당히 발전해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일일이 훑어본 후 결정을 내렸다. 화끈하게 오크들을 몰아서 본대에 인도해 줄 미끼로 이정도면 훌륭하다는 판단이었다.
“너희들은 내일 나와 함께 오크들을 몰러 간다. 할 수 있겠나?”
겁이 나는 사람들은 빠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대장님!”
“질문 있나?”
“네.”
질문 있다고 말한 청년 병사는 마나 명상법을 배우는 병사들 중에서 가장 성취가 빠른 자였다. 이름은 로미로 18살이 되어 농노병으로 차출되어 왔었다. 자신이 농노병으로 오면 가족들을 농노에서 풀어준다고 했기에 자원해서 온 것이었다. 나이가 어린 만큼 머리가 잘 돌아갔고 학습 능력이 좋아 스컬의 가르침을 120%로 받아들이는 인재였다.
“말해라.”
“단지 몰아오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싸워야 하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눈에 호승심을 드러내며 묻는 로미는 직접 검을 들고 전투를 해 보기를 원하는 모습이었다. 스컬은 미소가 지어졌지만 순간적으로 컨트롤하며 포커페이스로 돌아갔다.
“너희들은 아직 피라미에 불과하다. 마나 명상법을 배웠다고 오크를 우습게 보는 건가?”
싸늘한 스컬의 말에 로미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나를 느끼게 된 후로 움직임도 빨라지고 마나를 활용하여 검을 휘두르면 베기 어려워 보이던 통나무도 싹둑싹둑 잘라 낼 수 있었다. 자신감이 무럭무럭 생겨나는 것에 직접 전투를 해 보고 싶은 욕망이 컸다. 지난번 같은 전투는 전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라 시시했었다.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비단 로미의 문제만이 아니라 마나를 배운 병사들 모두의 심정이었다.
“머 오크 정도는 죽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오크 전사라도 만나게 되면 한 방이다. 그게 너희들의 실력이고.”
냉정한 말이었지만 모두는 기뻐했다. 전에는 오크도 죽이지 못했던 전투력 0의 사람들이 자신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크는 죽일 수 있다지 않은가. 점점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럼 몰아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간단해. 달리면 된다.”
말 그대로 인간 미끼가 되어 오크들을 몰아오는 역할이라는 거였다.
“위험하지는 않겠습니까? 저희들이야 어느 정도 실력이 된다지만…….”
트링커는 걱정스러웠다. 기껏 마나홀을 만들어 주고 공을 들여서 키우고 있는데 죽기라도 하면 앞으로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생각보다 오크들은 걸음이 느리니까.”
“삼촌!”
트링커의 걱정을 덜어 주는 말을 할 때 잠자코 있던 한센이 불렀다. 누나인 카트리나와 둘이서 마법 공부에 전념하며 나머지 일들은 모두 스컬에게 맡겼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끼어들지 않던 그가 입을 여니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궁금한 거라도 있는 거냐?”
“네, 혹시 오크들을 몰아서 사령관이 있는 군단으로 몰아가면 나중에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름 일리가 있는 걱정이었다. 잠깐 궁리한 스컬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방법이 있다.”
“그게 뭔데요?”
“간단해. 오크들을 몰아서 본대와 싸우게 만들고 빈 요새를 우리가 쳐서 빼앗는 거지. 그럼 된다.”
자신이 조금 힘들게 움직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오크 로드를 죽여서는 안 되고 간단하게 상처만 입히고 도망치면 그 다음은 맨 처음 세웠던 계획대로 될 것이었다.
“로스 공자님.”
“저요?”
로스는 자신에게도 임무가 주어질 것인지는 몰랐기에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와 병사들이 오크들을 유인하여 본대로 모는 동안 비어 있는 요새를 공략하십시오. 싱클레어경과 트링커가 도와줄 것이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알겠어요.”
겁은 나지만 비어 있는 요새를 공략하는 일이었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하커!”
“네, 주군!”
“너는 내일 군단과 같이 움직이며 정찰하는 오크들을 제거해라. 절대 정찰병들에게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혼자서 군단급의 인원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는 오크들을 다 막는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도 부족하기에 이런 억지에 가까운 명령을 내렸다. 하커도 충직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우상인 스컬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