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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18화)
6. 개죽음이란 이런 것(4)
“여기서 대기한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하여 정찰병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전진했었다. 군단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숨어 있게 했고 자신들은 곧장 요새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이었다. 이제 십여 분 정도만 더 걸어 들어가면 오크들의 요새가 나온다.
“혼자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경화가죽갑옷을 입고 손에는 방패와 브로드소드를 든 로미가 물었다. 다른 병사들도 똑같은 방어구와 무기를 들고 있었다. 특히 방패는 등에 맬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도망갈 때 등과 머리를 보호할 수 있게끔 준비된 상태였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려면 이 정도의 준비는 필수 사항이었다.
“걱정 마라. 오크들을 유인해서 본대가 있는 곳까지 유인하면 되는 거니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어.”
“그래도요. 걱정되니까 그렇죠.”
로미는 스승이라고 여기는 스컬이 혹시라도 죽을까 봐 걱정했다. 농노에 불과한 자신들에게 귀한 마나 명상법과 싸우는 법을 알려 준 고마운 스승이었다. 자신들의 안위보다 더 걱정되는 것이 바로 스승인 스컬이었다.
“내가 멍청한 짓만 안 하면 날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손에 꼽을 수 있다. 알겠나!”
오만한 말이었지만 그게 믿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아무리 스승이라도 저런 모습은 허풍이라고 여겨져야 하건만 자신감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대기하는 것이 좋겠다. 이따 보자!”
스컬은 제자들에게 나무 위로 올라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요새로 이동했다. 요새 안과 밖으로 자리한 수많은 군락들을 지나쳐 무너진 문을 지났다.
쿵딱, 콰직!
오크 전사들이 또 대련을 하며 나는 소리였다. 이들의 하루 일과가 사냥을 하거나 아니면 이렇게 수련을 하며 보내는 듯했다. 일반 오크들이 사냥을 해 오는 것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굶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크 로드를 찾아야 한다.’
지난번에는 안에 무엇이, 그리고 얼마나 있는지 정찰하는 목적이었다. 오크 로드는 관심 밖이었고 굳이 찾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오크들의 대규모로 끌고 가려면 오크 로드의 성질을 건드릴 필요가 있었다.
‘저기다!’
30분을 찾은 끝에 오크 로드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요새 안의 가장 큰 건물로 오크 전사들과 조잡한 형태의 활을 든 오크 스카웃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고 있는 곳이었다.
“꾸익! 킁킁!”
스컬이 하이드 기술을 사용하여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코를 킁킁거리며 오크 전사 하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손에 든 글레이브를 스컬이 지나가는 방향으로 뻗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킁킁! 에취!”
킁킁거리다 무언가 코로 들어갔는지 재채기를 하는 오크 전사가 멍청해 보이는 반쯤 풀린 눈으로 돌아갔다.
‘몬스터라 그런가 냄새는 무지 민감하네.’
특히 돼지의 진화형 몬스터여서 그런지 냄새에는 특히 민감했다. 어쌔신들은 냄새를 없애는 훈련을 받았었고 스컬도 항상 냄새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그럼에도 미약한 냄새에 킁킁거리는 놈들이니 대단하다는 감탄만 나왔다.
7. 어부지리(1)
스컬의 키는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다. 이 당시의 평민들은 영양이 모자란 탓에 170 넘기가 힘들었고 특별히 뛰어난 유전자를 타고 난 사람들만이 190에서 200을 넘어섰다. 특히 용병 중에서 잘나가는 자들은 아비가 기사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고기를 충분하게 먹일 수 있는 뛰어난 사냥꾼인 경우가 많았다. 182센티미터의 스컬은 큰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딱 알맞은 키 정도로 봐야 했다.
‘오크들은 큰 놈들이 160 정도나 될까? 하지만 체구는 진짜 대단한 놈들이야. 저러니 힘을 쓰는 거겠지만.’
완전히 맥주 통을 연상하게 하는 오크들의 체형을 감상하며 미끄러지듯 움직여 오크 로드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점점 마나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오크 로드와의 거리가 가까워짐을 알 수 있었다.
“아바툼! 라르샤! 파캄!”
오크들의 언어는 상당히 짧은 단어 위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의 뇌구조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닌 탓에 이런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라! 오르크!”
거구라고 해야 할 오크 로드가 돌을 깎아 놓은 커다란 단 위에 무언가를 놓고 외쳤다.
‘뭐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에 스컬은 오크 로드를 습격하려다 말고 호흡을 고르며 침착하게 움직였다. 하이드 기술을 쓰고 있는 탓에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조심해야 했다. 마나를 다루게 되면 제일 먼저 좋아지는 것이 오감 중에 시각과 청각이었다. 미각와 후각 등은 훈련을 쌓지 않아서 모를 일이지만 오크들은 그런 것이 먼저 좋아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스읏! 스으으읏!
천장의 낡은 나무로 올라 조금씩 기어 오크 로드의 머리 위로 갔다. 미세한 소음도 죽여야 했지만 이럴 때마다 자신의 귀에는 천둥치듯 소음이 들렸다.
‘조심… 조심…….’
긴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할 때마다 피가 끓어올랐다. 스스로 이런 일을 상당히 즐기고 있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울라! 부카 오르크!”
오크 로드가 또 뭔가를 말할 때 돌단 위가 보였다.
‘저것은 지도? 그것도 상당히 세밀하게 기록된 지도다! 오크가 지도를 만들 수도 있는 건가?’
완벽한 상식의 파괴였다. 지도의 등고선까지 그어진 것을 보면 대략의 높이도 관측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오크들이 수학이라는 학문, 그것도 관측에 필요한 고등수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가만 부카 오르크라는 말이 다른 오크 부족을 의미하는 건가 본데. 저건 또 뭐지?’
지도 위에는 몇 개의 돌멩이가 놓여 있었다. 자신이 요새로 오면서 기록한 지도 비슷한 것을 생각할 때 맨 아래쪽의 돌멩이가 이들 오크 부족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저 갈색 돌이 이들 부족이고 붉은 돌이 부카 오크족이면… 저 검은색은 검은색 오크들인가?’
이들과 같은 거대 부족을 이루고 있는 오크들이 최소 4개 이상이라는 것을 지도에서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오크 로드가 돌멩이를 올려놓은 위치에 그들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싹툼! 토르펨!”
싹툼이라는 말은 오크 부족들과 싸울 때마다 들었던 단어였다. 칼 들고 설치면서 흉폭 한 외침을 토할 때 내는 단어로 죽어라 정도로 해석이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토르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했다. 뭔데 죽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걸까 싶었다.
‘오르크는 오크 부족을 뜻하는 걸 테고, 토르펨은 다른 족속인가? 부카 오크 부족의 동북쪽 골짜기부터 협곡 비슷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거 같은데.’
스컬은 지도를 가지고 갈 생각을 굳혔다. 지도 위에 놓인 돌멩이와 그것들의 위치를 기억한 후 숨을 소리 없이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곧장 나무에서 떨어져 내렸다.
“죽엇!”
쉬잇!
넓은 브로드소드가 뽑히고 허공에 일직선으로 마나의 선이 그려졌다.
“꾸익!”
오크 로드와 회의를 하던 오크 주술사, 그리고 오크 전사들은 경악성도 내지르지 못한 채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스컬의 공격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것이 누군가 떨어진다는 것을 눈으로 발견했을 시간에 불과했다. 그들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스컬의 검이 오크 로드의 몸통을 베고 있었다.
슈칵!
죽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급소는 되도록 피해서 베었다. 하지만 오크 로드 또한 블레이드 마스터였기에 그 짧은 순간에 뒤로 물러섰다.
“어림없지!”
쉬잇!
녹색의 피를 뿌려 내며 뒤로 물러서는 오크 로드를 쫓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아직 오크 로드는 경황이 없는지 반격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싹툼!”
“후만! 싹툼!”
싹툼은 역시 죽이라는 단어가 분명했다. 오크 전사들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스컬에게 싹툼이라는 단어를 외치며 분분히 날이 두터운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너희들은 이거나 먹어!”
휘익! 쨍강!
바닥을 향해 작은 유리병을 집어 던졌다.
피스스슷!
병이 깨지며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급속도로 커다란 홀을 메워 갔다.
‘제길 도망가는 것은 더럽게 빠르군. 퇴각해야 한다.’
스컬은 오크 로드에게 작은 병 하나를 더 던지며 외쳤다.
“더러운 오크 놈들아 너희들은 정벌하러 제국군이 왔노라. 싸울 자신이 있다면 따라와 보거라! 으하하하하!”
오버하며 웃음소리를 터트린 스컬이 지도를 집어 들며 재빠르게 홀 밖으로 뛰쳐나갔다.
“꾸익! 우르탄! 싹툼!”
오크 로드는 쇄골부터 시작하여 치골이 시작되는 부분까지 길게 상처를 입었다.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은 오크 로드는 분노를 터트리며 스컬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카아!”
“카아! 싹툼!”
오크 전사들은 독연에 중독된 상태에서도 우르르 몰려 나가며 스컬을 쫓았다.
“비켜! 막는 놈들은 죽는다!”
피피피피피핏!
마나가 실린 비침이 한 번에 십여 개씩 날아갔다. 날아가면서 퍼져나가는 비침은 스컬의 앞을 막아서는 오크들의 미간을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꾸익!”
“카아!”
죽어 나가는 오크들보다 더 많은 수의 오크들이 스컬의 뒤로 늘어만 갔다. 이미 요새를 벗어나기 직전인 상태에서 오크 전사들의 대부분과 일반 오크들까지 합하여 어림잡아 8천에 육박하는 수가 몰려나오고 있었다.
“싹툼!”
비침에 당하지 않은 오크 하나가 글레이브를 사선으로 내려치며 스컬을 공격했다.
“으캬?”
분명 스컬의 머리를 베어 냈다고 생각한 오크는 아무런 걸리는 느낌이 없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미 스컬은 그의 공격을 빠져나가며 뒤쪽으로 한참 더 가 있었다.
파앗!
“꾸… 익…….”
고개를 가로젓던 오크는 갑자기 목이 화끈해지며 피가 뿜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죽어 갔다.
“도망가라!”
오크들의 요새를 빠져나가서 숲을 돌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추격해 오는 오크들을 뒤에 달고 오는 것이기에 시간은 배로 더 걸렸다.
“흐미! 진짜 개미 떼가 따로 없네.”
“진짜 많다. 걸리면 뒤진다. 튀어!”
병사들은 놀라서 긴장한 겨를도 없이 외쳤다. 그리고 그들은 스컬이 지나칠 때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카아! 싹툼!”
“루카바! 꾸익!”
오크들은 쫓아오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질러 댔다. 살기등등한 것을 보면 죽이겠다는 뜻일 것이었다.
“석궁 꺼내!”
스컬은 방패를 등에 매달아서 뒤쪽의 방어력을 높인 병사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신줏단지 모시듯이 곱게 들고 있던 석궁을 든 병사들이 스컬을 쳐다보았다.
“틈틈이 석궁을 발사해라. 달려가면서 장전하는 것은 평지일 경우만 하고.”
장전한답시고 걸려 넘어지면 그대로 카론의 배에 타는 지름길이었다. 망자들을 건너는 뱃사공인 카론의 배에 타고 싶은 인간은 없을 것이었다.
‘내 역할이 중요하다. 추격에 대한 의지를 끊어지지 않게 만들어야 하니.’
뒤쪽의 오크들은 앞쪽에 목표물이 오십여 명으로 늘어나자 더욱 흉한 괴성을 지르며 쫓아왔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로드를 공격했다는 것에 무조건 죽인다는 일념뿐이었다.
‘이쯤에서 성질을 건드려 주는 것이 좋겠다.’
“받아라!”
피피피피피피핏!
달려가다 공중으로 점프하며 한 바퀴를 회전했다. 그러는 동시에 손을 놀려 수십 개의 비침에 마나를 실어 날렸다. 화려한 색감을 지닌 비침이 오크들에게 날아들었다.
퓨퓨퓨퓨퓨퓨퓩!
오크들의 머리와 몸통을 관통한 비침이 뒤쪽의 오크들까지 꿰뚫었다. 한 번의 공격에 적어도 오십 마리 이상의 오크들이 타격을 받았다. 작은 비침이 꿰뚫은 것이라 무슨 타격이 있을까 싶었지만 마나에 둘러싸인 비침의 두께는 지름 1센티미터에 달할 정도였다. 화살을 맞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타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꾸익! 싹∼투움∼”
오크 전사는 일족의 오크들이 쓰러지자 더욱 광폭하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오크 전사의 대시는 가공할 정도의 스피드로 나타났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것에 이제 갓 마나에 입문한 병사들은 곧 따라 잡힐 것 같았다.
“용감한 것과 멍청한 것은 구분해야지!”
피릿!
추격해 오는 오크 전사를 향해 오른손을 가볍게 털어 냈다. 다시금 날아가는 비침이 파란 선을 허공에 만들어 냈다. 스컬의 손과 오크 전사의 머리통에 동시에 나타난 선으로 인해 전사의 뒤통수에서 녹색의 피가 솟은 것이 느리게 보였다.
“꾸익!”
오크 전사들은 제일 선두에서 쫓아나가던 동료가 죽어 나가자 멈칫했다. 분노한 와중에도 강한 적에 대한 두려움이 잠깐 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오크였고 그 수는 8천을 넘어서는 대병력이었다. 고작 50명밖에 안 되는 인간들에게 겁먹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