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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19화)
7. 어부지리(2)


///“싹툼!”
“싹투움!”
전사들이 다시 흉포한 괴성을 지르자 그 뒤를 따라 오크들이 합창하듯 외쳤다.
“싹툼!”
다시금 광기가 오크들에게 몰아치고 그들은 분노를 담아 달려 나갔다.

“헉헉! 주, 죽겠습니다. 허억!”
숨이 가빠 제대로 말도 못하는 병사는 나이가 좀 많은 농노병 출신의 제드라는 청년 병사였다. 근골이 뛰어나고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닌 청년으로 스컬에 의해 제자로 받아들여졌었다. 나이가 많은 만큼 마나에 대한 적응력이 다른 병사들에 비해 쳐졌다. 하지만 노력만큼은 가장 뛰어나서 어찌어찌 적응해 가는 중이었다.
“카오스 마나 명상법은 움직이는 중에도 운용할 수 있다. 마나로드를 따라 마나를 움직여! 그러면 피로가 풀리고 비어 있는 마나홀이 채워질 거다. 제드! 내 마나를 거부하지 마라!”
“네, 대장님!”
스컬은 너무 지쳐 곧이라도 낙오할 것 같은 제드의 마나로드로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었다. 허공을 격하고 마나를 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자칫 둘 다 마나의 폭주로 죽을 수 있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었지만 주저 없이 마나를 보냈다.
“후아! 후우!”
제드의 호흡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다. 죽을 것 같았던 안색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달리는 속도로 회복되었다.
“또 힘든 사람은 말해라.”
“저, 저도 좀…….”
“헉헉! 저도요.”
병사들 모두가 힘에 겨워하고 있었다. 다만 스컬이 실망할까 봐 이를 앙다물고 정신력으로 버텨 낸 것이었다.
‘후우! 별수 없지.’
마나를 타인의 마나로드로 불어넣는 것은 엄청난 고단위도의 기술이었다. 자신의 마나에 대한 컨트롤과 지배력이 떨어지면 할 수 없는 것으로 10의 마나를 보내 1, 2의 마나만 전해져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고로 병사들에게 들어가는 마나의 5배 정도의 마나를 쓰는 것이라고 보면 맞았다.
“달리는 중에도 마나 명상법을 운용해라. 조금씩이지만 마나가 돌아 호흡이 편해질 것이다.”
“네, 대장님!”
병사들은 스승인 스컬의 말이라면 죽으라고 해도 시늉까지는 할 정도였다. 진짜 죽으라고 하면 문제는 조금 틀려질 정도의 충성심이지만 한 달의 인연치고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제 곧 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준비들 해!”
“넵!”
사령부가 있는 곳까지 남은 거리는 채 5키로미터도 안 남은 상황이었다. 전방에서 놀란 무언가가 뒤로 도망치는 것을 느꼈으니 그들이 사령부의 척후병들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됐으면 다시 한 번 오크들을 타격한다. 볼트 장전!”
스컬의 외침에 병사들은 달려가면서 석궁의 시위를 당겼다. 석궁은 탄력을 높이기 위해 대를 튼튼하게 만들었다. 해서 어지간한 힘으로는 당겨지지 않을 정도로 탄성이 좋았다. 보통 석궁을 장전하려면 앞에 달린 손잡이를 발로 밟고 당기는 식이었다.
끼익! 끽끽!
병사들은 마나를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근력도 상당히 올라간 상태였다. 어렵지 않게 시위를 당겨 걸쇠에 걸고 사대에 볼트를 올렸다. 보지도 않게 척척 해내는 병사들은 스컬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지금이다! 발사!”
피피피피피피피피핑!
병사들이 발사한 석궁과 스컬이 던진 비침들이 매섭게 오크들을 향해 날아갔다. 마나를 머금은 비침들이 먼저 발사된 석궁의 볼트를 추월하여 오크들을 덮쳤다.
퓨퓨퓨퓨퓨퓨퓨퓨퓩!
지금까지 유인하면서 죽인 오크들의 숫자만 해도 천여 마리는 넘어갈 정도였다. 추격을 멈추려고 할 때마다 비침과 석궁 공격으로 오크들을 죽였던 것이었다.
“꾸익! 큭큭! 꾸이이익!”
오크 전사는 분노로 길길이 날뛰었다. 호흡이 가빠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거친 숨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힘은 남아 있었다. 원체 체력이 좋은데다 몬스터 특유의 회복력이 달리는 것 정도로는 힘을 빠지게 만들기 어려웠다.

“사령관님! 사령관님임∼”
허둥지둥 달려온 척후대의 기사 하나가 사령관을 찾으며 본대의 군막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는 제지하는 기사들을 밀쳐내며 급하게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오크들의 공습입니다!”
기사의 외침에 제지하던 자들이 물러서고 군막의 입구가 활짝 열렸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냐?”
제이슨 사령관은 갑작스런 척후대 기사의 통보에 인상을 굳히며 물었다. 그러자 얼른 그의 앞에 부복한 기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크들의 대부대가 사령부 쪽으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30분이면 들이닥칠 겁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뭐, 뭐라? 오크들의 대부대라니? 얼마나 오기에 그러는 것이냐, 아니지 당장에 전투 명령을 내려라! 오크들을 막아야 한다!”
제이슨 백작은 오크들이 몰려온다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자신들의 앞쪽에 자리 잡고 있는 로스의 군단 때문에 안심하고 있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답게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빠르게 명령을 하달했다.
“당장 2, 3군단에 명령을 내려 좌측으로 진군하라 전하라! 4, 5군단은 우측을 맡아 오크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나머지 군단들은 우회하여 오크들의 뒤를 막아 도망가는 놈들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당장 시행하라!”
“명을 받듭니다.”
기사들이 대답과 동시에 군막을 뛰쳐나가고 백작은 자신도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갑옷을 걸쳤다.

두둥! 두둥! 두두둥!
고수의 북소리에 맞춰서 병사들이 집결했다. 초지를 가득 메우기 시작한 병력들은 오 열 횡대로 길게 늘어서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려 나왔다. 대부분이 롱스피어를 든 농노병들에 불과했지만 사령관인 제이슨 백작이 이끄는 병력은 튼실한 무장을 갖춘 정예 용병군단이었다. 거기에 제이슨 백작이 이끄는 실버라이언 기사단까지 선두에 서 있어서 대단한 기세를 뿜어냈다.
“오, 오크들이래.”
“어떡하지. 우린 다 죽을 거야. 흐극!”
병사들은 오크들의 대부대가 몰려온다는 것에 두려움에 떨었다. 병력은 자신들이 더 많았지만 전투 한 번 치러 본 적 없는 이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겁먹지 마라! 우리의 병력이 월등히 더 많다! 오크들을 가볍게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니 너희들의 힘을 믿어라! 우리는 오늘 승리할 것이니 사령관인 나를 따르라!”
제이슨은 마나를 실어 외쳤다. 마법사들이 증폭 마법을 걸어 주어서인지 그의 목소리는 전장이 될 초지에 가득 메운 병사들에게 고루 전달되었다.
꾸이익! 꾸이익!
두두두두두두두!
숲과 숲 사이의 개활지에서 대기 중인 병사들의 대열로 멀리서 들려오는 엄청난 괴성과 발자국 소리들이 들려왔다. 땅이 진동으로 울리는 착각이 일 만큼 대단위의 오크 부대들이 돌격해 오는 소리였다.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음에도 점점 더 공포가 병사들을 휘감았다.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공포에 물들어 서서 오줌을 재리는 병사들까지 등장할 지경이었다.
“부대, 창 앞으로!”
“창 앞으로!”
오크들이 개활지로 들어선 순간 제이슨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병사들은 지휘하는 기사들과 백인대장들의 군호에 맞춰 창을 앞으로 내밀며 전투 대형을 갖췄다.
“궁수대 준비!”
아직 거리는 1000보 이상 떨어져 있었다. 성인 남자의 보폭은 1보가 70센티미터 정도였고 아직 700미터의 여유가 있었다. 궁병들이 소유한 장궁은 조잡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거리가 길어야 300보 정도 날아가는 것이었다. 35도 각도로 날려야 최대 사거리와 함께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것이라 오크들이 돌격해 올 때까지 3, 4번의 사격이 가능했다. 조준하지 않고 쏜다면 배는 더 빨리 쏠 수 있지만 시간만 날릴 가능성이 더 컸다.
“꾸이익!”
“카아! 싹툼!”
오크들은 숲을 나와 개활지로 들어서자 엄청난 숫자의 인간 군대가 있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겁이라는 것을 모르는 몬스터였고 이 숲은 그들의 홈그라운드였다. 적을 보고 도망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오크들은 그대로 돌진해 들어갔다.
“비켜! 비키라고!”
오크들의 추격을 받으며 반나절 거리를 주파한 스컬과 병사들은 팔을 내저으며 외쳤다. 그제야 오크들에게 쫓겨 온 그들의 존재를 느낀 병사들은 지휘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명령을 내려 달라는 것에 기사들이 외쳤다.
“길을 열어라! 아군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바짝 쫓기는 것이라면 저런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오크들과의 거리가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가능한 명령이었다.
착착!
병사들이 길을 터 주기 위해 움직일 때 오크들은 장궁의 사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궁수대 연속 발사!”
“연속 발사!”
조잡한 활이라도 들고 있는 궁수들의 수는 전면에 배치된 제이슨 백작의 군단에만 2천 명에 달했다. 그들은 용병들이 대부분이라서 궁술 실력이 꽤 좋은 자들이었다.
피피피피피피핑!
공중을 가르며 날아가는 화살이 새까맣게 하늘을 가렸다. 그 화살들이 비가 되어 오크들에게 떨어져 내릴 때 스컬과 병사들은 장창병들 사이를 지나 병력의 후미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죽을 뻔했다.”
“후욱! 대장님 우리가 지금 산 겁니까?”
일부러 엄살을 떨며 말했다. 오크들에게 쫓겨서 겨우 살아났다는 인상을 주어야 했다.
다가닥! 다가닥!
말을 몰고 온 기사들은 제이슨 백작의 명령을 받고 오크들을 몰고 온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온 기사들이었다.
“너희들은 어디서 온 병사들이냐!”
말을 몰아 온 기사가 강압적인 태도로 외쳤다.
정체도 밝히지 않은 채 강압적인 태도로 다짜고짜 묻는 것에 일부러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이던 스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경은 눈도 안 보이나! 제8군단 10천인대장인 엘가드 S. 에드몬 남작이다!”
정체를 밝히자 기사는 자신보다 상급자가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그 존재가 백작의 눈 밖에 난 에드몬 남작이라는 것에 조소를 흘렸다.
“흐흐! 에드몬 남작님이셨군요. 헌데 8군단은 어디로 가고 남작님께서 오크들을 몰고 온 겁니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황에서 묻는 것에 스컬은 화를 내며 말했다.
“지금 전투가 시작됐는데 이유 따위나 추궁하고 있는가! 지금은 같이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나?”
스컬의 추궁에 기사는 지지 않고 말했다.
“사령관 각하께서 이유를 알아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중한 명령은 없습니다. 오크를 몰아 온 이유가 뭡니까?”
“정찰 나갔다가 오크들의 추격을 받았다. 군단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해서 이곳으로 왔지. 됐나?”
차갑게 이유를 말하는 것에 기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약간 있었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처벌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우리도 싸운다. 아군을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 저기로 가자!”
스컬이 장창병들과 전투에 돌입한 오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뒤를 지친 병사들이 따라가는 것을 보고 기사는 제이슨 백작에게 돌아갔다.
‘트링커가 잘해 줘야 할 텐데…….’
지금쯤 오크들의 대부대가 빠져나온 요새를 트링커가 이끄는 군단이 공격할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오크들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무래도 내가 가 봐야겠어. 오크 로드가 상처를 입었다지만 블레이드 마스터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
스컬은 전투에 돌입하여 치열하게 치고받는 상황이 벌어지자 슬며시 부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본진으로 가야겠다. 요새를 공략해야 하니 내가 있어야 할 거 같거든. 최대한 조심하고 전투가 끝날 무렵 곧장 오크들을 돌파하여 요새로 와라.”
“조심하십시오, 대장님!”
부하들은 오크들을 돌파해서 요새로 홀로 가려는 스컬을 걱정했다. 수많은 농노병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 오크들을 죽여 나가는 이곳은 오히려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곳이었다. 특히 이들은 장창병들의 뒤에 서서 서포트 해 주는 식으로 싸우는 것이라 어려움이 없었다.
“이따 보자. 하이드!”
스컬은 막 농노병 하나를 죽이고 포효를 터트리려던 오크의 목을 베어 내며 하이드 기술로 몸을 가렸다. 순식간에 보이지 않게 된 그는 병사들 사이를 빠져나가 오크들의 뒤로 이동했다.

“요새를 넘어라! 공격! 공격하라!”
트링커는 신이 나서 전면에 나섰다. 오크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요새는 여성체 오크들과 어린 새끼 오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있는 남성체 오크들은 채 1천 마리도 되지 않았다.
“1, 10 천인대는 서서히 전진하며 오크들의 공격을 막는다. 나머지 천인대는 약속한 대로 움직여라! 공격이다!”
검을 지휘봉 삼아 이리 휘두르고 또 저리 휘둘렀다. 그의 지휘에 따라 병력들이 움직이며 요새를 공략해 나갔다.
“투척병 준비!”
차차차차차차착!
백여 명의 투척병들이 슬릿을 빙빙 돌리며 독병을 투척하려 하자 방패를 든 방어병력들이 일제히 양피지 스크롤을 꺼내들었다.
“요새를 점령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투척병들은 독을 아끼지 말고 날려라! 발사!”
부붕! 부우웅!
휘익! 휘이익!
신경마비 독이 담겨 있는 병들이 슬릿을 떠나 요새를 향해 날아갔다. 병력의 수가 적은 오크들은 나오기보다 요새에서 수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들의 머리 위로 독병이 떨어져 내렸다.
쨍강! 피스스슷!
독병이 깨지며 피어오르는 독으로 인해 하얀 독무가 요새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금세 가득해진 독무가 오크들을 잠식해 들어가자 트링커가 명령을 내렸다.
“스크롤 찢어!”
파바바바바바방!
스크롤을 찢어낸 병사들의 앞에 파란 마법력이 뭉쳐지며 안티 포이즌막이 생성되었다.
“꾸익!”
“끄아악!”
독에 중독되어 괴로운 비명을 지르는 오크들이 쓰러져 괴로워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지금이다! 요새로 진군한다. 전진! 앞으로!”
“우오오오오오!”
“요새를 점령하자! 와아!”
전에 싸울 때는 사망자 없이 몇몇이 찰과상과 타박상 정도만 입고 대승을 거둔 것이 주효했다.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또다시 독무에 중독된 오크들이 비실거리자 거침없이 요새를 향해 나아갔다.

‘서둘러야 하는데.’
잘하고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이 되었다. 스컬은 지휘관 스타일이 아니라 혼자서 모두 때려잡는 것을 특기로 하던 해결사였다. 때문에 직접 손을 써야 마음이 놓였고, 그러는 것이 적성에 맞았다. 5시간을 달려 본대에 오크들을 유인했던 길을 불과 1시간 만에 주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곧 나올 오크 요새로 달렸다.
‘저건… 와이번?’
요새로 달려가던 스컬의 발걸음을 잡은 것은 요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보인 녹색의 와이번이었다. 8미터 정도의 길이에 활짝 핀 날개의 길이는 6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그런 와이번이 공중에 뜬 채로 요새 쪽을 살피고 있었다.
‘라이더가… 어떻게 와이번 라이더가 있을 수 있는 거지?’
오크 요새에서 싸우는 소리는 멀리까지 들려왔다. 특히 병사들이 내지르는 외침은 이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타다다닥!
있는 힘껏 마나를 뿜어내며 달렸다. 한 번의 내딛기로 5미터 이상을 튕기듯 나아가는 스컬은 작은 나무를 디딤대 삼아 더욱 높이 와이번을 향해 날아올랐다.
휘익!
“캬아!”
스컬의 움직임을 뒤늦게 깨달은 와이번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간발의 차이로 와이번을 놓친 스컬은 몸을 웅크려 회전하며 지면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닿자마자 곧장 앞으로 구르며 충격을 최소화시킨 후 놓친 와이번을 노려봤다.
“너는 누구냐! 와이번 라이더 같은데 여기 왜 있는 것이냐?”
소리를 지르며 와이번 라이더에게 물었지만 공중에 높게 떠 있는 와이번은 한 바퀴 선회한 후 곧장 동북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여자 아이였다. 그것도 레오파드의 가죽으로 만든 가죽옷을 입은…….’
제국의 와이번 라이더가 아니었다. 표범의 얼룩무늬 가죽으로 만들어진 사냥꾼들이나 입을 법한 의상을 걸친 여자 아이였다. 나이도 10대 후반에 불과하여 야생 와이번을 길들여서 타고 다니는 것 같았다.
“잠깐!”
오크 로드에게서 훔친 지도가 생각났다. 오크 로드는 지도를 짚으며 죽여야 할 무엇인가를 말했었다.
“토르펨!”
지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토르펨이라는 것의 정체가 저 와이번 라이더와 연관이 있는 듯했다. 와이번이 날아간 방향이 동북쪽이지 않던가.
‘토르펨이 인간부족을 뜻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이 마왕의 숲에서 살아남은 와이번을 부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집단이라는 소린데.’
반드시 만나 봐야 할 사람들이었다. 정확하게 그들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인간이 맞다면 분명 도움이 되어 줄 것도 같았다.
“요새를 점령하면 가 봐야겠다. 어쩌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 줄 존재들일지도 모르니.”
와이번이 날아간 방향을 하염없이 노려보며 결심을 굳혔다.
“아차!”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사들은 오크들의 요새를 탈환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컬은 생각이 나자마자 곧장 신형을 날려 오크 요새로 달려갔다.

언어라는 것은 사용할수록 잘하게 되어 있었다. 오크들이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것은 그 오크들이 약탈한 것은 인간들과 거래하기 위해 언어를 쓰기에 할 수 있는 거였다. 지금 이 마왕의 숲에 사는 오크들은 인간들과 거래를 할 이유도 없었고 잡으면 바로 죽이거나 노예로 쓰는 족속이었다. 인간 노예들이 있는지는 몰라도 오크들의 언어를 노예들인 그들이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이 오크들은 인간의 언어를 전혀 몰랐다.
“카아! 싹툼!”
상처 입은 야수였다. 포효하며 줄기줄기 이어진 오러를 뿜어내는.
병사들을 도륙하는 오크 로드의 눈에서 흉성이 풀풀 풍겨 나왔다.
‘상처를 입었어도 역시 마스터는 마스터라는 건가?’
오크 로드가 학살하고 있는 자들은 휘하의 천인대가 아닌 다른 귀족가의 병력들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농노병들은 오크 로드의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벌벌 떨다 죽어 갔다.
‘저놈을 먼저 죽여야 한다.’
마음을 굳히고 스컬은 쉐도우 하이딩 기술을 사용했다.
“쉐도우 하이딩!”
지금 요새 안은 수많은 사람들과 오크들이 무기를 들고 광란의 살육을 벌이고 있었다. 그림자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중의 하나로 숨어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스르르르릇!
석벽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며 앞으로 나아갔다가 곧 쓰러져 있는 오크의 그림자로 합쳐졌다. 그렇게 몇 번의 이동을 하고난 끝에 스컬은 오크 로드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일검에 끝낸다.’
오크 로드는 쇄골에서 치골까지 내려오는 긴 자상에서 녹색 피를 계속해서 흘렸다. 버서커라도 된 것인지 입에서는 침을 줄줄 흘리며 블레이드를 쳐냈다. 흉험한 그 공세에 접근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럴 때는 단 한 번에 끝장을 내야 했다. 이성을 잃은 지금이 적기였다.
‘지금!’
뒤쪽으로 몰래 접근한 스컬은 마나를 폭발시키며 애병인 브로드소드에 모든 마나를 실었다.
“앱솔루트 데쓰!”
절대적인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절대적인 검술. 스승인 에드몬에게 배운 절대의 검술이었다. 무적의 쾌검술로 발검에서 적을 베고 도로 검집으로 돌아오는 것까지가 단 한 번에 이루어지는 절대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었다.
“꾸익!”
오크 로드는 쉐도우 하이딩에서 뛰쳐나와 자신에게 쇄도하는 스컬을 발견하고 블레이드를 휘두르려 했다. 자신의 뒤쪽에서 느껴지는 위협에 반사적으로 행동한 것인데 뒤로 도는 순간 이미 스컬은 오크 로드의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라, 라트…….”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오크들의 말로는 빛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였다. 스컬의 앱솔루트 데쓰라는 검술에서 오크 로드는 빛을 본 것이었다. 수없이 많은 빛의 입자들이 일직선으로 뻗어 와 자신을 삼키는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눈앞이 하얗게 변한 것이었다.
쿵!
묵직한 오크 로드의 신형이 무릎 꿇려지고 둔탁한 소음을 내며 육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툭! 데구르르!
머리통이 목과 분리되어 굴러가고 스컬은 신속하게 오크 로드의 머리통을 집어 올렸다.
“오크 로드가 죽었다. 오크 로드가 내 손에 죽었노라!”
강렬하게 외치는 스컬의 목소리가 오크들의 요새 안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돌아온 것을 안 휘하의 병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우왓! 대장님이 오셨다!”
“만세! 오크 로드가 죽었다.”
“으하하하! 오크들을 다 죽이자!”
병사들은 오크 로드가 죽자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제껏 소극적으로 요새를 공략하던 그들이 노련한 전사들처럼 날뛰며 오크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큭! 점점 좋아지고 있군.”
처음 전투에서는 어리바리한 모습만 보이던 병사들이 이제는 능동적으로 조를 이루어 전투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족의 발전이었고 이제 이들은 조금은 정예병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었다.

“죄인을 포박하라!”
오크 요새를 함락시키고 오크들의 사체를 파묻는 것에만 하루가 넘게 걸렸다. 아군 측의 피해도 상당하여 2천 명이 넘는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것에 대한 뒤처리를 하는 것에도 힘과 노력이 많이 들어갔었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고 오크 요새를 정상화시키려고 하는 찰라에 제이슨의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스컬에게 와서 다짜고짜 죄인을 포박하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멈춰라!”
“지금 사령관 각하의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것이오?”
기사는 스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사령관의 명령이라며 죄인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죄인이라? 죄목이 뭔가?”
“그건 오크들을 유인하여 본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 죄목이오. 설마 오크들을 몰아 본대에 기습을 가하게 만든 것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기사가 하는 말에 스컬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
“훗! 전쟁터에서 기습을 당할 정도로 멍청한 지휘관이라면 사령관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오크들의 추격을 받아 살려고 무작정 뛴 것이 죄라면 세상에 죄 없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거야… 아무튼 순순히 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거부하면 항명죄로 즉결 처분할 수도 있소.”
“항명? 네놈이 나보다 높으냐?”
“사령관님의 명령을 대행하는 것이오. 지금 항명하겠다는 것이오?”
“웃기지도 않는군. 죄는 죄라고 판결이 나기 전에는 죄가 아닌 것이다. 자신들의 실수를 생각하지 않고 나를 죄인으로 몰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스컬의 말에 잡으러 온 기사들은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스컬이 오크들을 유인해 왔다지만 그것은 오크들에게 쫓겨 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걸 죄라고 하면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었다.
“제길… 반항하면 공격할 수밖에 없소. 실버라이언 기사단은 죄인을 포박하라. 반항하면 공격해도 좋다!”
지금까지 스컬과 이야기를 나누던 기사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기사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스무 명의 기사들이 스컬에게 다가들며 검을 뽑아 들었다.
“떠그럴! 죄도 없는 우리 대장을 잡아가겠다고? 한판 붙자!”
“저 새끼들 조져 버려!”
용병들 특유의 거침 입심을 발휘하며 트링커와 백인대장 이상의 용병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전부 무기를 꺼내들고 드잡이질을 벌일 기세였다.
“에드몬 남작님을 죄인으로 몰려면 우리들은 항명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이 요새를 기반으로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는 않겠지요?”
낭랑한 목소리에 기사들이 돌아보니 귀족가의 어린 청년이 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망토에 수놓아진 문장을 보니 군단장인 로스였다.
“정말 항명하겠다는 겁니까?”
제이슨의 기사가 차갑게 물었다. 로스 군단이 반항을 택하면 그대로 공격해서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묻는 것이었다. 어차피 다 죽어야 끝이 날 원정이었고 이렇게 서로 치고받으며 죽어 가면 시간이 단축되고 좋은 일이었다.
“사소한 오해를 가지고 죄인 취급을 한다면 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정찰 나갔다가 군단의 이동을 알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건데, 그걸 가지고 본대에 위해를 가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식의 죄목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맞소. 그것은 우리 귀족들을 다 죽이려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싸워야지요. 싸웁시다, 우리!”
“옳소! 이럴 바에는 피 터지게 싸워서라도 우리의 권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기사들이 보조를 맞췄다. 전원이 싸울 기세를 보이자 실버라이언가 기사들은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체포하러 온 기사들은 20명이었고 로스 군단은 용병들을 뺀 나머지 기사들이 10명이 채 안 되는 수였다. 기습을 한다면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