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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20화)
7. 어부지리(3)


“쳐라!”
갑작스런 외침에 기사들이 매섭게 로스 군단의 기사와 용병들을 덮쳐갔다.
“어림없는 수작!”
피피피피피핏!
기사들이 움직일 때 스컬은 비침을 뿌려 댔다. 뿌리는 동작에 이어 빠르게 한 바퀴 회전하며 마지막 비침을 날려 기사들을 노렸다. 그러자 스컬의 손에서 떠난 비침이 기사들의 수만큼의 선을 허공에 그려 냈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그 선들이 로스 군단의 기사와 용병들을 덮쳐 가던 기사들의 머리에 이어졌다. 쳐내려고 검을 휘두른 기사들도 있었지만 작은 비침을 화살을 쳐내듯 할 수 있는 실력은 되지 못했다.
“크흑!”
명령을 내렸던 기사가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뜨끔한 통증이 얼굴에서 느껴지자마자 차가운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마나를 운용하고 있었기에 차가운 기운이 퍼지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도, 독을 사용하다니… 이런 비겁한!”
막 트링커를 공격하려다 온몸이 굳어 버린 기사는 트링커의 반격을 받아 쓰러진 채 외쳤다. 그의 외침에 스컬이 가볍게 대꾸했다.
“난 기사가 아니라서 어떤 것이 정정당당한 싸움인지 모르겠군. 그깟 비침도 막아 내지 못하는 놈들이 정정당당을 외치는 것도 우습고 말이야.”
한마디로 너희들은 비침도 막아 내지 못하는 하수들이기 때문에 정정당당을 말할 자격도 없다는 소리였다. 쓰러진 채 생각해 보니 한 번의 공격으로 20명의 기사들을 모두 쓰러트린 스컬의 실력이 두렵게 느껴졌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그 누가 스컬의 비침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마비된 독은 30분이면 풀릴 것이다. 너희들이 먼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고 공격을 한 것이니 이것은 항명죄가 아님을 밝힌다.”
스컬이 차갑게 말하자 화답을 하듯이 싸늘한 음성이 들렸다.
“항명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에드몬 남작!”
오크 로드가 주술사들과 회의 같은 것을 하던 더러운 회의장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제이슨 백작이었다. 그는 실버라이언 기사단의 나머지 기사들과 용병군단의 백인장 이상의 장교들과 함께였다.
“흥! 아무리 사령관이라시지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우고 죄인으로 치부하는 건 참지 않습니다.”
강한 기운을 뿜어내며 스컬이 제이슨 백작을 압박했다.
“이미 귀관은 내 명령에 항명을 했다. 진상 조사를 위해서 데리고 오라는 내 명령을 듣지 못했나?”
“훗! 진상 조사를 위해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고요? 저 기사는 죄인을 포박하여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만?”
“하하하! 빌튼 경이 내 말을 오해했나 보구만. 나는 분명 진상 조사를 위해서 데리고 오라고 했다네.”
제이슨 백작은 스컬이 비침을 날려서 기사 20명을 한 번에 제압하는 것을 입구에 들어서며 보았었다. 하나의 비침을 날려서 기사를 제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20명을 한꺼번에 한다는 것은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서질 않았다. 분명 자신보다 윗줄인 것은 분명했고 요새를 장악하고 있는 군단과 싸우자니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할 판이었다. 거기에 말도 안 되는 죄목을 씌워서 귀족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면 연이어 반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차라리 이럴 때는 한 발 물러서서 병력을 모두 소진시키는 것이 나았다. 요새 밖으로 내몬 다음 마왕의 숲의 몬스터들과 싸우게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백작님의 휘하 기사들은 주군의 명령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멍청이들인가 봅니다. 크큭!”
제이슨 백작의 눈가가 작은 경련으로 부르르 떨렸다.
‘감히…….’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키며 제이슨 백작은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그래서 마법사들이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한 족속이라고 하지 않던가. 기사들을 말이야. 흐흐흐!”
농담으로 넘어가는 제이슨 백작의 대답에 스컬이 말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정찰 나갔다고 오크들의 대병력에 쫓겨서 본대 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오크들을 몰아 본대에 타격을 주기 위해 유인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또 전장에서 기습에 대비하지 못했다고 하는 핑계를 대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억지를 쓰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타박하는 스컬에게 제이슨이 손을 저으며 답했다.
“남작의 말이 맞네. 그런 상황이라면 나도 그렇게 했을 걸세. 그러니 이번 일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다시는 이번 일로 남작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사령관 각하!”
스컬이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자 제이슨 백작이 별것 아니라는 투로 로스에게 말했다.
“로스 군단장!”
“말씀하세요.”
“요새를 본대에게 인계하고 경의 군단은 북쪽의 오크 부락을 섬멸하도록 하라.”
북쪽의 오크 부락을 섬멸하라는 말에 로스의 얼굴에 화가 단단히 났다는 표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싱클레어가 로스의 팔을 잡으며 승낙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스가 대답하자 빙긋이 미소 짓는 제이슨 백작은 스컬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오크들을 몰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네. 기습에 대비는 하겠지만 기분이 가히 좋은 것은 아니니 말일세.”
“그리 하겠습니다. 설마 이번에도 정찰 나갔다가 오크들의 대군과 마주치기야 하겠습니까?”
같은 수법을 두 번 쓰지는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제이슨 백작은 데리고 온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쓰러진 기사들을 데리고 간다. 가자!”
“넵!”
백작과 그의 기사들이 모두 나가고 회의장의 긴장감은 소멸되어 버렸다.
“후아! 긴장이 되서 죽는 줄 알았네.”
트링커가 말문을 열자 용병출신 백인대장들이 바닥에 털썩 소리가 날 정도로 앉으며 추임새를 넣었다.
“흐그그그! 오줌 재릴 뻔했다.”
“흐흐! 그래도 다행입니다. 다행!”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다행이라는 말을 할 때 스컬이 로스에게 말했다.
“요새를 비워 달라고 한 이상 바로 군단을 정비하고 나가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저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이걸 보십시오.”
군단장인 로스에게 지도를 꺼내 보였다. 오크 로드에게 빼앗은 것으로 마왕의 숲이 자세하게 기록된 지도였다.
“이건 지도 아니에요?”
“맞습니다. 마왕의 숲 내부 지도입니다.”
“그래요?”
로스는 지도를 받아들고 자세히 살폈다. 군용 지도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어떤 군용 지도보다 정확하게 그려진 지도였다. 일반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등고선으로 높이를 표시한 것까지 있어 마법사들이 만든 지도임이 분명했다.
“이곳과 이곳에 오크들의 부락이 있습니다. 대부락일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이 요새를 점령하고 있던 오크 부족 정도라고 생각해야 할 겁니다.”
스컬의 설명에 로스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혹 거기까지 가 보신 거예요?”
“아닙니다. 오크들의 회의를 몰래 엿봤는데 그들이 지도 위에다 표시를 하더군요.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아항! 그랬군요. 역시 에드몬 남작님께서는 대단하세요.”
오크들의 회의를 몰래 봤다는 스컬의 말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것은 로스만이 아니라 다른 지휘부도 마찬가지였다.
‘토르펨을 찾아가 봐야 한다. 그곳에 분명 뭔가 있을 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단 말이야.’
의문의 와이번이 날아간 방향도 토르펨이 있다고 한 동북쪽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이 마왕의 숲 원정대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대폭 상승할 것 같았다.



8. 토르펨(1)


요새를 비워 주고 다시 북쪽으로 내몰린 로스의 군단은 지도상에서 오크 부족이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오크들이 주변을 확실하게 청소해 놓은 탓에 흔한 고블린도 보이지 않았고 야수들도 없었다. 곤충들과 뱀 종류만이 귀찮게 할 뿐이지 별다른 위험은 없었다.
“이 정도면 우리가 나가지 않는 한 들킬 염려는 없겠어요.”
로스는 요새를 나와서 새롭게 꾸린 군진에 만족스러웠다. 어린 그가 보기에도 포근하고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 지형이었다. 뒤쪽으로 병풍처럼 늘어선 칼날 같은 절벽들이 빼곡했고 입구 쪽은 좁은 호리병 모양의 지형으로 이중으로 적을 방어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지도가 아니었으면 이런 지형이 있는 줄도 몰랐을 겁니다. 우리에겐 참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스컬은 군단장인 로스에게 정중하게 대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망정 지금은 로스가 군단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어려도 후작가의 자제였고 작위로 치면 자작과 동급이었기에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저 그런데 정말 가실 생각이신가요?”
로스의 표정이 갑자기 걱정된다는 투로 바뀌었다. 스컬이 토르펨이라는 것을 찾아간다고 하니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제이슨 백작에게 지지 않고 맞부딪힐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스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미지의 토르펨이라는 것을 찾으러 간다하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토르펨을 찾아야 우리가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그러니 이곳에서 지키기만 하면 될 겁니다.”
“저도 가겠어요.”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한센의 뒤만 따라다니던 카트리나가 나섰다. 그녀는 4써클 유저의 마법사로 제법 강력한 축에 들어가는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안 돼!”
간단하게 카트리나의 의견을 묵살해 버리는 스컬은 자만심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살살 저었다.
“나 4써클의 마법사란 말이에요. 어디가도 대접 받는 실력자라구요.”
이제 19살의 카트리나였다. 그 나이에 4써클 유저라면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마법 실력이었다. 하지만 마법을 학문으로만 배운, 온실 속의 화초는 전장에서 구른 3써클의 용병 마법사에게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마 카트리나는 마법으로 몬스터 한 마리 죽여 보지 않은 상태일 거라고 스컬은 생각하고 있었다.
“나 혼자 간다. 그게 속 편해. 너 같은 어린아이 뒤치다꺼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스컬이 무시하는 방향으로 계속 말하자 카트리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비록 한센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왔지만 이제껏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센과 같이 마법을 수련하는 것이 전부였으니 약간은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나타나 삼촌이라고 한 스컬이 끝까지 자신을 무시하자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큰 어린아이 봤어요? 삼촌도 기껏 해 봐야 나랑 대여섯 살밖에 더 차이나요?”
스컬은 상당히 동안이었다. 무표정할 때가 많아서 무서워 보이기는 했어도 갓 스무 살 넘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5살에 팔려서 19년간을 에드몬에게 배웠으니 그의 나이가 24살인 것은 그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몸이 커도 머리가 크지 않으면 여전히 어린아이인거다. 한센이나 잘 지켜!”
스컬이 가볍게 무시한 채 손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나는 토르펨이라는 곳을 찾아볼 테니 여기서 대기하라고.”
말을 마친 스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토르펨을 찾아 나섰다.

미친 듯이 숲을 돌파하는 스컬은 아낌없이 마나를 소비하며 나아갔다. 달려가면서도 꾸준하게 카오스 마나 명상법은 운용할 수 있어서 마나는 계속해서 다시 차올랐다. 2단계의 마나홀을 만든 뒤의 공능이었고 조금만 더 마나에 대한 이해가 올라가면 3단계의 명상법을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쉬지 않고 명상법을 돌리는 것이었다.
‘지도의 위치는 대강 이곳을 말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지?’
토르펨을 찾는다고 떠나온 지 사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마나를 사용하여 달리면 전투마가 달리는 속도 정도로 달릴 수 있었는데 그 속도로 사흘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그럼에도 여전히 토르펨이라는 곳은 찾을 수 없었고 가능성이 있는 곳은 지금 가려고 하는 거대한 바위산이었다.
“저곳에도 없으면 토르펨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파팟!
작은 바위를 밟고 있는 힘껏 다음 바위로 도약했다. 10미터가 넘는 거리는 한 번에 뛰어넘는 스컬은 계속해서 바위 위를 뛰어 넘었다.
끼아아악!
막 커다란 바위를 건너뛰려고 할 때 공중에서 날카로운 괴성이 스컬의 주의를 끌었다.
“와이번?”
전에 동북쪽으로 날아갔던 그 와이번은 아닌지 급히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검은 와이번. 야생의 와이번이다.’
자신을 먹잇감을 생각하고 날아오는 까만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매섭게 날아오는 와이번이었다.
“감히!”
스컬은 날아드는 와이번을 향해 지면을 걷어차며 마주쳐 날아올랐다.
휘이익!
손에는 어느새 뽑혀진 브로드소드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죽여주마!”
와이번의 가죽은 어지간한 마나소드로는 흠집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했다. 그런 까닭에 와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은 1만 테론을 호가하는 엄청난 무가지보였다.
부부붕!
1미터 남짓한 스컬의 브로드소드의 날에서 유형의 오러가 솟아올랐다. 이제껏 사용하지 않았던 오러였지만 와이번이라는 초대형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끼아악!”
와이번은 오러를 앞세운 채 자신을 공격하려고 하는 스컬에게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몬스터들은 흉성만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본능은 무서울 정도로 뛰어났다. 특히 영성이 조금 남아 있는 와이번은 자신보다 강한 것을 다른 몬스터들보다 더 빠르게 알아챘다.
펄럭! 쉬익!
급히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 날아오르려고 할 때 스컬의 오러가 실린 검이 뻗어왔다.
피릿!
막 와이번을 베어 내려고 할 때 아래쪽에서 본능을 자극하는 소성이 들렸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임을 직감한 스컬은 급히 검을 회수하며 날아오는 것을 향해 검을 쳐냈다.
파각!
오러와 부딪친 물체가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스컬은 표홀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누구냐! 썩 나오지 못하겠느냐?”
살기를 가득 실어 외쳤다. 자신을 공격한 누군가가 있는 방향을 주시하며 마나를 넓게 퍼트렸다.
‘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