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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드 스컬 1권 (21화)
8. 토르펨(2)


커다란 바위 뒤쪽에 누군가가 숨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검으로 부순 것은 분명 화살이었고 저기 숨어 있는 사람이 스컬을 공격했다. 하지만 멀리서 느끼기에 심장의 박동이 상당히 큰 것을 보면 상당히 흥분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숨어도 소용없다!”
3미터가 넘는 바위를 순간적으로 뛰어 넘어 그 뒤에 숨어 있을 누군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타탁! 휘익!
정통으로 마나를 수련한 자만이 낼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숨어 있던 적은 맹수를 피해 도망가는 짐승처럼 통통 튀며 바위를 누비며 도망쳤다.
‘레오파드 가죽!’
분명 전에 봤던 그 와이번 라이더가 분명했다. 단지 왜 자신을 공격했는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서라! 멈추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속도는 오히려 스컬이 빨랐다. 지그재그로 바위 위를 건너뛰면서 도망가는 것이라 잡는 것에 조금 애를 먹었지만 이내 따라잡고 있었다.
“잡았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려 레오파드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적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아얏!”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붙잡힌 적은 여자였다. 그것도 스무 살이나 됐음직한 어린 아가씨였다.
“잉? 여자?”
“여자 처음 봐요? 이거 놔요. 아프단 말이에요.”
인상을 쓰면서 놓으라고 말하는 아가씨의 행동에 스컬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며 물었다.
“왜 나를 공격했지? 와이번을 죽이려고 할 때 말이다.”
“그건…….”
“왜 대답을 못하는 거지? 나를 죽이려고 한 거였나?”
“아니에요. 위대한 전사가 화살에 죽는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우리 부족의 전사들은 전부 화살은 막아 낸단 말이에요.”
아가씨의 맹랑한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와이번을 죽이지 못하게 방해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시 묻지. 왜 나를 방해한 거지?”
“라이덴의 토르펨이 될 아이예요. 그 와이번.”
“토르펨?”
토르펨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라이덴이라는 사람의 무언가가 될 예정이라는 말이었다.
“만약 아저씨가 그 아이를 죽이면 라이덴이 슬퍼할 거예요. 그래서…….”
“라이덴은 누구지?”
“제 동생이에요. 이번에 성인식을 거치면서 정식으로 토르펨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생겼어요. 그 아이는 1년 전부터 라이덴이 토르펨으로 정한 녀석이구요.”
술술 털어놓는 것을 보면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아가씨로 보였다. 거기에 덧붙여서 생김새도 빼어난 미인이었고 레오파드 가죽으로 가린 중요 부위를 제외한 늘씬한 육체미가 돋보였다.
“아차. 난 엘가드 S. 에드몬 남작이다. 그냥 스컬이라고 부르면 된다.”
“데보라예요.”
“예쁜 이름이구나. 데보라,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니?”
스컬이 뒷덜미를 놓아 주자 그녀는 목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스컬보다 약간 작은 키에 숲을 누비며 다니느라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를 지닌 데보라였다. 마나를 다루는 법을 익혔는지 제법 많은 양의 마나가 몸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와 탄력적인 피부에 어울리는 갈색의 머리카락과 눈썹이 야성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토르펨이라는 것이 무슨 말이지? 난 처음 들어 보는 말이라서.”
“에게! 그것도 몰라요? 토르펨이 토르펨이지 뭐겠어요.”
“이런…….”
“그냥 이렇게 생각하시면 편하실 거예요. 친구!”
친구라는 말을 하는 데보라의 눈이 따뜻하게 변했다.
“친구라.”
“제가 보여 드릴게요. 아르실!”
데보라가 공중을 향해 아르실이라 크게 외치자 저 멀리서 느껴지는 무언가에 스컬은 공중으로 시선을 들었다.
“끼아악!”
녹색의 와이번이었다. 전에 오크 요새 앞에서 보았던 그 와이번이 분명했다.
‘토르펨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테이밍이 된 몬스터를 말하는 건가? 와이번을 테이밍하다니 대단한 테이머들이로군.’
놀랍다는 반응밖에 할 수 없었다. 테이머들이 가끔 제국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겨우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를 테이밍해서 관람료를 받는 서커스 단원 같은 것들이 대다수였다. 이렇게 와이번을 테이밍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끼악!”
저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 것 같은 아르실이라는 와이번의 행동에 데보라가 말했다.
“위대한 전사셔. 나쁜 사람 아니야.”
“끼륵!”
와이번은 영성과 흉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몬스터였다. 인간과 함께하게 되면 영성이 깨어나 흉성을 억누르지만 야생일 때는 흉성이 영성을 억눌러 몬스터로 분류되게 되어 있었다.
“너희 부족은 전부 이렇게 와이번을 테이밍해서 다닐 수 있는 거냐?”
“바보같아요.”
“응? 내가? 왜?”
“멍청한 질문만 하니까 그렇죠.”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혀를 날름거리는 데보라의 천진난만한 행동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아는 테이머들은 고작해야 오크가 최고였거든.”
“에에! 우리 부족의 전사들은 아르실처럼 와이번이나 오우거 정도는 토르펨으로 삼아요. 오크는 너무 약해서 토르펨으로 쓸 수 없어요. 그리고 너무 일찍 마나의 품으로 돌아가거든요.”
경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줄줄 이야기를 하는 것에 진짜 철이 없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 정체도 모르는데 이렇게 다 이야기를 해 줘도 되는 거냐? 내가 적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위대한 전사는 절대 적이 될 수 없어요.”
“아까부터 위대한 전사라고 하는데 내 어디를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위대한 전사라는 말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의문이 쌓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까 와이번을 공격할 때 보이셨던 그거요, 빛으로 만들어진 검. 그게 위대한 전사의 증표예요.”
오러. 마스터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적의 마나의 검이 바로 오러였다. 그것을 위대한 전사의 증표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들 부족은 강함을 숭상하는 부족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아저씨는 절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울 엄마가 그랬는데요. 눈이 예쁜 사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거든요.”
“큭!”
눈이 예쁘다는 말은 처음으로 들어 보았다. 해결사로 활동하던 그 시절에 자신의 눈을 보고 겁에 질려 하던 사람들만 보았던 스컬이었다. 그러니 데보라가 하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 보는 말인 것이다.
“데보라.”
“네?”
“너희 부족의 우두머리 되는 분에게 나를 데려다 줄 수 있겠니?”
“우리 아버지한테요?”
“너희 아버지가 부족장이시냐?”
“네, 우리 아빠가 부족장이세요.”
부족장의 딸이기에 테이밍에 관한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 생각하니 여러가지 의문이 풀렸다.
“만나게 해 줄 수 있겠어?”
다시 묻는 말에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안돼요.”
“안되다니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냐?”
“인간들의 땅에서 숲을 침입하면 우리는 숨어야 해요. 우리가 다시 나올 때는 그 침입자들이 모두 죽고 소수의 생존자가 남았을 때뿐이에요. 우리가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건 빛의 기둥이 침입자들의 우두머리들에게 내려지고 난 이후거든요.”
빛의 기둥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원정 실패를 선언하고 원정군이 전멸했을 때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해서 퇴각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가 아니라면 빛의 기둥이 내려질 이유가 없었다.
“그럼 며칠 전 요새를 살핀 것도 그래서 그런 거였나?”
“네, 와이번을 토르펨으로 가지고 있는 전사들은 몇 안 되거든요. 다른 전사들은 북쪽 오르크 부족을 정찰해야 해서 제가 간 거였어요.”
“아…….”
오크 부족과 싸우는 관계에 있는 것이 이들 부족이었다. 그래서 오크 로드가 싹툼이라는 단어를 쓰며 신경질을 부렸던 것이었다.
‘원정 실패가 선언될 때를 안다는 것은 이들 부족의 구성원들이 원정 때 살아남은 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숨을 이유도 없고 그 사실을 알 수도 없을 것이니 말이야.’
자신의 판단을 굳게 믿는 스컬은 더더욱 이들 부족을 만나서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형 몬스터들을 테이밍해서 사용할 정도라면 이들의 전력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와이번 10마리만 있어도 오크들과의 전투에서 막대한 전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반드시 부족장이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반드시…….’
스컬은 마음을 굳히고 데보라에게 말했다.
“데보라, 어떻게 방법이 없겠니? 나는 너희 아버지를 반드시 만나야 해. 아니면 내 휘하의 병사들이 이 말도 안 되는 원정에서 다 죽어 가게 된다. 그들이 죽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니? 그러니 이렇게 부탁 좀 하자.”
스컬이 머리를 숙였다. 해결사 생활을 한 이래로 머리를 숙인 것은 스승인 에드몬과 배신자 트리알이 전부였었다. 생면부지의 어린 아가씨에게 머리를 숙인 것은 대단한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데보라는 위대한 전사인 스컬이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자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위대한 전사인 스컬은 잘생겼고 죽은 어머니의 말대로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강함을 숭상하는 토르펨 부족의 특성상 위대한 전사의 씨를 받아서 아기를 낳는 것이 여인의 제일 첫 번째 덕목이지 않던가.
‘위대한 전사의 혼을 이어받을 아들을 낳아야 해. 그래야 우리 부족이 안전해질 거야.’
단순하게 위대한 전사인 스컬의 씨를 잉태할 생각만 했다. 위대한 전사는 모든 잘못이 용서될 정도로 관대하게 대우받는 것이 부족의 율법이었다. 척박한 대지, 몬스터들의 천국인 마왕의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전사가 필요한 부족의 뜻이 그것이었다.
“알았어요. 저를 따라오세요.”
“고맙다.”
데보라는 침입자들이 거의 죽어 갈 무렵에서야 침입자들을 구할 수 있다는 율법을 어기고 스컬을 부족으로 데리고 갔다.

“침입자다!”
“어디, 어디?”
토르펨 부족의 마을은 커다란 석산의 정상에 있었다. 석산은 의외로 정산 부분이 평평했고 가운데 부분은 움푹 파인 분지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크기는 지름 3킬로미터 정도의 제법 넓은 자연적인 요새와 같았다.
‘이러니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지. 들어서는 입구만 막는다면 백만 대군도 막아 낼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이들의 선조가 살아남기 위해 이런 지형을 선택했을 것이었다. 그들은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 이런 곳을 찾아냈을 것이고 마침내 안전이라는 부산물을 얻어냈을 것이었다.
“데보라!”
부족원들이 서서히 접근해 오는데 그들은 이방인은 스컬이 데보라의 손에 이끌려 오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큰 목소리로 데보라의 이름을 부른 사내는 투박한 대검을 든 채 길을 막아섰다.
“라슨 장로님…….”
데보라가 부족원 중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라슨이라고 하는 장로였다. 2미터에 육박할 정도로 큰 키였는데 무척이나 날렵하게 생긴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이 부족의 사람들은 전부 체형이 날렵하게 생겼다. 어떻게 살찌거나 체구가 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지?’
이상한 부족이었다. 인간이라면 뚱뚱한 사람과 날씬한 사람, 여러 체형의 사람이 공존하기 마련이었다. 훈련을 많이 쌓아서 날렵하게 생길 수도 있지만 근골이 굵고 체형이 둥근 사람도 분명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가 날렵했다. 그리고 걷는 걸음 자체가 소리가 나지 않도록 걷는 것도 이상해 보였다.
‘인간이 아닌가? 이런 체형을 가진 인간들만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생각은 그렇게 했어도 일단 내색하지 않고 데보라와 대검을 들고 있는 장년인의 대화에 집중했다.
“율법을 잊은 것이더냐!”
고함치듯 데보라를 윽박지르는 라슨 장로의 기세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스컬의 목을 벨 것 같은 그의 기세에 데보라가 스컬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스컬 님은 아버지를 뵙기를 원했어요. 부하들을 살리고 싶다 하셨어요. 그리고 스컬 님은 위대한 전사란 말이에요.”
항변하듯 말하는 데보라의 말에 라슨 장로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상당히 놀란 라슨 장로는 데보라에게서 스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사람도 갈색 머리카락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녔다. 데보라보다 더 까맣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 역시도.’
몰려드는 부족의 전사들은 모두 까만 피부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갈색의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고 개중에는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도 있었다.
‘제국 원정대를 이루는 주 인종은 게르트족이다. 게르트족의 특징은 금발에 피부가 하얀 것이 특징이며 콧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거기에 팔과 다리가 길고 하체가 상당히 발달된 것이지.’
그런데 이들 일족은 게르트족의 특징과는 상당히 벗어난 점이 많았다. 하체가 뚱뚱한 사람이 많은 게르트족의 특징과는 다르게 이들은 하나같이 날렵하고 갈색이거나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지녔다. 원정대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이룬 부족치고는 너무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 마스터십니까?”
위대한 전사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마스터라는 단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숲 밖의 일에 많이 알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렇습니다.”
이들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강한 자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성취를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증표를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슨 장로가 증표를 보이라고 말했다. 마스터의 증표는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그러지요.”
스컬은 브로드소드를 뽑아 들었다. 잠깐 숨을 고른 후 마나로드에 움직이는 마나를 강하게 운용했다.
후웅!
검면이 길게 늘어나고 점점 카오스 마나 명상법의 영향을 받은 오러가 솟아올랐다.
“오오! 위대한 전사시다!”
“멋있어. 우와!”
몰려든 부족원들은 스컬이 만들어 낸 오러를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이 내는 탄성 소리를 들으며 라슨 장로가 말했다.
“위대한 전사는 율법 위에 서는 존재, 그런 존재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라슨 장로가 머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따라 오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