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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매 1권 (9화)


제7요새 탈환전.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역시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최대 열흘간의 식량밖에 없고, 변변한 공성무기조차 준비하지 못했으며, 본거지를 빼앗긴 탓에 사기마저 바닥에 떨어진 상태.
게다가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면 공성전은 공격하는 쪽보다 수비하는 쪽이 몇 배는 더 유리한 법이었기 때문에, 언뜻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모형 지도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카시우스는 잠시 지도에서 시선을 거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지금쯤 장졸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떠돌고 있겠지? 너무 무모한 도전이라고. 가능성도 없고, 여러모로 불리한 것들뿐인데, 두 명의 지휘관이 자신만의 욕심을 위해 너무 무리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당분간이야 병사들이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르겠지만, 전투가 길어지면 아마 항명이나 반란이 터질지도 모르지.”
약간은 가라앉은, 피곤한 기색이 묻어나는 말투.
사실 그가 피곤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리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그라고 해도 거듭되는 전투와 야전의 생활은 역시 상당한 정신력과 체력의 소모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거의 모든 결정을 단독으로 처리하며 흑사자대를 이끌었기 때문에, 심신의 소모가 다른 장교들의 몇 배에 달했다.
‘역시 카시우스도 사람인가? 상당히 지쳐 보이는군.’
소브리우스는 이런 생각을 하는 한편,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받았다.
“잘 아는군. 나나 흑사자대처럼 널 겪어 본 사람들은 당연히 신뢰를 보낸다. 나만 하더라도 사관학교 시절 네가 보여 준 그 수많은 기적을 생각하면 널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대다수의 장졸들은 달라. 그들은 대부분 너와 초면이고, 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소문으로 떠도는 것이 전부지. 그나마 그 소문마저도 과장되고 왜곡된 것이 대부분이며…… 따라서 그들이 불신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뭐, 나도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무리라고 생각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겉으로 드러난 유형의 조건은 우리가 불리하니까. 하지만 그 이외의 조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무형의 조건에서는 반대로 우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면서 그는 지도의 중앙,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제7요새를 바라보았다.
“무형의 조건?”
고개를 갸웃하는 소브리우스.
카시우스는 재차 긴 한숨을 내쉬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첫째, 우리가 적보다 요새의 내부 사정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요새의 어디가 약점이고, 어디에 함정이 있으며, 반대로 어디를 절대 공략해서는 안 되는지 요새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은 요새를 점령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내부 구조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특히 제7요새는 그 큰 규모 때문에, 반대로 미로와도 같은 복잡한 구조로도 악명이 높았으니까.”
“그렇지. 나도 부임 초기에는 요새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으니까.”
소브리우스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이에 잠시 뜸을 들인 뒤, 카시우스의 말은 계속되었다.
“둘째, 적의 숫자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본래 제7요새는 항시 1만 명 이상이 상주하며, 최소 6천 명 이상의 병력이 있어야 그 기능이 완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현재 적의 병력은 어떠한가? 밥 짓는 연기와 깃발의 수로 판단해 봤을 때, 그리고 여러 정황들을 고려해 봤을 때, 적의 규모는 기껏해야 삼사천 명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숫자면 요새를 지키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몰라도 요새의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기에는 부족하지. 특히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적은 아직 요새의 내부 구조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요새의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기에 더더욱 어려움이 있다.”
역시 카시우스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은 피아의 장단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었다. 이에 소브리우스는 잠시 곰곰이 그의 말을 되새겨 보다, 잠시 후 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과연 겉으로 드러난 유형의 조건은 적이 유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무형의 조건들은 아군이 유리하군. 그렇다면 넌 앞으로의 전개를 어떻게 예상하지?”

―속전속결(速戰速決), 그리고 선택과 집중!

그에 대한 카시우스의 대답이었다.
“아군이 무형적인 면에서 유리하다고 했지만, 군수품 등의 유형적인 면에서 불리한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시간을 끌면 적이 대규모 지원군을 보낼 것이다. 따라서 아군은 시간을 오래 끌면 안 되고, 또 시간을 오래 끌 수도 없다.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대한 빠르게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 이것이 아군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너무도 당연한 예측.
언제나 그랬지만, 카시우스의 설명은 그다지 친절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천재들이 그렇듯, 그의 말은 약간은 지나치게 요약과 함축이 가미되어 선뜻 이해가 어려웠다.
때문에 소브리우스가 언뜻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보이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현재 우리는 병력과 군수가 풍부하지 않고, 적도 병력이 많은 편은 아니다. 따라서 아군이 요새를 완전히 포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적도 요새의 기능을 완벽히 발휘해 수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아군은 주력부대로 어느 한곳만 집중 공략해야 하고, 적 또한 주력부대로 어느 한 부분만 집중 방어해야 한다.”
“아!”
그제야 탄성을 내뱉는 소브리우스.
카시우스는 오랜만에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알겠나? 이번 전투는 주력을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핵심이다. 아군은 병력을 배치하면서 반드시 주력부대를 감춰야 하고, 적은 반대로 병력을 배치하며 반드시 주력부대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야만 한다. 즉, 주력부대를 어디에 배치하느냐, 그리고 주력부대의 배치를 속이느냐, 속이지 못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과연!”
소브리우스가 탄복하여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카시우스의 말은 계속되었다.
“물론 아래에 있는 아군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적군이 조금 더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전투의 주도권을 잡고 능동적으로 대처를 한다면, 적을 속이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일의 이 이상한 병력 배치는 적을 속이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인가?”
“그래. 일단 적장의 성향이 어떠하고, 어떤 배치로 수비를 하며, 더 나아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싸움에 임할지를 알아보기 위한 탐색전이 필요하다. 적을 먼저 알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책을 세우는 건 그다음이지. 그리고 적장이 신중하고 병법을 잘 알면 알수록…… 승기는 우리에게 있다.”
여기까지였다. 카시우스의 생각을 모두 들은 소브리우스는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의심이 씻은 듯 사라졌다.

―역시 카시우스!

비록 그 출신으로 인해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지 못했지만, 그 군사적 재능과 능력은 언제나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소브리우스가 질투를 느낀 것은 아니었다.
질투란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
카시우스는 이미 질투의 단계를 뛰어넘어 경외의 단계에까지 이른 상태였다.
카시우스는 잠시 요새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이윽고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나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싸움…… 오래 끌 것 없이 단숨에 결판낸다!”



3

소 환 장

○ 성 명 : 레오니스 비타 아우다키우스.
○ 군 번 : II―GA20041.
○ 소속 및 직급 : 제2군단 7분대 소속 2급 작전장교.
○ 사 유 : 군명(軍命) 불복 및 주둔지 무단이탈.

1. 상기인은 본 소환장 접수 후 15일 이내에 의회로 출두할 것을 명한다.
2. 이것은 최종 소환장이며 불응 시 직권 해임 및 군법회의에 회부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

제국력 623년 10월 29일.
공화국 통령 살릭스 디스 마르키우스
(Sallix Dis Marcius).

* * *

정오 무렵, 제7요새의 남문 망루.
늦가을의 한풍이 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가운데, 한 명의 사내가 팔짱을 낀 채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약간은 복잡한 기색까지 내보이며.
사실 어떻게 보면 그는 지금 이 자리, 이 심각한 분위기와는 조금 이질적인 자였다.
비록 공화국의 상징인 비상하는 흰 사자 문양의 푸른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또 그 뒤로 수십 명의 장교들과 병사들을 대동한 상태였지만, 그는 어쩐지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이나 이곳 최전방의 요새의 긴장된 분위기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단지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체형만 보더라도 174cm가량의 작은 키에, 단단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오히려 물살에 가까운 통통한 체구였다.
눈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긴 머리칼은 바람결에 헝클어져 있었고, 군복 또한 주름이 많이 잡혀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전체적인 이목구비 또한 둥글둥글하고 선하게 생긴 탓에…… 그는 군인보다는 그저 약간은 게으르게 생긴, 동네 청년 같은 이미지였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좋아 보이는 평범한 외모.
단, 눈빛만은 예외였다. 그저 모든 것이 평범하게만 보였지만,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빛만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갈색의 눈동자는 사색에 잠긴 듯 깊이 가라앉아 있었고, 간간이 뿜어지는 날카로운 안광은 상대의 모든 것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마치 언뜻 보기엔 부드럽지만, 그 속에는 한없이 날카로운 칼날을 숨겨 놓은 듯이.
그렇게 얼마나 오래 저 멀리 남쪽 지평선을 바라보았을까. 이윽고 그가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카시우스 녀석, 지금쯤이면 도망친 전령을 통해 자신들의 요새를 적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을 들었겠지? 아마 내가 어떤 마법을 부려 난공불락이라 자부하던 요새를 탈취했는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하겠군. 후후후!”
씁쓸했다. 웃음이 섞인 읊조림이었지만, 어쩐지 한편으론 씁쓸한 음성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사정이 변했다고 해도 카시우스는 안겔루스 가문의 마지막 후예.
자신의 아우다키우스 가문과는 마지막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안겔루스 가문의 후예였던 것이다.
그런 카시우스에게, 어려서부터 친동생처럼 아꼈던 카시우스에게 아무런 인사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역시나 씁쓸한 일이었다.
안겔루스 가문과 아우다키우스 가문.
현재 이름뿐인 여황을 내세워 제국의 권력을 장악한 제미니우스(Geminius) 가문이나 비르고스(Virgos) 가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륙 최고의 명문 귀족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떤 가문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과거 대륙 최고의 명문 귀족이었다.
그들의 화려한 영광은 제국의 황족인 베리타시우스(Veritasius) 가문마저 인정할 정도였으며, 뿐만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항시 몸으로 실천하는 겸양으로 더욱 이름이 높았다.
적어도 십여 년 전의 그 사건, 일명 ‘장미의 동맹’이라 불리는 귀족 간의 황위 쟁탈전에 휘말리기 전까지는.
십여 년 전 선대 황제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제국과 대륙 전체의 혼란은 본격적으로 점화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인근 제후국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내부적으로 황권을 둘러싼 귀족들 간의 암투가 극에 달해 있었다.
그야말로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인 정국.
게다가 이런 위기를 통제해야 할 제국의 황제, 그런 지위에 있는 자가 겨우 17세의 여자라는 사실은 갈등을 봉합하기는커녕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