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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매 1권 (20화)
주위에 있던 군중들 중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복면인들과 맞서기 시작했고, 경비들도 마침내 인파를 헤치고 사건의 현장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제 사태의 수습은 시간문제인가?’
카시우스는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만약 놈들의 의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여 불안감을 조성하느냐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중 앞에서 범행을 자행한다는 행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고 해도 논리에서 어긋난다. 만약 제국에 대한 경고나 위협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즉흥적으로 범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사전에 공식적으로 경고하고, 사후에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하는 게 순서에 맞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의문이 사라지기는커녕 반대로 의구심만 더욱 커졌다.
결국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가 혹시나 하고 생각했던 ‘그것’. 그것이 아니고선 지금의 이 이상한 테러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위험하다!’
생각과 동시에 그의 몸이 반응했다, 머리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본능적으로.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가 혹시나 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였다.
“꺄아아악! 카, 카시우스 님!”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여성 신관 하나가 찢어질 듯 비명을 길게 질렀다.
그리고 이어 그녀의 비명을 듣고 카시우스를 응시했던 다른 사람들 또한 놀라 크게 비명을 질렀다.
너무도 뜻밖의 상황.
“아!”
중인들은 감탄사를 내뱉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카시우스의 곁에 바싹 붙어서 그를 호위하고 있던 남성 신관, 그중 한 명의 손에 손바닥 한 마디 길이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단검의 끝은 카시우스의 가슴을 향하고 있었으며, 진한 핏물이 칼자루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하게.
곧이어 카시우스의 하얀 토가가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3
카시우스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섬뜩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단검이 자신의 심장 한 치 앞에 있었다.
비록 본능적으로 왼손을 뻗어 칼날을 중간에 잡았지만, 칼날에서 전해지는 예리한 한기는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정말 아슬아슬했다.’
전장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었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위험천만했다.
상대의 기습을 완벽히 막은 건 아니었다.
칼날을 움켜쥔 그의 손바닥에서는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고, 왼손 전체가 서서히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그나마 살이 많은 엄지손가락 부근의 손바닥으로 감싸듯이 칼날을 움켜쥐었지만, 또한 그 덕분에 손가락이 잘리거나 근육이 상하는 것은 막았지만,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그의 토가를 붉게 물들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이어서 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기습한 상대, 정면에서 자신을 감쌌던 신관을 바라봤다.
상대는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175cm가량의 평범한 키에, 약간은 둥근 평범한 얼굴형, 게다가 그 평범한 얼굴형과 어울리는 전혀 특징이 없는 평범한 이목구비까지…… 상대는 길을 걷다가 어디선가 우연히 본 것 같은 느낌, 혹은 어느 동네에나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러나 카시우스의 생각은 달랐다.
‘특징이라곤 전혀 없는 게 특징인가? 역시 전문 자객이다! 절대 자신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자객의 첫 번째 조건에 비춰 봤을 때, 이자는 그야말로 타고난 자객이다!’
비록 자신을 암살하기 위한 자객이었지만, 그는 상대의 치밀함에 내심 감탄했다.
만약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자객은 그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다 간신히 접근을 했더라도 만약 그에게 무기가 들려 있었다면, 자객은 절대 그를 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객도 혹독한 전문 훈련을 받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카시우스 또한 수많은 실전에서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전문가였으니까.
그래서 자객은 다른 동료들로 하여금 소동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깜짝 놀랄 소동을 일으킨 뒤 경호를 구실로 카시우스에게 접근한다. 그리곤 소동이 거의 진정될 무렵, 카시우스의 긴장이 풀어질 무렵, 일격을 가해 목표를 암살한다.
이것이 이름 모를 자객이 꾸민 카시우스 암살 계획의 전말이었다.
카시우스는 상대의 눈을 노려봤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평범한 갈색의 눈을.
그러나 그 평범해 보이는 눈 속에는 수많은 살인을 통해서만 가질 수 있는 살기(殺氣), 어쩌면 카시우스의 그것과도 비슷한 살의(殺意)가 숨어 있었다.
상대 또한 매서운 눈초리로 카시우스의 눈을 노려봤다.
자신의 치밀한 계획을 간파당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듯했지만, 곧 자객 특유의 냉철함을 되찾은 듯 침착하게 카시우스의 기색을 살폈다.
‘명불허전! 과연 듣던 대로다! 괜히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건 아니다!’
자객 또한 상대에게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이토록 자신의 암살을 잘 막아 낸 상대가 있었던가.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인 그였지만, 카시우스처럼 대범하면서도 신속한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검을 막아 낸 상대는 처음이었다.
중간의 단검이 물러설 수 없는 힘겨루기로 인해 부르르 떨리는 가운데, 그렇게 둘은 잠시 서로를 살폈다.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말로는 길었지만, 실제 둘이 마주한 시간은 겨우 몇 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고, 수많은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기엔 충분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칼날을 잡아 불리한 입장인 카시우스였다.
‘상대가 전문 자객이라면 샌님 같은 신관들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오른손을 들어 주위의 신관들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이어,
“흥! 어림없다!”
냉소와 함께 카시우스의 오른발이 상대의 복부를 걷어찼다, 실전에서 단련된 장수답게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전광석화처럼.
동시에 그는 칼날을 잡은 왼손을 놓으며, 몸을 옆으로 빙글 돌려 직선으로 찔러 오는 단검을 흘려보냈다.
이에 대한 자객의 대응 또한 훌륭했다.
“과연……!”
자객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몸을 옆으로 비틀어 카시우스의 발길질을 피해 냈다, 그 역시 실전에서 단련된 듯 불필요한 동작을 최대한 배제한 신속한 몸놀림으로.
그리곤 찌르던 단검을 수평으로 휘둘러 이번에는 카시우스의 목을 베어 갔다.
‘역시 빠르군!’
카시우스는 상체를 반쯤 뒤로 젖혀 단검을 피해 냈다, 상대의 팔 길이와 단검의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덕분에 단검의 서늘한 기운이 목젖 한 치 앞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다시 오른발을 움직여 이번에는 상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이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둘의 공방.
“아!”
주위에서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었다.
카시우스와 자객, 그들이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치열한 격투를 벌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건 그렇게 빠르게 공격을 주고받으면서도 각자의 단검과 발이 상대의 몸에 스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모두가 둘의 대결을 그저 방관만 했던 건 아니었다.
잠시 후, 몇 명의 경비들은 급히 제단으로 올라가 자객을 제압하려 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방해로 인해 경비들은 제단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경비들을 막아서고 카시우스와 자객의 대결을 방관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카시우스를 따르는 흑사자대였다.
어느새 나타난 백여 명의 흑사자대원들은 제단 주위를 둥글게 에워쌌다. 군중이 너무 많아 군마는 타지 못했지만, 전투에 나서듯 죽음의 가면을 쓰고 완전무장을 한 채.
그러나 그들은 장창을 들고 제단 위로 난입하는 대신 오히려 제단을 호위하듯 군중들의 접근을 차단하며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했다.
‘왜 자신들의 상관을 구하지 않는 거지?’
‘그냥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는 건가? 대체 왜 그럴까?’
‘설마 저 흑사자대원들도 카시우스 님의 암살에 연관이 된 건가?’
당연히 군중들과 경비들은 의구심과 불만이 가득했지만, 서슬 푸른 그들의 위엄에 감히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그때, 셉티무스는 팔짱을 끼고 멀리서 제단 위의 상황을 구경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쯧! 아무래도 우리 대장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던 모양이군. 이 정도로 죽일 수 있는 사내라면 죽여도 내가 벌써 죽였겠지. 뭐, 그래도 덕분에 오랜만에 대장의 실력을 구경하게 됐군.’
그를 비롯한 흑사자대원들은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 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카시우스와 자객의 격투를 구경했다.
사실 카시우스의 암살을 가장 많이 시도했던 것은 자신, 셉티무스였다.
비록 카시우스가 부임 초기부터 파격적인 언행으로 흑사자대원들을 사로잡았지만, 모두가 그에게 매료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부 대원들은 말만 그럴 듯한 귀족 나부랭이라 그를 폄하했고, 그 반대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셉티무스였다.
애초부터 셉티무스를 비롯한 흑사자대의 강경파들은 고귀하신 귀족 나부랭이들을 자신들의 상관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언제나 말만 내세우고, 자신의 체면만 중시하며, 출세에만 눈이 먼 사관학교 출신의 샌님들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고로 위장해 부임한 상관들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었고, 이러한 전통(?)은 카시우스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러나 카시우스는 죽이지 않았다. 아니, 죽일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암살을 시도했지만 그럴 때마다 쓰러진 건 카시우스가 아니라 그를 죽이려 했던 흑사자대원들이었다.
‘젠장! 또 그 생각을 하니 옆구리가 쑤시는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왼쪽 옆구리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세 번째로 암살을 시도한 때였던가, 그는 세 명의 동료와 함께 자고 있는 카시우스의 막사를 한밤중에 급습했다.
한 명을 죽이기 위해 네 명이나 달려드는 게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앞선 실패들로 인해 일대일의 대결로는 절대 카시우스를 죽일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된 탓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시우스는 역시 카시우스였다.
암살은 무참히 실패했고, 그들은 오히려 카시우스가 자신들을 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내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지 않았다면, 아마 대장의 검은 내 옆구리가 아니라 내 목을 베어 버렸겠지? 대장님은 자신에게 반항한 자들은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는 성격이니까. 젠장!’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재차 쓴웃음을 머금었다.
뭐, 그렇다고 그때 암살에 실패했던 게 불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암살의 실패를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암살에 실패한 덕분에 그들은 최고의 상관을 맞이할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뜻하지 않은 개선식의 주인공도 되었으니까.
게다가 셉티무스가 흑사자대원들의 개입을 막은 건 단순히 카시우스의 실력을 믿어서만이 아니었다.
그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금 이 상황이 대중이 흥분할 만한 모든 요소를 완벽히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련과 고난을 이겨 낸 영웅의 승리!
고전부터 식상할 정도로 많이 사용된, 하지만 그때마다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멋진 소재였다.
오히려 시련이 없는 영웅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며, 시련을 통해 영웅은 더욱 성장하고 자신의 존재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켰다.
그래서 셉티무스와 흑사자대원들은 일부러 사태를 방관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와 흑사자대원들이 이런 생각을 하며 제단을 통제하고 있는 사이, 제단 위의 격투는 더욱 치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