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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매 1권 (21화)
자객은 방법을 바꿔 약간 변칙적인 방법으로 단검을 휘두르며 카시우스를 공격했고, 이에 카시우스는 처음보다 더욱 빠른 몸놀림으로 상대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반격을 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팽팽하면서도 치열한 공방전.
그런데 그렇게 일이 분가량의 시간이 흐르자, 상황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상대와 직접 격투를 벌이고 있던 카시우스 본인이었다.
‘이자는 정말 나를 죽이려는 생각이 있는 걸까?’
상대가 변칙적으로 휘두르는 단검을 거의 본능적으로 피해 내며 그는 명확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상대가 정말 날 죽일 생각이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단검 하나만 휘두르는 것은 명백한 실수다. 만약 내가 자객이었다면 단검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무기를 준비하고, 또 혼자가 아니라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공격해 확실히 암살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상하다고 느낀 첫 번째 이유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놈의 공격은 빠르고 현란하다. 하지만 오직 그 것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날 죽이겠다는 살의가 부족하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겉보기에만 요란한 암살을 시도하는 것일까?’
그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상대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진짜로 자신을 암살할 마음이 없었으면 모를까, 이런 이상한 암살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만약 놈의 목적이 날 암살하는 게 아니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상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상대가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단검을 비스듬히 찔러 오는 순간, 피하는 대신 대범하게도 상대의 목을 오른 주먹으로 같이 공격했던 것이다.
과연 예상대로였다. 지금껏 피하기만 하던 카시우스가 예상치 못하게 반격을 하자, 자객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며 급히 단검을 거두었다.
‘그랬군! 결국 이 모든 소동은 한 편의 연극이었단 말인가? 난 그 연극에서 장단을 맞춘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 모든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인가?’
마음이 착잡했다. 개선식만이 아니라 암살까지도 누군가가 꾸민 연극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는 화가 치밀다 못해 기가 막혔다.
어쨌거나 상대의 의도를 알았으니 이를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가 방어를 도외시한 채 계속 공격만 계속하자, 자객은 곧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의 호쾌한 발길질이 자객의 턱에 명중했고, 자객은 실 끊어진 연처럼 붕 뜨더니 멀찌감치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곧이어 흑사자대원들의 제지를 뚫고 경비들이 난입을 했고, 그들은 쓰러진 자객을 손쉽게 제압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용이 아닌, 당장의 눈앞에 드러난 결과였다.
카시우스의 압도적인 승리!대중은 열광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보란 듯이 위기를 이겨 낸 영웅의 모습에 열광했다. 아니, 단순히 열광하는 정도가 아닌, 말 그대로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카시우스! 카시우스! 카시우스!
조금 전까지의 긴장은 모두 잊고, 대중은 일제히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경비들에게 연행되어 제단 아래로 끌려 나가는 자객과 대비되어, 그의 웅장한 모습에 열광하는 함성은 더욱 크고 우렁차게 신성한 언덕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카시우스는 그런 대중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완패다! 이번에는 나의 완패다!’
속으로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누군가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씁쓸함에 분노마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마음일 뿐.
그는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고 열광하는 대중을 향해 담담히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카시우스는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제부터 정치판에 몸을 담게 되었음을.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자신이 완벽하게 함정에 걸렸다는 사실을.
오늘의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은 정체 모를 정적에게 크나큰 약점을 잡혔으며, 앞으로 언젠가 오늘의 이 사건이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의 정치 인생은 시작되었다.
4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일단 어떻게 암살범이 신관으로 위장을 할 수 있었는지가 의문이었다.
신관, 그중에서도 특히 개선식에서의 제례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신관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랜 고행과 수련을 거쳐 신앙심과 덕망이 높은 상위의 신관만이 제례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행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암살범이 신관으로 위장했다는 것, 그것은 ‘신의 집’ 내부의 깊숙한 부분까지 간섭할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두 번째는 암살범의 최후였다.
본래 암살범은 개선식이 끝나고 일급 감옥으로 이송되어 자세한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감옥으로 이송된 직후, 그는 숨겨 놓은 작은 단검을 이용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것이다.
과연 보안이 철통같은 감옥에 어떻게 칼을 숨기고 들어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경비의 눈을 속이고 칼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할 수 있었을까?
이것 또한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의문이었다.
세 번째는 카시우스 또한 현장에서 느낀 의문, 어째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였다.
확실히 암살범의 계획은 훌륭했다.
그토록 판단이 빠른 카시우스가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멀리서 구경하던 군중이 깜짝 놀랄 정도로 암살범의 계획은 치밀하고 훌륭했다.
그런데 그런 절호의 기회를 잡았으면서 어째서 암살범은 그를 죽이지 않았을까? 아니, 맨 처음 그의 가슴을 향해 단검을 찔렀을 때, 암살범은 정말 그의 심장을 노리기나 했던 걸까?
이 또한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의문이었다.
그 외에도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째서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대범하게 암살을 시도했는가, 어떻게 암살범의 동료들이 무기를 숨겼는가, 어째서 그들이 공화를 자처했는가, 그리고 어째서 경비들의 대응이 안일하고 늦었는가 등…….
의문들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줄어들기는 고사하고 더욱 늘어나기만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의문들이 해결되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리고 카시우스가 예상했던 대로, 이날의 사건은 훗날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
* * *
티투스는 웃었다.
자신의 집무실에 편히 앉아 모든 일이 확실히 마무리되었다는 보고서를 읽으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였다. 무지한 대중은 그가 조작한 ‘쇼’에 열광했고, 오히려 그의 예상보다 더욱 카시우스라는 꼭두각시에 빠져들었다.
일말의 의구심을 품었던 자들도 ‘쇼’가 끝난 뒤에는 완전히 꼭두각시에게 빠져들었으며, 이제부터 꼭두각시가 영웅이라는 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역시 대중은 어리석고 몽매한 존재란 말인가?’
그는 성악설에 입각하여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을 재차 차갑게 비웃었다.
사실 암살의 성공은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가 치밀하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물리적인 힘으로 카시우스를 암살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았던 것이다.
만약 정말 그를 암살하자면 독이나 다른 수법을 사용해야지, 자객 몇 명으로는 절대 그를 암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이상한 암살이 나왔던 것이다.
―만약 운이 좋아 최초의 시도에서 단숨에 암살을 성공하면 카시우스를 ‘죽은 영웅’으로 삼아 그 분노를 공화로 돌린다. 그러나 만약 암살에 실패하더라도 카시우스를 키워 자신들의 ‘거사’를 위한 계기로 사용한다.
즉, 중요한 것은 암살 시도, 그 자체이지 암살의 성패 여부가 아니었다.
이번 암살을 계기로 대중은 카시우스에게 완전히 빠져들었을 것이다.
제국의 초대 황제 베리타시우스 1세를 떠올릴 정도로. 아니, 베리타시우스 1세가 본토 태생이 아니라 동쪽의 이민족 출신이라는 소문마저 있었기 때문에, 순혈주의에 입각한 일부 극성파는 카시우스를 제국이 배출한 진정한 영웅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내뱉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암살이 자작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야 빤했다. 어리석은 대중은 처음 그에게 빠져들었을 때보다 더욱 빠르게 그에게 실망할 것이다.
그는 구국의 영웅에서 일순간에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전락할 것이고, 그가 쌓아 올린 모든 영예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증거? 진실?
세상에 아직도 그런 어리석은 환상을 믿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자가 있단 말인가? 그런 허황된 것을 조작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진실은 결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진실이란 그저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 그럴듯한 환상에 불과하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진실의 정의였다. 비록 일부는 이런 그의 사상을 너무 성악설에 치우친 것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상이 옳다고 확신했으며, 또 이러한 사상 덕분에 평범한 서생에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의 생각은 계속되었다.
‘원래 카시우스는 약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언뜻 보기엔 신분의 제약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약점으로 보이겠지만, 그는 제일 밑바닥으로 떨어짐으로 인해 그 모든 약점을 상쇄하게 되었다. 본래 약점이라는 것은 무언가 소유한 것이 있어야만 생기는 것이니까.’
―잃을 것이 없으니 약점 또한 없다.
그게 바로 티투스가 평소부터 카시우스를 견제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랐다. 거짓 암살이라는 칼을 자신이 쥐게 됨으로써 그는 앞으로 언제든 카시우스를 무너뜨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그가 카시우스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중, 삼중으로 카시우스를 옭아맬 덫이 차례로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치밀하게 거미줄을 치고 먹이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 독거미처럼.
지금 당장 카시우스를 무너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당분간은 꼭두각시로 철저히 이용하기 위해 그에게 더욱 힘을 실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 꼭두각시의 역할이 모두 끝났을 때, 그리하여 더 이상 꼭두각시가 필요없게 되었을 때, 그는 이 칼을 이용해 카시우스를 찌를 것이다.
‘세상에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정말로 약점이 없는 자가 있다면, 약점을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다! 후후후후!’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엷은 미소를 지었다.
카시우스와 티투스의 첫 번째 모략(謀略) 대결은 그렇게 티투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