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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매 1권 (22화)


제7장 준장군[Semi―Imperio]



1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패, 단 한 번의 좌절도 모르고 살아왔다.
비록 올해 스물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에 불과했지만,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임관한 지도 불과 십 년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는 누구나 부러워 마지않는 최고의 길만을 걸어왔다.
사관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것은 기본.
일단 군의 경력을 가장 핵심이라는 정보부에서 시작했다.
정보부에서도 일반적인 하위 참모급 장교가 아니라 1급 작전 장교로 시작을 했고, 이후에도 첩보, 인사 등의 최고 핵심 분야만 거쳤다.
단순히 경력만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보직을 맡든지 그는 단연 두각을 나타냈고, 어떤 임무를 수행하든지 늘 예상을 뛰어넘는 최고의 결과만을 도출했다.
군에서 수여하는 빛나는 훈장들은 언제나 그의 차지였으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젊은 인재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신의 능력 못지않게 더 대단한 것은 그의 배경이었다.
붉은 장미, 제미니우스!‘장미의 동맹’의 한 축이자, 흰 장미의 비르고스 가문과 함께 현재 제국의 권력을 양분하고 있는 가문. 그 제미니우스 가문의 장자(長子)가 바로 그였다.
일단 그의 부친인 아도니스 사틴 제미니우스(Adonis Satin Geminius)는 황제에 버금가는 최고 권력자이자, 드넓은 제국에도 오직 단 두 명만이 존재하는 집정관[Consul]이었다.
작은 숙부인 페네우스 사틴 제미니우스(Peneus Satin Gemineus)는 입법관[Quaestor:입법의 총책임자]이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친지들이 정부의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정부의 요직이란 말로도 부족한, 제국의 모든 권력의 절반가량이 그의 가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고의 능력과 최고의 배경을 동시에 지닌 젊은 야심가.

이렇듯 태어나면서부터 은수저를 입에 문 그였기 때문에 임관 후의 초고속 승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중요 부서만을 거치며 매년 승진을 거듭했고, 임관한 지 불과 칠 년 만에 만 명의 병사들을 통솔하는 군단장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한 귀족들은 백인대장부터 시작하여 천인대장이 되는 데까지 구 년에서 십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단 칠 년 만에 만 명을 통솔하는 지방의 군단장이 된 것이다.
군단장이 된 다음에도 승승장구는 계속되었다. 군단장이 되어 서부의 이민족과 군사적으로 충돌이 잦은 아크리아(Acria) 지방에 파견된 뒤, 그는 이민족들과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조리 승리를 거두었다.
삼 년간 그가 수행한 전투가 무려 사십여 차례.
그 많은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고, 서부 국경 지역에 대한 제국의 지배권을 공고하게 다졌다.
비록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그의 승리를 폄하하기도 했다.
서부의 이민족은 동부나 북부의 이민족들에 비해 군사력이 약하고, 내부적으로도 분쟁이 많아 다루기가 한결 수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많아야 사천 명이 최대인 적들과의 전투만 벌였지, 자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병력을 지닌 적과는 전투를 벌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나약하고 단결력이 결여된 적이라고 해도 사십여 차례에 이르는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끄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그에게 있어, 언제나 영광의 길만을 걸어온 그에게 있어, ‘장군[Cum Imperio]’이란 그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거치게 되는 일종의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았다.
쿰 임페리오(Cum Imperio)!독자적인 군사 지휘권을 지니는 최고 사령관. 제국에도 오직 다섯 명 만이 존재하며, 제국 군인들의 꿈이자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그란디스 임페리오(Grandis Imperio:대장군)’, 더 나아가 제국 최고의 권력자를 꿈꾸는 그에게 있어 ‘쿰 임페리오’란 그저 하나의 군사적 직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난생처음으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쿰 임페리오’란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던 그가 지금 눈앞의 상황을 보고 분노에 치를 떨고 있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수도 베리타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망루, 그리고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카시우스의 성대한 개선식이었다.

―쿰 임페리오! 쿰 임페리오!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쿰 임페리오’ 혹은 ‘이오 임페리오’라는 말을 합창했다.
‘카시우스……!’
그는 움켜쥔 주먹을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만약 제국에서 성대한 개선식이 벌어진다면, 그는 그 개선식의 주인공은 반드시 자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서부 변방의 야전 사령관이 되었던 것이고, 그곳에서 묵묵히 전공을 쌓았던 것이다.
또 실제로 그의 가문에서는 그를 차기 ‘쿰 임페리오’로 만들기 위한 여러 계획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고, 그가 개선식을 거행하는 것은 시간문제로만 보였다.
그런데 그의 첫 번째 목표인 ‘쿰 임페리오’가 달성되기 직전, 느닷없는 장애물이 나타나 그의 앞길을 막은 것이다.
비록 꼭두각시에 불과하긴 했지만, 대중을 열광시키는 모든 요소를 지닌 카시우스라는 장애물이.
게다가 그의 분노를 자극하는 것은 단지 개선식을 빼앗겨서만은 아니었다.
믿었던 부친마저, 가문의 다른 이들마저 카시우스를 영웅으로 만드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더욱 참기 힘든 치욕이었다.

―모두에게서 배신을 당한 기분!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인해 재차 부르르 몸을 떨었다.
카시우스는 막 암살을 막아 낸 직후, 그 영광의 빛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대중의 환호도 절정을 이룬 상태였고, 이로 인해 그의 분노도 곧 절정에 달한 상태였다.
‘놈……! 아직 네놈의 승리로 끝난 게 아니다. 난…… 피케르다!’
꽉 깨문 그의 입술에서 문득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이름은 피케르 사틴 제미니우스(Picer Satin Geminius)!카시우스와 함께 제국의 차세대 영웅 지위를 두고 자웅을 겨루게 되는 인물이었다.



2

연회는 화려했다.
카시우스의 개선식을 축하하는 연회는 한마디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연회가 벌어지는 장소만 해도 화려함의 극치였다.
온통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황궁 제8별채의 로비는 그 넓이만 해도 족히 오백여 평에 이르렀다.
까마득히 높이 솟은 천장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십 개의 샹들리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고, 궁중 악단이 연주하는 부드럽고 기품있는 음악이 잔잔하게 흘렀으며, 연회장 곳곳에 세워진 각종 예술품들은 화려함을 넘어서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단 장소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이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최상위 귀족, 손가락 하나로 수천 명을 부릴 수 있는 최상위 귀족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던 것이다.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개선식 축하연.
그러나 이 자리에서 가장 빛난 것은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 개선장군 카시우스였다.
실로 오랜만에 군복을 벗고 옅은 하늘색의 토가를 입은 카시우스.
그는 그저 연회장 중앙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조각 같은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밝은 샹들리에 불빛 아래에서 더욱 빛이 났고, 간간이 그가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의 주위에 몰려 있던 귀부인들의 입에서는 길게 탄성이 쏟아졌다.
‘아름답다!’
최신 유행의 페플로스16)로 한껏 멋을 살린 귀부인들이었지만, 카시우스의 미모와 비교하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한때는 제국 최고의 명문가라 불리던 안겔루스 가문의 후예이다.
이번 개선식을 통해 인지도와 명성마저 얻었으며, 게다가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그의 외모는 언제 어디서든 빛이 났다.
따라서 자연히 그의 주위에는 말 많은 귀부인들, 특히 미혼이거나 미혼의 딸을 둔 귀부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사귀는 이성은 있는가? 좋아하는 이성은 있는가? 만약 좋아하는 이성이 없다면 어떤 유형의 이성이 좋은가?

귀부인들이 한꺼번에 질문을 던지는 통에 카시우스는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이런 것들이 정말 제국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귀족들인가? 정말 시끄러운 족속들이군.’
카시우스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카시우스에게는 그저 모든 것이 불편할 뿐인 자리였다. 군인들의 땀 냄새와 전장의 피비린내에 익숙한 그에게 있어, 귀부인들의 화장품 냄새와 향수는 오히려 역겨울 정도였다.
말라비틀어진 전투식량과 야전의 싸구려 포도주에 익숙해진 그에게 있어, 산더미처럼 쌓인 산해진미와 진귀한 포도주는 오히려 식욕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만 가져왔다.
‘누가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구해 줬으면 좋겠군.’
비록 겉으로는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다행이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선배! 전쟁터면 돌아다녔다더니, 그 곱상한 얼굴은 여전하군요! 아니, 예전보다 더 아름다워진 것 같은데요?”
그의 뒤편에서 돌연 생기 넘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그토록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귀부인들의 말과 웃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대신,

―장미의 가문을 뵙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든 귀부인들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인사했다.
세상에 그를 부를 수 있는 여자는 많다. 그를 이처럼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여자도 몇 명은 있다. 하지만 그를 ‘카시우스’라는 이름 대신 ‘선배’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 있는 여자는 드넓은 제국에서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나시디아 솔 비르고스(Nasidia Sol Virgos).
제국 최초로 여성의 신분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한 비르고스 가문의 영애.
그에겐 사관학교의 4년 후배인 그녀는 현재는 대장군 직속의 정보부에서 상급 장교로 복무 중이었다.
본래 제국은 여성의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문학이나 예술 활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상위 귀족들 중에는 남편을 대신하여 정치나 경제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여성도 몇몇 있었다.
그러나 군사 활동에까지 참여하여 현역으로 복무 중인 여성은 제국 전체의 역사에 비춰 봐도 오직 나시디아뿐이었다.
카시우스는 자신을 부른 상대에게로 몸을 돌렸다. 역시나였다. 그의 뒤에는 예상대로 귀부인들의 페플로스 대신 제국의 붉은 군복을 입은 나시디아가 서 있었다.
“선배! 얼음 같은 차가운 분위기도 여전하군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시 생기 넘치는 어투로 말했다.
그는 대답 대신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사 년 전에 사관학교를 졸업할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비록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여전했지만.
170cm가량의 여자로서는 큰 키, 균형 잡힌 몸매와 기다란 팔다리, 미인형은 아니지만 시원하게 생긴 이목구비와 짙은 갈색의 머리칼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그때보다 더욱 당찬 힘이 느껴졌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도 자신감이 넘쳤다.
“이제 완전 군인이 다 됐군.”
그 모습을 본 카시우스도 가볍게 웃으며 인사했다.
“이제라뇨? 전 언제고 반드시 선배의 뒤를 이어 제국 최초의 여성 장군으로서 개선식을 거행할 사람이라고요!”
그녀는 지지 않겠다는 듯 양손을 허리에 올리며 더욱 당차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