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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혜검 1권 (5화)
그 바람에 진송하는 송 자 항렬의 도사들과 친하게 지내기는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는 진송하에 대한 현은의 지나친 애정에 의해 벌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이미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에 진송하와 이들 사이는 메울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였다.
퍽!
“으윽!”
결국 송방이 참지 못하고 진송하를 지나치면서 어깨로 그를 밀치고야 말았다.
쿵!
당연히 진송하는 제몸을 가누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찍었다.
“송방!”
이에 송암이 꾸짖었지만 송방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저 녀석의 두툼한 엉덩이를 보라고. 이 정도 충격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을걸?”
“……그만하고 어서 가자.”
“쩝, 알았어.”
피식.
자신을 지나치며 짓는 송방의 비웃음과 송암의 경멸 어린 시선은 진송하의 어린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저러는 걸까?’
진송하는 현은 때문에 저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몸이 아파 거의 밖에 나가지 못하고 방 안에서만 지냈다. 그만큼 또래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강했는데 저들은 자신을 이리 취급한다.
‘그래, 분명히 내가 허약해서 저러는 거야.’
그런 진송하에게 유일하게 품은 희망이 있다면 얼른 몸이 나아서 아버지인 현은에게 무공을 배우고 강해지면 저들과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진송하는 그렇게 엉덩방아를 찍은 채로 무공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다 무언가 깨달은 듯 깜짝 놀랐다.
“아차, 이러다 늦겠다!”
내원으로 가려던 목적을 깨달은 것이다.
진송하는 이내 힘겹게 일어나 내원 쪽을 향해 서둘러 걸음을 놀리기 시작했다.
* * *
무당파 내원 안에 위치한 충허암(沖虛庵)이란 이름의 암자.
바로 묵유자와 현은이 기거하는 곳이다.
좌정한 채 차를 마시던 묵유자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이제 막 사당을 나서려는 현은을 불러 세웠다.
“잠시 이리 오거라.”
“예? 저, 지금 볼일이 있어서…….”
“잠시면 된다.”
그 말에 현은은 결국 발길을 돌려 묵유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진 노인과 네가 송하를 거둔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어가는구나.”
“…….”
진송하의 이야기가 나오자 현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기색을 읽었음인가? 묵유자가 안타까운 얼굴로 물었다.
“아직도 삼 년 전의 그 일 때문에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냐?”
“…….”
삼 년 전의 일이란 대체 무엇일까?
현은은 진송하를 건강하게 만들어 자신의 제자로 키우려는 열망에 수시로 무당산을 뒤지고 다니며 몸에 좋다는 약초를 캐어 와 먹였다. 후에 내공을 익힐 때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
그렇게 산을 뒤지고 다니던 현은은 삼 년 전 우연히 천 년이나 묵은 산삼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년삼왕(千年蔘王).
천 년 묵은 삼을 여타 산삼과 구분하여 삼중에 왕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영약을 발견했으니 현은이 얼마나 흥분하였겠는가? 자신이 먹는다면 능히 삼십 년 이상의 공력을 증진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진송하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곧바로 정성스레 달여서 먹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무릇 약이란 그 효용을 바로 알고 써야 하는 법.
더구나 약효가 뛰어난 것이라면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함이 당연하다.
그런데 영약 취급을 받는 천년삼왕을 무턱대고 먹였으니, 그 바람에 진송하는 천년삼왕의 양기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모두 송하를 위하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송하도 너를 탓하지 않는데, 넌 어찌 그러는 것이냐? 더구나 그때 네가 훔친 소청단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니, 이제 그만 죄책감을 떨쳐 낼 때도 되지 않았느냐?”
당시 현은은 자신 때문에 진송하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장문인의 거처에 숨어들어 소청단을 훔쳐 진송하에게 먹였다.
그간 수많은 약초들을 먹으면서 쌓였던 양기와 천년삼왕의 어마어마한 양기가 만나 진송하의 몸속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거라 생각했기에, 소청단이 내공의 증진뿐만 아니라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 탁월한 효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다행히 그의 예상이 들어맞아 진송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송하가 송 자 항렬의 아이들에게 뭐라고 불리고 있는지 아십니까? 약저입니다, 약저요!”
바로 이것이었다. 진송하의 몸이 그토록 비대한 이유.
소청단은 목숨을 잃지 않을 수준으로 양기를 가라앉혔을 뿐, 여전히 진송하의 몸속에는 상당한 양의 양기가 잠재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 삼 년 동안 몸의 균형이 흐트러져 그렇게 몸이 비대해지고 만 것이다.
“…….”
현은이 흥분을 가라앉힐 때까지 잠자코 침묵을 지키던 묵유자는 품속에 손을 넣어 작은 목갑을 꺼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일견하기엔 그저 평범한 목갑. 당연히 현은은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 하였다.
“내가 삼 년 전에 네게 약속했던 바로 그 물건이다.”
“……아, 사부님!”
그 말에 현은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묵유자의 말에 그의 안색은 정반대로 굳어져 갔다.
* * *
무당파 내원에 위치한 진선각.
“어허, 괜찮대도 그러는구나.”
“아니에요. 이 정도쯤은 괜찮은 걸요.”
진 노인이 말리는 데도 진송하는 진선각의 서가에 꽂힌 책들을 진선각 밖으로 나르고 있었다.
오래된 책일수록 건물 안에서만 보관을 해서는 습한 환경에 의해 곰팡이와 책벌레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응달에 말려 주어야 했는데, 이는 진선각의 청소를 담당하는 진 노인의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고희를 넘긴 진 노인은 이 일을 하는 데 힘이 부쳤다. 그래서 진송하가 진 노인을 돕기 위해 해가 중천에 뜨자마자 서둘러 백운촌을 나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한쪽 의자에 억지로 자신을 앉힌 후 땀을 뻘뻘 흘리며 책을 옮기는 진송하의 모습에 진 노인의 얼굴은 걱정 반, 기쁨 반으로 물들어 있었다.
“응?”
그때 도사 몇 명이 진선각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진 노인이 알아차렸다. 그는 가장 앞에 선 중년의 도사가 바로 현은임을 알아보고는 다짜고짜 소리부터 내질렀다.
“야, 이놈아! 왜 이리 늦어?”
책 옮기는 일을 도와줄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고 한 현은이 약속한 시간보다 한참 후에야 왔으니 그가 성을 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책을 옮기고 있는 진송하를 목격한 현은도 진 노인에게 소리를 지르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어? 아니, 이 영감탱이가! 그렇다고 연약한 우리 애를 부려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뭐야? 설마 내가 시켜서 저러는 것이겠냐?”
그때 진송하가 둘의 고함 소리에 현은을 발견하고는 무거운 몸으로 바닥을 쿵쿵 울리며 달려가 그에게 뛰어들었다.
“아버지!”
와락.
자신에게 달려들어 안기는 진송하에게 현은은 짐짓 엄한 얼굴로 꾸짖었다.
“이놈아! 몸도 안 좋은 녀석이 이리 무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지만 진송하가 말없이 밝게 미소를 짓자 결국 현은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으이구! 착한 우리 아들. 이제 그만하고 남은 일은 저 녀석들에게 맡겨 두거라.”
“이 정도는 괜찮아요.”
“어허!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준비한 선물을 주지 않을 테다!”
“우와! 선물이요? 뭔데요?”
역시 진송하는 아직 열한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다. 선물이란 말에 얼굴에 기대감이 한껏 어린 것이다.
“후후. 날 따라오거라.”
진송하의 손을 잡고 진선각 뒤로 돌아가는 현은.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진 노인의 미간이 좁혀졌다.
“선물? 아니, 선물을 주는데 왜 아무도 없는 뒷마당으로 데려가? 설마 저 녀석, 또다시 소청단을 훔쳐 온 건 아니겠지? 이번에는 면벽 수련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인데…….”
진송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였다지만 무당의 지보인 소청단을 훔친 일이 그냥 넘어갔을 리 만무했다.
원래라면 훨씬 더 크게 경을 쳤겠지만,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함이었다는 올바른 이유와, 장문인의 직계 사손이라는 현은의 위치 때문에 다행히 일 년간의 면벽 수련을 명받는 것으로 그칠 수 있었다.
문제는 현은이 이번에도 같은 일을 저지른다면 저번처럼 면벽 수련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 노인은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도 쫓아가서 사실을 확인해 현은을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송하의 건강이 회복되기만 한다면 자신 역시 무슨 일을 당한다 해도 현은과 같이 행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긴, 내가 말린다고 들을 놈도 아니지.”
결국 진 노인은 뒷마당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선 신경을 끄기로 하고 현은이 데려온 도사들을 향해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 * *
진선각 뒤의 좁은 공터.
진 노인의 예상이 맞았음인가?
현은이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내민 손바닥 위에는 작은 환단 한 알이 들어 있는 목갑이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진송하가 올해로 비록 열한 살밖에 되지 않았다지만 환단을 직접 보고도 어떤 것인지 모를 리 없었다.
“아버지! 설마 또 소청단을 훔쳐 오신 거예요? 저 절대 안 먹을래요! 저번에도 이거 훔쳐 오시는 바람에 일 년 동안 절 만나러 오지 못하셨잖아요.”
진송하는 그저 벌로 자신을 보러 오지 못했다는 정도만 알았지 현은이 그로 인해 그 힘든 면벽 수련을 받았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진송하가 걱정할까 봐 현은이 비밀로 한 것이다.
“후후. 안심하거라. 이건 소청단이 아니니까 말이야. 그러니 걱정 말고 어서 먹거라.”
그제야 진송하는 환단이 이전에 먹은 소청단과는 색과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때도 그저 몸에 좋은 약이라고 했을 뿐, 소청단이라 하고 먹인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이전의 소청단이 그냥 회색빛이 나는 작은 환단이었다면, 이번 것은 소청단과 크기만 비슷할 뿐, 환단이라기보단 구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투명하고 푸른빛을 띠고 있어, 오히려 소청단보다 더 귀해 보였다.
“……그럼 이게 소청단이 아니란 걸 원시천존께 맹세할 수 있으세요?”
나름 머리를 짜내어 생각해 낸 비장의 한 수였다. 도사가 되어 원시천존을 걸고 한 맹세를 어길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소청단 하나에 대해서만 의문을 던진 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나이가 어려 가진바 지식이 얕은 탓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진송하는 구슬 모양의 좋은 약이 곧 소청단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심 속사정을 알려 주길 원치 않았던 현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표정을 굳히며 맹세를 했다.
“물론이지! 이것이 소청단이 아니라는 걸 내 원시천존께 맹세하마.”
그러면서 자연스레 목갑 안에 있던 환단을 꺼내어 진송하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 차거!”
환단은 대단히 차가웠다.
진송하는 그 이질적인 차가움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는 현은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떠냐? 기가 막히게 차갑지? 마치 네 몸의 양기를 고치기 위해 태어난 약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그러니 어서 먹거라.”
“흐으음.”
약간 미심쩍은 눈빛으로 현은을 바라보던 진송하는 이내 이 구슬처럼 생긴 약이 자신의 몸을 치료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히고는 환단을 입에 집어넣었다.
꿀꺽.
쏴아아!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 버리는 환단과 곧이어 몸 안에 퍼지는 차가운 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