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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혜검 1권 (7화)


도리어 현은과 자신이 나뉘어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지식만을 진송하가 이어받게 된다고 생각하자, 현은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그래,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지. 이는 나에게도, 송하 녀석에게도 오히려 잘된 것이야.”
그러면서도 현은에게도 잘된 것이란 말까지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
잠시 침묵을 지키는 두 사람.
진 노인은 한동안 현은이 불러온 도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책을 옮기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묵유자에게 물었다.
“잠깐. 송하가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했지? 그럼 삼 년 전, 소청단을 먹인 후에 현은이 가르친 심법은 대체 무엇이냐?”
혈맥이 손상되었다면 심법을 익히는 게 불가능한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에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진 노인이 이리 묻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 노인의 물음에 묵유자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송하에게 가르치라고 현은에게 알려 준 심법입니다. 보통의 심법이라면 당연히 익힐 수 없습니다만, 그 심법은 내공을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장생술과 신선술을 위한 단순한 호흡법이기에 괜찮은 것이지요.”
무인이 아니기에 강호사에는 어두워도, 고서와 관련된 지식과 그 안에 있는 내용을 통해 도가와 관련된 지식, 특히 무당파에 관해서는 해박한 진 노인이다. 그 덕분에 묵유자가 말하는 호흡법이 무엇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태극심법을?”
태극심법.
어찌 보면 시장통에서 쉽게 사볼 수 있을 법한 이름이다. 태극이란 현재 그만큼 흔하게 쓰이는 도교 용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당에서 태극이란 말은 금어에 해당했으니, 현재 태극권, 태극검과 함께 무당에 존재는 하지만 그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는 심법이 바로 태극심법이었다.
태극권(太極拳).
태극검(太極劍).
태극심법(太極心法).
무당에서는 이 세 가지 무공을 장삼봉이 창안한 최고의 무공이라 하여 태극의 무학이라 일컫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이야기. 현재는 무당에 있어서 계륵과도 같은 무공들이 된 지 오래였다.
실상 태극권과 태극검의 경우, 구결과 그 초식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무리를 깨닫는 자가 나오지 않아 쓸모없는 무공이 되어 버렸다.
그와 달리 태극심법은 일반적인 심법과는 그 이치가 완전히 달랐고, 내공의 증진이란 면에서 너무도 효율이 낮아 버려진 경우였다.
일 갑자의 세월을 꾸준히 익혀도 반 갑자는커녕 십 년치의 내공도 쌓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장삼봉이 창안한 무공임에도 무당파의 독문 심법 중 최악의 심법이란 악명까지 달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장삼봉의 심법이다. 아무에게나 공개하는 심법이 아니었으니, 무당의 도사도 아닌 진송하가 태극심법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묵유자나 현은이 진 노인과 진송하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야 진송하가 태극심법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 노인은 어이가 없었다.
“현은은 소청단을 훔치더니, 너는 태극심법을 가르쳐? 어째 사부와 제자가 하는 짓이 이리 똑같단 말이냐? 장로 놈들이 알기라도 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터인데!”
진 노인의 어투는 비명에 가까웠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태극심법은 흡기를 통해 자연의 기를 단전에 담는 것이 주목적인 여타의 기공들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태극심법이야말로 무공을 익히는 무림인들의 위한 심법이 아닌, 장생술을 목표로 하는 도사들을 위한 심법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그것도 모를 것 같으냐!”
또다시 울려 퍼지는 진 노인의 고함 소리.
묵유자는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설명을 이어 갔다.
“혈맥이 뒤엉킨 송하가 소청단의 효용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심법을 익히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이미 송하가 소청단을 복용한 상황이었으니, 약효가 제대로 전해져 몸이 낫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끄응…….”
하긴,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한 이유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 생각했다. 더구나 묵유자가 그런 짓을 하다니.
“태극심법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어찌 되는 줄 알지 않느냐?”
“압니다.”
안다고 한다. 하긴 이 사실이 알려지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묵유자 자신일 터. 그럼에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이라니…….
진 노인은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
“……고맙구나.”
“제게도 손주 같은 아이이지 않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 다시금 침묵이 이어졌다.

* * *

한편 본인은 그 이름을 모르고 있었지만, 태극이라는 이름을 지닌 심법을 운기 중인 진송하는 지금까지 몸을 괴롭히던 양기가 차갑게 식어 가는 걸 느끼며 일종의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그런 무의식 상태에서도 태극심법의 구결을 외우고 있었는데, 이는 지난 삼 년간 진송하가 얼마나 열심히 심법을 운기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진송하는 자신이 무공을 익힐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빨리 몸이 건강해져서 또래 아이들과 무공을 익히면서 친하게 지내게 되기를 열망해 왔다. 그래서 자신이 배운 유일한 무공이랄 수 있는 이 심법을 열심히 연마해 온 것이다.
혈맥의 손상.
이는 기가 다닐 통로가 손상되었다는 의미로, 운기할 수 있는 길 자체가 막혔다는 말이다. 하지만 태극심법은 그 궤가 완전히 다른 심법이었다. 이는 그 구결에서 특징이 잘 나타나 있었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 하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구결의 가장 처음에 오는 말이다.
난해한 말.
심법에 있어 길[道]이라는 건 당연히 혈맥을 의미함인데, 그 혈맥을 혈맥이라 하면 그것은 혈맥이 아니라니? 혈맥을 통해 내기를 단전에 모으지 말라 하면 그게 어디 심법인가?
더욱이 도가도비상도라 하면 도교를 대표하는 경전인 도덕경의 첫 장, 첫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태상노군이 인세에 내렸다는 도경의 첫머리와 일치하는 심법.
그 효율도 그렇지만 구절을 통해 이토록 ‘나는 무가 아닌 도를 위한 심법이오’라고 적나라하게 주장하고 있는 심법이다 보니, 무당파의 도사들에게 최악의 심법으로 취급받는 것도 하등 이상할 바 없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송하에게라면 다르다. 아니, 오히려 혈맥이 손상되어 몸 안에 기를 돌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진송하이기에, 마치 누군가 안배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딱 들어맞는 심법이었다.
물론 그 효율은 논외로 두어야겠지만…….
어쨌든 그래도 심법이기에 영약을 흡수하는 효능 정도는 지니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묵유자가 현은을 통해 진송하에게 태극심법을 가르치라 명한 것이다.
물론 가르치라 명한 묵유자도, 가르친 현은도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효과가 있을 것이란 확신도 없이 심법을 가르친다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면 결코 선택하지 않았을 방법이었다.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진송하는 진 노인에게 배우고 있는 도경의 지식들을 통해 태극심법의 구결들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지난 삼 년간 열심히 갈고닦아 왔다.
‘길[道]은 길[道]이 아니다.’
나름대로의 해석.
길을 길로 보지 않는다고 직역한 것이니, 참으로 무식한 해석이랄 수 있었다.
태극심법을 연구했던 과거의 도사들 중에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한 이는 전무했다. 아직 어리고 가진 지식이 얕은 진송하였기에 가능한 해석이었던 것이다.
그 말 그대로 진송하는 심법을 운기하면서도 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혈맥이 막혀 있으니 가능할 리도 없었지만, 그 사실을 모름에도 진송하는 그렇게 행했다.
그 결과, 현재 진송하의 단전은 텅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그래도 심법은 심법. 효용이 낮다는 건 그 효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인데, 그럼에도 단전이 비었다는 말은 결국 잘못된 길이란 의미다.
그럼 대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진송하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현재 그의 코와 입, 귀에서는 뜨거운 연기가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는 빙정이 진송하의 몸 안에 잠재되어 있던 양기를 제대로 가라앉히고 있다는 증거로밖에 볼 수 없었다.
영약을 먹은 것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 심법을 통해 약의 기운을 제대로 흡수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현은은 그런 진송하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순조롭게 되고 있구나. 설마 사부님께서 다른 것도 아닌 빙정을 구해 오실 줄이야. 내가 또 소청단을 훔칠까 봐 어지간히 마음을 졸이신 모양이야.’
“큭큭.”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재미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몇 년 안에 네 몸도 정상으로 되돌아오겠지? 그래, 몸만 건강하면 되었지, 무공 따위 배워서 어디가 쓰겠냐? 오히려 비정한 강호를 모르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현은은 애써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었지만, 얼굴에선 자신도 모르게 진한 아쉬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저벅저벅.
“응?”
현은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사부님?”
묵유자와 진 노인이 뒷마당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에 현은은 진송하에게서 떨어져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현은이 다가오자 제자리에 멈춰 선 묵유자는 멀리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진송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빙정이 제 역할을 하고 있구나. 사실 당시엔 방도가 없어서 그랬다지만, 송하가 태극심법을 저토록 제대로 익혔을 줄은 몰랐다.”
묵유자가 보기에는 일반적인 내공심법과 그 궤가 다른 태극심법으로 영약의 기운을 이토록 제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못내 신기했던 것이다.
현은도 묵유자의 생각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소청단 때는 약효를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는데, 이번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니까 정말 일반적인 다른 심법과 그 효과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진송하의 몸은 삼 년 전의 사건으로 혈맥이 뒤엉키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진기를 흘려보내 그 안을 살펴보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다. 허공을 격하여 내기를 보내 상대를 관(觀)할 정도의 수준에 오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무당에서는 장문인인 유극 진인 정도만이 가능한 일이었고, 태극심법을 알려 준 사실을 들켜선 안 되었기에 사실상 아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묵유자도 현은도 그저 효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는데, 현재 진송하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아하니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것 같아 두 사람이 안심한 것이다.
그때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진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놈들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그만하거라. 어쨌든 지금 송하의 몸이 제대로 치료가 되고 있다는 뜻이렷다?”
진 노인의 물음에 묵유자는 잠시 진송하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송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양기가 순조롭게 제거되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전설의 만년인형설삼도 아니고, 천년삼왕 정도면 분명 빙정 한 알로 충분할 겁니다.”
“그래? 정말 다행이구나.”
진 노인은 이로써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
약간이나마 불안함을 느꼈던 현은도 사부인 묵유자가 그리 말하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묵유자의 눈은 여전히 송하를 향한 채였다.
‘정말 저렇게까지 제대로 흡수할 줄은 몰랐다. 태극심법을 이렇게까지 연마했다면, 혹시 무공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현은과 진 노인에게 진송하가 무공을 익힐 수 없다는 사실을 힘겹게 주지시켰는데,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로 그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후에 따로 불러 확인해 봐야겠구나.’
묵유자는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보고 시간을 가늠한 후, 현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송하는 진 노인께 맡기고, 너는 충허암으로 가서 채비를 하거라.”
그 말에 현은이 펄쩍 뛰었다.
“예에? 채, 채비라니요? 설마 오늘 맹으로 떠나란 말씀이십니까? 그리 서두를 것까진 없지 않습니까?”
현은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무당산으로 내려가야 하는 이유가 자신과 진송하를 떨어뜨리기 위함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