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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플레이어 1권(4화)
Chapter 1. 이세계 이플렌시아(4)


몇 마리쯤 되는 거지? 한 100마리쯤 되나?
숫자가 너무 많으니 살짝 위기감이 들었다.
황금을 얻기는커녕 늑대 밥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겠어? 벌써 늑대들에게 포위된 상태. 물러설 곳이 없으니 싸울 수밖에!
타악―
늑대들이 땅을 박차고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워낙 숫자가 많아서 햇빛을 가리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주위가 어두워졌다.
찌이잉―
위기감을 느끼자 머릿속이 다시 울리며 주위가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파앙―
정신없이 늑대들의 공격을 피하며 닥치는 대로 주먹을 날리고 축구공처럼 뻥뻥 차 주었다.
한 방에 한 놈씩!
신나게 해치우고 있던 나는 문뜩 피로감을 느꼈다.
온몸에서 샘솟던 이상한 활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느려졌던 늑대들의 움직임도 점점 빨라진다. 그에 반해 번개처럼 빨랐던 내 몸놀림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거 시간제한이 있었던 거냐?
세상에 무한히 쓸 수 있는 자원이란 건 없는데, 어째서 이 능력을 무한히 쓸 수 없다는 걸 짐작하지 못했을까?
마음이 다급해졌다.
“크윽!”
늑대의 발톱이 내 팔을 스치며 상처를 냈다. 그러나 상처를 돌볼 틈이 없다.
아니, 몸을 사리며 녀석들을 공격할 여유가 없다. 시간이 다 되기 전에 늑대들을 해치우려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해야 했다.
피투성이가 되는 걸 각오하고 사투를 벌인 끝에 이제 1대 1 상황.
겨우 한 마리 남은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내 몸에 그 능력이 완전히 소모되어 버렸다.
“허억, 허억.”
폐가 찢어질 듯 호흡이 가쁘고 전신의 근육은 젖산에 쩔어서 피로를 호소한다.
다행히 늑대 쪽도 멀쩡한 것은 아니다.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배를 한 번 맞아 가죽이 터지고 내장이 줄줄 흘러내리는 상황. 그런데도 눈에서 불을 뿜을 듯 투지가 전혀 누그러들질 알았다. 그래서 상처 입은 짐승이 더 사납다고 하는 건가?
“크르르르르―”
먼저 공격해 온 것은 잿빛 늑대였다.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난 반사적으로 왼팔을 들어 올렸다.
콰드득―
예상대로 늑대가 내 팔뚝을 물어뜯었다.
원래는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한 것으로, 야생동물이라 그런지 공격 패턴이 단순해서 다행이었다.
지독한 통증을 참으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파악―
손바닥 안에 감춰 두었던 돌멩이가 늑대의 왼쪽 눈알을 파고들었다. 괴력이 없어진 내 힘으론 이런 공격밖에.
크와아앙―
고통을 느낀 늑대가 물었던 팔뚝을 놓고 물러났다.
팔뚝이 너덜너덜해졌을 뿐 아니라 손목이 이상한 각도로 덜렁거리는 걸 보면, 뼈가 산산조각 난 모양이다. 복합 골절이랄까?
“으으― 으윽!”
부러진 팔이 끔찍하게 아프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렀는지 머리도 어지럽다.
늑대는 한쪽 눈알을 잃고도 다시 공격하려는 듯 전의를 불태웠다.
이대로 죽는 건가? 늑대 밥?
늑대에게 생으로 살점을 뜯어 먹히는 광경을 상상하며 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젠장! 떨 것 없어. 진정해.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난 멀쩡한 오른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운 좋게 부러진 작은 나뭇가지를 찾아냈다. 이걸로 반대쪽 눈을 쑤신다면, 늑대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할 거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
기회는 단 한 번뿐! 타이밍을 놓치면 그걸로 끝.
늑대를 나를 노려보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온다. 손에 땀이 나며 숨이 막힐 것 같다.
털썩!
“…….”
허무하게도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기며 다가오던 늑대는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하긴, 내장이 흘러나올 정도의 타격에 계속해서 피를 흘렀으니 출혈 과다로 쓰러진 거다. 아무튼 나로서는 천만다행.
그러나 출혈이 심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빨리 출혈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응?
입고 있던 옷이라도 찢어서 출혈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던 나는, 몸에 난 상처를 보다가 흠칫했다.
상처들이 저절로 아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러진 오른팔도 저절로 뼈가 붙고 벌어진 상처에 새살이 솔솔 돋아났다.
약간의 흉터와 피딱지만 남았을 뿐, 마치 마법같이 치유된 것이다. 그마저 흔적이 남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한 게 착각은 아닐까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수확할 시간!”
늑대들의 사체에서 부지런히 보라색 구슬을 빼냈다. 구슬 풍년.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구슬을 깼다.
파앗―
“…….”
이번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설마, ‘꽝! 다음 기회에’ 뭐 이런 건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난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구슬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구슬에서 금화가 나올 확률은 고작 20퍼센트 정도로 23개의 동전만 얻을 수 있었다.
그때 숲 전체를 울리며, 전철역에 열차가 들어올 때처럼 알림음이 들려왔다.
삐리리리리―
열차가 출발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난 황급히 뛰어갔다. 예상대로 열차에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차가 다시 힘차게 출발했다.
갑자기 어두운 터널이 나오고,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멀어진 의식이 되돌아오며 달리는 열차의 소음이 귓가에 들려온다.
덜컹∼ 덜컹∼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며 눈을 뜨자, 전철 안은 잠들기 전처럼 승객들로 가득했다.
현실에 돌아온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하철 안에 가득한 승객들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늑대의 발톱에 갈가리 찢겨졌던 셔츠가 멀쩡했다.
현재 시각은 7시 47분 29초.
이플렌시아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적어도 몇 시간은 보낸 것 같은데,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았다.
설마,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을까?
난 황급히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동전이 닿는다. 슬며시 꺼내 보니, 동전은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황홀한 금빛이 내 마음을 유혹한다.
두근. 두근.



Chapter 2. 게임의 규칙(1)


며칠이 지났다.
이플렌시아에서 얻은 금화는 금은방 몇 군데를 돌아 현금으로 바꿨다.
그렇게 해서 받은 돈은 약 280만 원.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무엇보다 현실 시간으로 고작 3∼4분 만에 얻은 돈이 아닌가?
그곳에서 더 많은 황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유혹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후로 난 이플렌시아의 세계로 가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모든 교통수단을 버스만 이용한 것.
사실, 지금의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당장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열심히 과외수업을 하고, 동생이 공장에 다니는 수입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니까. 황금을 얻으려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제대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거짓말 같은 이 능력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이 없다. 이플렌시아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문자를 보낸 자가 누군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휘둘리는 건 질색이다.
쏴아아아―
샤워기를 틀어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혔다.
일단은 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며칠 전 병원에 가서 검사 일정을 잡아 두었다.
내게 생긴 이상한 변화는 두통과 연관성이 있었기에 CT(컴퓨터 단층촬영) 검사를 통해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띠리리리―
그때 거실의 전화가 울렸다.
머리를 감는 중이라 약간 귀찮기는 했지만 좀처럼 벨 소리가 멈추지 않아서 난 수건을 두르고 거실로 나갔다.
딸각―
“여보세요?”
“강민혁 씨 되십니까?”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 순간,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네. 그런데 무슨 일이죠?”
“남동생의 이름이 강형기 씨가 맞습니까?”
“네. 그건 왜 물으시죠?”
저쪽에서 약간 뜸을 들이더니 곧 입을 열었다.
“지금 강형기 씨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방금 XX 종합병원에 실려 왔습니다. 상태가 안 좋아서 바로 수술에 들어가셔야 하는데 보호자분이 필요해서 연락드린 겁니다.”
“네? 뭐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XX 병원이라고 하셨죠?”
화들짝 놀란 나는 택시를 타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필요한 절차를 밟고 나서야 난 의사에게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군데가 골절되었고 내출혈도 있지만, 가장 심각한 건 머리뼈가 깨지며 뼈 조각이 뇌를 누르고 있다는 겁니다. 상태로 보아 뇌출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실감이 나지 않아 잠시 멍청이 서 있던 나는 갑자기 물었다.
“수술하면 살 수는 있나요?”
“생존 확률은 꽤 높은 편입니다. 다만, 뇌가 이미 손상되었을 확률이 꽤 높아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마음의 각오를 해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그저 머릿속이 멍했다.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악조건 속에서도 건실하게 살아 보려고 애를 쓰던 동생은 어느 몰지각한 뺑소니 운전수 때문에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젠장……. X까! X발!
“크아아악!”
가슴이 답답해 미쳐 버릴 것 같아 소리를 내질렀다. 병원 복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별 미친놈이 다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힐끗 쳐다본다.
뭘 봐? 다 죽여 버린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살의가 치솟았다.
찌이잉―
두통과 함께 기묘한 감각이 다시 깨어났다.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린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어!
마음의 밑바닥에서, 깊은 곳에서 어둡고 추악한 것이 꿈틀거린다.
참지 마! 모두 갈가리 찢어 버려!
정말 사고라고 칠 것 같은 기분.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고개를 돌려 보니 여동생인 은진이가 거기에 서 있었다.
“뭐야? 사고라도 칠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형기 오빠 상태가 그렇게 심각해?”
여동생의 얼굴을 보는 순간 미칠 것 같은 분노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너 어떻게 여기 왔어?”
“병원에서 연락 왔어. 형기 오빠가 뺑소니를 당했다며? 많이 심각해?”
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지금 수술실에 들어갔어. 수술이 잘되길 기도해야지.”
은진이는 내 말에 뭐라고 반문하려고 하다가 핸드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어, 나 지금 병원이야. 아니, 내가 아픈 건 아니고 오빠가……. 뭐라고? 이 미친X. 지금은 그럴 기분 아냐. 좀! 짜증 나게 굴지 마. 뭐? 뭐라고? 진작 말하지. 이 망할 X아.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은 은진이는 곧바로 내게 말했다.
“난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해. 나중에 수술 잘됐는지. 전화해 줘. 오빠!”
“뭐? 급한 일? 지금 네 친오빠가 수술실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 이보다 더 급한 일이 뭐냐?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은진이는 내가 울컥해서 쏟아 낸 말에 발끈했는지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우며 말했다.
“짜증 나게 왜 그래? 오빠가 뭔데……. 아니, 우리 가족이 내게 해 준 게 뭔데? 해 준 것도 없으면서 뭔 참견이야? X바! 괜히 왔어!”
결국 은진이는 병원을 나가 버렸다.
저 녀석에게 화내 봤자 더 엇나갈 뿐이란 걸 잘 알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복도 의자에 앉아 동생의 수술이 끝나기를 초초하게 기다렸다.
“강민혁 씨, 강민혁 씨.”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며 깨웠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수술을 기다리다 어느새 잠들었던 것 같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까 그 의사였다.
“수술 잘 끝났습니까? 동생은 어떻게 됐나요?”
“뇌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경과를 지켜보면서 세 번 정도 더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솔직히 뇌사 상태로 갈 확률이 꽤 높습니다만, 깨어날 가능성도 40퍼센트 정도는 있으니까 희망을 갖고 지켜보시죠.”
“네. 감사합니다!”